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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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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이야기에 연극 기사를 올렸다. 지지난 주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보았던 '당신만이'와 마찬가지로 늙어서 삶을 되돌아보는 그런 '노인성 연극'이다. 등장인물이 70대니까. 아직 이 연극을 보진 않았지만 소개된 정보로 보아 영감 젊은 시절 연극 배우에 대한 꿈을 접고서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온 것에 대해 언급이 있는 모양이다.

연극, 학창시절 잠시 해봤던 것도 내겐 큰 안줏거리인데... 만약 극단 활동까지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한때는 빠져드는 게 두려워 지레 겁 먹고 탈출하다시피 하며 공연장에 발길을 끊었던 적도 있지만. 그 피를 속일 수 없는 것인지... 딸아이 고등학교 때 1년이나 연극에 빠져버렸네... 적극적 만류로 겨우 벗어났지만... 영원히 등질 수는 없을 듯하다.

때가 올까...



“배우는 감정이입이 필수걸랑. 그 사람들이 그냥 막 외워서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당신은 그런 말도 못 들어 봤나? 진짜 인생이 더 드라마라고.”


단칸방에 살고 있는 70대 노부부. 이들의 유일한 낙이었던 TV드라마를 천둥번개가 치는 통에 무엇이 고장 났는지 볼 수 없게 되자 직접 드라마를 펼쳐보인다.


“이왕 할 거 배우들처럼 멋 좀 내 보자구요.”


할머니는 장롱에서 자식들에게서 선물받은 옷을 하나 둘 꺼내 맞춰본다. 천둥번개가 또 한 번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번쩍이면 젊은 시절로 돌아간 두 사람. 배우가 되고 싶었던 남편과 생활을 강조하며 남편의 꿈을 포기하게 한 아내.


그리고 막내의 사망 등 요란했던 세월을 보내면서 살아온 두 사람의 인생,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드라마가 아닐까.





오는 5일 오후 5시 밀양연극촌 가마골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노부부의 연극놀이>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연극은 ‘극단 가마골’이 제작했다. 극단 가마골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연극단체다. 이들의 무대는 ‘한결아트홀’, 옛날 가마골소극장이다. 현재 가마골소극장은 밀양연극촌으로 옮겨왔다. 극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극단은 밀양연극촌의 연희단거리패와 뿌리가 같다.


‘노부부의 연극놀이’라는 이 작품, 원제는 최보영 작가의 ‘드라마’다. 201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이다.


아옹다옹 평생을 살아오면서도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은 부부라는 것을, 이 노부부의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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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나 관련 유적을 찾아가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실물이 존재한다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이지만 그 현장을 보면서 이야기의 속내를 더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설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도 다반사입니다. 이번 ‘꽃처럼 바람처럼’의 소재가 된 ‘시락암굴’ 역시 현장을 찾기 쉽지 않았던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전설텔링’ 시리즈의 첫 이야기였던 ‘도롱이 도깨비와 효자 박 선비 이야기’에 등장했던 ‘우곡각자’의 경우 네 번에 걸친 탐사 끝에 현장을 찾아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용의 눈물’에 등장한 ‘장군바위’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 중턱에 있다는데 마침 때가 숲이 우거진 한여름이라 탐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만 사례도 있지요.


현장을 찾아내기 어려운 만큼 그 현장을 찾아냈을 때의 보람은 더 큽니다. 이번 시락암굴은 그런 차원에서 하나의 보람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했을 때 이야기는 수도 없이 검색되어 나왔어도 그 현장 사진은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마산합포구 진동에서 고성방향 삼진의거대로를 따라 가다 ‘암아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길따라 쭉 들어가면 7㎞ 지점에 시락마을이 있습니다. 아주 평화로운 시골마을입니다.











그래도 50여 가구가 사는 동네라 그런지 버스도 다니더군요. 마을회관에 들러 ‘시락암굴’을 아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여러분이 계셨는데 처음엔 아무도 ‘시락암굴’을 모른다 하였습니다. 그러다 ‘바닷가 굴’이라고 하니 그제야 ‘아, 그거’하면서 알은 체를 하였습니다. ‘아랫속개’에 가서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하였지요.


마을회관을 나와 동네 사진촬영을 위해 좀 걸어 나오는데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마을 이장님을 만났습니다. 시락암굴에 대해 물어보았지요. 이장님 역시 시락암굴이라는 표현에 대해선 잘 몰랐습니다 ‘바닷가 동굴’이라고 하니 “아~, 그 이순신굴?”이라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렸을 적, 거기에 헤엄쳐서 가보기도 했는데…, 그래 거기에 무슨 이야기가 얽혀 있다더만. 우린 자세히는 모르겠고.”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거는 배타고 가야 할 낀데. 그냥 걸어서 들어갈라 카문 힘들끼라.”


이장님과 함께 있던 어르신이 이장의 대답에 말을 보탰습니다.


“갈라 카모 갈 수야 있지. 헌데 찾기가 쉽지 않을 끼라.”


어르신의 이 이야기에 현장답사에 대한 희망이 반 토막 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고생을 해야 하나. 어르신으로부터 경로를 자세히 안내받고 차량을 이용해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가던 중 마을회관에 있던 할머니들의 말이 생각나 아랫속개에 있는 횟집에 들렀습니다.


“이 근처에 시락암굴이 있다 카던데 아시능교?”


횟감을 손질하던 중년 아주머니의 대답에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시락마을에선 이쪽에서 물어보면 알 거라고 했는데 아주머니의 대답은,


“그런 거 여기에 없어예.”


아주머니는 잘 모르고 있구나 생각하고 돌아나서려는데,


“창포고개 넘어가면 산에 동굴이 하나 있긴 한데…”


하는 것입니다. ‘설마, 산에 있는 동굴을 전설에서 바닷가 동굴이라고 표현했을까. 만조가 되어 물이 차면 동굴 입구까지 수위가 높아진다고까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차를 몰아 창포고개를 넘어 시락마을 어르신이 일러준 모 횟집으로 들어가서 또 물어보았습니다. 역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창포리에서 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가다 보면 그 어르신이 이른 대로 길이 있겠지 싶어 일단 걷기 시작했습니다. 40분을 걸어갔다가 나왔는데도 바닷가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이곳을 빠져나와 동진교 인근 바닷가 카페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바닷가 암굴이라면 혹시 이곳에서 관찰이 가능하지 않을까 여겼던 것입니다.


육안으로 잘 확인이 되지 않아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달고 바닷가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 내만 쪽으로 사진을 여러 컷 찍었습니다. 카메라 LCD 패널을 통해 확대하여 관찰해보니 이야기 속의 암굴과 비슷한 곳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아닐지 모른다 싶어도 일단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일었습니다.








다시 창포 고개를 넘어 좀 전에 갔던 곳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확인했던 위치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른 가지가 무성한 숲을 헤치고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웬 가시나무가 그렇게도 많던지. 100미터 남짓한 거리인데 1시간이나 걸려 내려왔습니다. 코를 찌르는 갯내가 어찌 그리도 반가웠던지.


멀리 사진 촬영을 하면서 위치를 확인했던 곳을 가늠하여 방향을 잡고 걸었습니다. 절벽이 바다와 맞닿은 곳이 있어서 그런지 물이 깊어 보이는 곳도 있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조심조심 바위를 타고 건너갔지요. 그렇게 10분을 걸었을까 ‘뭔가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안으로 내려와 암굴을 찾아 가는 길입니다.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고 마침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야기에 나오는 그 암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동굴 안을 관찰하면서 약간은 실망했습니다. 암굴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락암굴’ 전설을 소개하며 설명한 자료에는 어른 7~8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기껏해야 3명 들어갈까 말까 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더 자료에 대해 실망한 것은 시락마을에서 이곳의 위치가 동쪽으로 2㎞라고 했는데 위성지도로 보면 직선거리로 3㎞는 족히 되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현장확인 없이 남의 글을 그대로 베껴 쓰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겠지요.








이번 전설텔링 시리즈 3편에서 천동석의 손에 오빠를 잃은 강화선과 남편 최해원이 왜군의 눈을 피해 이곳 암굴로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해안가 길을 따라가면 위성지도로 계측해보니 4.7㎞가 나오는군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밤새 묻어주고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걸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섬세하게 묘사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전설이 만들어진 곳이 시락마을이고 창포리의 절벽 아래 바닷가 암굴을 이야기하다 보니 ‘시락암굴’이 된 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거리상으로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 과연 실제였다면, 젊은 부부가 왜군의 습격을 피해 이곳까지 왔을까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산속에 숨을 곳이 어디 한두 곳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바닷가 절벽 아래에 있는 바위동굴과 시락마을을 관련지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지혜는 배울 만하겠습니다. 시락암굴, 그 현장을 탐사하면서 1592년 임진왜란 때의 그 비극을 더욱 실감 나게 상상해봅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1)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2)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3)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4·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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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줄거리) 임진왜란이 시작되던 1592년 단옷날 시락마을 사람들은 모내기를 끝내고 이웃 어신마을과 공동으로 씨름대회를 벌입니다. 불량배 천동석은 강신우에게 씨름에 지자 밤에 흉기를 휘둘러 앙갚음을 합니다.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왜군이 마을에 쳐들어오고 모두 몸을 피합니다. 강신우는 치료가 끝나는 대로 동생과 처남인 해원을 데리고 산으로 피신하고 여기서 이미 숨어있던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을 만납니다. 강신우는 마을사람을 중심으로 의병을 구성하고 왜군의 진지에 침입해 무기를 탈취하고 잡혀 있는 마을사람들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훔친 무기로 왜군과 일전을 벌이기 직전 천동석이 나타나 무기를 달라 하고 거절당하자 천동석은 왜장에게 강신우와 의병들의 은거지를 고자질합니다. 전투 끝에 마을사람 대부분은 사망하게 되고 강신우는 사로잡히게 됩니다. 왜장은 강신우를 죽이기 아깝다고 여기지만 천동석은 당장 죽여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왜장은 서로 대결하라는 제의를 하지만 천동석은 강신우에게 당할 게 두려워 묶여있을 때 서둘러 칼을 내리쳐 목숨을 빼앗습니다. 이 모습을 본 강신우의 동생 강화선과 최해원은 소리죽여 통곡을 합니다.


두 사람은 왜군의 눈을 피해 바닷가 암굴에 몸을 숨깁니다. 마침 조선의 해군이 마을에 당도하여 전투를 벌입니다. 왜군은 풍비박산이 되었는데 어둠이 내리는 때에 뭔가 강화선과 최해원이 숨어 있는 암굴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배에서 오빠를 죽인 원수, 천동석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화선과 해원은 너무 긴장되어 오금이 저렸습니다. 암굴 속은 겨우 두세 사람 정도 부대껴 숨을 수 있는 곳인데 지금 어디 다른 곳으로 피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들켜 죽음을 면치 못할 판입니다.


“제가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천동석이 말하자 왜장이 제지를 하며 말하였습니다.


“아니다. 내가 볼 것이다.”


왜장이 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때 멀리서 날아온 포탄이 왜군의 배 옆에 떨어졌습니다. 조선군이 왜군의 도주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장군! 들킨 것 같습니다. 조선군이 쫓아오기 전에 어서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서 배로 오르시지요.”


왜군 병사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왜군 장수는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다시 암굴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암굴 속에 있던 해원과 화선은 더욱 긴장되어 서로 꼭 껴안았습니다. 두 사람의 온몸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딱!”


암굴 속으로 주먹 만한 돌이 날아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렀습니다.


“읍!”


그 소리가 암굴 밖으로 새어나가 버렸습니다. 왜장은 배에 있는 부하들에게 신호를 하였습니다. 왜군 네 명과 천동석이 칼을 뽑으면서 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저 굴 속에 누군가 있는 듯하다. 확인하라.”


왜군들은 왜장의 명령에 따라 조심스럽게 암굴로 다가갔습니다. 암굴 속에 있던 해원과 화선이 왜군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장군, 안에 무장하지 않은 조선사람 두 명이 숨어 있습니다. 끌어낼까요?”


왜장이 신호를 하자 병사들이 암굴 가까이 다가가 창을 겨누었습니다.


“어서 나와!”


암굴에서 해원과 화선이 모습을 드러내자 천동석이 먼저 깜짝 놀랍니다.


“장군, 이놈들은 어제 제 손에 죽은 강신우의 동생과 친구입니다. 바로 처치하고 어서 떠나시지요.”


왜장은 강화선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여자는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는 처리하고 여자는 배에 태워라!”


“예, 장군!”


왜군 병사들이 꼭 껴안은 두 사람을 완력으로 떼어놓았습니다.


“여보!”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놈들! 차라리 나를 죽여라!”


화선이 소리쳤습니다.


“눈물겨운 장면이구먼.”


천동석이 이죽거리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오빠의 원수, 민족의 배신자! 넌 내 손에 죽고 말 것이다!”


화선은 천동석을 노려보았습니다. 해원도 천동석을 향해 한마디 하였습니다. 해원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습니다.


“아주 사적인 감정 때문에 너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구나. 민족과 역사 앞에서 너는 죄인이 된 것이다. 너 때문에 돌아가신 마을 어르신들과 아주머니, 그리고 친구들과 동생들을 죽어서 어떻게 보려고 그러느냐? 정신 차리거라, 천동석!”


“이, 이….”


천동석이 칼을 높이 들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왜군 하나가 해원의 가슴을 긴 창으로 찔렀습니다. 해원은 앞으로 꼬꾸라졌습니다.


“여보, 부디 내 몫까지 살아주오.”


“여보, 여보!”


화선은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왜군들은 화선을 꼭 붙잡고 꼼짝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천동석이 머뭇거리다 다시 칼을 집어넣고 배에 올랐습니다. 왜군들은 화선을 먼저 배에 올리고 올라탔습니다.


“빨리 노를 젓도록 하라!”


흐린 날씨인데다 어둠이 짙어 조선군은 더 추격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추격을 따돌리고 한숨 돌린 왜장은 화선이 묶여 있는 선실로 들어갔습니다.


“어서 이것을 풀지 못하겠느냐? 내 오빠와 남편을 따라갈 것이다.”


굵은 밧줄로 묶여 있는 손목에 피가 흐르는 데도 화선은 계속 몸을 움직였습니다. 왜장은 화선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위급할 때 인질로 이용하려고 배에 태웠지만 혼자 선실에 들어와 여자를 보니 엉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화선은 왜장이 가까이 오자 발버둥을 치며 물리쳤습니다. 왜장도 화선을 어르고 달래기도 하며 때론 협박도 하면서 화선을 품으려 했지만 화선은 있는 힘을 다해 왜장의 근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년이 지독하구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렇게 발버둥치며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왜장은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고는 아무도 화선이 있는 선실 구석으로는 오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어갔습니다. 선실 곳곳에서 왜군들은 기대거나 누운 채 잠이 들었습니다. 화선은 잠이 든 사이에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서 손목을 감은 밧줄을 움직여 조금씩 느슨하게 만들어갔습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배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파도가 제법 높게 치나 봅니다. 그때 잠자던 왜군의 칼집에서 짧은 칼이 화선에게 미끄러져 왔습니다. 화선은 얼른 발로 그 칼을 끌어당겼습니다. 몸을 돌려 칼을 손에 쥐었습니다.


“뚝!”


화선의 손목을 묶었던 굵은 밧줄이 끊어졌습니다. 그때부터 화선은 그 칼을 이용해 배의 밑바닥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왜군들은 얼마나 피곤했던지 파도가 이렇게 치는 데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식경, 두 식경….


섬섬옥수 고왔던 화선의 손은 어느새 물집이 잡혔고 바닥을 파낼 때마다 손은 부르르 떨렸습니다. 그렇게 쉴새 없이 칼로 배의 바닥을 파내자 드디어 작은 구멍이 뚫렸습니다. 뚫린 구멍으로 칼을 집어넣어 더 틈을 벌렸습니다. 그랬더니 바닷물이 세차게 들어왔습니다. 물은 점점 차올랐습니다.


“배가, 배가 가라앉는다!”


선실에서 자던 왜군 하나가 몸이 물에 잠기자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에 다른 왜군들도 잠에서 깨어나 우왕좌왕하였습니다. 왜장이 선실로 내려왔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배가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헤엄을 쳐서 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화선이 선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왜군 일부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고 또 몇몇은 배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화선은 뱃머리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네~ 이년!”


천동석이 화선을 발견하고는 칼을 뽑고 달려오다 미끄러져 바다에 빠졌습니다. 천동석은 물속에서도 칼을 휘두르며 뭐라고 고함을 쳤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몇 번 물 밖으로 꼬르륵거리며 고개를 내민 후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왜군 병사 하나가 화선을 잡으려고 기울어진 배를 타고 기어올라 왔습니다. 화선은 이미 뱃머리 끝에 서 있었습니다.


“오빠! 천동석과 왜군에게 복수를 했어요. 여보! 당신을 따라가겠어요.”


화선은 어둠 속에서 연꽃처럼 몸을 던져 바닷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뒤이어 배도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왜군들도 해가 빨간 모습으로 떠오르기 전에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들은 시락마을의 왜군을 물리치고 다시 함대를 돌려 당항포로 돌아갔습니다. 하늘은 유난히 푸른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도 들립니다. ‘~’ 하는 파도 소리가 귀에 생생합니다.


“그래, 꽃처럼 바람처럼 살면 되는 거야.”


화선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난 것, 화선은 하늘이 다시 준 생명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화선은 집으로 돌아와 남자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어릴 때부터 오빠에게 무술을 가르쳐줬던 스승이 있는 산으로 향했습니다. ()


[관련기사]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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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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