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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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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23:09


진주시 진주성 옆 지금은 없어진 용다리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윤석과 연화는 한 대학에 다니는 19살 대학 1년생들입니다. 지난 봄 입학 후 겨울방학을 앞둔 시점까지 서로 잘 지내다가 윤석이 은서와 단둘이 동물원에 놀러간 사실 때문에 연화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윤석과 대화하기를 거부합니다. 윤석이 연화가 아르바이트하는 일터까지 찾아가 해명하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연화는 무심히 앞서 걷고 윤석은 뒤따라가며 오해를 풀려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그때, 진주성 인근 고목 옆을 지날 때였습니다. 고목의 가지 아래쪽에서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면서 앞서 걷던 연화가 빨려 들어갑니다. 얼떨결에 연화의 손을 잡은 윤석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고려시대 쯤 되는 과거로 무대가 바뀝니다.

 

진주 이 군수의 집 화연아씨의 방에서 갑자기 환한 빛이 가득해지면서 머리를 빗던 화연이 쓰러집니다. 집 전체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울렁이자 다들 밖으로 나옵니다. 이 군수와 부인, 하인들은 화연의 방에서 유달리 밝은 빛이 나오자 뛰어들어갑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화연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행랑채 돌쇠도 비슷한 시기에 화연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함께 있던 행랑아범이 돌쇠의 몸에서 초록빛이 감돌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정신을 차린 돌쇠는 이상한 옷차림을 한 아이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고 하자 행랑아범아범으로부터 실없는 소리를 한다는 핀잔을 듣습니다.

 

· · · · · · · · · · · ·

 

날이 밝았습니다. 간밤에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돌쇠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의 곳곳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곱단이도 부엌에서 화연아씨의 밥상을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습니다. 곱단이가 돌쇠 옆을 지나며 혀를 쏙 내밀곤 고개를 홱 돌립니다. 돌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빗자루를 발로 툭 차서 곱단이 쪽으로 먼지를 보냅니다.

 

화연은 곱단이가 차려온 밥상을 본체만체 하더니 무슨 고민이 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곱단아,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와야겠다. 가자!”

화연이 장롱에서 방한복을 꺼내 입고 방문을 나섭니다. 곱단이도 부랴부랴 따라나서며 한마디 합니다.

아씨, 식사라도 하고 나가시죠. 아씨가 식사를 하셔야 제가 밥을 먹죠. 전 지금 배가 무지 고프단 말입니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잠시만 나갔다 오자.”

 

화연은 어제 일도 일이지만 혼례를 며칠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해 도저히 밥을 제대로 삼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바깥바람이라도 한 번 쐬고 들어오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댓돌을 밟고 내려선 화연은 약간 쌀쌀하긴 해도 볕이 제법 좋다고 느꼈습니다. 온몸에 햇볕을 느끼며 대문 쪽으로 걸어나갔습니다. 화연 뒤로는 곱단이가 총총걸음으로 따라옵니다.




 

여남은 걸음 떨어진 곳에서 화연아씨가 오는 모습을 발견한 돌쇠가 고개를 숙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씨.”

…….”

화연은 별 대꾸 없이 돌쇠 앞을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잠시였지만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알 수 없는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돌쇠를 향해 돌아보던 화연이 한참 멍하니 있더니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화연을 곱단이가 부축합니다.

아씨, 왜 이러셔요?”

으응. 괜찮다.”

화연은 곱단이의 부축을 받으며 몸의 중심을 잡습니다. 엊저녁 때처럼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는 돌쇠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연아씨가 바로 앞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어떤 여자가 이상한 옷을 입고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쇠 역시 일순 몸에 중심을 잃었다가 바로 정신을 차립니다.

뭐지? 이런 기분.’

화연을 부축하고 있던 곱단이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묘한 기분을 느끼지만 금세 화연이 눈치 채지 않게 피식 웃음을 흘립니다.

아씨, 저 배 무지 고파요. 빨리 갔다 와요.”

곱단이가 화연의 소매를 끌듯하면서 대문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날 오후 점심을 먹고 난 돌쇠가 행랑채 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때 곱단이가 다가옵니다. 곱단이는 돌쇠 옆에 거리낌 없이 털썩 주저앉고선 빤히 돌쇠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이상해. 오라버니 얼굴이 전과 달라.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은?”

전엔 나한테 툭하면 농을 걸더니 이젠 안 그러잖아. 갑자기 어른이 된 거야?”

돌쇠 스스로 생각해도 오늘 자신의 모습이 어제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곱단이 옆으로 지나가면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서 지푸라기로 손가락 만한 공을 만들어 발치에 던지곤 했으니까요.

 

엊저녁에 아씨 방에 사람들 다 모이고 한참 난리였었는데. 오라버니는 안 보이던데, 어찌 된 거야?”

나야. 그런데 왜, 아씨에게 무슨 일 있었어?”

돌쇠는 엊저녁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곱단이에게 얘기하려다 말을 돌렸습니다.

. 어젯밤 아씨 방에 불이 난 것 같이 방이 밝아졌는데 아씨가 기절해 쓰러졌어. 내가 물을 떠서 가져오니 아씨는 괜찮다고 했지만 한동안 아씨 몸에서 이상한 빛이 나는 듯했어. 올해 환갑이 다 되어가는 옥봉아제도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처음 본대.”

 

돌쇠는 속으로 놀랐습니다. 화연아씨에게 일어난 일이 어젯밤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오라버니.”

, ?”

돌쇠는 전에 없이 곱단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이것을 눈치 못 챌 곱단이가 아니지요.

뭐야? 정말~. 하루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하네. .”

, 미안 미안. 그래 뭔데?”

우리 아씨 있잖아. 얼마 후면 광주에 사는 어떤 도령한테 시집간대. 옥봉아제가 그랬어. 근데 아씨가 날 데리고 가진 않을 거래. 정말 다행이지 오라버니?”

돌쇠는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갑갑해져 옴을 느낍니다.

 

하아~, 하아~.”

오라버니, 갑자기 왜 그래? 물 떠올까?”

아니 됐어.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돌쇠는 자신의 감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화연아씨를 상전 이상으로 여겨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이상한 마음이 들더니 시집간다는 말에 이렇게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쓰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좀 쉬어야겠다며 곱단이를 돌려보낸 돌쇠는 툇마루에 걸터누워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하늘 곳곳에 조각구름들이 바람을 타고 흘러다닙니다. 조각구름들이 알 수 없는 영상과 겹치면서 묘한 기분에 빠진 돌쇠는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버립니다.

 

연화야, 정말 왜 그래? 걔하고 난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너랑 이제 이야기를 섞는 것마저 짜증나. 그러니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줄래?”

어떤 여자를 따라가며 말하는 사내는 꼭 돌쇠 자신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이 사내가 손을 잡자 돌아보는 여자는 머리를 땋지 않은 화연아씨의 얼굴입니다. 화들짝 놀란 돌쇠가 잠에서 깹니다.

 

오라버니, 화연아씨가 좀 보재!”

곱단이가 사랑채를 돌아 걸어오면서 소리칩니다.

.”

별당으로 걸어가던 돌쇠의 머릿속은 좀전에 꾸었던 그 꿈 때문에 뒤숭숭했습니다.

 

곱단아, 넌 잠깐 나가있거라.”

? .”

아씨가 돌쇠를 불러놓고 단둘이 있었던 적이 없던 터라 곱단이는 이 상황에 당황해 했습니다. 그래도 상전인 아씨의 명이라 어쩌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돌쇠를 가까이 오라고 한 화연은 또 이상한 기운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낍니다.

돌쇠야, 너도 아침에 보니까 나를 만났을 때 이상한 것 같던데 지금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느냐?”

, 아씨. .”

돌쇠는 온몸에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아씨 앞이라 억지로 참으며 더듬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좀 전에 행랑아범이 아버지께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너도 어젯밤에 기절했다면서? 이리 손을 내어 보거라.”

? 아씨, 무슨 그런 송구한 말씀을.”

어제 갑자기 쓰러진 이후로 내가 딴 사람이 된 듯한데 이런 느낌이 너와 관련이 있는 듯하여 그런 것이니 딴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화연이 돌쇠의 손을 만졌을 때 손끝이 따가워지며 온몸이 짜릿해지는 듯했습니다. 돌쇠 역시 아씨와 손이 닿았을 때 전율을 느끼며 머릿속에선 꿈에서 보았던 그 남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너에게 어떤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느냐?”

아씨도 그러하옵니까?”

그렇구나. 그러하구나.”

화연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습니다. 화연은 어젯밤 자신과 돌쇠에게 어떤 귀신에 씌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고서야 19년을 이집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데다 10년 전부터 솔거노비로 들어온 돌쇠와 그 오랜 세월 함께 있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각자 몸속에 귀신이 들어온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날 밤. 화연은 돌쇠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습니다. 돌쇠 역시 화연아씨가 보고싶어 가슴이 자꾸 뛰고 있어도 억지로 참았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습니다. 어둠은 사위를 적막 속으로 집어넣은 듯했습니다.

간혹 올빼미 소리가 적막을 타고 카랑카랑하게 울렸습니다. 자정이 되었을 무렵 별당의 화연과 행랑채의 돌쇠는 거의 동시에 눈을 떴습니다.

 

돌쇠는 꿈속에 나타난 여자의 얼굴이 화연아씨인 것이 자꾸 신경쓰였습니다. 지체 높은 아씨에 대해 불경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고 방안을 왔다갔다했습니다.

아이코 아야!”

, 죄송해요. 아제.”

돌쇠가 모르고 옆에서 자고 있던 행랑아범의 발을 밟아버린 것입니다.

안 자고 뭐하냐?”

, 머리가 또 아파서요. 저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계속 주무세요.”

 

밖으로 나온 돌쇠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초승달이 유난히 예쁘게 보였습니다. 아씨의 웃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돌쇠는 하늘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별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별당으로 가는 길은 긴 담장을 끼고 이어져 있습니다.

돌쇠는 순간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멈춰 섰습니다.

화연아씨가 담에 기대어 자신처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씨 아니십니까요? 이런 야심한 시각에 어찌 나와계십니까요?”

. 너도 나와 같구나.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날이 춥습니다. 이러다 감기 걸리십니다. 어서 들어가.”

날 좀 안아줄래?”

돌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연은 자신도 믿을 수 없는 말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

…….”

 

희미한 달빛 아래 두 사람은 살며시 포옹을 하였습니다. 저쪽 담장 끝에서 그림자 하나가 성급하게 사라졌습니다.

 

(다음 주 3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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