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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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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수업 시작하기 전에 오늘의 강의 영화 <천국의 아이들> 줄거리를 볼작시면.


알리와 자라, 두 남매는 가정현편이 너무 어려워 알리는 운동화 하나, 자라는 구두 하나가 전부다. 게다가 너무 낡았다. 알리는 자라의 구두를 수선하러 갔다가 그마저도 잃어버린다. 자라는 당장 학교에 신고 갈 신발이 없다.

알리가 궁여지책 끝에 자신은 오후반이므로 오전반인 동생과 자신의 운동화를 나누어 신기로 한다. 오전에는 자라가, 오후에는 자신이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자라는 오빠의 크고 낡은 운동화 때문에 친구들이 볼까 부끄럽다. 산수 시험치는 날에도 대충 답을 적고 제일 먼저 제출하고 사력을 다해 뛰어 보지만 운동화를 기다리는 알리는 번번히 발을 동동 구른다. 알리는 자라로부터 바톤터치된 운동화를 신고 학교로 내달리지만 여러번 지각으로 학교에서 내쫓길 뻔한다. 한편 이들은 잃어버린 구도를 수소문하지만 과연 구두를 찾을 수 있을까? 이들은 운동화 하나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란 영화다.

페르시아 문화는 영적이고 신비주의 적인 문화를 추구한다. 오늘날 신비적 경향의 문화는 페르시아가 근원인 경우가 많다. 페르시아는 시의 나라였다. 이란이 그런 나라다. 이란에서 코란 다음으로 읽히는 시가 하페즈의 시다. 뉴스를 시작하기 전에 시를 먼저 읽고 하기도 한다.


이란의 문화 무시할 수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1940~2016)

1997년 <체리향기>로 칸영화제에서 대상 수상.

2010년 <사랑을 카피하다> 칸에서 여우주연상




자파르 파나히 1960~

이란의 3세대 감독

2000년 <서클>로 황금사자상.

2015년 <택시>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대상. 택시 운전을 하면서 촬영. 


마지드 마지디(1959~)

1992년 영화 <바둑>으로 칸영화제 초청받아 주목. 

1999년 <천국의 아이들>로 바르샤바 영화제 관객상

2008년 <참새들의 합창>


<천국의 아이들>은 첫 장면부터 롱테이크로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 아버지가 자라의 빨간 구두를 사서 집으로 오는 장면.

알리와 자라의 감성선과 연결될 것.


이 두 아이는 이 영화로 더이상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이렇게 연기를 잘 했음에도 배우로 성장하지 않는다. 


전문배우 없이 일반인 대상으로 촬영했는데도 참 잘 만든 영화다.

해상도 높지 않지만 화상이 멋지다. 너무 잘찍은 것도 문제.

있는 그대로의 색감을 잘 살렸다.


이들은 행복해 보였나?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존재는 어쩌다 보니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왜 이 집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이데거의 말. 인간은 불안하다. 반드시 죽는다. 이 두가지 말고는 없다.

행복해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행복한가? 


이 영화에서 감동받은 점. 우리 아이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내 자식한테 마구 퍼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자식들은 마구 받아야 한다고 여겨.


자녀들에게 물어보니, 부모가 언제 죽었으면 좋겠나 질문에 68세. 부모 재산을 내가 쓰고 싶다. 지금은 그런 사회.


이 작품 속 아이들은 부모를 이해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여기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지금 퍼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다? 그게 옳은가 생각하게 된다.



알리와 자라의 대화에서 얼마나 가족을 생각하는가를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진실성을 보여줘. 설탕 문제. 남의 것이면 설탕 한조각이라도 탐을 내어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줘. 자전거 사고에서 아버지만 다치게 된 모습에서도 진성성 있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못 사는 집에서 수프를 끓여서 옆집에 나눠먹는 모습. 그리고 알리의 마라톤에서 3등의 의미. 1등은 알리에게 의미가 없어. 3등을 해야만 운동화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게 안 되어 우울해하는 모습. 알리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못 산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닌데... 행불행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다. 너무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한 게 아니라 가장 필요한 만큼만 얻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닌가.


욕망은 다가갈 수록 멀어지는 것.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욕망이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자체가 이미 맞는 말이 아니다. 3등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행복 아닐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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