조창을 계기로 형성된 ‘마산성신대제’(2)
조창을 계기로 형성된 ‘마산성신대제’(2)
행사진행 회의서부터 신목을 선창에 가져와 세우기까지의 과정
마산성신대제는 원형을 ‘별신굿’에서 찾는다. 여기서 별신이란 모든 신(神)을 일컫는 말로 산신과 목신, 성주, 용왕 등 모두 포함된다. ‘성신(星神)대제’라고 명명하고도 사당에 모셔진 신장은 ‘별신장군’, ‘성신대장’, ‘배선장군’ 등으로 불러 전래의 ‘별신(別神)’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성신대제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제의 흐름을 보더라도 남해안 별신제와 성격상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마산에는 예부터 나라에서 운영하는 조창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그에 맞춰 별신굿과 유교적 의례가 결부된 형태로 정착하게 되었다.
성신제는 1년에 한 번 여는 기제, 5년에 한 번씩 여는 중제, 10년에 한 번씩 여는 대제로 구분해 지내왔다. 마산문화원이 지난 2006년부터 발굴하기 시작한 것은 대제다. 지난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성신대제가 거의 원형에 맞춰 재현되었다. 그 하나하나 절차를 따라가 본다.
성신대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맨 먼저 제관들이 모여 제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논의를 한다. 그것이 지난 9월 5일 성신대제보존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제관들이 논의한 내용은 신목을 지정하는 문제, 제수 준비, 그리고 목도꾼을 어떻게 선정하느냐 등이었다.
참석자는 보존회장과 보존회 사무국장, 어시장중매인조합회장, 풍물단장, 수협이사, 축제위원, 조합감사와 상인회 임원 등이었다. 이들이 성신대제를 준비하고 행사를 치르는 핵심 구성원이다.
성신대제는 사흘간 지내게 되는데 본격적인 절차는 17일부터 시작했다. 오전 9시. 김종석 중매인조합회장을 비롯한 4명의 제관이 마산어시장으로 제물을 구입해기 위해 나섰다. 어물전과 과일전 등을 들러 장을 본다.
장을 보는 제관들은 모두 입에 ‘하미’라는 흰색 한지를 입에 물고 있어야 한다. 제의에 쓸 음식이기 때문에 침이 튀어 부정을 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니 손짓과 표정으로 물건 값을 물어보고 살 수밖에 없다. 제수용품을 살 때 특이한 점은 절대 물건값을 깎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상에 올릴 성스러운 것인데 값을 깎아서야 어찌 신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하겠는가 하는 인식이 배어서일 테다.
제물을 준비하고 나서 10시 30분, 제관들은 자산동 송림으로 향했다. 신목에 쓸 나무를 지정하기 위해서다. 신목은 다른 말로 별신대라고 한다. 별신굿에서 신대를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인식이다. 무당집에서 굿이 있는 날 대나무로 된 신대를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신이 나무를 타고 강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신대를 신간이라 하기도하고 혹은 ‘솟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솟대가 마을의 안녕을 위한 액막이 벽사의 역할인데 비해 성신대제에의 별신대는 신과 인간이 만나는 가교역할을 하는 상징이다. 단군시대 태백산 신단수처럼.
신목을 지정하게 되면 오방색으로 띠를 두르고 주변에 왼새끼로 꼰 새끼줄로 금줄을 친다. 금줄에는 흰색의 소지를 끼우는데 이 나무가 성신대제의 신목으로 쓰임을 알리기 위해 조금 큰 종이에는 ‘성신신목’이라고 표시한다.
신목을 지정하고 나면 성신제당으로 돌아온다. 제당은 ‘하당’으로 불렸다. 지금은 없지만 산에 있는 신당을 ‘상당’이라고 했는데 그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제관들은 낮 12시에 돌아와 어시장 수산물도매센터 옥상에 지어놓은 제당에 금줄을 쳤다. 이렇게 금줄을 치고나면 첫날 일정은 마무리가 된다.
다음 날 오전 9시 30분. 어시장 어디선가 풍물소리가 요란하다. 풍물단 한 무리가 줄을 지어 사물을 치면서 동네 곳곳 지신을 밟듯 휘젓고 다닌다. 동서풍물단이 옛 선창걸립패로 둔갑하여 길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길놀이의 목적은 뭐니뭐니해도 사람을 끌어모으는 일이다. 곧 주민들이 모여 큰 행사를 벌인다는 얘기다. 풍물 소리에 어시장 상인들도, 사무실 사람들도 쭈뼛쭈뼛 내다본다.
10시부터 어시장 선창마당에선 선창걸립패를 비롯한 목도꾼들과 마을주민들이 모여 주민화합 한마당을 펼친다. 처음엔 그렇게 시끄럽다가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되는 게 우리네 전통 풍물이 아니던가. 앉아서 관람하던 주민들도 어느새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춘다.
30분 동안 풍물놀이 한마당이 진행되고 나면 목도꾼들이 오와열을 맞추기 시작하더니 한쪽 줄 목도꾼들은 전날 장을 보던 제관들처럼 입에 ‘하미’를 물고 어깨에 목도채를 걸었다. 목도채는 8개 그러므로 16목도다. 목도꾼이 16명이면 신목의 규모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증에 의하면 옛 성신대제 때 14~15간 높이의 신목을 썼다고 한다. 현재 도량형으로 따지면 24~25미터가 족히 되는 크기의 나무다. 그러니 16목도꾼을 동원할 수밖에. 목도꾼은 모두 어시장 주민들로 구성됐다.
선창을 떠난 산신제 제관들과 목도꾼, 풍물패 일행이 11시 자산동 송림에 도착했다. 산신제관 일행은 신목 앞에 당도하자 우선 금줄을 걷어내고 제상을 차렸다. 이들은 신목을 무사히 선창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로 산신제를 지내려는 것이다. 물론 주민들의 안녕과 뱃길 안전을 염원하기도 했다. 제상에는 젯밥 대신 흰쌀이 올랐다. 특이하다.
산신제가 시작됐다. 제주가 신목 앞에 꿇어앉아 술 한 잔을 올렸다. 그러자 참여자 모두 삼배를 한다. 삼배가 끝나자 제관은 술을 신목 주변에 뿌리고 제상에 올렸던 과일 등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어 고수레를 했다.
이러한 행위가 끝나면 목도꾼 중 한 명이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다. 물론 요즘 세상에 멀쩡히 있는 산의 나무를 베는 경우가 있을 수 없다. 그냥 나무를 하는 흉내만 내는 것이다. 신목은 행사 주최 측에서 미리 준비한 것을 쓴다. 솔가지를 쓸어내고 다듬어서 이제 모두 힘을 합쳐 가지고 내려가면 되는 일이다.
신목을 산에서 가지고 내려올 때 그냥 내려오지 않는다. 당연히 소리가 있다. 이를 목도소리라고 한다. 이 과정을 지역 기업이 2008년 펴낸 ‘몽고식품 100년의 발자취’에 소개되어 있다. 1954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대로 옮긴다.
“4월 20일 오전, 신목으로 정한 큰 소나무를 자른 다음, 운반하기에도 좋도록 도끼로 손질했다. 듬직한 재목을 메고 오는 데는 노동요가 필요했다. 이때 목도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구성진 사설에 구슬픈 가락이 어찌나 장중하고 숙연했던지 주민들도 감동하고 말았다.
20여 명의 목도꾼이 산에서 재목을 메고 내려와 자산동회 마당에서 쉬게 되었다. 동회마당은 바로 몽고양조장 뒤편에 붙어 있었다. 휴식을 취하는 그들에게 금강(당시 몽고간장 김홍구 사장)은 선심을 썼다.
자산동 화산탁주 도가에서 막걸리 30여 말을 가져왔고 미리 돼지를 잡아 준비한 돼지수육을 푸짐하게 내놓았다. 목도꾼뿐만 아니라 선창의 객주들과 자산동민까지 몰려와 잔치판을 벌인 것이다.”
11시 40분이 되어서야 자산동 송림 아래 타작마당에 이르렀다. 여기서 중천맥이굿을 한다. 무녀가 두 손을 모아 신목이 무사히 이동되기를 바라며 빈다. 이 짬에 목도꾼들도 목을 축이며 잠시 쉰다.
목도꾼들은 구성진 목도소리에 후렴을 하면서 다시 신목을 메고 산을 내려선다. 목도소리는 산에서 나무를 하여 내려올 때 여럿이 함께 힘과 보조를 맞춰야 하기에 ‘허여차~ 허여’하는 후렴구가 자주 반복된다.
가파른 산을 내려올 땐 느린 자진모리 박자에 발을 맞추고 평지면 휘모리에 발을 맞춘다. 목도꾼의 흥을 돋우기 위해 앞소리는 짧다.
“허여차~ 허여~ 허여차~ 허여~/헛디딜라 허여~ 허여차~ 허여~/발맞춰라 허여~ 허여차~ 허여~”
이렇게 목도로 신목을 선창까지 운반하고 나면 선창 하당, 즉 제당 인근에 신목을 세운다. 이를 별신대 세우기라고 한다. 별신대는 산에서 해온 나무 그대로 세우지 않는다. 별신대 끝에 가로목을 덧대고 가로목에는 다섯 개의 전발을 단다. 전발이란 한지에 싼 방울이다. 주먹만 하다. 전발과 함께 소지종이로 만든 성신기(무속 관습대로 종이를 오려서 만듬)도 달아서 별신대를 세운다.
별신대를 세운 후엔 금줄을 두르고 황토를 뿌린다. 이윽고 풍물패가 한바탕 신명을 풀어낸다. 그런 후 제주가 신목 앞에 나와 술 한잔을 올리고 제를 지낸다. 산신제에서처럼 모두 삼배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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