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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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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마지막편)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지난 줄거리) 함양 사근찰방역에서 근무하는 역녀 월명은 겨울로 들어서는 계절 어느 날 역 업무를 마치려는 때에 급한 말발굽 소리를 듣습니다. 역참에 도착한 수영은 지치고 흥분된 말에서 떨어집니다. 이 모습을 월명이 목격하고 말을 진정시킵니다. 수영의 어색하지만 순수해 보이는 표정,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월명의 모습.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다음날 수영은 나주로 떠나고 월명은 다음에 다시 보자는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는 게 영 아쉬웠지만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다음날 역시 역참일이 끝날 무렵, 월명은 뭔가 반가운 말발굽소리를 듣습니다. 속으로 은근히 기대를 했겠지요. 문밖을 나가니 역시 수영이 말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와락 자신을 안는 수영이 싫지 않은 월명입니다.


월명과 수영은 늦게까지 산책을 즐깁니다. 월명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각. 수영은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월명의 아버지는 월명의 옆에 선 사내를 훑어 봅니다. 자신의 딸이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함께 있는 사내가 처음인지라 관심을 둡니다. 술을 사오라고 하여 수영과 함께 밤늦도록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월명의 아버지도 수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영은 월명의 아버지에게 장인이라고 부르고 다음날 경주로 돌아가기 전 열흘 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딱 열흘이 되던 날 수영은 아예 함양으로 이사를 옵니다. 수영은 파발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함양에서 자리를 잡고 새로 행상을 시작하였습니다. 파발일을 하면서 전국에 많은 사람을 알고 각 지역의 특산물 등을 잘 파악해놓았기 때문에 행상일을 하며 효과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2년이 되자 수영은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때 정식으로 청혼하여 수영은 월명과 결혼을 합니다. 두 사람은 신혼 열흘 동안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신혼 휴가가 끝나고 수영이 다시 행상일을 나가려는 전날 늦은 시각, 아버지의 서찰을 받습니다. 서찰에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수영은 어머니 병환이 쾌차하면 바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고향 경주로 급히 떠납니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기다리던 월명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결국, 월명은 경주로 남편을 찾아갈 것을 결심하고 아버지의 승낙을 얻습니다. 둘금이와 둘금이 오빠랑 함께 가는 조건입니다.


월명은 국밥집 둘금이 어머니에게 찾아갑니다. 둘금 어머니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맛있는 국밥 한 그릇 해먹이려고 맛있게 끓여 줍니다. 하지만, 월명은 음식을 먹다 말고 헛구역질을 합니다. 월명이 임신을 한 것입니다. 경주로 찾아가려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갑니다.


월명은 다시 잠못드는 나날을 보내다가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면 계속 악몽을 꿉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으로 나서려는데 누군가 월명 앞에 나타납니다.


………………………………………………………………………………..


사내는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월명은 누군지 퍼뜩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침, 이 시각에 까치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을 보면 분명 반가운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가운 사람이라면 남편 수영? 그러나 월명이 기대했던 검은 실루엣의 정체는 남편 수영이 아니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느릿한 말투. 월명은 갑자기 실망하였습니다. 실루엣의 정체는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람 빠지는 듯한 목소리로 월명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월명부인이시죠? 경주에서 남편께서 서찰을 전해달라고 해서…. , 여기.”


그나마 남편에게서 온 편지여서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서찰을 받아쥐었습니다. 월명은 편지를 꺼내 읽어내려갔습니다. 월명의 손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편지를 잡고 있을 힘마저 빠져나갔습니다. 편지가 한 번 팔랑거리더니 그대로 땅에 떨어졌습니다. 괜히 앞에 서 있던 젊은 서찰심부름꾼이 무안해진 듯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월명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듯했습니다. 머릿속이 마취된 듯 몽롱해졌습니다.


“부인! 정신 차리세요. 여기요! 누가 없어요?”


월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자 청년은 당황하였습니다. 월명의 머리를 손으로 받쳐 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이웃들과 밭에 나갔던 아버지도 쏜살같이 달려왔습니다. 월명은 방안으로 옮겨졌습니다. 기절한 월명을 보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안쓰러운 표정을 하였습니다. 잠시 후. 월명이 힘겹게 눈을 떴습니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예, 아버지.”


월명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아버지가 만류하였습니다.


“그냥 누워 있거라.”

“아버지, 전 어떡하면 좋아요?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시아버지께서 바로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병환이 깊어져 그이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 편지 나도 읽어보았다. 그러나 너무 심려 말거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 잘될 거다.”

“아녜요, 아버지. 너무 불길한 느낌이 들어요. 그이에게 곧 불행이 닥칠 것 같아요.”


월명의 지나친 걱정에 함께 방에 들어온 이웃사람들도 혀를 차며 안쓰러워하였습니다.


“월명아, 그렇게 너무 걱정을 하다 보면 니 몸만 상한다. 걱정은 그만하고 아버지 말씀대로 하고 기운을 차리려무나.”


그러나 월명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급기야 아침에 밭일 나가는 아버지를 붙잡고 헛소리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 그이가 오는 것 같아요. 까치가 유난히 시끄럽게 깍깍거리고 있잖아요! 틀림없어요. 오늘은 동구밖까지 나가봐야겠어요.”


아버지는 그런 월명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말리면 말릴수록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월명은 아침 일찍 마을 어귀로 나갔습니다. 한겨울이라 삭풍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하지만 월명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마을 갔다가 돌아오던 이웃 아주머니가 그런 월명을 보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월명아,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고 나와 기다리든지 하지. 그러다가 고뿔에라도 걸리면 태아한테도 안 좋단다. 아주머니랑 함께 돌아가자.”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이가 올 거예요. 아주머니 먼저 들어가세요. 그이가 오면 함께 들어갈게요.”


아무리 달래도 월명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동구밖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설득을 해도 월명이 말을 듣지 않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떼어야 했습니다. 월명이 동구밖에서 수영을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갔습니다. 처음엔 한 시진 정도가 지나면 제풀에 꺾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날이 갈수록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끼니도 거른 채 세 시진을 기다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월명의 몸은 점차 쇠약해져 갔습니다. 아버지와 둘금이 어머니, 그리고 마을 사람들 모두 월명의 몸과 뱃속의 아이를 걱정하여 이제 제발 몸을 해쳐가며 기다리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말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 띄는 낮에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월명도 한 번씩 정신을 차리게 되면 뱃속 아이를 위해 스스로 몸을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을 차리는 때가 하루에 몇 번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월명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마을 앞산 수지봉에 올라갔습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멀리 동쪽으로 나 있는 파발마 길을 보고 있으면 수영이 밤늦게라도 말을 타고 달려올 것만 같았습니다.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듯 가득하였습니다. 폴짝 뛰어 한 움큼 쥐면 한 손에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 잡힐 듯하였습니다.


이 별들을 모두 모아서 수영이 돌아오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옷을 지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월명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수영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수영의 모습이 변하였습니다. 수영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월명은 행복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마을이 어수선해졌습니다. 새벽에 잠에서 깬 아버지가 월명이 방을 확인하고선 밤새 월명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구석구석뿐만 아니라 동구밖과 파발마 길을 따라 10리 밖까지 나가 보기도 하였지만 월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월명을 수지봉에서 발견한 사람은 월명의 친구 둘금이였습니다. 월명은 수지봉 꼭대기 동쪽지점, 마을과 파발마 길이 훤히 보이는 장소에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둘금이 발견하자마자 달려가 안아 흔들어 보았지만, 월명의 몸은 이미 얼음덩이보다 더 차가운 상태였습니다. 둘금은 ‘바보야, 바보야’ 하면서 월명의 가슴을 몇 번이나 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월명의 죽음을 애처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기다리다 쓰러진 자리에 묻고 크게 장사를 지내주었습니다. 월명이 남편을 기다리다 얼어죽었다는 얘기는 이웃마을에도 알려졌습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에 퍼졌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요. 월명에 대한 안타까운 소문은 경주에까지 퍼져 수영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수영은 처음 그 소문을 접했을 때 남의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소문은 점점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해졌습니다.


“그 월명이란 여자의 남편이 우리지역인 경주사람이었대, 글쎄.”

“쯧쯧, 그 여자 아이까지 뱄다면서? 아이고 불쌍해라.”

“행복하게 잘 살다가 남편의 어머니 병환 때문에 헤어졌는데 결국 만나지도 못하고 그리 되었다는구만.”

“죽어서도 남편을 기다릴 거라 여겨 마을 사람들이 경주가 있는 동쪽을 향해 무덤을 만들어주었다더니….”


수영은 믿기 싫은 소문이었지만 자신의 처지에 딱 들어맞는 내용이어서 마냥 소문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수영은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도저히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겨낼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지금 장안에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여자에 대한 소문이 나도는데 꼭 저희 부부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혹시 사실일지 모르니 확인차 함양을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병구완은 이웃집 아주머니께 잘 부탁드리고 가겠습니다. 그간 몸 더 상하지 마시고 잘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수영은 기력이 너무 약해져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아버지께 금방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마음이 너무 불안했던지 수영은 친구의 말을 빌려 타고 쉴새 없이 달렸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수영의 머릿속엔 소문들이 재구성되고 있었습니다.


‘월명이라는 이름이 흔하다지만 남편을 오랫동안 기다린다는 월명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남편이 경주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아이까지 뱄다면 아내 월명도 지금쯤이면 배가 상당히 불러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소문의 주인공은 아내 월명이 맞다는 얘기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절대 소문의 주인공이 아내여서는 안 된다. 하늘님, 그 소문이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주세요.’


함양에 가까워지면서 수영은 우려가 현실일 것 같다는 불안감이 더욱 커졌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마을은 조용했습니다. 예전 같은 활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밥집을 지날 때였습니다. 물이 든 바가지를 들고 나와 마당에 뿌리려던 둘금 어머니가 수영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둘금 어머니는 바가지를 내팽개치고 사립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아이고, 이 서방. 어째 이제야 오는가?”


다급하고 원망스러워하는 눈빛. 수영은 오는 동안 아닐 것이다,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도했건만 월명 가족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둘금 어머니로부터 이런 통탄을 들으니 가느다랗게 잡고 있던 희망마저 끊어져 버린 듯했습니다.


“월명이가 자네를 얼마나 기다렸다고! 잠시라도 다녀가지 그랬나? 이 무심한 사람아!”


수영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는 둘금 어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가득 고여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심했다. 그냥 잘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자신이 아내를 보고 싶어도 참았던 것만큼 월명도 그렇게 지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영은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짓을 한 건지 그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자기 합리하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속에 뭔가 큰 응어리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수영은 연거푸 가슴을 쳤습니다. 아무리 가슴을 쳐도 응어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각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멀리서 둘금이와 장인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수영이 국밥집 앞에서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 슬퍼하는 동안 둘금이 월명의 아버지를 모셔온 것입니다.


“…….”


월명의 아버지는 사위를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땅바닥에 꿇어앉아 통곡을 하는 모습을 애처로이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이 서방, 예서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월명이 한테 가봐야지 않겠나?”


그제야 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수영은 장인과 둘금 어머니, 둘금이와 함께 수지산으로 갔습니다. 수지봉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월명의 무덤은 따스한 햇볕을 머금은 채로 남편 수영을 맞이하였습니다. 월명이 환히 웃는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수영의 눈에는 눈물이 더 많이 났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날 용서하지 마요. 끄으~.”


수영은 아내의 무덤을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월명의 아버지와 둘금이 모녀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습니다.


“이보게, 이 서방. 이제 그만하고 내려가세. 월명이도 죽어서나마 자네를 만나서 반가워할 걸세.”

“아닙니다. 먼저 내려가세요. 전 좀 더 있다가 내려가겠습니다.”


몇 번에 걸친 권유에도 사위가 계속 더 있다가 따라 내려온다고 하니 월명의 아버지는 둘금 모녀와 함께 먼저 산을 내려왔습니다. 겨울바람이 소란한 데도 산봉우리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마을로 들어가는 사근다리까지 들려왔습니다.


날이 이슥해졌지만 수영은 월명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수영은 계속 월명의 무덤을 쓰다듬으면서 속죄를 하였습니다. 아내 월명이 자신을 기다릴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이 편찮으시니 부모님의 곁을 지켜야 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여겼던, 그래서 반대로 아내의 기다림 쯤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그래서 많이 후회한다고 수영은 월명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괜찮아요. 당신의 마음 알아요. 울지 말아요. 난 단지 당신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못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내 마음이 더 큰 문제였어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월명이 무덤 안에서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영의 통곡은 서서히 가라앉았습니다. 어둠이 짙어지자 밤하늘에 별이 총총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뜬 별들이 무척 아름답소. 당신 모습을 한 별무리도 있어요.”

“죽기 전 여기서 저 또한 밤하늘의 별들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신의 모습을 한 별무리를 보았는데…. 당신은 제 모습을 닮은 별무리를 보고 있군요.”

“당신을 닮은 별무리가 무척 아름답소. 지금은 환하게 웃고 있소. 그 속에서도 당신은 웃고 있나요?”


겨울 밤하늘. 자칫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었다간 하늘에 박힌 별들이 죄다 땅에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밤. 그러나 바람의 시샘을 무시하듯 별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의 얼굴을 한 별무리가 몇 번 꿈틀거리더니 신체의 모든 형태를 나타낸 모습으로 바뀝니다. 수영의 별무리가 얼씨구 춤을 춥니다. 장삼자락을 휘날립니다.


수영 별무리가 한참을 그렇게 덧배기춤을 추다가 다른 별무리 쪽으로 팔을 뻗으니 그쪽 별무리도 장단에 맞춰 꿈틀거립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월명의 얼굴이 됩니다. 월명 별무리의 표정이 밝습니다. 하회양반탈처럼 껄껄껄 웃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월명의 전신 모습으로 변합니다. 월명 별무리도 장삼자락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한쪽에서 월명 별무리의 춤을 구경하던 수영 별무리가 가까이 다가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춥니다. 겨울바람 소리는 어느새 가야금 소리와 장구, , 꽹과리 소리로 변하였습니다. 태평소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해금도 수영과 월명의 춤에 추임새를 넣습니다.


수영은 밤새도록 월명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수영과 월명은 그 하늘에서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며 멀어져갔습니다. 겨울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악기들의 소리도 들릴 듯 말 듯 사라져갔습니다. 수영과 월명의 웃음소리도 까마득히 멀어져 갔습니다. ()


[관련기사]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2)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3)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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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 정말 오랜 만에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아마도 나의 독재자 속에 나오는 분당의 그 집처럼 철거 직전이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라는 게 보기는 편해도 관련 글을 쓴다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특히, 요즘같이 보고나서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 단기기억상실증이 준동하는 나이에서야...


이 영화 아직 개봉이 안 되었을 텐데... 아, 오늘 개봉이구나.


이 영화를 본 건 재수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시사회 관람단 모집을 공지했다. 


당근 첫날 접수 1시간 만에 신청했다. 그런데 이틀 뒤 발표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에잇.


오랜만에 극장 함 가나 싶었는데..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 일찍 신청을 했댜?


포기하고 다른 영화나 볼까 고민 중이었다. 별시리 눈에 들어오는 영화도 없다.


어디선가 광고 한 번 보고 필이 꽃혔었더랬는데...


개봉하고 나면 아내와 함께 보러가야지 하고 위로했다. 


신청한 사실을 아내에게 문자까지 보내 당첨되면 같이 가자고 했더랬는데...


27일 오전... 전화가 왔다. 문화예술진흥원. 웬?


앞서 당첨된 사람이 못 오게 되었다면서 차순위 신청자인 내게 전화한 거란다. 재수.


아내에게 바로 무전을 날렸다. 저녁 먹고 창원시티세븐 CGV에서 도킹 오버.


나의 독재자는... 이제 생각났다. 광고가 아니다. 기사를 봤다. 경남도민일보에 나의 독재자 관련 기사가 있었다. 그게 이제 생각나냐 어째?


그런데 나의 독재자는 생각만큼 기대만큼 써언하지는 않았다.


박정희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려했는데 회담이 취소되는 바람에 못하게 되었다는 기사 한줄에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는데 그 상상력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무명배우가, 아무리 고문과 자신의 상황에 따른 정신적 충격, 또는 한, 그게 사무쳤다 치더라도 그렇게 오랜 세월 정신병자인양 지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 정신병자였는지 아니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세월이 지난 후 가상으로 설정한 대통령과의 회담 리허설... 좀 뜬금없고, 대통령이 그럼 누구야? 싶은 혼란이 있었는데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명배우의 결말을 이끌기 위한 억지 플롯이란 생각이 든다.


내내 진지한 극의 전개... 그렇다고 긴장감을 확 잡아당기는 부분이 없기도 하지만... 왜 그리 웃음보따리를 선물하지 않았던 것일까... 한번쯤 긴장풀고 한번 웃게해도 될법한데 말이지.


권력의 횡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은 없지 싶다. 유형이 살짝 바뀌었을 뿐. 그 권력이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찜쪄버리고도 솜털만큼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여전히 서민을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빛에 마냥 속앓이만 하고 나왔던 그런 영화다. 내겐.


아내는 대체 무슨 얘긴데? 한다.대한민국에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아내는 어쩌면 나보다 더 답답했을 수 있겠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이 영화에 어느정도 일조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시사회도 주최하여 자리를 만들었으니... 영화 관람권 추첨도 했는데.. 난,,, 당첨운은 지지리도 없는 모양이다. 거의 4명 중 1명이 당첨되는 것 같던데... 난 꽝이다. 그래.. 나한테 무슨 영화가 있으려고... 그냥 돈 주고 봐야지. 아침 일찍 오면.. 조조할인 받을 수 있으니...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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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3)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초겨울 역녀 월명은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에도 공식 업무가 끝나는 유시반각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말발굽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옵니다. 경주에서 출발해 나주로 가는 파발관원인데 업무 마감시각 안에 도착하려다 너무 지친 나머지 당도하자마자 말에서 떨어집니다.

월명은 말을 진정시키고 관원을 보았는데 여느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파발관원이 식사대접을 청하자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첫눈에 반한 파발관리 수영은 다음날 나주로 떠났고 다시 만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도 않았는데 다음날 저녁 경주로 돌아가던 길에 다시 함양으로 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있었어도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어서 더욱 반가웠지만 월명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과 달리 수영에게 얄밉게 행동합니다. 수영이 처음엔 자신이 착각을 하고 무례하게 대했나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을 나타내는데 월명이 짓궂은 장난을 쳤다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월명의 집으로 간 수영은 월명의 아버지지로부터 집에서 자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월명의 아버지도 수영에게 관심이 간 것입니다. 밤늦도록 막걸리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느새 장인, 사위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열흘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경주로 떠났던 수영은 약속대로 열흘 후 함양으로 아예 이사를 옵니다. 여기서 거주하며 장사를 시작한 수영은 파발꾼의 인맥을 살려 전국을 대상으로 한 행상을 시작합니다. 2년 만에 제법 많은 돈을 번 수영은 정식으로 월명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열흘 간의 신혼생활을 행복하게 보낸 마지막 날 수영의 고향 경주에서 편지가 옵니다. 편지를 본 수영의 얼굴에 어둠이 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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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보거라. 멀리 있으니 자주 근황을 알 수도 알릴 수도 없어 마음이 편치 않구나. 각설하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열일을 제쳐놓고 속히 집으로 오길 바란다.”


아버지의 친필 편지였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급하였는지 글씨도 거의 초서에 가까웠습니다. 편지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멀리 함양 처가에서 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속내가 들어 있어 수영은 죄송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월명이 수영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답니다. 급히 오라는 전갈이군요.”

“어떻게 위독하시던가요?”

“그것까진 서찰에 쓰여있지 않아요. 좀체 이런 편지를 쓰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 짤막하게 글을 써서 보내신 걸 보면 어머니 건강이 몹시 안 좋은가 보오.”

“여기 걱정은 마시고 얼른 가서 어머니를 살펴드리세요.”


수영은 아내 월명을 꼭 안았습니다.


“어머니 건강이 좀 나아지면 바로 오겠소. 나 없는 동안 건강 잘 챙기고 아버님도 잘 보살펴드리세요.”


장인에게도 사정을 이야기한 수영은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어 올라탔습니다. 편지를 전해줬던 친구 득수와 함께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난 자리가 휑한 것처럼 월명의 마음도 뻥 뚫린 듯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데도 너무 멀리 있다 보니 찾아뵙지 못하는 게 죄송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월명은 장독간에 정한수를 떠 놓고 매일 밤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치성을 드려도 시어머니에게 차도가 없는 건지 남편은 돌아오지도, 편지를 보내지도 않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월명은 금세 올 것 같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서서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병구완을 하다 남편마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너무 궁금하고 답답해 경주로 나설까 하다가 또 행여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 서로 길이 엇갈릴 수도 있는 일이므로 선뜻 나서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었습니다. 산에 들에는 온갖 꽃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피어나고 나비와 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새순이 돋는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몰려와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었습니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월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제 봄이 되었으니 어머니의 건강도 새생명을 얻은 것처럼 쾌차하실 테고 남편도 경쾌한 말발굽소리를 내며 돌아올 거야.’ 월명은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얘야, 이 죽 조금이라도 먹거라. 속이 든든해야 기운도 차리지.”

“죄송해요, 아버지. 목이 따가워 음식을 삼킬 수가 없어요.”


월명은 정한수 앞에서 치성을 드리다 한 번 쓰러진 뒤론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몸져누운 지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시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린 지 한 달 보름만의 일이었습니다.


남편 수영에게선 두달 반이 지나도록 전혀 연락이 없습니다. 월명은 이제 날도 따뜻해졌기 때문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찾아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 근 석 달이 되었는데도 그이의 소식이 없으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역장 나리께 사정을 하여 말을 타고 경주엘 다녀오겠습니다.”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냐? 그리고 역마를 사사로이 이용하고자 청을 넣는다는 것은 역장님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니 옳지 않은 일이다. 내가 경주로 가는 행상을 통해 서찰을 보낼 터이니 넌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하거라.”


아버지 말씀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월명은 너무 갑갑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가지 않으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하신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불안해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이러다 더 병이 날 것 같아요.”


딸의 마음병이 더 심해질 거라는 말에 아버지도 더는 만류하지 못하였습니다.


“알겠다. 그렇다면 채비를 할 테니 국밥집 둘금이와 둘금이 오래비랑 셋이 함께 다녀오너라.”

“예, 고맙습니다. 아버지.”


월명은 곧 남편 수영을 만날 수 있다는 기분에 몸이 훨씬 나아진 듯하였습니다. 월명은 바로 둘금 어머니가 운영하는 국밥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둘금이네는 월명네와 친척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이웃입니다. 월명은 기운도 없고 숨도 가빴지만 기쁜 마음에 아픈줄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아주머니, 아버지께서 한석이 오라버니랑 둘금이랑 함께 경주 가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서도 허락을 해주세요.”

“그리 좋으냐? 그 먼 길을. 지금 니 몸 상태로선 쉽지 않은 여행이 될 텐데….”

“괜찮습니다. 이제 기운이 솟는 것 같아요.”


국밥집 둘금 어머니의 반 허락을 받은 월명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넉넉잡아 닷새 후면 남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습니다. 어찌 기운이 났던지 월명은 둘금 어머니에게 국밥을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죽도 제대로 못 먹는 니가 이 국밥을 삼킬 수 있겠냐? 최대한 부드러운 고기로 국밥을 떠줄 테니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거라.”

“네, 고맙습니다. 어머니.”

“하하하. 녀석. 늘 아지매 아지매 하더니 웬, 갑자기 어머니야? 하하하.”


월명은 둘금 어머니로부터 국밥을 건네 받고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월명의 속이 이상해졌습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뭔가가 식도를 타고 거꾸로 치솟아 올라오는 듯하였습니다.


“우웩!”


분명히 속에서 굵직한 뭔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듯했는데 그러나 아무것도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웩, 우웩!”


연거푸 토가 올라오자 월명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둘금이 어머니가 따라와서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얘가, 왜 이러냐? 먹은 것도 없다 하더니? 가만!”


둘금모는 뭔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을 짚었습니다.


“월명아, 달거리 끝난 게 언제냐? 혹시 임신한 거 아니냐? 아이구, 맞구만. 맞아!”


선뜻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월명을 바라보며 둘금모는 경사가 난 듯 좋아라 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평상으로 다시 돌아가더니 손님들에게 큰소리고 말했습니다.


“손님들, 오늘은 내가 너무 기쁜 날이라 밥 더 드시고 싶은 분은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공짜로 더 드리리다. 내 딸이나 진배없는 월명이 임신을 했어요. 아이를 가졌단 말이오. 하하하!”


월명은 살며시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습니다. 아직 느낄 수는 없지만 이 속에 사랑하는 남편과 자신의 아이가 들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가, 이렇게 우리가 만나는구나. 너를 만나서 아주 행복하다.’ 월명의 입덧은 어느새 멎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간 월명이 국밥 앞에 앉아 숟가락을 뜨려고 하자 속이 다시 울렁거렸습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성스레 담은 국밥을 한 술도 뜨지 못하고 그대로 일어서려니 괜히 둘금 어머니에게 미안하였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맛있게 국밥을 담아주셨는데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괜찮아. 무슨 소리냐? 입덧을 하면 누구나 그런 것을. 혹시 따로 먹고 싶은 것은 없어? 이 아줌씨가 뭐든 다 해줄 테니 말해보거라.”

“아뇨. 없어요. 이제 집에 갈게요. 경주에 갈 채비도 해야 하고.”

“참, 그렇구나. 경주엘 간댔지? 임신 초기에 몸조리를 잘하지 못하면 애가 떨어지는 수가 있는데…. 조금 더 있다가 아기가 뱃속에서 자리를 잡고 나면 떠나는 게 어떻겠니?”


순간 월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아기가 생겨 그저 행복하였던 것은 장거리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을 연결지어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꺼번에 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자 월명은 갈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소식이 너무나도 궁금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데 뱃속 아기 때문에 장기간 여행을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월명의 기분은 다시 우울해졌습니다. 남편을 보러 갈 기분에 날아갈 듯 기뻤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하는 수 없이 아버지 말씀대로 경주로 가는 행상을 통해 기별을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별을 넣은지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마당을 오락가락하며 모이를 쪼아 다니던 암탉들도 더위를 피해 마루 아래로 들어가 수시로 날개를 퍼덕거렸습니다. 월명은 매일같이 남편에게서 올 편지를 기다렸습니다. 마을 어귀까지 나가 기다리길 밥 먹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물론이고 편지를 전해줄 법한 행상들의 모습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월명은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어쩌면 지난 한 달은 아이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밤마다 월명을 괴롭혔습니다. 뒷산 소쩍새가 울어 깊은 밤 적막을 몇 번이나 깰 때까지 잠들지 못하던 월명은 새벽녘 샛별이 떠오를 녘에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월명이 잠들었을 때 희한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안개 자욱한 길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더니 남편의 몸이 절벽 아래로 쑥 빠져버리거나 또 다른 날에는 괴물이 나타나 남편을 덥석 잡아가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자신의 힘으론 역부족입니다. 꿈속에서 남편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깨어 보면 벌써 햇볕이 창문을 열어라고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월명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히 맺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뒤숭숭한 꿈 때문에 대청마루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데 커다란 그림자가 시선에 들어왔습니다. 월명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행상차림을 한 남자가 태양을 등지고 월명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반쯤 뜬 눈으로 들어온 사내를 보고 월명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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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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