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2)
(전편 줄거리)옛날 하동군 북천면 동경산 아래 마을에는 오랜 세월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동경산 꼭대기에 이무기가 살기 시작하면서 늘 불안에 떨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무기가 마을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이지요. 급기야 이무기는 무당을 시켜 동네 처녀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기에 이르렀고 처녀가 있는 집에서 제비를 뽑았는데 이서방의 딸 설희가 걸린 것이지요.
하룻밤 지나면 이무기에게 잡아먹힐 신세가 된다는 사실에 밤새 불안에 떨면서 슬퍼하던 설희는 오히려 당일 아침 담담해집니다. 동경산 꼭대기에서 이무기는 촌장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에게 앞으로 마을에서 편안하게 살려면 자기 말을 잘 들으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러고는 가마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버립니다. 가마 속에 있던 설희는 순간 정신을 잃게 되는데 구름 위에서 이무기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 온몸에 독을 바르는 끔찍한 꿈을 꾸게 됩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시설이 꽤 괜찮은 침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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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신이 드느냐는 남자의 목소리가 난 쪽으로 설희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마자 설희는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은 사람의 형상이긴 하나 낯빛이 푸른색이었으며 목 아래로는 비늘무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의 반은 하얗고 긴 머리카락으로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 형상을 한 이무기였습니다. 이무기는 침실 위에서 벌벌 떨고 있는 설희에게 다가갔습니다. 설희는 이불을 끌어올리며 더 뒤로 물러앉았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욧!”“겁낼 것 없소. 당신을 해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도 되오.”
이무기는 침대에 걸터앉았습니다. 설희는 자신이 지금 살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저승에 있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가마째로 이무기에게 물려 물속으로 빨려 들어온 것까진 기억이 나지만 그 다음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혹시 제가 지금 살아있는 건가요?”
“하하하.”
이무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설희를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설희는 더욱 당황하였습니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묻는 말인데 이무기가 이렇게 웃어대니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한 대 때려 주리까? 꼬집어 주리까?”
그렇게 말하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이무기가 더욱 징그럽기도 해 설희는 한 번 더 뒤로 주춤 물러앉았습니다. 그러면서 양 어깨를 살짝 꼬집어보았습니다. ‘아얏!’ 분명히 아팠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인데, 거대한 이무기에게 분명 잡아먹혔을 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거대한 이무기에게 가마에 탄 채 잡아먹혔을 텐데 어떻게 제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지요?”
설희는 이무기에게 물었습니다. 이무기는 한참 설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어차피 당신은 내 아내가 되었으니 우리의 비밀을 알려주지. 저기 문 앞에 서있는 병사들 보이시오? 또 여기 창문 밖에 창을 들고 서 있는 병사들도 보이시오? 당신 눈에는 무엇으로 보이시오?”
설희가 창밖을 한참 응시하고 있는데 한 병사가 고개를 설희 쪽으로 홱 돌렸습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형상이나 얼굴은 뱀의 것이었습니다. 설희의 마음 속에는 다시 불안감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잡혀온 이곳은 온통 뱀으로 가득한 뱀의 소굴이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싸늘한 공기가 설희의 몸을 감쌌습니다. 설희의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모두 뱀들인데 내 마법에 의해 병사가 된 것이오.”
이무기는 침대에서 일어나 손끝을 튕겨 문지기 병사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병사가 이무기에게 달려왔습니다.
“마님에게 음식이 필요하다.”
“존명.”
병사가 밖으로 나가자 이무기는 침대에서 일어나 설희의 앞을 왔다갔다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원래 동해 용왕의 아들인데
아홉형제가 있었소. 내가
막내지. 다른 형들은
모두 머리에 뿔도 있고 수염도 있는데 내 모습만 볼품이
없었지. 형들은 내가
이상하게 생겼다며 어렸을 때부터 놀리기만 하고 같이
놀아주지 않았어. 그런
형들이 미웠지. 아니
용왕인 아버지가 더욱 미웠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것을 두고 늘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아이가 태어났다고 자책했으니까 말이지.
같은 용왕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난 언제나
차별을 받아왔던 거야.
동해의 어촌 사람들은 또 어떻고?
제사를 지내더라도 꼭 용왕인 아버지와 형들에게만
지낸단 말이야. 인간들조차
이렇게 나를 차별하니 내가 어떻게 화를 참겠어?
그래서 회오리폭풍을 일으켜 수많은 어부들을
수장시켜버렸지. 크하하하.
물론 그 대가로 난 아버지와 형들에게 쫓겨 여기까지
와야만 했지만 말이지.
여기도 괜찮아. 아버지와
형들의 영역에서 벗어난 데다 사람들이 나에게 제사까지
지내주니 말이야. 하하하.”
이무기는 한참 이야기하다 제풀에 화를 내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했습니다. 설희는 이무기가 태생의 한계 때문일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요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무기의 얼굴이 설희의 얼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내 얼굴이 징그럽지?”
“…….”
“흥, 용의 얼굴도 징그럽기는 마찬가지지. 오히려 그 얼굴들은 징그러울 뿐만 아니라 괴상하기까지 하지. 차라리 내 얼굴이 나아.”
설희의 눈앞에 들이댄 이무기의 얼굴은 흉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설희는 이무기의 하얀 머리카락으로 가린 나머지 반쪽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이무기 자신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윽고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진수성찬입니다. 설희는 이처럼 산해진미로 가득한 상차림을 태어난 이후 처음 보았습니다.
“마음껏 드시오. 부족한 것이 있으면 하인에게 언제든 말하시오.”
“궁금한 게 있어요. 왜 제물로 바쳐진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는가요?”
“제물이라니 당치 않소. 당신은 나의 아내요. 더 깊이 알려고 하지 마시오. 당신은 내 아이만 하나 낳아주면 평생 호강하며 살 수 있을 것이오.”
설희는 지난 밤 꿈에 이무기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아 온몸에 독을 바르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이 비단 꿈만이 아니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미치자 전신이 파르르 떨려왔습니다. 혹시 자신의 피부가 이무기처럼 비늘로 덮이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습니다. 아직 피부는 예전과 다를 바 없지만 이무기와 살면서 이무기의 아이를 낳게 되면 자신도 이무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희는 여기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탈출을 시도했다가는 자신은 물론 마을사람들도 해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설희는 차차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계획을 세운 설희는 이무기에게 친절히 대해주었습니다. 이무기 또한 완강히 거부할 것으로 생각했던 처녀 제물이 순순히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한편으론 의심스러웠긴 하지만 한편으론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무기가 형성해놓은 마법의 성 안에서 이 처녀 제물이 빠져나갈 구멍은 전혀 없습니다. 곳곳에 독사와 구렁이들로 구성된 뱀 군단이 지키고 있는 데다 이 성의 결계를 깰 방법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밤마다 설희는 구름 위에서 이무기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아 온몸에 독을 바르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설희가 또 같은 꿈을 꾸는 중간에 잠이 깨었습니다. 옆에는 이무기가 자고 있었습니다. 설희는 자고 있는 이무기의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평소에 아주 궁금하게 여겼던, 이무기의 반쪽 얼굴은 어떤 모습일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갑자기 샘솟았습니다.
괜히 이무기의 얼굴에 손을 댔다가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얼굴 반쪽을 본다고 해서 이무기가 어쩌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희는 이무기의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살짝 젖혔습니다. 이무기는 반대로 몸을 돌렸습니다. 설희의 손이 더욱 떨렸습니다. 아, 그냥 참을까.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이무기의 가려진 얼굴이 약간 드러났습니다.
설희는 이무기를 마주 보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시 머리카락에 손을 대니 이무기가 반대로 몸을 돌려 누웠습니다. 그때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쓸리도록 하여 가려진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설희는 이무기의 가려졌던 얼굴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얼굴이었습니다.
설희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남자보다 더 멋지고 잘생긴 얼굴이었습니다. 표정도 아주 맑고 밝았습니다. 설희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상하다. 이무기는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음에도 왜 못생기고 징그러운 이무기 형상의 얼굴만 드러내놓고 사는 걸까?
“낭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소.”
설희는 깜짝 놀랐습니다. 순간적으로 이무기의 머리카락에 함부로 손을 댄 잘못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설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무기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거지요? 내가 도와 주리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무기가 이무기에게 벗어나게 도와준다니? 설희는 사람 형상의 이무기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무기의 반쪽이 잠꼬대를 한 것입니다.
설희는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이무기에게 어떻게 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무기는 잠꼬대치고는 제법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름달이 뜬 밤에 지하 동굴 끝에 있는 이무기의 성전으로 가시오. 그 성전 그 가운데 탑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푸른 구슬이 있소. 구슬을 들어 올리면 이 마법 성의 결계가 풀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이무기가 다시 몸을 뒤척이며 반대쪽으로 돌아누웠습니다. 설희는 원래 자신이 누웠던 자리로 옮겨 눈을 감았습니다.
(다음주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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