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명작예술감상회_문종근_체호프의 <벚꽃동산>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서울에선 일 년에 두세 극단에서 공연할 정도로 인기 있는 작품.
1943년에 초고를 써서 1년가 수정. 44년 모스크바예술극장 배우들에게 헌납.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초연. 두 사람은 문학, 예술적으로 20년간 함께 모스크바예술극장을 이끌어.
제정러시아시대. 당시의 사랑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장인물들.
시놉시스.
광활하고 아름다운 벚꽃 동산의 여지주 라네프스카야는 5년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백야가 눈부신 5월에 벚꽃동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농노해방과 지주의 몰락으로 벚꽃동산은 빚더미에 올라 이자를 갚지 못하면 경매 처분될 위기에 놓인다.
상냥하고 너그러운 라네프스카야의 인품에 과거 농노시절 위로를 받았던 신흥재벌 로파힌은 빚더미에 오른 라네스프카야를 위해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라네프스카야와 그녀의 오빠 가예프는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이 담긴 벚꽃동산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아 로파힌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벚꽃동산은 경매에 붙여지게 되는데..
한편 베쨔와 아냐는 서로 사랑에 빠지고, 라네프스카야의 수양딸인 바랴와 로파힌이 낙찰받게 되고 라네프스카야의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는데 마지막 날까지 바랴는 로파힌의 청혼을 받지 못한다.
모두가 흩어져 떠나고 남게된 늙은 하인, 피르스만이 어디로 향하지 못하고 집에 남아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1막 감상. 연출가는 장면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찾아 만들었다. 아주 사실적 표현.
템포가 빠른 다른 작품. 2000년 제작. 영상은 시간 내서 유튜브 통해 검색해봐야겠다.
이 작품은 앞에 본 것보다 확실히 속도감이 있다. 연출에 따라 표현방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벚꽃동산>은 총 4막의 희극이다.
"벚꽃동산을 통해 러시아 귀족 사회가 몰락하던 혼돈의 시절, 기존 가치들이 붕괴하는 가운데 불안한 삶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도한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로 안톤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견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 묘사.
영상은 2000년 중후반에 제작한 작품. 러시아에서 작품을 했던 연출이 한국에 강의왔을 때 받은 영상. 아, 그러면 유튜브에 없을 수도 있겠군.
극작가는 소설과 달리 인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30~40퍼센트 준다. 인물에 대한 분석은 연출가에게나 배우에게 매우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무대화해야 한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무대 위에서 배역의 행동을 정확하게 옮기는가에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는 그래서 연기술을 연구했다.
체호프 작품을 보면 .... 대사와 대사 사이 뜸을 들이는 장면이 많다. 이런 잠깐의 정적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얘기.
애기방 공간에서 소품들을 논리적으로 갖춰야 동선을 설정할 수 있다. 장롱, 세면대 거울, 탁자, 의자 등등.
애기방의 요건은 어떤 게 있을까. 조용해야 한다. 환기가 잘 돼야 한다. 창문이 여러개 있어야 하고 커튼이 있어야 한다. 창문이 많다는 것은 밖을 볼 수 있다는 것. 애기방을 만들 때는 건축학 상의 특성을 고려해 무대를 꾸며야 한다.
첫 장면의 연습은 이런 상황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
왜 로빠힌과 두나샤는 이 방에 들어오는가?
두나샤 : 두 시쯤 됐어여. (촛불을 끈다) 벌써 날이 밝았네요.
이걸 어떻게 날이 밝다는 것을 표현할 것인가. 촛불을 끄는 것만으로? 창문의 커튼을 제쳐 날이 밝았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왜 로빠힌이 두나샤를 애기방으로 데리고 왔는가? 창문이 있고 2층인 애기방에서 멀리 기차역을 보기 위해서.
두 사람이 같이 등장한다. 이전에 이 두사람은 같은 장소에 있었나, 다른 장소에 있었나?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족하다. 두 사람이 손에 든 소품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빠힌은 책을, 두나샤는 촛불을. 서재에 있던 로빠힌이 두나샤를 찾아서 데리고 애기방으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로빠힌은 현재 시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그동안 자고 있었다는 것이 설명됨.
이 장면에서 두나샤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로빠힌은 기차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나? "지금 몇 시야?" 기차는 12시 도착해야 하는데 기적소리는 두 시간이 지나 들렸다. 이 집은 기차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적소리에 이집 식구들을 다 깨웠다. 그 소리에 놀라서 로빠힌은 두나샤를 찾아 헐레벌떡 뛰어왔다.
12시에 도착할 마님을 마중나가기 위해 가족들은 모두 역으로 이미 갔고 로빠힌은 자고 있었다. 로빠힌은 11시 이전에 이집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마님이 로빠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로빠힌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로빠힌은 아주 바쁜 사람이다.
로빠힌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은 마님을 만나기 위해 갈아입은 것. 아버지가 이집의 농노였기 때문에 하녀 두나샤를 이미 알고 있는 사이다. 지금은 신흥재벌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지만 그런 관계를 통한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
신분 상승을 이뤘지만 태생을 감출 수 없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껴 서재에서 책을 꺼내 보지만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재미가 없다. 하루 일과가 아주 바쁜 자신. 그리고 책을 보자 잠이 들어. 이것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부분.
두나샤는 방에 들어와서 무엇을 하는가? 로빠힌이 과거 이야기를 하며 화려한 대사를 하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두나샤는 무엇을 하고 있나? 치장을 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 마쳤기 때문에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두나샤는 자기 방 아니면 아냐 방에서 하루종일 이옷 입었다 저옷 입었다 하며 5년만에 오는 마님을 어떻게 맞이할까 흥분한 상태에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이 방에서 절대 하녀로서의 일을 하지 않는다.
로빠힌이 장문의 독백을 하고 있을 때에는 두나샤도 내면의 독백을 하고 있어야 한다.
두나샤는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어머 벌써들 오시나봐요"라고 했을까. 그런데 로빠힌은 또 무슨 소리를 듣고 아니라고 부정했을까.
로빠힌이 잠을 자버린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으며 괜히 두나샤를 질책하고 있다.
무슨 소리? 개 짖는 소리. 그래서 오나 보다 생각했다. 두 사람이 똑 같이 개 짖는 소리를 들었는데 왜 각각 반응이 달랐을까? 두나샤는 개 소리를 듣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심리적 상황을 놓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두나샤는 손이 떨려요, 어지러워요, 개들도 밤새 잠을 자지 않았어요. 이런 대사를 보면 감정이 아주 들떠있는 상태. 그래서 개짖는 소리에 온다고 생각했다.
로빠힌은 역에 가서 맞이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 상황. 차분하게 자신을 생각한다. 로빠힌은 개소리와 역의 상황을 봐서 30분 정도 지체하였는데 벌써 도착했을 리가 없다.
로빠힌은 왜 회상에 빠지게 되었는가? 로빠힌 입장에선 무엇이 절실했기에 이렇든 장문의 독백을 했을까? 로빠힌이 보는 카메라 앵글을 보면 된다. 클로즈업. 5년동안 살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며 부인의 현재 모습을 그려보려고 시도한다고 해석. 5년 지난 지금의 부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장문의 대사를 하고 있다고 해석.
이 작품은 몇 개월씩 연습해야 가능한 작품. 인물 분석, 장면 분석 하나하나 세밀하게 들어가야 제대로 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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