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전쟁의 신(神)(4)
(지난 줄거리) 신라의 원군 요청으로 안라국 경계선인 방어산까지 남하한 광개토대왕의 3만 병사는 지수 평야에 진을 칩니다. 안라국왕은 3000의 군사밖에 없어 중과부적임을 인식하지만 끝까지 대항해 싸울 것을 어전회의에서 결정합니다. 이에 따라 아들이자 대장군인 무시우가 방어산 정상에 기지를 세우고 광개토군과 맞섭니다.
광개토는 직속 부하장수 현무에게 정예병 500을 주어 적진을 교란, 타격을 줄 것을 명합니다. 이들은 방어산 자락에서 무시우의 부하장수이자 살수인 쾌수에게 들켜 폭포수 같은 불화살을 맞고 전멸당합니다. 겨우 쾌수만 살아서 광개토에게 돌아갑니다.
무시우군의 화력을 확인한 광개토는 안라국 내에 첩자를 보내 왕을 암살하고 분란을 일으켜 우시우군을 무력화할 작전을 짜고 아끼는 부하장수인 백호를 보냅니다. 무시우 역시 광개토의 대군을 무력화할 방법은 적진에 간첩을 심어 군사들 간에 분란을 일으키게 하여 전력을 무력화한다는 계획을 짭니다. 무시우는 다시 쾌수를 민간인으로 변복하게 하여 보냅니다.
광개토의 백호, 무시우의 쾌수는 대가야 시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지혜가 뛰어난 쾌수는 백호를 보자마자 고구려 군사임을 눈치챕니다. 그가 안라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동네 건달인 척하며 시비를 겁니다. 계속 백호의 약을 올려서 결국 싸움을 하게 되나 대가야 관군들이 출동하는 바람에 싸움을 그치게 됩니다. 그 사이에 백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쾌수는 계획을 바꾸어 다시 무시우에게 돌아옵니다. 무시우는 백호를 사로잡을 계획을 세우고 쾌수에게 궁궐에 병사들을 포진하게 하여 생포할 것을 명합니다. 백호는 안라국 궁궐에 암습하여 국왕을 시해할 계획으로 경계가 허술한 틈을 타서 들어갑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쾌수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말입니다.
국왕의 침실 앞에서 칼을 빼어 든 백호. 그때 안라국 병사들이 그를 둘러쌉니다. 놀란 백호의 눈앞에 대가야 시장통에서 만났던 쾌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더욱 놀랍니다. 그제야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지만 백호는 쾌수의 실력을 재확인하기 위해 단둘이 실력을 겨루자고 제안합니다. 쾌수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연무장에서의 대결. 백호의 단검이 쾌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갑니다.
……………………………………………………
눈 깜짝할 순간이었지만 쾌수는 여유 있게 피했습니다. 무시우 군사 중에 가장 몸이 빠르기로 소문난 쾌수다운 움직임이었습니다. 백호는 이미 일합을 펼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전광석화 같은 일촌단검에 걸려들지 않은 것에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백호는 다시 쾌수 쪽으로 재빨리 돌려 몸을 낮췄습니다. 쾌수의 허점을 노려 신속히 공격하기 위함입니다. 반대로 쾌수의 표정은 여유롭습니다. 별로 긴장한 기색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백호의 공격패턴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호는 몇 번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하구나!’ 백호는 이제 마지막 공격으로 사생결단을 내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해도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공격. 대신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상대에게 걷지 못할 정도의 타격만 주어도 성공이라 할 수 있는 공멸타법. 백호는 서서히 쾌수에게 다가갔습니다.
쾌수는 백호의 마음을 이미 읽었습니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 쾌수는 몸을 날렸습니다. 몸을 돌려 자신의 방향으로 공격해오는 백호의 손을 비켜 잡고 당기면서 발을 걸었습니다. 백호는 그대로 몸이 허공에 원호를 그리며 땅에 처박혔습니다. 백호의 마지막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와아!”
쾌수의 병사들이 환호를 질렀습니다.
“이자를 포박하라!”
“예, 장군.”
“방어산으로 간다.”
방어산 산채. 무시우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백호를 찬찬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번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자 기력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녹초가 되었습니다. 적장을 마주하고 있지만 고개를 들어 쳐다볼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죽여주시오.”
“무슨 말씀이시오? 그댄 광개토왕의 직속 부하장수로 중요한 인재라고 들었소.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확산을 막을 열쇠를 쥔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제야 백호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무슨 말이오?”
“고구려 군이 되돌아가는 조건으로 그대를 인계할 생각이오.”
“제 주군께선 받아들이지 않을 거요.”
“부하를 죽음으로 내모는 주군은 없소. 당신의 주군은 반드시 그대를 살리고자 할 것이오.”
무시우는 쾌수에게 말했습니다.
“이자를 광개토가 잘 볼 수 있도록 바위산 위에 높은 기둥을 세워 묶어라.”
“예, 대장군.”
광개토 진영. 순간 병영이 어수선해지면서 한 병사가 광개토가 있는 본진으로 달려갑니다.
“폐하! 적진 방어산 꼭대기에…, 백호장군께서….”
“무슨 소란이냐? 정확히 아뢰지 못하겠느냐?”
광개토 옆에 서 있던 주작이 병사의 성급한 행동을 나무랐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광개토가 묻자 병사가 또박또박한 말로 다시 아뢰었습니다.
“조금 전에 적의 산꼭대기에 높은 나무기둥이 하나 세워졌사온데, 거기에 백호장군께서 포박된 채 매달려 있사옵니다.”
“뭐야?”
광개토는 바로 천막 밖으로 나갔습니다. 멀리 보이는 방어산 꼭대기에 자신의 손발이나 다름 없는 백호 장군이 나무기둥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6척 길이의 화살이 광개토의 발 앞에 꽂혔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적의 화살이 대왕의 발끝에 꽂히자 호위무사들이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주작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활에 힘이 장사라도 적진에서 여기까지 화살을 날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방어산 정상에서 고구려군의 진지까지는 아무리 못 잡아도 1000보가 넘는 거리. 안라국 병사 중에 이 정도의 궁력을 지닌 자가 있다면 작전을 군진의 배치를 다시 해야 할 정도입니다.
“폐하, 화살 끝에 편지가 있습니다.”
주작은 화살에 묶인 편지를 풀어 읽어보았습니다.
“백호를 돌려주는 대신 군대를 철수하라는 군요.”
“음.”
광개토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날 밤. 광개토는 주작을 불러 백호를 구출해올 것을 명령했습니다.
“백호가 잡혀 있는 이상 왜나라는 물론 가야도 모두 점령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작 장군이 백호 장군을 구출해오라.”
“존명!”
주작은 야음을 틈타 방어산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초승달 달빛마저 구름에 가렸다 벗어났다 반복하여 몸을 은폐하기에 아주 이상적이었습니다. 주작은 빠르게 산을 타고 올랐습니다.
“이보게, 정신 차리게. 오늘 밤 고구려 군사가 이 고구려 장수를 구하러 올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절벽 아래를 수시로 살펴보게.”
“우리 군사가 열 겹으로 철통경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 저 고구려 장수를 구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네.”
“허긴. 그래도 마금 장군의 특명이니 정신 바짝 차리시게.”
마금 장군은 쾌수 장군과 같은 지위의 장수입니다.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무시우 장군과 함께 자란 친구와 같은 인물이지요. 주작은 방어산 남쪽 골짜기를 타고 산을 올랐습니다. 골짜기여서 처음엔 경사가 완만해도 고개에 다다를수록 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방어산 서쪽 지형은 절벽이 많아 오르다가 적의 눈에 띄기 쉬워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주작은 절벽 아래쪽에 다다라 위로 쳐다보았습니다. 경계병들은 수시로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러다간 잠입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날이 새면 작전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주작은 깊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돌아 잠입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라국 백성들이 군진으로 드나드는 산문까지 반 시진(1시간)이 걸렸습니다. 안라국 병사 2명이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잠시 동정을 살피는데 경계병 하나가 산문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잠시 뒷간에 다녀올 테니 나 대신 경계 철저히 하게.”
“걱정 말게. 여기서 고구려 포로에게까지 가려면 두 시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설마 이곳에 별일이야 있겠는가?”
“그래도 마금 장군님의 특별지시이지 않은가?”
“알겠네, 어서 다녀나 오게.”
주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바람같이 달려가 홀로 서 있는 병사 뒤쪽으로 가서 수도를 이용해 기절시켰습니다. 그러고는 병사가 입고 있던 못을 벗겨 자신이 입었습니다. 다른 경계병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작은 재빨리 복장을 갖춰 경계병 흉내를 내었습니다.
“별일 없었나?”
“그 잠시 동안 무슨 별일이 있겠나?”
“자네 목소리가 갑자기 왜 그래?”
“쿨럭! 감기 때문인가 봐. 나도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빨리 갔다 오게.”
그길로 주작은 산채 쪽으로 향했습니다. 밤늦은 시각이지만 특별 경계 명령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병사들의 임무교대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주작에겐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어느 장교가 어딜 가느냐고 물었고 주작은 경계근무 교대하러 간다고 하면 되었습니다. 장교들은 이동하는 병사의 신분과 소속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주작은 산채로 이동하면서 안라국 병사들의 습관을 잘 살폈습니다. 만나면 누구에게나 ‘어이, 별일 없나’ 하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주작은 그러한 안라국 병사들의 습관을 적절히 활용하며 방어산 정상 백호장군이 묶여 있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백호장군을 중심으로 병사 서른 명이 겹겹이 둘러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임무 교대 핑계가 먹혀들 것 같지 않았습니다. 모두 서로 얼굴을 아는 까닭에 섣불리 나섰다가는 바로 들통나기 십상이었습니다. 1대 30. 정면돌파밖엔 방법이 없습니다. 전광석화와 같이 파고들어 백호를 묶은 밧줄을 풂과 동시에 탈출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주작은 심호흡을 크게 하였습니다. 탓! 주작의 몸은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솟구쳤습니다.
“앗! 뭐지?”
병사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병사들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가운데로 착지한 주작이 몸을 돌리면서 표창을 날렸습니다. 가까이 있는 경계병들이 하나둘 쓰러졌습니다. 그들이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주작은 백호 몸을 묶은 밧줄을 끊었습니다.
“역시 자네였군. 올 줄 알았어.”
“서둘러, 공중탈출이야!”
“좋았어!”
경계병들이 소리쳤습니다.
“적이다!”
“포로가 탈출한다!”
순간 요란한 쇳소리가 나면서 안라국 병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마금 역시 쇳소리와 동시에 바위산 정상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도망가게 둬선 안 된다. 잡아라.”
쉭! 쉭쉭! 주작은 다시 표창을 던졌습니다. 가로막고 있던 병사들이 쓰러졌습니다. 주작은 그대로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습니다. 뒤이어 백호도 몸을 날려 주작의 허리를 잡았습니다. 주작은 미리 준비한 대형보자기를 펼쳤습니다.
안라국 병사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고구려군의 탈출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저렇게 죽으려나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음을 깨닫고는 허탈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마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상천외한 탈출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사로잡았던 백호 장군을 놓치게 되자 무시우 대장군의 본진 천막에선 한숨소리에 땅이 꺼질 정도였습니다. 이제 전쟁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지간하여 화를 내지 않던 무시우도 경계 책임을 맡았던 마금을 크게 질책하였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경계하라 일렀거늘.”
“죽여주십시오. 대장군!”
“어쩔 수 없다.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존명!”
안라국 병사들은 바로 경계태세에서 방어태세로 전환해 군사들이 재배치되었습니다. 궁수들이 모두 절벽 위와 성곽 앞으로 전진배치 되었고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각종 장비들도 비치되었습니다. 무시우는 절벽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오와 열을 맞춰 전진해오는 고구려 대군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혔습니다. 지수 쪽 산 아랫마을이 까맣게 변했습니다. 고구려 병사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습니다. 저 수많은 고구려군과 싸워야 한다. 안라국 병사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승산이 없는 싸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동녘에서 빨간 해가 떠올랐습니다. 고구려 군 선봉에 광개토가 서 있었습니다. 치켜올려진 그의 칼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습니다.
“와아!”
고구려군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방어산을 향하는 고구려군의 발걸음에 흙먼지가 일어 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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