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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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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휴일, 토요일을 맞았다. 마음이 아주 편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이상하다. 불안하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똬리를 틀고 빤히 쳐다보는 독사마냥 어디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틸 수 있나 보자며 지켜보는 것만 같다.

 

"어디 안 갈래?"

 

아내가 먼저 물어준다. 토요일이라 집에 붙어있는 아이들은 제 하고싶은 것 하도록 놔두고 실컷 잠이나 자고, 자다가 지겨우면 컴퓨터로 TV를 보든가, 아니면 얼마 전에 선물받은 시집이나 침대에 누워서 볼까 생각하던 차였다.

 

"어데 가꼬?"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아주 일상적인 대화였는데, 그 대답 한 마디에 게으름을 꿈꾸던 환상은 자그마하게 피어났던 뭉게구름마냥 사라져버렸다.

 

"수영장 가고 싶어 ㅠㅠ"

 

막내가 우는 소리를 섞어 지난 주 기억을 떠올리며 수영장으로 가자고 떼를 쓴다.

 

"아빠한테 물어봐라."

 

이 한마디에 아이는 희색이 되어 쪼르르 달려온다.

 

"엄마한테 물어봐라."

 

아이는 탁구공처럼 왔다갔다하면서 점점 짜증스러원 분위기를 팍팍 풍겨낸다.

 

"수영장 가자."

 

그냥 아무 의욕도 없이 내뱉은 말인데도 아이는 환호성을 지른다. 자기 방에 있던 오빠도 쭈뼛 고개를 내민다. 상황이 아주 멋지게 돌아가는 데도 오빠는 사실 그렇게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고사를 망치는 바람에 딴에는 명예회복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을 터이다.

 

"너도 가자!"

 

망설인다. 갈등이 생겼을 것이다. 이때엔 아빠의 단 한마디만 있으면 아들의 마음 속에 엉켰던 교통혼잡이 일시에 해결된다.

 

"오전에 많이 했으니 잠시 쉬는 게 오히려 공부하는 데 도움된다."

 

걱정도 덜어주고 명분도 안겨줬다.

 

변수가 생겼다. 아니 변덕이 생겼다. 아내가 다시 입을 연 것이다.

 

"그냥 충혼탑 앞에 있는 공원에 놀러가자."

 

나야 이러나저러나 상관 없지만 막내가 갑자기 울상이 된다. 수영을 못하는(귀에 병이 있으니) 아내로서는 또 물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고생하는 것이 아무래도 싫었던 모양이다.

 

"지원아, 공원에 먼저 갔다가 내일 수영장에 가자."

 

어쨌던 수영장에 간다는 약속이 있어서일까 엄마의 두어마디에 아이는 금세 표정을 바꾼다. 그렇게 나선 곳이 창원대로 충혼탑 앞에 있는 삼동공원이다.

 

토요일임에도 날씨가 흐려 그런지 공원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오늘 요일을 착각하고 잘못왔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없었다. 간간이 연인이 나란히 걷는 모습이 보이고 운동하러 나온 할아버지와 늘그막에 연애를 시작한 듯한 흰머리 성성한 할머니와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남들이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라고 여길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가다 서다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리까지 들고 나왔는데 알게 모르게 집에서부터 이어졌던 묘하게 피곤한 분위기가 결국 야외에서 누려볼 거라고 기대했던 잠깐의 평화로운 낮잠마저 이루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아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 혼자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사춘기도, 엄마의 사춘기도, 누나의 사춘기도 자기보다는 잽도 안 될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진짜 사춘기다. 자기만 고통을 겪는다고 여기는...

 

산책길에서 내려가면서 자기를 안 불렀다고 언덕 위에서 30분이나 넘게 혼자 있었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오히려 집에 들어가 잠이나 잘 핑계가 생겼으니 굳이 나쁘다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짧은 시간이지만 한나절이든 반나절이든 무념무상으로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재확인한 것을 성과로 삼고 다음 기회를 보아야겠지?

 

 

가져갔던 자리는 바위 위에 한 3분 펼친 게 모두다. 나중에 아주 유익하게 활용되긴 하지만. ㅋㅋㅋ

 

 

삼동공원 연못에 있는 연 중에 참 아담하고 예쁜 게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꽃? 하면 장미! 했는데 연꽃으로 바꿔야겠다. 바꿨다. ㅎㅎ. 나는 참 간사하다. 예쁜 연꽃 보았다고 장미를 배신하다니.

 

 

데크 길을 다닐 땐 조심해야겠다. 송충이 같은 벌레가 사람 손 닿는 지점에 홍길동처럼 출몰하기 때문이다. 쏘이면 제법 오래갈 것 같다는...

 

 

연못에 있는 잉어는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구경거리다. 특히 값싸고 양많은 과자를 손에 쥐고 있는 상태라면 금상첨화다. 집에서 나오면서 챙겼던 '포테이토 스낵'은 아이들 입에 반도 못들어갔다.

 

 

산책길이 괜찮다. 짧긴 하지만 자르락 자르락 자갈돌 밟는 기분도 나쁘지 않고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시비석도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준다.

 

 

워낙 유명한 시이건만, 가만히 서서 도종환 시를 다시 음미해봤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한바퀴를 돌아나오는 길이다. 막내가 사자상에 올라탔다. 옛날 생각이 났다. 아마도 10년 전일 게다. 오빠가 막내만 했을 때일 것이다. 부곡하와이. 동물 박제가 많은 곳이다. 박제 전시실에서 곰을 만났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을 시베리아 반달곰이 내 손목을 물었다. 아들이 혼비백산하여 아빠의 팔을 빼려고 잡아당겼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지만 얼마나 재미가 있었던지... ㅎㅎ

 

 

막내에게 당시의 모습을 재연시켜보았다. 사진찍기용이다보니 별 재미가 없다. 손목까지 깊숙이 넣어 연출하는 데도 한 번에 안 돼 위기 상황을 느끼는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내 손을 집어넣어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쳤다면 막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에이 그렇게 해볼 걸...

 

맞은 편에 있는 사자상 등에도 올라타더니 뒤에서 껴앉는 모습을 찍고 나니 좀 전에 손목을 물린 데 대한 복수극 쯤으로 보인다. ㅋㅋ. 뭐든 해석하기 나름. ㅎㅎ

 

이때에 비가 주르륵하고 쏟아졌다. 우산 대신 아주 유용하게 쓰인 물건이 별로 앉지도 못했던 자리였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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