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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보도되는 내용 중에 하나가 문화행사 연기 또는 취소 소식이다.
지난 3월 들면서 문화예술계에 일어났던 일이 온 국민의 노력으로 조금 희망을 보나 싶더니 광복절 이후 갑작스러운 재확산으로 다시 엄혹한 시기로 빨려들고 말았다.
극단 상상창꼬는 지난 3월 경남연극제 공연에 맞춰 작년 12월부터 작품 연습에 들어갔더랬다. 그런데 설날 즈음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 감염 확산은 신천지 교회를 매개로 국내에 들어와 급증했다. 그때문에 3월 진행하려던 경남연극제는 기약없이 연기됐다.
이 소식은 4개월 전부터 치밀한 계획에 따라 작품을 하나하나 끌어올리며 완성해가던 극단 식구들에겐 허탈감에 상실감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경남연극제가 취소되는 것도 아니어서 연습을 쉴 수도 없는 일이다.
공연에 출연해서 그 출연료를 받아 생활하는 배우들에겐 적지 않은 타격이 갔다. 다행히 6월 보건당국의 강력한 방역으로 전세계 코로나가 급증하는 시기에도 확진다 10단위까지 끌어내리며 고군분투로 공연계가 서서히 대면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극단은 진해코미디 아트페스티벌과 경남연극제를 대면 공연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춘천연극제에선 하필 그곳에 확진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비대면으로 공연했더랬다. 그리고 7월엔 진영과 진해, 통영에서 대면공연을 펼치며 이제 공연문화가 조만간 회복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공연을 소화하느라 힘들긴 했어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 희망은 연이은 진해문화센터 공연과 성산아트홀 공연 등 연말까지 줄줄이 계획으로 이어졌다. 여러번의 공연을 통해 느낀 바이지만 공연장에서 감염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공연장 방역이 철저한 데다 띄어앉기, 마스크 쓰고 관람, 그리고 관람 중 말하는 관객이 없으니 그럴 만하지 않겠나.
<경남신문>은 오늘 '공연 전시 줄취소… 한숨짓는 예술인에 희망을'이라는 사설을 냈다.
"지난 3월에 실시(시행)한 코로나19 영향조사에 10명 중 6명이 소득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고 응답한 것을 감안(고려)하면 5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어 도내 예술인들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계가 있다며 예술인 활동증명 발급을 언급했다. 하긴 나야 따로 직장이 있어 지원금 신청할 필요가 없기에 그 절차 등을 잘은 모르지만 같은 극단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보면 먼저 예술인활동을 증명하는 예술인패스카드 발급이 중요한 잣대가 되는 모양이다.
솔직히 2년 전에 받은 예술인패스카드로 혜택을 받은 건 별로 없다. 1000원짜리 미술관 입장료를 500원 내고 들어가거나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는 것 말고는…. 그런데 그게 이렇게 엄혹한 시기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 쓸모가 인정된다. 그래도 내겐 별 소용 없는 증명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도내 예술활동증명을 발급 받은 예술인이 월 평균 126명으로 지난해 평균 566.4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사설은 예술인들에게 대한 지원이 절실한 이유로 이렇게 들고 있다.
"지난해 조사결과 도내 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에 따른 연평균 수입은 530만원, 월평균 44만 2000원이었다."
공연 횟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수익 구조 때문에 공연 예술인들은 무대에 서는 일이 기본은 되어야 생활을 할 수 있다. 아니면 단기 노동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세상에 자기 원하는대로 잠깐 잠깐 일자리를 내어주는 곳은 없다. 아르바이트도 하루이틀 일하고 그만둘 사람 뽑지는 않는다. 전업으로 예술활동하는 사람에게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면 우리나라 예술 수준은 몇 단계 향상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기 위한 정책과 제도, 시스템이 절실하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활동 기회를 빼앗긴 예술인들부터 심폐소생(CPR)시켜야 예술계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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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5시 부산 대연동 나다소극장에서 펼쳐진 극단 전위무대의 제116회 정기공연 <고모령에 달 지고>를 관람했다. 이 작품 희곡을 쓴 사람이 극단 마산 이상용 대표여서 함께 보러가게 되었다.
두어달 전부터 이상용 대표의 새 희곡 <고모령에 벚꽃 휘날리고>를 아직 완성본은 아니지만 읽어봤다. 나와 함께 올해 초부터 극단 상상창꼬의 작품 <있는 듯 없는 듯 로맨스>와 <때때로 사랑을 멈추다> 연습을 하고 공연도 했던 송판호(80년대 마산의 극단 사랑방 대표였던) 선생이 보여줘 읽어봤던 게 계기다.
<고모령에 달 지고>는 이 대표의 희곡집 동명의 책에 수록된 작품이다. 이 책은 이 대표로부터 작년에 받았는데, 다른 희곡은 간간이 읽었는데 고모령은 공연 관람 일주일 전에 읽어보았다. 같은 고모령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달'과 '벚꽃'은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튼 어제 공연을 본 내용을 기록에 남겨둔다.
5시 공연이어서 조금 서둘렀다. 2시 30분에 북면에 사는 송판호 선생이 차로 나를 데리러 왔다. 팔용동 극동아파트까지 와주어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게다가 송 선생은 문화동에 사는 이 대표 주거지까지 모시러 갔는데, 나보다 훨씬 연장자인 분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편하게 이동한 게 괜히 미안하다.
나다소극장엔 공연 시각 30분 전에 도착했다. 송 선생은 70년대 전위무대 배우 출신이다. 전위무대는 1963년에 창단한 극단이다. 그러고 보니 전위무대가 나와 나이가 같다. 중간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극단 마산 대표인 이상용 작가의 작품이 부산 전위무대에 올라가게 된 건 전위무대 전승환 연출과의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마산국제연극제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을 때 몇 번 작품을 초청했다는데, 그때 상호 교류가 많았나 보다.
내가 부산서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부산의 연극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는데, 이날 관람을 계기로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마산 창동에 있던 '고모령'이라는 술집이 부산에 있는 극단에 의해 무대화되었다는 게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고모령에 달 지고>는 고모령 사장 문(자은) 여사와 주객 땡초(허청륭 화백)와의 이야기다. 관람기를 풀어내기 전에 먼저 언급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작품 연출을 맡은 전위무대 전승환 대표가 공연 8일을 앞두고 별세했다는 사실이다. 졸지에 이 작품이 고인의 유고작이 되었다.
팸플릿에서 작가의 글을 통해 이상용 대표는 "코로나19 때문에 연습을 못하다가 최근에야 공연 일정이 잡혀서 연습을 한다는 연락이 왔었고, 그 후 바로 며칠 전, 형의 소천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날아든 것이다"며 슬퍼했다. 이 대표는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허급지급 양산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권철 배우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형의 영정 사진은 마치 생시처럼 나를 맞이하는 것 같았고..."
팸플릿에는 조연출을 맡은 서광석 씨도 전승환 선생을 추모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저녁에 선생님과 친구가 외상으로 밥을 대어 먹는 누님 식당에 불현듯 오셨다. 그 길이 마지막이라니... 무슨 예감이 있어 나를 보러 오셨나 보다. 그날 하늘은 무너졌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이러한 사연이 있어 그런지 공연이 끝나고 고 전승환 선생을 추모하는 영상이 무대에 비춰졌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엉엉 우는 단원들의 목소리. 객석은 한동안 숙연했다.
작품에 나오는 '고모령'은 마산 창동에 실재했던 술집이다. 등장인물인 문 여사와 땡초 역시 실존 인물이다. 땡초로 나오는 허 화백은 수년 전 돌아가셨다. 희곡을 쓴 이 대표와 두 분 모두 각별한 사이였다. 하지만 또 하나의 등장인물인 문 여사의 딸 '희야'는 가상의 인물이다.
무대에 달 그림이 나오는데 허 화백의 작품 중 '월하'라는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이다. 물론 허 화백의 작품은 아니다. 그림 형태도 허 화백 작품과 전혀 다르다. 작품 속에서 이 그림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문 여사의 딸 희야가 이 그림을 그렇게 좋아한다.
이 대표는 작가의 글에서 문 여사와 땡초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이 극의 무대와 등장인물들은 실화에서 차용해 왔지만 극의 내용은 전부 픽션이다. 마산에는 한때 겨우 탁자 네댓 개 정도가 있는 '고모령'이라는 유명한 선술집이 있었고, 그 선술집 주모가 문 여사였는데, 그녀의 내공이 가당찮았다. 그녀는 예술인은 아니었지만 예술가 뺨치는 안목에다 스케일 도한 커서 여장부라는 소릴 듣기도 했다. 그 선술집에 드나든 사람 중에서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은 바로 '땡초'라는 별호를 가진 인물이었다. 서양화가였던 그는 2~3년 전에 타계했지만 생전의 그는 전형적인 연극의 주인공 감이었다. 그의 성격이 괴팍스러웠고 그의 인생 또한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그 별호를 작명해 준 사람이 바로 '고모령'의 문 여사였다."
그리고 작품에 대해서는,
"극 중의 문 여사는 손님들에게는 모든 걸 베풀었지만 정작 선천성 장애가 있는 자기 자식에게는 잘 대해 주지 못한 점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보통의 어머니다. 그런 그녀의 참회하는 모습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피에타 모습을 연상시킨다. 가자 트럼펫 연주자로 살아가는 땡초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술집이라도 해야 하는 문 여사의 힘든 인생여정을 표출하려 한 작품이고, '고모령에 달이 진다'는 것은 고모령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저물어 간다는 것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