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절물휴양림 삼나무숲길을 걸으며
2012년 5월 12일 아침. 제주도 절물 휴양림입니다.
한국디지털뉴스협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아침 트래킹 일정에 따라 이곳으로 왔습니다.
나의 뱃살이 방증하듯 걷는 것, 특히 힘들게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주최측에서 산으로 트래킹을 떠난다고 해서 어떻게 살짝 빠질 방법이 없나 고민을 했지요. 하지만 버스로 움직이는 단체 일정이라 묘안을 짜내지 못하고 결국 여러 사람 속에 섞여 따라나섰습니다.
입구에선 돌하르방 두 개가 경비원처럼 떡하니 지키고 서있었습니다. 두 돌하르방 사이에는 제주 전통의 문, 정낭문이 있습니다. 정낭이라 불리는 나무 3개가 나란히 모두 걸쳐 있다는 것은 집주인이 오랫동안 집에 안 돌아올 것이란 의미인데... 흠, 들어오지 말란 얘긴지. 이 정낭문은 목장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소나 말을 방목하다보니 이놈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마당에 말린다고 늘어놓은 곡식을 냠냠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트래킹 일정은 1시간 30분이랍니다. 걱정이 앞선 가운데 그 뒤를 졸졸 따라갔습니다.
산책로 초입에 들어서자 삼나무숲이 펼쳐졌습니다. 야, 괜찮은데! 무엇보다 길이 나무데크로 되어있어 걷기에 편했습니다. 걷는 맛도 나고 공기도 좋고. 무엇보다 경치가 좋으니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걸었습니다.
걷는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을 걸으니 '핸드폰을 잠시 꺼두셔도 좋다'는 무슨 광고 속을 걷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제주의 이런 삼나무가, 함께 걷던 분으로부터 외래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원래 제주도는 난대림으로 가시나무와 후박나무, 녹나무, 참식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숲을 이루고 있었으나 집을 짓거나 농사짓는다고 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대신 감귤농사를 위해 방풍림으로 심은 소나무나 삼나무가 오랜 기간 자라 이렇게 멋진 풍광을 이루게 되었다네요.
나무나 돌로 만든 조각품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그 캐릭터가 돌하르방을 기본으로 한 게 많았습니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양한 표정이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짐작게 했습니다. 위 사진에서 맨 아래에 있는 조각은 마치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트래킹이라는 바쁜 일정만 아니면 조각품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감상했을 텐데 아쉽더군요. 저멀리 앞서간 동료들의 뒤꽁무니를 쫓아 뛰어갑니다. 여기서 혼자 길을 잃으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
삼나무 기둥 사이로 화살을 쏘아 저 끝까지 통과할 수 있으려면 어느정도의 실력이 필요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어깨가 아파 활쏘기를 못한지 3개월이 되다보니 뭘 봐도 활쏘기와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네요. 삼나무 숲은 정말 멋집니다.
데크로드를 들어선지 얼마 가지 않아 목공예체험장이 있더군요. 삼나무로 만든 것들이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주로 곤충이었습니다. 개미도 있고 장수풍뎅이도 있고 하늘소도 있고... 만들고 있던 작품이 사슴벌레였던가 뭐 비슷한 종류였습니다. 그림에 미쳐있는 우리 아들이 이런 것도 잘 만들 수 있을까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한때 종이로 온갖 로봇을 만들어 자랑하더니...
중간 쯤 올라갔을 때 전망대가 보였습니다. 바다가 훤히 보이든지, 울창한 숲이 내려다 보이든지... 그렇게 만족감을 주기에는 부족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럿이서 사진도 찍고 경치도 찍고 그랬습니다. 카메라는 추억을 저장하는 기막힌 장비잖아요. 카메라가 여기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처음엔 절물휴양림, 절물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절물 약수터에 이르러서야 절물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절앞에 샘물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그냥 '절물휴양림'했을 때엔 말을 외우기도 어려웠는데 무슨 뜻인 줄 알고 보니 안 외우려고 해도 벌써 그 '절물'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와 앉아버렸습니다.
데크로드를 따라가면 무슨무슨 길 하면서 다 이름이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더 확실한 추억을 남겨주려는 의도인 듯합니다. 우리가 걸어간 길은 생이소릿길입니다. 생이가 뭐야? 걷던 내내 궁금해 맑은 공기도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오름 꼭대기 전망대 가는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오면서 작은 팻말을 보았습니다. 새의 소리가 가득한 이곳 어쩌고 저쩌고... 바로 생이가 새의 제주 방언이란 것을 눈치챘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품은 더 훌륭한 작품이지요. 인공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어떤 경지... 그게 완벽한 경지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옆으로 뻗다가 다시 위로 가지를 뻗어낸 나무는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스테레오로 귓속을 울리는데 앞에서 갑자기 까마귀가 푸드득 날아올랐습니다. '에구 깜딱이야!' 순간 새소리가 숨을 죽이긴 했지만 그나마 이놈의 까마귀가 '까악'하고 울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는 다시 계속되었습니다.
한 45분 정도 걷다보니 원위치로 돌아왔습니다. 지쳐서 30분을 앉아 함께 출발했던 동료들을 기다렸습니다. 다시 이곳으로 여행을 올 기회가 있다면 시간 넉넉히 두고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숲을 느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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