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98)
돌이끼의 작은생각 (110)
돌이끼의 문화읽기 (476)
다문화·건강가족 얘기 (20)
경남민속·전통 (14)
경남전설텔링 (74)
미디어 웜홀 (142)
돌이끼의 영화관람 (21)
눈에 띄는 한마디 (8)
이책 읽어보세요 (76)
여기저기 다녀보니 (92)
직사각형 속 세상 (92)
지게차 도전기 (24)
지게차 취업 후기 (13)
헤르테 몽골 (35)
돌이끼의 육아일기 (57)
몽골줌마 한국생활 (15)
국궁(활쏘기)수련기 (16)
Total
Today
Yesterday
10-11 03:19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1970년대 경남지역 연극


그전 통영 지역에서는 1965년 한국연극협회 '충무29지부'가 인준되고 허창언을 주축으로 하여 '춘추극회'가 생겨났다. 하지만 허창언의 타계로 5년 만에 문을 닫고 실질적으로 통영연극은 긴 공백기를 거친다.


그 와중에 1975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강수성 씨의 희곡 <소리>가 당선되었다. 197912월에는 청년들의 소인문학 서클인 '충무독서회(물푸레문학동인회 전신)'가 '향토문학회관' 건립기금 조성을 위하여 봉래극장에서 유치진 작, 최성찬 연출의 <통곡>을 공연하였으며, 198012월에 강수성 작·연출의 <소리>를 공연하기도 했다.


한국연극협회 충무지부의 2(7911~801231) 지부장으로 김우성이 임명되고 장현은 사무국장을 맡았다한동안 공백을 보이던 통영연극계는 1981년 장현을 주축으로 장영석, 김윤일, 김철규, 박연주, 허동진, 지태건 등이 뜻을 모아 극단 '벅수골'을 창단해 <토끼와 포수>를 시작으로 하여 통영지역 연극의 맥을 잇는다.


1970년 진주지역에선 동호회 모임이었던 텔스타가 극단으로 재정비하고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손정수 작)을 이희대 연출, 이상훈, 김진희 출연으로 '로타리 다방'에서 공연되었다. 1973년에는 극단 '청년들'이 창단되었는데, 김재호 연출로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1974년에는 경상대학교에서 극예술연구회가 조직되었고 김희창 작 방성진 연출로 <비석>을, 윤대성 작 <출발>, 김지현 작 <상방>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또 방송연맹 진주시지부 주최로 이항구 작 이희대 연출로 반공극 <산하는 다시 푸르러지리>를 손창극 기획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해에 이희대, 조희래, 모왕갑, 손정수, 김용구, 황금, 서영수 등 17명의 동인이 모여 극단 '현장'을 창단했다.


극단 처용랑은 새마을운동 위안공연으로 김일환 작 <닭이 울 때>를 무대에 올렸고 제25회 개천예술제에는 경상대극회가 김지현 작 <상방>으로 참여하는 등 다수 극단이 참가했다.


1976년에는 극협진주지부가 10년 만에 임원진을 전면 개편하고 새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지부장 이희대, 부지부장 이창식, 감사 이길성, 손창근, 사무장에 박우희로 구성됐다.


이 시기 밀양에서는 사실상 해체됐던 극단 메들리가 긴 공백기를 끝내고 다시 맥을 잇게 된다. 1971년 김용식 연출 <용감한 사형수>를 계기로 강민수, 최전, 권길한, 신말선, 조인숙, 안명애, 김종웅, 이용주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6년 10월에는 지금의 한국연극제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연극경연대회에 경남 대표로 선정돼 윤조병 작 김용식 연출 <꽃 보라>를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메들리의 창립멤버였던 손경문이 돌아와 이근삼 작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를 연출하고 이후 손경문은 <이수일과 심순애> <산국>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지도하고 연출해 밀양 연극을 활성화했다.


1970년대 마산 연극


1971년부터 마산연극계는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당시 마산대학(현 경남대학교)의 영문과 교수였던 한기환과 연출가인 한하균이 호흡을 경남연극의 지층형성과 발전맞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80년대부터 활발하게 경남연극을 이상용, 이종일최태황, 현태영 등이 이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 때 이들이 자주 드나들던 '전봇대 살롱'(현 경남맨션 뒤)은 한기환이 제자들과 함께 극을 논했던 토론장의 역할을 했다. 특히 1972년에 지어진 경남대학교의 완월강당1980년대까지 주 공연장 역할을 하면서 연극발전에 한몫을 했다.


한편 1972'재경 마산학우회'는 이상용 등이 중심이 되어 제2회 공연작품인 <허수아비>라는 단막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23월부터 한기환은 원어연극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한기환의 지도로 <안경>(포우 작, 한하균 연출, 19725, 19743), <우리시대>(이종일 연출, 197810) 등을 공연하였다. 또한 한기환의 제자인 이상용이 주축이 된 경남대 연극반은 19735월에 <부부>(유치진 작)를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고 19746월에 <울타리>(한노단 작)를 공연하기도 했다.


19752월에는 마산카톨릭문화원 지하 백락다방에서 이상용, 유영원, 최덕선, 최정임 등이 주축이 되어 동인극회인 '마산데아트르'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모살인>(김용락 작)을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였으나 같은 해 6월 이상용의 군입대로 1회 공연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1976년에는 마산 출신으로 서울과 부산 등지의 타지 방에 가서 공부를 하던 신용수, 하영화, 신현숙, 강상훈, 김진식 등의 대학생들이 '마산학생연극회'(이하 '마학연')를 조직하여 <엘리베이트>(이재현 작)를 신용수 연출로 창립공연을 올렸다. 같은 해 5월에는 마산간호전문대학 연극부(이하 마간연)가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7월에는 경남대 연극부가 <강제결혼>(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11월에는 <하멸태자>(셰익스피어 작, 안민수 번안)를 이종일 연출로 공연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를 대학극이 주도했다


19772월에는 마학연의 제2회 작품인 <보이체크>(뷔히너 작, 신용수 연출), 현태영 등 경남대의 학생들까지 합세하여 공연하였다. 갇은 해 5월에는 '경남대 극예술연구회'(초대회징 이윤도, 이하 경극연)가 출범하여 창립 공연인 <코르작과 그의 고아들>(엘빈 실바누스 작)을 이윤도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경극연의 이윤도를 비롯한 정석수, 장해근, 현태영, 최태황 등의 창립멤버들은 고춘호, 김윤희, 김윤자, 박유진, 송창호, 최현규김태성, 이옥희, 문종근, 김경선 등과 함께 마산연극계의 맥을 이어갔다.


19773월에는 정해완, 최덕수, 문성환 등 '마산MBC문화방송' 직원들이 주축이 된 '소극장77 연극동우회'가 창립되어 <토끼와 포수>(박초열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이들 중에서 정해완은 서울 '청포도극회' 출신으로 '불씨극회' 창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성지여고에서 <논개>(이재현 작)를 연출한 바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마간연의 <나는 방관자가 아니다>(박현숙 작, 강인중 연출), 8월에는 마학연의 <태풍정보>(윌리암 작, 하영화 연출)가 공연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불씨극회가 창단되어 11월에 창립 공연으로 <철부지들>(톰 존슨 작, 신용수 연출)을 무대에 올렸다. 창립 당시 불씨극회(회장 신용수)의 주요 멤버들은 신용수, 조수잔나, 김경숙, 천석주 등이었으며 당시 마산 MBC문화방송 국장이었던 정해완과 경극연의 정석수, 현태영, 장해근 등이 창립을 도왔다.


불씨극회가 탄생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는 불씨극회와 경극연, 즉 기성극과 대학극이 양립하는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711월에는 경극연의 <일요일의 불청객>(이근삼 작, 이윤도 연출), 12월에는 불씨극회의 <우리 읍내>(손톤 와일더 작 신용수 연출)가 각각 무대에 올랐다.






1979년 3월에는 경극연의 <향기>(윤조병 작 정효영 연출)와 불씨극회의 <단 한 번 거짓말 속의 영원한 사랑>(엘빈 실바누스 작, 신용수 연출)가, 5월에는 마간연의 <결혼>(이강백 작, 황정희 연출)과 경극연의 <만리장성>(막스프리쉬 작, 정효영 연출)이, 9월에는 불씨극회의 <결혼>(이강백 작, 김경수 연출)과 마학연의 <관객모독>(피터 한트케 작, 이윤도 연출)이 각각 공연되기도 했다.



<자료제공 : 문종근 객석과 무대 연출가>


그러나 아쉽게도 마학연은 <관객모독>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해 12월에는 경극연과 불씨극회의 합동공연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 김동운 신용수 공동 연출)이 공연되었다 또한 동년 5월에는 이용우, 박낙원 등이 주축이 되어 극단 '세림기획'을 창단하여 전용소극장까지 두고 <서울 말뚝이> 등의 초청극과 <결혼>(이강백 작 이용우 연출), <고백>(김숙인 작, 강주리애 연출) 등의 작품을 '토요무대'란 이름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후 1982년 2월 이성국, 천영훈(천영형) 등이 침체국면을 맞은 극단을 부활시키려 세림상가 지하에 소극장을 만들어 재건하려 했지만 결국 <결혼> 공연을 끝으로 말았다. 


1980년 3월에는 경극연이 <우정>(필립뽀 작, 김동준 연출)을 마학연이 <산국>(황석영 작, 이윤도 연출)을 12월에 경극연은 <무덤없는 주검>(싸르트르 작, 현태영 연출)을, 불씨극회는 <철부지들>(톰 존스 작, 신용수 연출)을 각각 공연했다.

<경남연극 인물사1(경남연극협회 간) 자료 발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