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1)
신라 말기 밀양 무봉사에 나타났다는 태극나비에 얽힌 전설
밀양에는 ‘3대 신비’라는 게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와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 만어사의 경석, 그리고 여름엔 얼음이 얼고 겨울엔 김이 나는 얼음골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를 더해 밀양의 4대 신비라고 이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무봉사에서 전해오는 태극나비 전설입니다. 전설을 소개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어느 날이었다. 나비가 나올 춘삼월도 아닌데 갑자기 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와 온산을 뒤덮었다.
며칠 동안 영남루가 서 있는 뒷산을 덮으며 날아다니던 나비는 죽은 흔적도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나비의 날개에 태극 묘시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나라가 혼란에 휩싸여 있었던 때라, 어떤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처럼 얼마 아니 되어서 고려가 건국되고 사회혼란이 가라앉아 태평성대를 맞게 되었다. 그 후에도 가끔 이 태극나비가 나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라에 경사가 있었다.
그래서 고려 정부는 이 나비를 보호하라는 명을 내렸고 국성접(國成蝶)이라 부르게 하였다. 그런데 이 나비는 조선 500년과 일제강점기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가 1945년 8월 15일 오후 3시쯤 한쪽 날개는 감청색깔 또 한쪽 날개는 주홍색깔의 태극무늬를 한 손바닥만큼 큰 태극 나비가 무봉사 법당에 날아 들어와서 사흘 만에 죽었다. 이를 곱게 표본으로 만들어 서울 박물관에 보냈다.
또 그해 8월 19일과 10월 25일에도 태극나비가 나타났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이승만 대통령께 보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무봉사에 보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태극나비는 표충비와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군요. 이 태극나비 전설을 소재로 이야기를 꾸며보겠습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시점이면 918년, 신라 54대 왕인 경명왕 시대군요. 역사적으로 밀양은 신라의 영향력에서 거의 벗어나 호족 세력이 지역을 휘어잡고 있을 시기입니다.
이미 이때 신라는 후백제와의 전쟁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진 데다 경주의 관리권에서 벗어난 호족들이 제각각 세력을 키우면서 농민을 대상으로 수탈을 일삼고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호족들의 등쌀에 떨쳐 일어난 농민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초적이라고 부릅니다. 초망의 적이란 말로 도적, 토적 등의 말과 함께 쓰입니다. 이번 이야기의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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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를 실은 봄바람이 강변을 따라 흘러갑니다. 파란 하늘엔 조각구름이 둥실둥실 떠서 꼬리를 흔들며 바람을 탑니다. 하하하 호호호 남녀의 웃음소리에 깜짝 놀란 조각구름이 다시 조각나기도 합니다.
“겸아, 이리로 와바. 벌써 개구리들이 나왔네.”
“응? 그러네. 그러고 보니 벌써 경칩이 지났구나.”
“여긴 정말 따뜻해. 잠시 쉬었다가 산에 오르자.”
“그런데 말야. 너네집 이사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참말이야?”
겸이의 말에 하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우리 동네 성주의 횡포가 여간 심해야지. 지난 겨울에 무슨 논에서 먹을 게 나온다고 세금을 내라고 하지 않나, 툭하면 자기 집에 아버지를 불러다가 일을 시키지 않나. 성주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냐.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함께 다른 지역으로 떠나자고 했다 하네.”
“그랬구나. 그 소문이 우리 마을에까지 퍼졌는데, 우리 마을도 예사 분위기가 아냐.”
“그럼 너희도 이사하는 거니?”
“아직은 모르겠어. 울 아버지도 아개 장군 등쌀에 많이 힘들어하셔. 마을 사람들도 불만이 많고.”
“우리 같은 곳으로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 그럼 더 자주 만날 수 있잖아.”
“그래. 너희 어디로 가는지 정해지면 말해줘. 울 아버지한테 이야기해서 너희 간 곳으로 가게.”
겸은 하연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둘은 유유히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투다다닥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으며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저기 봐!”
하연이 소리를 쳤습니다. 하연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떼를 지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저게 뭐지?”
그것들은 강 옆 산기슭을 타고 겸이와 하연이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날아왔습니다.
“태극나비야!”
이번에는 겸이 소리쳤습니다. 태극나비는 길게 무리지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나비들이 날개를 팔락일 때마다 태극무늬는 마치 사나운 맹수가 눈을 깜박이는 듯하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용이 산기슭을 타고 하늘로 향하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태극나비 떼는 아동산 휘감듯 하며 날아갔습니다.
“야,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나비가 한꺼번에 무리지어 날 수가 있지?”
“그러게.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겸아, 우리 나비를 따라 가볼까?”
“그래.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네.”
두 사람은 아동산 정상을 향해 달렸습니다. 산이 높지 않아 금세 올랐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나비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하연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겸아, 이상하지 않니? 아직 꽃이 필 시기가 아닌데 어떻게 저 많은 나비들이 나타난 걸까?”
하연은 겸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와서는 아버지에게 조금 전에 보았던 태극나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거참, 이상한 일이구나!”
“무슨 잘못된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게다. 나라든 우리든 여기서 잘못돼봐야 얼마나 더 잘못되겠니? 그건 좋은 징조일 거야.”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하연 가족은 이삿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웃들도 서너 집 짐을 쌌습니다. 함께 강 건넛마을로 이사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연이 애비 있는가?”
빼빼 마른 체구에 가는 수염이 난 마을 성주의 집사가 하연의 집 사립문을 들어서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하연의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또 무슨 일인 게요?”
하연의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부엌에서 나왔습니다.
“올해 소출에 대해선 세금을 받지 않으시겠다는 성주님의 명이시네. 그대로 성주님의 논에서 농사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네. 기쁘지 않은가?”
“흥! 기쁘긴 뭐가 기뻐. 내가 그 속을 모를 줄 알고? 그리고 명은, 얼어 죽을! 이제 됐으니 다른 사람 불러와 농사를 짓든, 성주님이 직접 짓든 알아서 하쇼! 우린 더 이상 빼앗기면서 살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오!”
집사는 하연의 아버지를 보면서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후회할 텐데.”
하연의 아버지는 집사를 한 번 흘겨보고는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사는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애들아!”
그때 사립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몰려있던 장정들이 몽둥이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하연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여러 몽둥이가 바닥을 끓자 험악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풀풀 일었습니다.
“악!”
하연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온 마을에 울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연의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장정들은 벌써 하연의 아버지를 몽둥이를 휘둘러 초주검 상태로 만들었고 하연의 머리채를 잡고 사립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오라. 박 서방 자네도 하연이 애비처럼 되고 싶단 말이지?”
박 서방과 마을 사람들은 주춤했습니다. 박 서방은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하연이 애비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러는 것이오? 그 이유나 말해주시오.”
“이유는 알 것 없고. 자네도 이 마을을 뜨네 어쩌네 하는 말이 들리면 어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 알아서 하게.”
“그렇다면, 우리가 이사하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당연하지. 너희는 우리 성주님의 것이야. 너희 마음대로 떠나고 들어오고 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이말이지. 이제 알아듣겠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란 말이오? 우린 자유인이오. 어딜 가든 우리 마음이지…….”
박 서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사의 오른손이 또 치켜들어졌습니다. 그러자 와! 하고 몽둥이를 든 장정들이 박 서방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두들겨패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성주는 하인과 가병들을 시켜 툭하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겸이가 살고 있는 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을 호족인 아개는 스스로 자신을 장군이라 칭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는 서라벌에서 파견된 관리였는데 이 마을에 와서는 사람들을 착취해 부를 쌓고 또한 세력을 키워 호족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라가 여러 차례 후백제 견훤의 공격을 받아 세력이 위축되고 지방관리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지자 그 틈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병사들을 조직하고 마을을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개는 자신에게 ‘장군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아개가 집 밖으로 나갈 때엔 스무 명이 넘는 병사들이 그를 호위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면 멀리서라도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입니다. 겸이 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달빛이 초가지붕 용마루에서 미끄럼을 타고 처마끝으로 떨어집니다. 황토로 이루어진 집의 두꺼운 벽에는 봉창이 깊이 나 있습니다. 안에서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보게, 건이. 이렇게 살 순 없지 않은가? 딴 곳으로 이사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겸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네 살 위인 유씨가 약간 흥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 건넛마을 성주는 자기 마을 사람들이 이사를 하려 하자 장병들에게 시켜 몰매를 주었다는구먼. 그리고 그 집 딸이 성주에게 붙잡혀 가서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있다 하더군.”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지. 건넛마을 사람들하고 힘을 합쳐서 우릴 괴롭히는 아개와 성주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구.”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겸이 아버지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웃마을 성주보다 더 흉포한 아개인지라 섣불리 그러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끼익!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립문이 열리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쉿!”
방안은 순간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겸이 아버지는 방문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겸이 아버지 눈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겸이 아버지는 뒤로 쿵하고 자빠졌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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