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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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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벽천대감이 전국에서 그러모은 뇌물을 왕실에 상납하는 과정에서 신동대 일행이 중간에 급습하여 모든 재물을 빼돌린 사건이 일어나자 의금부는 신동대 체포령을 내립니다. 의금부 종사관을 앞세운 체포조는 신동대가 거주하는 양산 ‘선행당’으로 들이닥칩니다.

 

여기서 신동대는 비무대회 때 결승진출을 양보했던 이몽란을 다시 만납니다. 이몽란과 한판 대결을 벌이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일단 잡혀갔다가 심문을 받는 중에 벽천대감의 죄를 고변하면 어떻겠느냐는 이몽란의 권유가 현실성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동대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오라를 받습니다.

 

신동대는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던 중 이몽란의 말처럼 벽천대감의 뇌물을 수수한 죄상을 고변하나 의금부도사는 억지라며 들은 체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제로 죄를 인정하게끔 하려고 나장들을 시켜 몽둥이 고문을 가합니다. 그러나 신동대를 향해 내리친 몽둥이가 부러지고 화를 참지 못한 금부도사가 칼을 치켜들자 칼은 순식간에 뱀으로 변하는 등 신동대가 도술을 부려 의금부를 발칵 뒤집어놓습니다.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고 비리에 휩싸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관리들을 그렇게 혼내준 신동대는 비리의 몸통을 찾아 신형을 날립니다.

 

………………………………………………………………

 

신동대가 의금부 지붕 너머로 날아가 사라지자 모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중에 이몽란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의금부도사의 신동대 심문 과정을 지켜보고 실망을 했습니다. 이몽란은 정의로워야 할 의금부 권력이 정의실현보다는 사사로운 관계에 얽매여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도 의금부라면 법을 집행하는 최고의 기관이지 않은가? 이곳의 금부도사라는 자는 사건의 경위를 조사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사건을 조작하려 하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몽란은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당장에라도 전립(무관이 쓰는 벙거지)을 벗어던지고 싶으나 쓸데없이 이목을 끌 이유가 없어 꾹 참았습니다. 며칠 후 이몽란은 양산으로 돌아오고 나서 사또에게 정중히 사의를 표시하고 관복을 벗고 평상복 차림으로 관청을 나섰습니다.

 

한편, 비리의 몸통을 찾아 떠난 신동대는 고대광실 너른 대저택에 도착했습니다. 이 집은 임금의 사촌 동생인 부은군의 집입니다. 2층으로 된 누각의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니 가옥이 스무 채는 넘었습니다.

 

신동대는 투시력을 이용해 집안의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신동대가 찾는 것은 재물을 보관해놓은 창고입니다. 가까운 건물에서부터 멀리 있는 건물까지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구석진 건물에선 부은군이 기생들을 불러 술판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한참 둘러보다 신동대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습니다. 재물 창고를 찾은 것입니다. 그곳엔 명나라에서 들여온 각종 비단과 동물가죽, 은그릇이며 금촛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귀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날이 어둡긴 했지만 그렇게 늦은 시각이 아니어서인지 하인들이 일을 마무리하느라 마당을 분주하게 오갔습니다. 신동대는 오른손 검지를 펴서 하늘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러자 신동대의 손가락에서 회색빛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손가락을 창고 쪽으로 가리키자 그 기운은 뱀처럼 허공을 이끌어져 내려가더니 재물창고 문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기운의 끝은 또 가느다랗게 갈라져 뻗어나가더니 창고 자물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자물쇠가 풀리고 창고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하인이 처음엔 창고 앞을 무심코 지나치다가 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보고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살금살금 창고에 다가갔습니다. 그땐 연기 같은 기운이 재빨리 창고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였습니다. 신동대 손끝에서 나온 기운들은 창고 안에서 각양 각종의 재물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자기 주위로 회색 연기가 스치고 지나가자 갑자기 도자기가 꿈틀꿈틀하더니 돼지로 변해버렸습니다. 또 비단 주위를 지나가자 비단은 뱀으로 변해버렸고 금속으로 만든 함은 두꺼비로 변했습니다. 순식간에 창고에 있던 재물들이 모두 동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때 밖에서 하인은 ‘누가 재물창고의 문을 열어놓은 거지?’ 혼잣말을 하면서 가까이 가다 문득 걸음을 멈췄습니다. 혹시 도둑이라도 든 것은 아닐까, 그러면 잘못하다간 괜히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 싶어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때 다른 하인이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차 서방!”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 하인을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조심스레 창고 가까이 다가가 문을 살짝 열어젖혔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창고 안에서 돼지, 뱀, 오리, 개구리 등 온갖 짐승들이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깜짝 놀란 두 하인은 그대로 창고에서 물러서면서 도망을 갔습니다. 창고에서는 동물들이 끝도 없이 빠져나왔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몸을 숨기고 있던 두 하인은 바짝 긴장한 채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저, 저것들이 대체 뭐야!”

“낸들 아나? 아침나절 김 대감에게서 온 물건들을 넣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동물들이 왜 쏟아져 나오는지, 이게 무슨 조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재물창고에서 나온 동물들은 각기 출구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하인들은 숨어서 동물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다가 재물창고에서 더는 동물이 나오지 않자 살금살금 걸어서 가까이 갔습니다. 문 안을 들여다보고는 두 하인은 더 깜짝 놀라며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습니다. 안에 있던 재물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제야 두 하인은 고함을 치며 마당을 가로질러 별채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부은군이 늦게까지 기생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는 곳입니다.

 

“나리, 큰일 났습니다.”

 

차 서방이란 하인이 별채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습니다.

 

“웬 소란이냐? 술맛 떨어지게.”

“나리, 누군가 재물창고를 모두 털어간 것 같사옵니다. 안에 있던 재물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뭐야?”

 

큰일이란 소리에도 느긋한 표정이었던 부은군은 재물창고가 털렸다는 말에 흐트러진 저고리에 신도 벗은 채 재물창고로 달려갔습니다. 횃불을 붙여 안을 들여다보니 하인들의 말대로 비단 자락 하나 남김없이 모두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어이쿠!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부은군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모으긴 백성들 피를 짜서 모았지!”

 

느닷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부은군은 소리가 났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인들도 일제히 고개를 돌려보니 2층 건물 지붕에서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덜컥 겁을 먹은 얼굴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와 형체를 나타내자 부은군이 버럭 화를 냈습니다. 아무리 눈속임으로 2층 지붕에서 사뿐히 내려왔다고 해도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의 나이의 곱상한 사내라 가소롭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네놈은 웬 놈인데 남의 집에 들어와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나를 모르시겠소? 신동대 도사. 당신이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려 했던.”

“네놈이 그 신동대란 놈이냐? 마침 잘 만났다. 너 때문에 내가 입은 손해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당치도 않소. 오늘 부은군의 재산은 모두 어렵게 사는 백성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 얼마나 보람된 일이오이까?”

 

그때 마당 한쪽 끝에서 날카로운 비수가 ‘슈숙’하고 날아들어 신동대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순간적이고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피하지 않았다면 비수는 신동대의 머리를 관통했을지 모릅니다. 신동대가 부은군을 상대하면서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그의 호위무사들이 암습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부은군과 하인들이 마당 한쪽 끝으로 물러서자 호위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도의 검기가 느껴지는 고수들이었습니다. 신동대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다섯 명의 호위무사들을 훑어보면서 불쌍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습니다.

 

“이렇게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 할 짓이 없어 썩어빠진 관리의 밑이나 닦으며 사느냐? 찾아보면 얼마든지 의로운 일이 있을 터. 진정한 무예가라면 그 검을 의미 있는 곳에 쓰는 것이 마땅하거늘.”

“우린 돈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정의니 의리니 하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우리들의 칼을 받아라. 얍!”

 

호위무사 중 한 사람이 신동대를 향해 검을 쭉 뻗었습니다. 신동대는 몸을 뒤쪽으로 바람에 깃털 날리듯 물러나며 부채로 검의 끝을 툭 쳤습니다. 캉! 호위무사의 검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사의 손에서 벗어나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짱그랑!

 

이윽고 다른 무사들도 일제히 검을 날렸습니다. 모두 고수들이라 신동대는 이리저리 검기를 피하느라 공격할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휘리릭. 신동대는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몸을 회전하며 검기들을 물리쳤습니다. 카강캉캉! 신동대는 회전하면서 부채로 검 끝을 튕겨냈던 것입니다. 검 끝에서부터 시작은 검의 진동이 파동을 일으켜 손잡이에까지 이르자 무사들은 손목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결국 검을 놓치고야 말았습니다.

 

고수들은 공격을 더 잇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났습니다. 신동대는 팽그르르 돌던 신형을 서서히 멈추고는 뒷짐을 진 채 무사들을 향해 험악한 인상을 썼습니다.

 

“원래 나는 마음씨가 아주 고운 사람이나 내 충고를 무시하고 나쁜 놈을 위해 칼을 뽑는 자에겐 특별한 선물을 주니 감사히 받도록!”

 

신동대는 집게손가락을 세워 기를 모았습니다. 손끝에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습니다. 손가락을 무사들의 발을 가리키자 연기는 먹이를 공격하는 뱀처럼 쏜살같이 무사들의 발을 휘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부은군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무사들의 발이 돌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으악!”

 

무사들은 멍하니 자신의 발이 주춧돌처럼 변해버린 것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뒤로 물러나려 발을 떼려는데 발이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겨우 한발을 떼었으나 쿵! 힘에 부쳐 그대로 발이 다시 땅에 떨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무사들은 신동대에게 사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몰라 뵙고 까불었습니다. 앞으론 우리의 무예를 좋은 일에 쓸 테니 부디 용서하시고 이 마법을 풀어주소서.”

 

신동대는 무사들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신동대는 고개를 돌려 부은군을 쳐다보았습니다. 부은군은 겨울철 사시나무 떨 듯 와드드드 떨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떨었으면 딱딱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다듬이방망이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신동대가 그를 향해 걸어가자 두 손을 비비며 애원하는 자세로 변했습니다.

 

“도사님, 제발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싹싹 빕니다.”

“어이구, 부은군나리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눈이 이렇게 많은데 왕실 어른이 체통이 있어야지요. 옷고름도 이렇게 풀어헤친 채 비루하게 용서를 비는 꼴이라니요?”

 

신동대는 부은군의 옷고름을 단정히 묶어주었습니다.

 

“이제 곧 석상을 변할 텐데 옷이라도 단정히 입고 있어야 지나가는 사람이 보더라도 손가락질은 하지 않을 거 아뇨? 내가 손가락을 치켜들면 최대한 멋있는 자세를 취하세요. 자, 하나 둘 세…?”

“아, 잠깐잠깐! 거, 도사님이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다 들어주겠소. 말씀만 하시오. 그러니 제발.”

 

부은군이 제 목숨은 아까운 줄 알아서 애면글면 사정을 하니 신동대도 못이기는 척하고 조건을 말했습니다.

 

“부은군의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나는 내 손금보듯 훤히 꿰뚫고 있소. 그러니 행여 속일 생각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일단 가진 모든 재산을 국가 위민시설에 헌납하시오. 그리고 나리께서 거느리는 조정 대신과 관료들에게 일러 부디 청백리로 살아가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시오. 만약 그것이 이행되지 않으면 나리의 몸은 서서히 석상으로 변해갈 것이오.”

 

그렇게 말하고 신동대는 손바닥을 펴서 부은군의 가슴에 대고 회색빛 기운을 삽입하였습니다. 부은군은 한동안 쿨럭쿨럭 기침을 하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러고는 신형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무사들이 급박한 목소리로 애원했습니다.

 

“도사님, 우리들을 이대로 두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마법을 풀어주셔야죠?”

“그렇게 사흘 동안 참회를 하여라. 그리고 마법이 풀리면 바로 양산 선행당으로 찾아오느라.”

 

신동대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달빛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신동대가 사라진 후 부은군은 한 시간 만에 깨어났고 이튿날부터 한동안 재물을 밖으로 나르는 움직임으로 부산했습니다. 무사들도 사흘 후 마법이 풀어지자 부은군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양산으로 향했습니다.

 

신동대가 양산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몽란은 선행당으로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신형, 큰일 났소이다. 왜군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고 하오. 어제 부산포에 상륙해서는 파죽지세로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 군은 아무 대비책 없이 밀리고만 있다 하니 어쩌면 좋소?”

“생각보다 빨리 침략을 시작했군요. 왜군에 대항하려면 관군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소. 10년 전 율곡 선생이 그렇게도 10만 군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무시하고 준비하지 않더니 결국 힘든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군요.”

“관군만으론 되지 않으니 우리라도 나서서 싸워야 하지 않겠소?”

“당연한 말씀입니다. 나는 선행당 식구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을 테니 이형은 적의 이동경로를 파악해주시오.”

 

신동대는 막손과 살모사를 시켜 무예 기본은 갖춘 무사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모두 모으니 300명이 넘었습니다. 그중에는 용호칠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부은군 무사들도 뒤늦게 합류하였습니다. 또 신동대가 모은 의병에는 월향관 덕수도 끼어 있었습니다. 신동대는 이몽란과 함께 청도로 이동했습니다. 신동대와 이몽란의 의병부대는 왜군이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기습작전으로 적을 궤멸시켰습니다.

 

왜군 선봉대가 청도전투에서 패하자 이 소식을 들은 왜군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대대병력을 이끌고 재공격을 해왔습니다. 수적으로 열세한 상황에서 의병부대는 목숨을 건 승부를 펼쳐야 했습니다. 산 아래에선 조총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소리와 동시에 병사들은 연이어 앞으로 꼬꾸라졌습니다.

 

산 위에서 항전하던 의병들도 활시위를 힘차게 당겼습니다. 핑! 피핑! 조총을 들고 겨누고 있던 왜군들도 연이어 가슴에 활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조총과 활 공격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왜병의 수가 너무 많아 대항하기 역부족이었습니다.

 

신동대는 깊게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신동대는 이몽란을 불러 일단 퇴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더는 여기서 버텼다가는 모두 전사하고 말 것이 뻔하였던 것입니다. 이몽란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이형은 일단 대구 쪽으로 가서 전열을 가다듬고 이동 경로를 파악해 잠복해 있다가 기습작전을 펴면서 왜적을 막으시오. 여기선 내가 있는 힘껏 막아볼 테니.”

“무슨 소리요? 신형 같이 갑시다.”

“여기서 시간을 벌지 못하면 얼마 못 가 우리 군이 전멸하고 말 것이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대구로 떠나시오.”

 

신동대는 이몽란을 떠밀다시피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때 중년의 의병 한 명이 신동대 가까이 왔습니다. 덕수였습니다. 그는 가만히 신동대를 쳐다보곤 살짝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처음 본 사람의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신동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도련님,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꼭 어머니를 찾으세요.”

“도련님이라니요? 또 어머니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따당! 그때 다시 아래쪽에서 조총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습니다. 아군의 화살 공격이 없자 왜병은 잠시 공격을 멈추더니 다시 총을 쏘았습니다. 역시 산 위에서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총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와아!”

 

왜병은 일제히 칼을 뽑아들고 접근해왔습니다. 신동대는 도술을 부려 주변의 돌맹이들을 공중에 띄워 올렸다가 손을 산 아래쪽으로 내쳤습니다. 그러자 돌멩이들이 화살로 둔갑해 쏘아져 날아갔습니다. 돌격해오는 왜군들은 무차별로 날아오는 화살에 다시 기겁하여 몸을 숙였습니다. 돌격을 소리치던 고니시 유키나가 역시 깜짝 놀라 입을 닫고는 몸을 숙였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저를 알고 저의 어머니를 아신단 말이오?”

“전 선친의 호위무사 덕수라고 합니다. 어머니께선 지금 살아계십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셨지요. 17년 동안 도련님을 찾아헤맸습니다. 이제야 찾게 되었는데 이렇게 전란을 맞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어머니는 어디 계신가요?”

 

신동대는 덕수와 대화를 하는 중에서 도술을 부려 돌맹이 화살을 날렸고 큰돌은 포탄으로 둔갑시켜 쏘아댔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군 병력이 현재 자신의 병사들만으론 역부족이라고 판단하였는지 더욱 많은 병사들을 가담케 하였습니다. 신동대가 내려다보니 왜군들이 쥐떼처럼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신동대는 좀 전보다 더 강력하게 돌멩이와 바위를 쏘아댔습니다.

 

“마님은 제가 안전한 곳에 모셔드렸습니다.”

“그런가요? 제게도 어머니가 계셨군요. 사부님께선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거라고 하셨는데.”

“이 전투가 끝나면 제가 도련님을 모시겠습니다.”

“네, 그래요. 어머니를 꼭 만나 뵙고 싶네요.”

 

신동대는 끝없이 밀려오는 왜군을 향해 마지막 공력까지 끌어올려 도술을 펼치며 대항했습니다. 왜군들은 산을 기어서 올라오면서 하나둘 쓰러져갔고 신동대는 지쳐갔습니다. 옆에서 덕수가 아무리 돌팔매질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결심한 듯 큰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덕수의 손에는 해룡검이란 칼이 쥐어져 있었고 신동대의 손에는 언제부턴가 부채 대신 금강도란 칼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왜군이 바로 바위 아래에까지 까맣게 몰려들었습니다. 신동대와 덕수는 서로 마주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핫! 두 사람은 동시에 바위에서 신형을 날렸습니다. 해룡검과 금강도가 태양의 기를 양껏 머금은 듯 번쩍하였습니다.(끝)

 

[관련기사]

 

(전설텔링)신동대전()(1)

(전설텔링)신동대전()(2)

(전설텔링)신동대전()(3)

(전설텔링)신동대전()(4)

(전설텔링)신동대전()(5)

(전설텔링)신동대전()(6)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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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이면 아직 책을 읽는 것이 버거울 때일까. 막내는 책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TV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아이가 최고 좋아하는 것은 스펀지밥인가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등장 캐릭터의 대사도 방정맞고 줄거리도 정신이 없다. 폭력적인 장면도 예사로 나온다. 또 다른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남을 깎아내리는 대사에 자극적인 표현들...


어쨌든 아이에게 재미있는 요소는 갖춘 것들이다. 별로 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마냥 못 보게만 할 수는 없다. TV를 없애면 모를까... 한 달 정도 감춰뒀을 땐 아이가 핸드폰에 빠졌다. 핸드폰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놔뒀더니 결국 책을 가깝게 하기 위한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도서관에서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을 빌려다주면 그래도 조금 볼까 해서 고향의봄 도서관에서 그림이 재미있는 삼국지를 세 권 빌렸다. 처음엔 조금 보는 듯하더니 이내 TV에 눈을 돌리고 나면 그것으로 책과의 인연은 끝이다. 읽어주려해도 들을 마음이 전혀 없다. TV를 보더라도 생각을 하게끔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본다면 모르겠는데... 끊임없이 스펀지밥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줄기차게 TV를 보고 나는 반납할 날이 다되어 가는 어린이용 삼국지를 그냥 반납하기 아까워서 읽고 있다. 그림도 많고 글자도 커서 금세 두권을 다 읽고 나머지 한 권을 남겨놓았다. 그런데 읽다가 문득, 책이 너무 재미있단 생각이 듦과 동시에 딱 내 수준이다 싶다.


이 책, 침대에 기대어 앉은채 나를 중국 역사여행을 시켜준다. 순식간에 제갈량을 따라 손권이 있는 강동 '시상'으로 찾아간다. 손권의 모사들과 토론을 벌이는 제갈량의 지혜를 배우고 사진으로 실은 포슬정, 주유의 부인 소교의 묘소, 그리고 장강(양쯔강)을 따라 조조군에 진을 치고 있는 곳까지 여행을 한다.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교원 올스토리 출판사에서 나온 '눈으로 보는 중국 고전-삼국지' 11권 '강동에 부는 바람'에서 아이 대신 신나는 여행을 했다. 내친김에 13권 '유비, 땅을 빌리다'도 한달음에 읽어내려갔다. 책 속의 명료한 표현들이 읽어나가는 데 가속도를 덧붙이게 한 것 같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삼국지를 한 번 읽었던 것 때문인지 12권을 빼먹어도 전체 줄거리가 자연스레 연결된다.


14권 '서쪽 하늘을 보라'. 유비가 손권의 동생과 결혼하고서 신혼재미에 빠져있다가 그것이 손권과 주유의 계책임을 눈치채고 강동을 탈출하는 대목이다. 손 부인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다시 노숙을 통해 형주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계속 수포로 돌아가자 주유는 결국 분을 못 이겨 죽게 된다. 그리고 노숙이 대도독 자리에 오르고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방통을 모사로 쓰려하지만 손권은 내친다.


손권이 내친 방통은 유비에게 가고 여기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조조가 손권을 칠 요량으로 마등을 이용하고 하지만 마등은 오히려 조조에 맞서다 죽게되자 그의 아들 마초가 대대적인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치는 대목이다. 여기서 쫓기던 조조가 도포도 벗어던지고 수염도 자르는 등 살기위한 고육책이 등장한다.


아이 대신 읽은 삼국지. 너무 재미 있어서 다시 아이게게 보여주려 했지만 여전히 책은 거부당하고 마는데... 언젠가 이놈들을 좋아할 날이 있겠지... 이제부턴 아이에게 읽힐 생각은 버려야겠다. 그냥 내가 읽기 위해 빌리는 것이야. 그렇다고 어른이 애 보는 책 본다고 흉볼 사람은 없겠지. ㅋㅋ.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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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어려서부터 운암도사에게 맡겨져 도술과 무예를 익힌 신동대가 스무 살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가 가장 먼저 받은 느낌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왈패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자, 그들의 불법과 정의롭지 못한 일에 눈을 감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리에 앞장서는 관리들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비리가 하층 계급에서부터 상층, 나아가 그것이 왕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신동대는 자신의 능력을 안정된 생활을 위해 쓰기보다 사회의 온갖 비리를 척결하는 데 쓰고자 마음을 먹습니다. 관아 형방의 비리가 벽천대감에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벽천대감이 왕실에 상납하려는 뇌물, 즉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서 마련한 물건들을 중간에 가로챕니다.


신동대는 그 물건 중에서 벽천대감이 바로 알아차릴 만한 보석을 몇 개 쥐고 벽천대감이 잠들어 있는 사랑방으로 들어갑니다. 잠꼬대를 하다 깨어난 벽천대감에게 탈취한 보석들을 보여주며 다시 또 비리로 백성을 힘들게 하면 살아있다는 것이 후회스럽게 해주겠다며 경고를 하고 사라집니다.


……………………………………………………………………………..


며칠이 지났습니다. 한 무리의 관군이 골목에 먼지를 일으키며 선행당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모두 50여 명은 족히 되어 보였습니다. 관군이 선행당 포위를 끝내자 종사관이 선행당 내부를 향해 큰소리를 쳤습니다.


역적 신동대는 어명을 받들라!”


잘못이 없기에 피할 이유도 없다 하여 관군이 들이닥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피하지 않았던 신동대였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어명’이라니? 어명이라면 임금의 명령이란 이야긴데 게다가 자신이 역적이라니, 얼토당토않은 관군의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백성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고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혼내준 적은 있지만 이 나라님한테는 아무런 피해를 준 게 없건만 어찌 나를 역적이라 부른단 말이오?”


신동대는 선행당 문을 열고 나오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신동대는 문밖에 나와서는 관군들을 쭉 둘러보았습니다. 모두 정의에 불타는 심정으로 신동대를 대하는 표정을 아니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상부기관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따라나온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종사관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니가 벽천대감과 왕실의 심기를 어지럽혔으니 역적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느냐?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종사관은 도끼눈을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소리에 기가 죽을 법도 하지만 신동대는 더욱 태연한 표정으로 종사관의 말을 되받아쳤습니다.


종사관 나리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모르나 한가지 물어봅시다. 내가 벽천대감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는데, 어떻게 그분의 마음을 어지럽혔다는 것인지 상세히 말해줄 수 있겠소?”


신동대의 반문에 종사관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사실 그것까지는 자신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층부에서 신동대가 벽천대감의 심기를 불편케 하고 그 때문에 왕실에 손해를 입혔다는 정도밖에 들은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사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떼었습니다.


그것은 관가에 가서 문초를 해보면 알 수 있는 것. 대역죄인 신동대는 잔말 말고 어명에 따라 순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오라를 받거라!”

거참, 입만 열면 대역죄인, 대역죄인. 아무에게나 대역죄인이라고 갖다 붙이면 대역죄인이 되는 것이오? 전후사정도 알지 못하면서 막무가내 안하무인으로 사람부터 잡아가두려는 태도는 의금부 전통인가 보오.”

아니, 이놈이! 말로 해선 안 되겠구나. 금부나졸들은 들어라. 저 녀석을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패서 생포하라!”

잠깐!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종사관 나리.”


금부나졸들 사이에서 약간은 높은 계급의 한 사내가 종사관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습니다. 그의 모습을 본 신동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바로 신동대와 비무대회에서 준결승전을 치렀던 이몽란이었습니다. 이몽란은 비무대회에서 우승하여 의금부 참외도사로 벼슬을 얻었던 것입니다. 종사관에게 고하고 돌아선 이몽란을 보고 신동대가 반가워했습니다.


아니, 그대는? 이형이 아니오!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반갑기도 하지만 참 기분이 묘하군요.”

회포는 따로 풀 기회가 있을 듯하오만 저랑 제대로 한 번 놀아보지 않으시겠소?”

하하하. 좋소이다. 몸 한 번 풀어봅시다.”


신동대와 이몽란은 서로 견제하며 원을 그리듯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타앗! 이몽란이 먼저 주먹을 뻗었습니다. 주먹 끝에서 권기의 파장이 급속히 커지면서 신동대를 압박했습니다. 신동대는 정권에 닿을락말락했을 때 스르르 몸이 뒤로 깃털처럼 밀려났습니다. 이몽란은 재차 쌍권을 뻗으며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동대의 몸은 가볍게 흩날리는 눈꽃송이처럼 이리저리 피했습니다.


이제 내 공격을 받아보시오.”


신동대는 몸을 하늘 높이 솟구쳤습니다. 이어 빙글빙글 돌면서 이몽란의 머리 위로 넘어갔습니다. 무영각이 펼쳐진 것입니다. 이몽란은 신동대의 이러한 공격술을 몇 달 전 비무대회 때 보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막아냈습니다.


무영각을 막아낸 사람은 지금껏 없었는데 이형의 무공은 대단하시오.”

과찬이오. 운이 좋았을 뿐이오.”

그럼 이건 어떻소?”


신동대는 신형을 순간적으로 이몽란 앞으로 움직여 장풍을 날렸습니다. 이몽란은 팔을 열십자로 교차시켜 장풍을 막아냈지만 워낙 공력이 세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났습니다. 이번엔 이몽란이 공격을 했습니다. 멀리서 몸을 던지듯 튀어오르고는 공중제비를 돌면서 발공격과 주먹공격을 병행했습니다.


! 따따딱닥! 거의 찰나의 순간에 열 번이 넘는 공격이 이루어졌고 신동대는 그 모든 공격을 부채로 막아냈습니다. 다시 두 사람은 두 걸음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습니다.


그런데 신형,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물어봅시다. 왜 대역죄인이 된 것이오?”


이몽란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다시 주먹공격을 이어갔습니다. 신동대는 이몽란의 공격을 살랑살랑 피했습니다. 아주 느릿한 동작인 것 같으면서도 1초 사이에 다섯 번의 공격과 다섯 번의 방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고을 시정잡배가 밀수를 하였는데 아전인 형방이 눈감아주면서 뇌물을 받고 그 뇌물은 벽천대감에게 상납 되었지요. 벽천대감은 그 뇌물을 왕실에 바치면서 정승의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소. 그래서 중간에서 재물을 빼앗아 굶주리는 백성에게 나눠준 것이오.”


이번엔 신동대가 부채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살짝 내리치는 부채를 팔뚝으로 막은 이몽란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니, 부채를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쇠뭉치에 맞은 것처럼 아프단 말이오?”

,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오. 겉보기엔 여느 부채와 다름없지만 실은 특수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오. 이형도 이젠 검을 뽑으시지요.”


스르르릉. 이몽란은 검을 뽑아들었습니다.

제 검술은 이형도 쉽게 당해내진 못할 것이외다.”

검무를 추어보시지요.”





이몽란은 재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검의 끝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뒤로 뺐나 싶으면 어느 순간에 신동대의 귀 옆을 스치고 지나가고 또 어느 순간에 다리 공격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벽천대감이 그래서 노발대발했던 거군요. 왕실에서도 신형이 국가의 재산을 훔쳤다고 단정하고 포박령을 내렸으니 참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따당따당…땅땅따당. 이몽란의 검무가 신동대의 몸을 지나칠 때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우레처럼 울렸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주변을 둘러싸고 지켜보던 선행당 사람들과 나장들은 모두 귀를 막고야 말았습니다.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신형께서 일단 의금부로 가는 겁니다. 거기서 조사에 응하면서 벽천대감의 비위 사실을 밝힌다면 오히려 그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는 계기가 되지 않겠소?”

이형이 그들을 몰라서 하는 소리이오만,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 그리하겠소. 이쯤에서 놀이를 끝냅시다.”


! 두 사람은 순간 떨어지는가 싶더니 일시에 공중으로 솟구쳐 다시 검과 부채를 섞었습니다. 따따당! 결판이 나지 않는 싸움이라고 주변의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신동대와 이몽란은 여유롭게 대결을 펼쳤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자칫 방심했다가는 바로 염라대왕을 알현해야 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좋소이다. 오라를 받겠소. 대신 선행당의 사람들에겐 손끝 하나도 건들지 마시오.”


신동대는 이몽란과 공중전을 펼친 다음 착지하자마자 종사관을 향해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신동대의 요구사항을 들은 종사관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기서 더 큰 마찰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챘기에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알겠다. 그 요구를 들어주마.”


신동대는 한양 의금부로 압송되어 갔습니다. 오랏줄에 묶였지만 기품을 잃지 않았습니다. 신동대가 의금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였습니다.


지방에서 발생한 절도사건을 의금부에서 조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양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경상도 양산 땅에서 왕실을 뒤엎으려는 역모사건이 발생했다는구먼.”

신동대라는 자가 사람들을 부추겨 선행당이라는 패거리를 만들어 스스로 두목질을 하면서 왕실의 재산을 훔치고 반란군을 조직했다던데.”

생김새로 봐서는 점잖은 젊은이 같은데. 거참.”


의금부 국문장을 담 너머로 엿보던 사람들이 하는 소리였습니다. 신동대는 형틀에 묶였습니다. 의금부 도사가 신동대를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왕실의 재산을 가로챈 것을 인정하느냐?”


신동대는 당당하게 대꾸했습니다.


내가 벽천대감의 재산을 빼앗은 것은 그것이 모두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 생긴 뇌물이기 때문이오. 난 단지 그것을 백성에게 되돌려줬을 뿐이오.”

그게 무슨 말이냐? 그 재물들은 양산군에서 정당하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벽천대감이 운반을 맡은 것이라고 했다. 어찌 뉘 앞이라고 망발을 일삼느냐?”

그렇다면, 벽천대감의 다른 재산과, 양산 관아의 형방, 그리고 시정잡배인 용호칠웅 패거리들을 조사해보시오. 조직적인 비리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오.”

시끄럽다. 니가 죄를 벗어나려고 애꿎은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구나. 이 녀석이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


의금부 나장들이 몽둥이를 높이 들었다가 신동대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 나장 하나가 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를 놓쳤습니다. 마치 쇠몽둥이로 거대한 쇳덩어리를 쳤을 때와 같이 손에 전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나장의 손은 순식간에 시뻘겋게 변하였습니다. 나장은 고통을 감추지 못하고 손을 감싸며 그자리에 주저않았습니다. ! 다른 나장이 매질을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의금부라는 곳이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고 오히려 진짜 도적의 역성만 드는 것을 보니 정의가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소. 보시오, 금부도사. 진정 진실을 알기 싫다는 것이오?”


신동대가 당돌하게 금부도사를 꾸짖듯 말을 하자 장내 분위기가 순간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나장들은 포악하기로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금부도사가 애송이 같은 젊은 도적에게 오히려 야단을 맞는 형국이 되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조마조마했습니다.


뭣이라?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하지 않았느냐? 감히 누구더러 이래라 마라야! 저녀석을 매우 쳐라!”

~!”


나졸들이 다시 몽둥이를 집어들고 신동대를 향해 힘껏 내치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몽둥이가 뚝딱하고 반으로 부러졌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금부도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죄인을 다루면서 몽둥이찜질을 하도록 수도 없이 명을 내렸지만 이처럼 몽둥이가 연달아 부러지는 것은 처음보았기 때문입니다.


금부도사, 아직도 사실은 알기 싫고 나를 억지죄인으로 만들 생각이오?”


신동대의 그 말이 끝나자 금부도사가 바로 칼을 뽑아 계단을 뛰어내려 왔습니다.


네 녀석의 오만방자가 명을 재촉하는구나! 이 칼을 받고도 방자한 태도가 남아있을지 보자꾸나.”


금부도사가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신동대의 몸을 감았던 밧줄이 스르르 풀림과 동시에 금부도사의 손에 쥐었던 칼이 갑자기 뱀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금부도사가 느낌이 이상해 높이 쳐든 칼을 쳐다보았습니다. 자신은 뱀의 꼬리를 잡고 있고 그 뱀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옴마야!”


금부도사는 화들짝 놀라 뱀을 뿌리쳤습니다. 그러자 바닥에 쨍그랑하고 칼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 채 그를 쳐다보던 나장들이 일시에 와하하하!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금부도사는 자신의 체통이 땅에 떨어지자 더욱 화가 났습니다.


다시 칼을 주우려고 손을 내뻗자 그 칼은 다시 뱀으로 변하여 금부도사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금부도사는 또 다시 깜짝 놀라 뒤로 주춤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신동대가 손을 뻗자 금부도사의 칼이 신동대의 오른손으로 슈욱하고 날아갔습니다.


칼은 말이지요, 금부도사. 아무에게나 휘두르는 게 아닙니다.”


신동대는 신형을 공중으로 날렸습니다. 사람 키의 다섯 배 정도 올랐을 때 신동대의 몸은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모두 뒤로 물러섰습니다. 신동대는 칼을 쥔 손을 높이 들어 빙빙 돌렸습니다. ~ ! 칼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와 함께 의금부 심문장에는 회오리바람이 일었습니다.


! 신동대가 내리던진 칼이 금부도사 발앞에 꽂혔습니다. 칼 길이의 반이 땅속에 들어갔습니다.


마땅히 공명정대한 수사를 해야 할 의금부마저 이럴진대 일개 지방관청이야 오죽하겠소? 죄 없는 사람을 가둬들이고 비리에 눈감고 권력에 빌붙는 당신 같은 관리가 진정 이 나라의 역적이 아니겠소. 각오하시오.”


슈욱! 신동대의 몸이 금부도사에게 미끄러지듯 다가갔습니다. 신동대는 금부도사의 몸에 몇 개의 손가락 자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금부도사는 마치 석상처럼 굳어버렸습니다. 신동대는 벽천대감과 비리를 일으킨 왕실 대군의 집으로 신형을 날렸습니다. 의금부 나장들은 멍하니 날아가는 신동대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몽란 역시 이 모습을 쭉 지켜보습니다. 이몽란은 금부도사의 태도를 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다음주 마지막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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