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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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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소재를 글을 쓴다는 것은 창작이라는 차원에서 그렇게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한편으론 재미있는 작업니다.

 

지난 6월, 일로써 시작을 했지만 나름대로 애착을 지니고 하다 보니 벌써 네 번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한동안 이 글의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고민의 끝은 이런게 별 소용없다는 거다.

 

옛날 이야기꾼들이 들었던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각색하고 윤색하고 때론 그대로 남에게 들려줄 때 자기이름을 박아서 이 전설은 내껍네 한 것도 아니잖는가.

 

일은 일로써, 지금까지 전해오는 경남지역의 전설을 나 어릴적 할머니처럼 여럿 모아놓고 도란도란 들려주는 그런 기분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경남이야기에.

 

창녕군지에는 영산면 교리에서 전해오고 있는 똑딱귀신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똑딱귀신은 석수장이의 돌 쪼는 소리가 나면 여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멀리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아낙의 영혼이 돌호박(돌확)에 서려 귀신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설에 살을 덧붙여 또 다른 맛이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다음을 스킵하지 마시고 '꾹' 징검다리 밟고 지나가듯 밟고 가시옵소서.

 

 

 

옛날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께서 마당 한가운데 모캣불(모깃불) 피워놓고 동네 손주 녀석들에게 더 오랜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빈 곰방대 쪽쪽 빨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지금처럼 밤이 되어도 시원해질 줄 모르는 날씨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툭하면 짜증을 내며 이웃과 말다툼을 하곤 했지요. 건넛마을에서 방앗간을 하는 만복은 오랜만에 친구를 찾아 이 마을에 왔습니다. 만복은 이 마을 친구 천석과 함께 대낮부터 주막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밤이 이슥한 지금은 발음도 제대로 안 되고 말도 엉뚱하게 튀어나올 정도로 거나하게 취했습니다.


낮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던 평상 위 배롱나무 붉은 꽃잎들이 주막등의 은은한 불빛에 살랑살랑 춤을 출 때였습니다.


“이제야 바람이 좀 부네 그려.”

만복이 혀가 꼬인 발음으로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요즘은 일을 못하겠어.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어.”

천석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빈 잔을 몇 번이고 기울여보면서 응대를 했습니다.

“여보게, 만복이. 우리 한 잔 더할까? !”


“하이고, 우리 오라버니들 오늘 약주 과하신 것 같은데 이제 술자리 파하시지요.”

마침 평상 옆을 지나던 주모가 끼어들었습니다. 만복은 벌써 반은 얼이 나갔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상체를 앞뒤로 좌우로 흔들거렸습니다. 코에선 거친 숨소리가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만복의 상태엔 아랑곳하지 않고 천석은 주모에게 불만스레 말했습니다.


“주모, 돈 못 받을까 그러쇼? 우리 술값 낼 돈은 있다 이거야? 좋은 분위기 망치지 말고 술이나 더 내오라구!”

천석이 빈 술잔을 술상에 ‘탕’하고 내리치며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는 통에 만복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니, 미안하네. 내가 깜빡 졸았나봐! 망치는 내일 바로 빌려줌세. 그래도 내 자네 이야긴 다 듣고 있었다네.”

만복의 엉뚱한 소리에 천석은 황당해했고 주모와 옆의 평상에서 술을 마시던 동네 사람들은 파안대소를 하였습니다. 천석은 다른 사람에게 창피했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습니다.


“여보게 만복이, 가세. ~. 거기서 엉뚱한 말을 해서는….”

천석은 만복을 부축해서 주막을 나왔습니다. 주모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술값은 주고 가야지.”

“달아놓으시게. 내일 줌세.”


두 사람은 동구 밖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휘청휘청 걸어 나왔습니다. 천석은 친구 만복이가 자기 마을로 돌아가려면 낮은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침 보름달이라 사위는 훤했지만 그래도 오밤중이어서 술 취한 친구가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염려를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복이 자네,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그냥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이 어떤가?”

“무슨 말인가? 우리 마눌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빨리 가봐야지.”

만복은 한사코 집으로 가야 한다며 천석의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뭐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고 오늘은 좀 과했지만 별일이야 있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천석은 만복에게 재차 밤길 조심하라 이르고 보내주었습니다.


만복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비틀비틀 걸어올라 갔습니다.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만복의 어깨를 잡을 듯이 길게 손을 뻗었습니다. 만복은 괜스레 으스스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고개에 다다를 쯤이었습니다. 고개 쪽에서 “똑딱! 똑딱!”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만복은 이 밤에 무슨 소리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개에 올라섰을 때 만복의 게슴츠레한 눈앞에 여자모습의 희미한 그림자 같은 것이 서있었습니다. 머리가 쭈뼛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그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여인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열 걸음 앞으로 다가왔을 때 만복은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얼굴이 창백한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비녀로 쪽을 지었습니다. 만복은 너무 두려워 술이 확 깼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혹시 우리 서방님 못 보셨나요?”

하늘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은 만복의 눈앞에까지 다가와 가냘프고 슬픔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만복은 보름달이 이리도 훤히 뜬 오늘 같은 밤에 귀신이 나타날 리 있겠나 싶으면서도 몸과 입이 얼어붙었는지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저씨, 아랫마을에서 괴나리봇짐을 메고 있던 우리 서방님을 보시지 않으셨나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 여인의 하늘색 치마 아랫단을 내려다본 만복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습니다. 여인은 공중에 떠 있었으며 발은 맨발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만복은 고갯마루에서 잠이 깼습니다. 엊저녁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젯밤 그 여인네는 헛것이었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서려는데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만복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몸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고개를 내려가려는데 만복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돌호박이었습니다. 흙이 묻어 더러워 보이긴 했지만 아주 잘 만든 물건임을 방앗간을 운영하는 만복은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꽤 잘 만들었는걸. 그런데 이런 걸 버리다니 누군지 몰라도 물건 볼 줄 모르는 사람인 모양이야.’ 만복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돌호박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만복은 돌호박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질하니 윤도 나고 곡식 빻는 용도치고는 너무 기품이 있어 허한 방앗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만복은 디딜방아에 받쳐놓은 낡은 돌호박을 치우고 주워온 돌호박을 놓았습니다. 방앗간 안에는 모두 낡은 장비와 도구들뿐인데 유독 디딜방아에 받쳐놓은 돌호박만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복과 아내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날은 방아를 찧으러 오는 손님마다 새로 들어온 돌호박에 대해 한마디씩 했습니다.


“어느 돌쪼이(석수장이)가 만든 것인지 참 잘 만들었다.”

“이런 돌호박은 대감댁 정원에나 어울리겠는걸.”

“돌호박이 꼭 여염집 아낙 같아. 호호호.”


만복은 손님들의 이러한 이야기들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만복과 아내는 다른 날보다 더 바빴습니다. 여름이라 비수기인데도 이상하게 뜻밖의 손님이 많이 왔습니다. 만복은 새로 들인 돌호박에 신비스러운 힘이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럴 리 없다고 만복은 바로 머리를 저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해가 지고 밤이 되었습니다.


“여보, 피곤하시지요? 어젯밤도 잠을 설쳤을 텐데. 오늘 일찍 주무시구려.”

만복이 씻고 방으로 들어가니 아내가 이부자리를 펴놓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오후 들어 일하면서도 계속 눈이 감겨 애를 먹었소. 하하. 오늘은 오랜만에 일찍 잡시다.”


만복과 아내는 나란히 이부자리에 들어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만복은 코를 심하게 골았습니다. 아내는 만복의 코 고는 소리를 한해 두해 들은 것이 아니므로 이제 오히려 자장가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습니다. 자정쯤 되었을 시각입니다.


 

 

“똑딱. 똑딱. 똑딱….”

만복의 아내가 똑딱 소리에 살풋 잠이 깨어 만복의 등을 톡톡 쳤습니다.

“여보, 밖에 무슨 소리 안 나요? 나가 봐요.”

만복은 여전히 피에 지친 몸을 고쳐 누우며 다시 곤한 잠에 떨어졌습니다.

“똑딱. 똑딱. 똑딱….”

“아, 여보! 밖에 누가 왔나 봐요. 얼른 일어나 나가보세요.”

“오긴 누가 온다고 그래.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는데 어떻게 들어와. 당신이 잘못 들었겠지.”


만복은 귀찮은 듯 다시 반대로 고쳐 누웠습니다.

“똑딱. 똑딱. 똑딱….”

선잠에서 깬 만복에게도 이제는 똑딱 소리가 들렸습니다. 만복은 몸을 일으켜 앉았습니다. 만복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가만, 어젯밤에도 고개를 넘을 때 이 소리가 들렸었는데. 왜 우리 집에서 이 소리가 들리는 거지?’


만복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내가 방문을 열치고 내다보라는 등쌀에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면서 오금이 저림을 느꼈습니다. 방문을 거의 다 열었을 때 똑딱 소리는 멎었습니다. 방앗간 안은 고요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계속 울려대던 똑딱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만복이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방문을 닫으려고 손잡이에 걸린 줄을 당길 때였습니다.


“아저씨, 우리 서방님 혹시 못 보셨나요?”

분명히 어젯밤 술에 취해 고개를 넘을 때 보았던 그 귀신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니, 그 귀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문을 다시 열었을 때 돌호박 위에 그 귀신이 떠 있었습니다. 만복의 아내도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하였습니다. 만복이 놀라서 문을 다시 닫으려는 순간,


“잠깐만요, 제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귀신은 사정하다시피 말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귀신과는 달리 사람을 해치거나 저주를 퍼붓는 귀신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복은 다시 문을 서서히 열었습니다. 뒤에서 아내가 살짝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습니다.


“저 처자가 이녁이 엊저녁에 보았다던 그 똑딱귀신이우?”

만복은 아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똑딱귀신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래요,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렇게 구천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나타나 남편을 찾는지 말해보세요.”

“고맙습니다. 저를 만난 많은 사람이 담력이 약했는지 바로 사망하는 바람에 제 사연을 들려줄 수 없었는데…, 아저씨를 만난 게 천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똑딱귀신은 돌호박 위에 앉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충청도에서 돌쪼이를 하는 사람의 아내로서….”


(다음 주 2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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