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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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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줄거리) 쇠약한 어머니의 기력을 되살리기 위해 사냥을 시작한 나무꾼 구씨 청년은 사냥꾼 기질이 없어 고라니는커녕 토끼도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바위굴 안에서 산신령을 만나 마법책을 얻게 됩니다. 책에 적힌 주문을 외면 호랑이로 변하는 책이지요. 구씨 청년 호성은 사냥을 하고 싶지만 먼저 사악한 호랑이 세 마리를 먼저 처치해야 합니다.


비음산과 안민고개에서 두 마리를 해치운 호성은 어머니의 기력이 급격히 쇠하자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고라니 사냥을 시작합니다. 고라니는 호랑이와 격전을 벌이러 다니면서 서식지를 봐놨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사냥을 해 옵니다.


그러던 중 안민고개에서 해치운 호랑이를 자신이 잡았다는 진해장사가 나타납니다. 그는 사또에게 거짓으로 호랑이를 잡은 과정을 설명합니다. 호성은 이를 보고는 거짓으로 출세하려는 사람의 본성을 간파합니다.


사냥으로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지자 호성은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민입니다. 아내와 함께 생활하게 되니 몰래 호랑이로 변신할 기회가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냥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호성은 아내가 자는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와 광에 들어가 주문을 외우고 호랑이로 변신합니다. 호랑이의 출현이 뜸해지자 산적들이 극성입니다. 호성은 굴현고개에서 산적을 혼내줍니다. 그런데 관아에선 산적을 혼내준 자신을 잡으라는 방이 붙습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았다고 떠들던 진해장사는 사또의 부탁을 받자마자 병이 들었다며 엄살을 부립니다. 진해장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집니다. 그 사이 또 산적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호성은 호랑이로 변신, 산적들을 혼내주고 있는데 나졸들이 달려옵니다. 그런데 나졸들은 산적을 잡으려 않고 오히려 자신을 잡으려 합니다. 나졸들에게 겁을 주어 떨쳐내고 집으로 돌아온 호성은 아내로부터 집 근처에서 호랑이를 보았다는 얘길 듣습니다.


……………………………………………………………


호성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짐짓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피웁니다. 그러면서도 들키지 않게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산적을 혼내주려다가 오히려 나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뒤로 호성은 한동안 호랑이로 변신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역시 호랑이를 본 이후로 더욱 예민해졌기 때문에 자다가 몰래라도 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리하고자 재어놓았던 고라니가 다 떨어지게 되자 다시 사냥을 해야 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고라니입니다. 산신령 말대로 고라니 열 마리만 고아 먹으면 어머니 병환이 깨끗이 낫는다고 했으니 딱 이제 단 한 번 사냥하고 나면 더는 호랑이로 변신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아내에게 감추는 것 없이 떳떳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이야.’


자정이 넘어서 호성은 아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서 살며시 일어났습니다.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호성은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그런데 이 모습을 아내가 방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광으로 들어간 남편이 뭐라고 주문을 외더니 호랑이가 되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너무 놀랐지만 호성의 아내는 대체 남편에게 어떤 병이 있기에 저런 무시무시한 짐승으로 변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호성은 사냥하러 나가려다가 아내가 잠든 방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아내는 깜짝 놀라 문에서 떨어졌습니다. ‘여보, 이번이 마지막이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내일부턴 진정한 당신의 남편으로 돌아 가리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건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 리 만무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나간 후에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광에는 남편이 주문을 외듯 읽었던 책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 책이 남편을 그 사나운 짐승으로 만드는 것일 거야’ 하고 아내는 책을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부엌 아궁이에는 아직 장작들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호성의 아내는 책을 아궁이에 던져 넣으려다 몇 번 망설였습니다. ‘혹시 이 책과는 상관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 적힌 주문을 외우고는 바로 호라이로 변했어.’ 아내는 책을 불사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책은 처음엔 불이 잘 붙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활활 잘 타올랐습니다. 금방 재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호성은 고라니 사냥에 열심이었습니다. 여러 마리 중에서 가장 살찌고 먹음직스런 놈을 골라 사냥을 해서 집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정병산 중턱쯤에 도착했을 때 저쪽 숲에서 바스락,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지?’ 호성은 전혀 예상 밖의 기척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옆에 던져놓고 몸을 잔뜩 웅크렸습니다. 놈은 숲에서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였습니다. 저놈이 천주산 호랑이구나. 덩치가 호성보다 더 컸습니다. 호성은 주변의 지형과 지물을 살폈습니다. 덩치가 큰 상대를 이기려면 나무와 바위 등을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도 덩치가 작다고 바로 덤벼들지 않습니다. 비음산과 안민고개 호랑이를 해치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두 호랑이는 숲 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먼저 공격하려다 자칫 도리어 역습을 당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호성은 몇 번 견제 공격을 하다가 나무가 빽빽이 난 숲 쪽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사실은 덩치 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유인책입니다. 천주산 호랑이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신이 기싸움에서 이겼다고 여겼습니다. 상대가 도망을 가니 기고만장하여 뒤쫓습니다.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 천주산 호랑이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호성은 재빠른 동작으로 천주산 호랑이의 정면에 나타났다가 뒤에 나타났다가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면서 교란작전을 펼쳤습니다. 빈틈이 보일 때마다 공세를 펼쳤지만 상대가 워낙 교활한 놈이라 쉽게 당하진 않았습니다. 계속 공격을 받기만 하자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천주산 호랑이는 도망을 쳤습니다. 호성은 힘껏 뒤쫓았지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보았다던 호랑이는 자신이 아닌 그놈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므로 앞으로 더욱 경계를 철저히 서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 그런데 마법의 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찾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순간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내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크렁….”


호성은 난처했습니다. 결국 아내가 알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번만 잘 넘겼으면 모든 게 아무 탈 없이 끝나는 것인데 싶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왕 아내에게 들킨 것이니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으르으르….”


책을 달라고 하려는데 사람의 말이 나오지 않고 호랑이의 말이 나왔습니다. 큰일입니다. 아내에게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책 때문에 당신이 끔찍한 야수로 변하는 것 같아 그 책을 아궁이에 넣고 불살라버렸어요. 이제 사람의 몸으로 돌아오면 다신 호랑이로 변할 일 없을 거예요.”


‘아, 여보. 그게 아니에요. 그 책이 없으면 내가 사람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단 말예요.’ 호성은 부엌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책은 글자 하나 남기지 않고 까맣게 재로 변해 있었습니다. 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소용이 없었습니다. 몇 번을 외원도 자신의 모습이 사람으로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건강을 되찾으시고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는데,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부엌에서 재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리던 호랑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모습을 본 순간 아내는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아, 이를 어쩌면 좋아요? 그 책이 있어야 당신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었군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호성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말을 해봐야 호랑이소리만 나오니 원망도 탄식도 용서마저도 말로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호성은 어머니께서 주무시는 방을 향해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산속으로 뛰어갔습니다. 아내는 숲속으로 사라진 남편을 보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나무하러 간다고 인사를 하던 아들이 보이지 않자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호성의 아내는 남편이 멀리 일이 있어 갔다고 둘러댔습니다. 이제 겨우 기력을 되찾았는데 다시 몸져누울까 걱정이 되어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며칠 후 아침밥을 지으려 방을 나서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집 마당에 사슴이며 멧돼지며 토끼 등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사냥을 해서 몰래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호성은 어머니와 아내가 다시 가난해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이제 직접 사냥한 것을 장에 나가 팔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호성은 집 주변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천주산 호랑이로부터 어머니와 아내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몇 번 천주산 호랑이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마주치진 않았습니다. 호성은 처음 산신령을 만났던 바위굴에도 자주 찾아갔습니다. 산신령이라면 분명히 책이 아니라도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산신령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관아에서 고용한 포수들이 떼를 지어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진해장사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계속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으니 마지못해 포수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에 나선 것이 틀림없습니다.


호성이로서는 난처했습니다. 천주산 호랑이로부터 어머니와 아내를 지키려면 이곳을 떠날 수 없는데, 포수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 들어와 피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호성은 일단 겁을 주어 이들을 쫓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진해장사가 포함된 일행에게 다가갔습니다.

“크아앙!”

아무리 담력이 강한 포수라도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본능적으로 몸을 사렸습니다. 호성은 포수들이 총을 조준하기 전에 달려들었습니다. 포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러고는 진해장사를 쳐다보았습니다. 도움을 구하려 했는데 진해장사는 나무 뒤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포수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포수가 떨어트렸던 총을 다시 주우려 할 때 호성이 다가가 총을 멀리 쳐냈습니다.


“탕!”


호성은 가슴에 뜨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탕, 탕!”


등에도 뭔가 들어와 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멀지 않은 곳에서 포수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호성은 바위굴이 있는 곳으로 달렸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라도 산신령을 만나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여러 번 총에 맞은 탓인지 걸음이 예전만큼 빠르지 못했습니다. 포수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바위굴 앞에 포진했습니다. 호성은 더는 피할 곳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본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는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바위에선 자신의 집과 마을이 보입니다. ‘산신령님, 제발 모습을 드러내 주세요.’ 호성은 간절히 바랐지만 끝내 산신령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포수들의 총소리가 또 들려왔습니다. 파편들이 바위에 튕겨나갔습니다. 그 순간, 호성은 포수들의 뒤쪽으로 천주산 호랑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내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크앙!”


호성은 사력을 다해 바위에 올라갔다가 천주산 호랑이가 있는 쪽으로 훌쩍 뛰었습니다.


“타당! 탕! 탕!”


쇳덩어리들이 온몸에 박혔습니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호성은 포수들의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천주산 호랑이가 쳐다봅니다. ‘저놈을 여기서 죽이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야.’ 호성은 이를 악 물었습니다.


“타, 타, 타, 탕!”


총알이 연발로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호성은 풀썩 땅바닥에 곤두박질쳤습니다.


“와!”


포수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호성은 눈을 감았습니다. 결국 천주산 호랑이를 막지 못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호성은 희미해지는 숨소리에 섞어 마지막으로 산신령을 불렀습니다. ‘산신령님!’ 끝.


아, 잠깐! 호성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산신령이 그제야 나타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호성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었을 거예요. 산신령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늦게 나타난 것이 탈이네요.


“누가 날 불렀나? 요즘 잠이 왜 이리 많아졌나, 몰라. 만사가 다 귀찮아.”


그때 산신령은 들것에 묶여 포수들에 의해 실려 내려가는 호랑이 한 마리를 봅니다.


“저놈 어디서 본 듯한데….” (끝)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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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창원 동읍 자여마을 효성이 깊기로 소문이 난 구씨 청년 호성은 산속 동굴에서 산신령님으로부터 마법책을 선물로 받습니다. 어머니의 기력 회복을 위해 사냥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지요. 그 책에 쓰인 주문을 외면 호랑이로 변하게 됩니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려면 그 책을 보면서 주문을 외워야 하지요.


그런데 호랑이로 변해 사냥을 하더라도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나쁜 호랑이 세 마리를 처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음산 호랑이와 안민고개 호랑이를 처치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 금기를 잘 지켰지만 어머니의 기력이 급격히 쇠약해지면서 산신령과의 약속을 깨트리게 됩니다. 호성은 호랑이로 변신해 두 호랑이를 처치하면서 보아두었던 고라니 서식처로 가서 사냥을 합니다.


이런 와중에 안민고개에서 만났던 겁 많은 진해장사가 안민고개 호랑이를 관아에 들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며 으스댑니다. 시장터에서 호성과 진해장사는 눈이 마주칩니다. 호성이 살짝 웃어주었지만 진해장사는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


진해장사와 일행은 관아에 들어갔습니다. 호랑이는 네 발이 긴 막대에 꽁꽁 묶인 채 관아 뜰에 던져졌습니다. 마른 땅에서 먼지가 풀썩 일었습니다. 겨울이지만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입니다. 연락을 받은 이방이 동헌 뒤편에서 쪼르르 달려나왔고 뒤따라 사또가 걸어나왔습니다.


“호랑이 덩치가 엄청나구나. 이 호랑이를 자네가 맨손으로 잡았단 말이지?”

“예, 사또!”

“사람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말은 이야기 속에서나 보았건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대단하네, 대단해.”

“황송합니다.”

“그래, 이 호랑이를 어떻게 잡은 것인가?”


사또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진해장사에게 물었습니다. 진해장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흠, 흠하고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이었습니다. 안민고개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고는 의협심이 일어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그 흉악한 호랑이를 잡으려 안민고개로 올라갔지요.”

“흐흠, 그래서?”


사또는 더욱 귀를 세우고 진해장사의 이야기에 몰입했습니다.


“안민고개 숲 속에서 한참 매복해 있으니 자정 쯤에… 아, 이 녀석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는 것입니다. 녀석이 방심한 틈을 타서 제가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갔지요. 깜짝 놀라 당황한 녀석의 머리를 바로 이 주먹으로 ‘꽝’ 하고 내려쳤습죠. 그랬더니 녀석의 앞발이 꼬꾸라지면서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 틈을 타서 연이어 제가 주먹질을 해 결국 이렇게 죽이게 된 것입니다요.”

“오호! 대단해. 자신보다 더 큰 맹수를 맨손으로 잡다니 말이야. 이 사실을 임금께 알려야겠어. 임금께서 아시게 되면 자넨 큰 벼슬도 할 수 있을 것이야.”


사또는 그날 밤 호랑이를 잡은 것을 기념하고 진해장사를 축하하기 위해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호성은 여러 사람들 속에서 서서 진해장사가 사또에게 고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었습니다. 참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호성은 잔치가 시작될 무렵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호성의 어머니는 고라니 고기를 매일 먹고는 차츰 기력을 회복해나갔습니다. 호성은 고라니 고기가 떨어질 때가 되면 다시 호랑이로 변신해 사냥을 나갔습니다. 호랑이로 변신하고서는 사냥이 쉬웠습니다. 어머니께 요리해드리고도 많은 양이 남아 시장에 가져다 팔 수도 있었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푸줏간에 넘겼습니다. 푸줏간 주인은 고기가 싱싱하다며 값을 후하게 쳐주었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뿐만 아니라 멧돼지도 잡고, 사슴도 잡고, 늑대와 여우도 잡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집의 살림이 늘어났고 어머니도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살림에 여유가 생기자 어머니는 이웃마을 매파(중매하는 여인)에게 연통을 넣어 참한 색시를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호성이 이웃마을 처녀와 혼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효심이 지극하고 성실한 호성에 대한 소문이 벌써 이웃마을까지 퍼진 상태라 매파가 처녀의 집에 말을 꺼냈을 때 그 부모는 중매를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호성도 그 처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림이 넉넉하진 않지만 참하고 성실한 규수라는 이야길 매파에게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혼담이 있고 보름 만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난 호성은 조금만 더 있다가 결혼할 것을 하고 후회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해야 하니 필요한 때에 바로 호랑이로 변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큰일이군. 이거 어떻게 호랑이로 변해서 사냥을 하러 간담?’ 호성은 난감했습니다. 호랑이로 변하지 않으면 사냥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금세 살림살이가 나빠질 것이 뻔합니다. 호성은 고민했습니다. 그렇다고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은 아내가 잠든 사이에 몰래 빠져나오기로 하였습니다.


호성은 자주 호랑이로 변신할 수 없음을 알기에 예전보다 두 배 세 배 많은 산짐승들을 사냥했습니다. 새벽 닭이 울기 전에 호성은 광에 들어가 주문을 다시 외고 사람으로 변신한 다음 신혼방으로 살그머니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냥을 한 날 새벽, 호성은 자는 둥 마는 둥 잠시 눈을 붙였다가 아직 잠이 덜깬 아내에게 나무하러 간다며 일찍 방에서 나와 산짐승들을 큰 지게에 싣고 장터로 갔습니다. 푸줏간에 넘길 것은 넘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팔 것은 팔고 하여 묵직한 돈꾸러미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얼마 전부터 굴현고개에 산적이 나타나 길손들의 봇짐을 죄다 털고 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장에도 굴현고개를 넘어가는 사람들은 혼자 다니지 말고 항상 조심하라는 방이 붙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양서 온 어떤 이가 굴현고개 산적들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관아에서 뒤늦게 나졸을 풀어 현장으로 보냈지만 산적들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졸이 출동했다는 사실을 산적들이 모를 리 없었지요. 산적들은 며칠 동안 굴현고개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관아에서도 수색을 멈추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장에 나갈 때마다 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호성은 조만간 산적이 나타날 것이라고 짐작을 했습니다. 그러던 날 아침, 어머니와 아내에겐 산에 나무를 하러 간다고 하고선 광에 들어가 주문을 외웠습니다. 호성은 굴현고개로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호성은 천주산 낮은 봉우리 위에 앉아 굴현고개를 내려다보며 관찰했습니다. 한동안 산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식이 퍼져서인지 굴현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제법 되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요, 이사를 가는 건지 온갖 살림을 머리에 이고 지고 한 가족이 지나갈 때였습니다. 대여섯 명쯤 되는 산적들이 칼을 휘두르며 숲에서 나왔습니다.


산적을 만난 가족은 그 자리에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란 탓이겠지요. 우락부락하게 생긴 산적도 있고 못 먹어 그런지 바짝 마른 산적도 있었습니다. 산적 두목은 아이들 아버지의 목에 칼을 겨누고 가진 것을 다 내어놓으라고 했고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산적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함께 있던 다른 산적이 가족에게서 강제로 물건을 빼앗아 풀어보더니 실망하며 말하였습니다.

“두목, 지지리도 못사는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돈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어요.”

“뭐야? 에잇, 잘못 짚었구만.”

산적 두목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가족에게 얼굴을 데밀고 말했습니다.

“관아에 신고하면 알지?”

“네, . 알구말굽쇼. 우리 가족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때였습니다.

“크르르르….”

산적들은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습니다. 커다란 호랑이가 바위 위에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가족 일행은 재빨리 숲 속으로 숨어들어 갔고 산적들은 모두 칼을 빼내 들고 주춤거렸습니다.

“크앙!”

호성이 우렁찬 목소리로 위협을 가하자 산적들은 모두 나자빠지며 덜덜 떨었습니다. 호성이는 산적 두목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칼을 버리고 냅다 도망을 갔습니다. 다른 산적들도 마찬가지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을 쳤습니다.

호성은 가족일행이 숨어 있는 곳을 돌아볼까 하다가 더 겁을 먹고 두려워할 것 같아 바로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장터에선 굴현고개에서 일어난 호랑이와 산적의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호랑이가 행인을 구해주고 산적을 혼내주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호랑이가 사람들을 해치려고 굴현고개에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습니다.

그러자 관아에선 다시 호랑이를 잡아오는 자에게 큰 상금을 주겠노라고 방을 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사또는 진해장사를 불렀습니다. 당연히 안민고개에서 호랑이를 잡은 것처럼 굴현고개에 나타난 호랑이도 그렇게 잡아달라는 주문을 하려는 것이었지요.


사또의 연통을 받은 진해장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마도 그날 밤에 본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이지 싶은데 직접 잡으러 나섰다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터이고 또, 못 가겠다고 하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장사의 체면에 먹칠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해장사는 꾀를 내었습니다. 아파서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며 꾀병을 부렸습니다.


진해장사가 갑자기 병에 걸려 드러누웠다는 소식을 들은 사또는 실망이 컸습니다. 사또는 하는 수 없이 나졸들을 동원해 호랑이 사냥에 나섰습니다. 몇 날 며칠을 호랑이 사냥에 나섰지만 나졸들은 호랑이가 있는 곳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관아에서 호랑이 사냥에 혈안이 된 와중에 곳곳에서 산적들이 출몰한다는 이야기가 고을에 파다했습니다.


호성은 관아에서 산적을 먼저 소탕하지 않고 사람을 전혀 해치지 않은 자신을 먼저 잡으려 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산적들의 횡포는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호성은 하는 수 없이 호랑이로 변신해 산적이 자주 나타나는 곳으로 갔습니다. 산적들은 민가에까지 내려와 마을을 약탈하고 있었습니다.

“크아앙!”

호성은 산적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습니다. 무기를 들고 반항하는 산적은 앞발로 타격해 기절하게 하고 겁이 많은 산적은 꼼짝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와~!”

수많은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나졸들이 창을 들고 쫓아오고 있습니다. 호성은 이제 나졸들에게 산적 무리를 맡겨도 되겠다 여기고 산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나졸들은 산적을 잡을 생각은 않고 자신을 쫓아왔습니다. 기껏 산적들을 잡아줬더니 나졸들이 엉뚱하게 자신을 쫓아오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러다가 산적들이 모두 도망가겠다 싶어 호성은 되돌아온 길을 달려가 나졸들에게 고함을 쳤습니다.

“크앙!”

나졸들은 공격할 생각도 못하고 주춤거리더니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습니다.


나졸들은 호성이 잡아놓은 산적들을 포박하여 관아로 데려갔습니다. 사또는 잡으라는 호랑이는 잡지 않고 산적들을 잡았다고 나졸들을 나무랐습니다. 이 사실이 다음날 장터에 널리 퍼졌습니다. 호성은 사또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무를 모두 팔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진지한 표정을 하며 다가왔습니다.

“여보, 어젯밤에 갑자기 잠이 깨어 일어나 보니 당신이 없던데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호성은 뜨끔했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옛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제 이실직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라니 한 마리만 더 잡으면, 그래서 어머니의 기력이 완전히 회복되면 그땐 다시 호랑이로 변신할 필요도 없으니 굳이 지금 말해서 걱정하게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보…, 그런데 얼마 전에 집 근처에서 호랑이를 본 것 같아요.”

호성 가슴은 이제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들킨 것일까?

“서, 설마. 이곳에 어찌 호랑이가 나타나겠소? 잘 못 보신 걸게요.”

호성은 호랑이로 변신한 모습을 들킨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보았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5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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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창원시 동읍 자여마을에 사는 호성이란 청년은 효자입니다. 나무를 해서 연명하는 어려운 살림의 나무꾼이지만 어머니의 끼니를 거르게 하는 일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 청년이지요. 그러나 어머니의 기력이 점차 쇠약해지면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고라니 사냥을 해서 고기요리를 해 드리고 싶은데 고라니를 발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사냥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사냥을 갔지만 결국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 정병산 중턱 바위굴에서 산신령을 만나게 됩니다. 고라니 사냥을 할 수 있게 호랑이로 변하는 마법 책을 선물 받고는 집에서 책에 쓰인 대로 주문을 읊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그러자 호랑이로 변합니다. 호성은 산신령과의 약속대로 사람을 괴롭히는 호랑이 3마리를 먼저 처치하려고 못된 호랑이를 잡으러 나서지요. 처음엔 비음산 호랑이를 만납니다. 동이 틀 때까지 싸워 비음산의 나쁜 호랑이를 물리친 호성은 집으로 돌아와 다시 주문을 욉니다.


사람으로 돌아왔지만, 비음산 호랑이와 싸울 때 생긴 상처가 아직 그대로입니다. 어머니께서 놀라 물었습니다. 호성은 나무를 하다 실수하여 다쳤다고 합니다. 그러다 호성은 장에서 안민고개에서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해코지하였으니 이 호랑이를 잡거나 죽이는 자에게 큰 상금을 준다는 방을 보게 됩니다.


그날 밤, 호성은 주문을 외워 호랑이로 변한 다음 안민고개로 한달음에 달려갑니다. 그곳에서 나쁜 호랑이를 만나 대결을 벌입니다. 호성이 호랑이를 절벽 바위 끝으로 유인하여 달려오는 호랑이를 걷어차는 방법으로 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호랑이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는데 숲에서 인기척을 느낍니다.


………………………………………………………………………………………………………


호성은 무서운 기세로 숲 속으로 달려들어 갔습니다.


“악!”


사람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호성은 급히 걸음을 멈추고 큰 나무 뒤쪽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거기엔 몸집이 큰 사내가 주저앉아 와들와들 떨고 있었습니다. 이 사내의 손에는 큰 식칼이 쥐어져 있었지만 호랑이 앞에서 너무 겁을 먹은 탓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호성은 한동안 사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추운 겨울인데도 사내의 온몸에는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호성은 이 밤에, 그리고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이곳에 사람이 어찌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제 관아에서 이곳에 호랑이가 나타나 여러 사람을 해쳤다고 하였으니 정말 용감한 사냥꾼이 아니면 올 수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러한 겁쟁이가 호랑이 출몰 소문을 뻔히 알면서도 산속으로 들어온 데에는 필시 사연이 있겠지요.


이 덩치 큰 사내의 어제 상황으로 시간을 되돌려 봅시다. 관아에서 나졸들이 나와 방을 붙이는 그 시간이군요. 덩치 큰이가 양 주먹을 허리춤에 걸치고 가소로운 듯 한마디 합니다. 그의 옆에는 키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작은 사내가 서 있습니다.


“그깟 호랑이 한 마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 상금을 걸고 방까지 붙이나 모르겠네.”


“자넨 옆에 호랑이가 없다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쉽게 잡힐 호랑이면 왜 나라에서 상금까지 걸고서 잡아달라고 하겠나? 저건 필시 비음산 호랑이를 잡은 장사에게 부탁을 하는 거란 말일세.”


덩치 작은 이가 약간 헐뜯듯 이야기를 하자 덩치 큰이는 은근히 부아가 났습니다.


“여보게 내가 진해 땅에서 힘이 제일 장사라는 사실 모르고 하는 말인가? 그깟 호랑이 이 주먹 한 방이면 바로 나가떨어질 걸세. 하하하.”


“자넨 늘 잘하지도 못하면서 큰소리치는 것이 문제야. 씨름대회에 나가서 한 번이라도 우승한 적이 있느냔 말일세. 경기 때만 되면 배가 아프니, 고뿔에 걸렸느니 하면서 피해 다니지 않았냐구?”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보인 덩치 큰이가 말을 더듬으며 다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무, 무슨 소린가? 그, 그럼 지금까지 내, 내가 힘도 하나 없으면서 큰소리만 쳤다는 얘긴가?”


“그럼 오늘 밤 안민고개에 올라가서 증명을 해보이게.”


“알았어! 내 당장 산에 올라가 호랑이를 잡아오지. 내가 호랑이를 잡아오거들랑 자넨 죽을 때까지 내 부하가 되어야 하네. 약속하게, 흥!”


“알았어, 알았어.”


덩치 큰 사내는 그렇게 큰소리 뻥뻥 쳤지만 사실 하나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홧김에 괜히 말을 꺼냈다가 호랑이 밥이 될 신세가 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면 더 놀림감이 될 터여서 가슴만 졸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날이 어둑해지자 덩치 작은 이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직도 호랑이 잡으러 산에 가지 않았느냐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들으면 더 창피한 일이기에 덩치 큰이는 친구의 입을 막고 말합니다.


“이 친구가 왜 이러나? 으흠, 으흠. 그러잖아도 나 지금 나가려는 참이네.”


덩치 큰 사내가 걸음을 산으로 옮기다 말고 돌아왔습니다.


“막상 가려니 겁이 나나 보군. 헤헤헤.”


“아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거라도 들고 가야겠어.”


사내는 부엌으로 들어가 큰 식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때 정말 산으로 들어가려는 친구의 행동을 알아차린 덩치 작은 사내가 말리고 나섰습니다.


“이 친구, 정말 호랑이 잡으러 산으로 가려는 것인가? 지금까지 농담한 거네. 그만하면 자네 용기는 내가 인정함세. 그만 마음 풀고 주막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세.”


“아니야! 자넨 아직 나의 진가를 모르고 있어. 내가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아오겠다니까!”


덩치 큰 사내도 이쯤에서 객기를 접고 친구가 한 번만 더 말려주면 못 이기는 체하고 주막에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덩치 작은 친구가 느닷없이 “그러면 안 말리겠으니 산으로 들어가게!”라고 말해버린 것입니다.


호성은 덩치 큰 사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먼동이 트는 것을 발견하곤 발길을 돌렸습니다. 비음산 정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렸습니다. 호성은 이 와중에 고라니가 숲 속 곳곳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고라니가 많은데 왜 사냥하려고 찾았을 땐 내 눈에 그렇게도 안 띄었을까?’. 호성은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피식 웃음을 날렸습니다. 무엇이든 찾으려면 안 보이고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면 잘 보이는 법이지요.



호성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아침 밥상을 차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기력이 더욱 쇠잔해졌습니다.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호성은 벌써 며칠째 어머니께서 고기를 드시지 못하였으니 더욱 안 좋아졌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호성은 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아무리 산신령님의 경고가 있었지만 우선 어머니부터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입니다. 나머지 남은 호랑이 한 마리는 언제든 나타나면 그때 가서 처치하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호성은 그날 밤 바로 호랑이로 변신하자마자 고라니 사냥을 나갔습니다. 정병산과 안민고개를 오가며 고라니가 많은 곳을 봐놓았기 때문에 사냥은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고라니 한 마리를 물고 집으로 돌아온 호성은 마당에 고라니를 던져놓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호성은 주문을 읊어 사람으로 변신한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라니의 가죽을 벗기고 뼈와 살을 발라 뼈는 뼈대로 살을 살대로 요리 하였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호성의 집에는 맛있는 고라니 요리 향기로 가득하였습니다. 요리한 것을 밥상 가득히 차려 어머니께 올렸습니다. 어머니는 고라니 고기를 많이 드시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맛있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게 다 어디서 난 거냐?”


“예, 어머니. 어제 산에 갔다가 나무를 들이받고 쓰러져 있는 고라니를 보았어요. 전에 사냥하러 갔을 땐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더니, 이런 횡재를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어머니, 많이 많이 드시고 얼른 기운 차리세요.”


호성은 어머니께 자신이 호랑이로 변해 사냥해온 것이라고 솔직히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행여 솔직히 말씀드린다고 해서 어머니께서 믿어주시지도 않겠거니와 괜한 걱정을 안겨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호성은 다시 산으로 나무하러 갔습니다. 어머니께서 맛있는 고기 요리를 드시고 기운을 조금이라도 차리신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죽어가는 나무나 삭정이를 그러모아 지게에 한가득 채우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호성은 전과 마찬가지로 일부는 단골에게 팔고 남은 것은 시장에 지고 나갔습니다. 햇볕 따뜻한 곳에 앉아 나무 사러 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골목 저쪽 끝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아이가 놀란 표정으로 고함을 치며 달려옵니다.


“호랑이다! 아주 큰 호랑이를 잡았어요. 굉장해요.”


그 소리에 곳곳에서 물건을 사고팔면서 흥정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골목 끝으로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호성도 고개를 빼고 그쪽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산에서 보았던 그 덩치 큰 사내가 배를 내밀고 거드름피우듯 앞서 걷고 그 뒤쪽으로 체구가 작은 사내가 꽹과리를 치면서 따라오고 있습니다. 이 두 사내의 바로 뒤로 예닐곱 사람이 긴 나무를 어깨에 걸치고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긴 나무엔 어젯밤 그 안민고개 호랑이가 네 발이 묶인 채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 호랑이는 바로 여기 진해 장사님께서 어젯밤 안민고개에서 맨손으로 잡으신 것이렷다! 여보시오들, 손뼉 좀 치세요. 이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사람이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았다는 이야기에 시장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얼떨결에 손뼉을 쳤습니다.


“야, 대단하군, 저 큰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니! 저 사람이 진해 장사라지? 진해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들어보진 못했지만 정말 훌륭한 일을 했어. 암.”


호성은 그 일행이 앞을 지나갈 때 아주 세게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앞서 가던 그 덩치 큰 사내가 호성에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호성과 사내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호성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사내는 한참 호성을 멀뚱멀뚱 보다가 고개를 돌려 관아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다음 주에 4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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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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