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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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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문화재단이 주최한 시민강좌 '화요명작예술감상회'. 3월 세번째 강의는 역시 창원대 전욱용 교수의 가곡 시대변천사 40~60년대를 살펴보는 내용이다.


앞서 배웠듯이 20년대는 가곡 개척기고 30년대는 근대음악양식의 정착기요, 40년대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시기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이 시대 가곡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하나는 30년대 주류를 이루었던 서정적인 가곡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진보적인 시에 사실주의적 경향을 띤 가곡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실주의적 가곡을 쓴 작곡가들의 면면을 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많다. 윤이상 빼고. 김순남, 이건우, 나운영. 이유는 월북작곡가라는 것인데 어떤 곡들은 제법 귀에 익은 것도 있다. 윤이상은 '추천(그네)' '고풍의상' '달무리' '편지' '나그네' '충무공' 이렇게 여섯 편의 가곡을 만들었는데 이붕에 '충무공'을 뺀 나머지는 윤이상 초기 가곡집'에 들어있는 곡이다. 윤이상의 곡은 민속적인 선율과 리듬을 바탕으로 지어졌는데 장조단조 체계를 탈피해서 자유로운 선법(어떻게 연주하는 건지 잘 모르지만), 부가화음 등을 사용하면서 실험적인 작곡을 하였다고 한다.


김순남, 많은 곡을 남겼지만 월북 작곡가란 이유로 알려진 게 별로 없는데 그 중에 '산유화'는 제법 유명하다. 이건우 역시 월북작곡가로 김소월 시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등을 작곡했지만 곡은 내게 익숙한 게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하는 곡은 안성현의 곡이다. 물론 여러 사람이 이 곡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편곡해서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 작곡가 중에서 나운영은 월북하지 않아 제법 유명하다. 곡들 중에 '달밤'은 전에 들어봤나 싶을 정도로 영 낯설진 않다. 피아노는 거문고 산조와 장구 장단을 끌어왔고 노래는 남도 판소리 요소를 담아 한국적인 가곡의 표본이 될만한 실험으로 만든 곡이 '접동새'라고 하는데... 나운영 인터뷰 영상 배경음악으로 들어본 바론 익숙하지 않다. 유튜브에서 '접동새'로 검색을 해보니 국악기로 연주되는 것들이 있던데 그게 나운영의 곡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30~40년대 한국 가곡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은상, 박목월, 김소월, 조지훈 등의 시인들 시가 노랫말로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랄까.


50년대로 넘어가서, 1950년~19069년까지를 제3기 한국가곡의 발전기로 분류한다.(전욱용 교수의 스승 진규영 영남대 명예교수의 '우리 가곡의 역사와 의의') 50년대는 한국전쟁을 겪은 어려움 속에서 음악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으나 창작 열기를 가진 작곡가들은 피란의 어려움과 좌절, 고통을 음악으로 표현했으며 60년대는 급격한 서양문물의 밀물로 경제 부흥과 함께 음악 분야도 점차 활발한 활동이 시작한 시기라고 한다.


50년대 음악 중에 지금도 널리 애창되고 있는 변훈의 '떠나가는 배'를 들었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나는 배..." 이것이 1953년 작곡된 것이라고 한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흥얼거리는 노래인 걸 보면 '클래식'이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겠다. 변훈의 작품 중에 또 귀에 익숙한 것이 있다. 바로 '명태'. "감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노래에 익살과 재치가 넘친다. 나중엔 몸이 갈갈이 찢어져 어느 가난한 시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며 그래도 자기 이름 '명태'만은 남아 있으리라 하고 외치는 모양이 정말 재미있다. 이따금 회식자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명태를 마이크로 들고서. ^^


가곡을 감상하는 수강생들.


이밖에1950년대 가곡 중에는 정말 귀에 익숙한 곡들이 많다. 김순애의 "목련꽃 그늘 아래서..."하고 시작 하는 '사월의 노래',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하며 노래하는 '그대 있음에', 그리고 "달빛 먼길 니임이 오시는가..." 라는 곡조가 익숙한 김규환의 '님이 오시는지', 그리고 윤용하의 '보리밭',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장일남의 '비목' 등등 모두 워낙 유명한 곡들이다.


아,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떠나가는 배와 명태의 작곡가 변훈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생으로 외교관을 지낸 사람이다.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학창시절 작곡 공부를 해 '명태'를 발표했으나 혹평을 받고 작곡가의 꿈을 접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60년대 접어들면서 우리의 가곡은 세대교체 바람이 이는데... 주요 작곡가로 이상근, 정회갑, 백병동, 장일남, 최영섭, 김규환, 이수인 등이다. 이중에 백병동은 핸대가곡 분야에서 가장 중심에 선 작곡가라고 한다. 윤이상에게서 작곡을 배웠고 60년대에 발표한 주요 가곡들을 보니, '남으로 창을 내겠오'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어둠과 시간과' '화장장에서' 등등.


이 시기 발표된 장일남의 '비목'.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등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아무래도 이 시기의 곡들이 대거 유명한 이유는 라디오와 TV의 보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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