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찾아서]“솟대에 올라 내가 한판 놀아보는데!”
[전통을 찾아서]“솟대에 올라 내가 한판 놀아보는데!”
지난 5월 28일 함안 함주공원에서 제38회 경상남도민속예술축제 때 펼쳐졌던 진주솟대쟁이놀이보존회의 솟대놀이 시연은 그야말로 옛날 놀이패들의 놀이전통을 고스란히 재현한 느낌이었다.
솟대쟁이놀이는 1936년 황해도 원산 공연을 마지막으로 하여 해체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제가 조선의 민속을 탄압하고 있던 데에다 일본의 신파와 곡마단이 들어옴으로써 우리 전통민속에서 관심을 돌리게 만든 탓이기도 하다.
이때 사당패와 걸립패 등이 남사당패에 흡수되었는데 솟대쟁이들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명맥이 끊기는가 싶었는데 마침 진주에서 솟대쟁이놀이를 복원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솟대쟁이패는 원래 진주를 본거지로 하여 전국을 떠돌아다니던 놀이패다.
2003년부터 진주지역 후예들이 죽방울놀이, 장다리타기 등을 시작을 복원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다행히 솟대쟁이놀이에 대한 문헌이 많이 남아 있어 복원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복원된 솟대쟁이 놀이의 복원과정과 의미에 대해서는 본보 2월 25일에 보도된 ‘놀판살판 어절씨구…솟대쟁이놀이 전승’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이번 기사에선 이날 펼쳐진 놀이를 시간순서에 따라 스케치를 함으로써 솟대쟁이 놀이가 어떤 놀이인지 간접 감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먼저 솟대쟁이놀이가 문헌에 많이 남아있다고 하였는데 고려말 이색의 ‘목은집’, 고려가요 ‘청산별고’, 조선 초 성현의 ‘허백당집’에 시로 잘 나타나 있지만 감로탱 등 그림으로 잘 묘사되어 있어 옛날 솟대쟁이들이 놀았던 모습을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다.
위 감로탱 자료는 솟대쟁이놀이 팸플릿에 인쇄된 것들이다. 감로탱은 1592년 그려진 것부터 1701년 등등 20세기 초 송송갑의 증언에 의해 그려진 연희도까지 소개되어 있다. 부부분 사찰에 탱화로 모셔놓은 감로탱에 솟대놀이가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은 이것이 불교문화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탱화와 조선시대 풍속도를 통해 드러난 솟대놀이 모습을 살펴보면, 솟대에 거꾸로 매달려 기예를 부리거나 솟대 끝에서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줄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가 하면 줄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며 두 줄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서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탱화의 경우 자세히 보면 유사한 모습이 많은데 다른 그림을 보고 베낀 것이리라. 따로 현장을 보고 그렸더라면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앞놀이 과장으로 춤과 노래로 놀이패들이 무대를 돌며 흥을 부추긴다.
넋전춤은 선대예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춤으로 솟대 줄을 타면서도 펼친다.
놀이는 크게 세 마당으로 구성된다. 첫째 마당은 들머리판이다. 들머리판은 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판으로 구경꾼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는 공연이다. 그래서 호적을 중심으로 취군이 연주하고 놀이패의 놀음이 조화를 이루어 시끌벅적 앞놀이를 하는 것이다.
놀이는 당산굿-길놀이-넋전춤으로 이어지는데 당산굿은 마을의 입구에 당산나무에 솟대쟁이패가 와서 공연을 한다는 것을 알리는 굿이다.
길놀이는 죽마를 타고 걷는 개우다리타기로 풍물잽이들과 함께 행사장 주변을 돌면서 가두선전을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넋전춤은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선대 예인들의 넋을 위로하며 놀이가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기원하는 춤이다.
솟대쟁이놀이 본과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매호씨(어릿광대)가 재담을 늘어놓으며 흥을 돋우고 있다.
솟대놀이의 본과장은 재주넘기 마당이다. 다양한 기예와 재주넘기로 이루어져 있다. 솟대놀이가 남사당놀이와 다른 점은 체기, 즉 기예 중심의 연희라는 점이다. 이런 솟대쟁이패의 기예는 나중에 유랑극단이나 유랑서커스단이 펼치던 민속 기예의 원형이 된다.
본과장이 시작되는 것은 어릿광대라고도 불리는 매호씨의 입담에 달렸다. 관객과 주거니 받거니 재담을 늘어놓다가 진주삼천포농악 뜬쇠를 부른다. 진주삼천포농악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다. 진주삼천포농악은 솟대쟁이패의 농악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진주솟대쟁이 농악을 원류로 하는 진주삼천포농악으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풍물.
진주삼천포농악은 한국의 농악 중에서 제일 먼저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고깔을 쓴 치배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채상놀음이 뛰어난데 종종 기예를 선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대체로 가락이 빠르고 남성적이다. 이날 일부를 선보였지만 진주삼천포농악을 12차 농악이라 부르는 것은 오방진, 얼린굿, 덧배기 법고놀음 등 12과장으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죽방울놀이는 서로 많은 재담을 주고받으며 코믹하게 이루어진다.
죽방울놀이는 나무를 장구 모양으로 조그맣게 깎아 가운데를 실로 팽이처럼 돌리며 기예를 부리는 놀이다. 죽방울을 다리 사이로 지나가게도 하고 어깨 뒤로 넘겨 돌리기도 하며 높이 던져올리기도 한다. 다양한 기술이 선보일 때마다 관객의 손뼉소리가 터져 나온다.
죽방울놀이는 죽방울받기, 또는 죽방울돌리기라고 부른다. 놀이 모습이 조선말기 화가 김준근이 그린 기산풍속도에 잘 묘사되어 있다. 불행히도 기산풍속도첩은 우리나라에 없고 독일 함부르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버나잡이가 사발을 가는 막대기를 이어붙인 위에 올려놓고 돌리고 있다.
버나는 지름 30~35㎝ 정도의 쳇바퀴에 가죽을 둥글게 오려붙인 것을 말하는데, 버나잡이들은 이것만 돌리는 것이 아니다. 대접도 돌리고 대야도 돌리고 하물며 밥상도 돌린다. 작대기 끝에 얹어서 돌릴 수 있는 것은 다 돌리는데, 작대기 대신 담뱃대로도 돌리고 식칼로도 돌린다. 점점 마술 같은 기예를 보이는데 서로 주고 받는 재담도 재미있다. 실수를 하면 실수 한 대로 한 번 더 도전한다.
버나놀이에는 동작에 따라 15가지 사위가 있다고 한다. 던질 사위, 때릴 사위, 다리 사위, 무지개 사위, 자새 버나, 칼 버나, 바늘 버나, 도깨비 대동간 건너가지, 정봉산성, 단발령 넘는 사위, 삼동, 놋대야 돌리기, 낙화 사위, 꼬바리 사위, 물주리 사위 등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돌리는 기술로만 봐서는 중국의 접시돌리기와 유사하다. 이 연희에 재미를 더하는 것은 역시 재담이겠다.
살판 과정. 멍석 위에서 뒷곤두(텀블링)를 하는 꼰두쇠.
살판에는 3명이 등장한다. 살판은 12가지 땅재주 중의 하나로 제일 마지막 재주다. 살판이란 말은 꼰두쇠들이 이 재주를 넘으면서 잘 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 판이란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만큼 위험한 기예라는 얘길 터. 곤두박질친다는 말은 곤두를 하다 실수를 하여 처박히는 모양새를 이름이니 이 기예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방증하는 말이다.
살판의 기예에는 앞곤두, 뒷곤두, 번개곤두, 자반뒤지기, 팔걸음, 외팔걸음, 외팔곤두, 앉은뱅이팔걸음, 수세미트리, 안즌뱅이모말되기, 숭어뜀, 살판 등의 기술이 있다. 수세미트리는 앞곤두와 같은 것을 큰 원을 그리며 돌기를 4번 계속 하는 것이다.
얼른쇠가
빈 주머니에서 계란을 꺼내 보이고 있다.
얼른은 다른 말로 마술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장치나 재빠른 손놀림을 이용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어리게 해 눈속임하는 과정이다. 이 얼른 과장은 혼자 등장하는 관계로 얼를쇠의 재담은 없다. 여느 마술사처럼 몸짓으로 마술을 시연할 뿐이다. 그래서 거 계란이 어디서 나왔을까? 신기하긴 하지만 연희 묘미는 좀 떨어진다.
솟대쟁이 셋이서 솟대와 줄에 올라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진주솟대쟁이놀이의 솟대타기는 장대타기로 불리는 초계대광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장대타기는 대광대가 긴 장대 위에서 20분가량을 여러 재주를 부리는 것이지만 진주의 솟대타기는 두 가닥의 밧줄을 활용해 셋이서 각종 묘기를 부리는 것이다.
기예는 매달리기, 중심잡기, 물구나무서기, 악기연주 등을 펼친다. 이때 솟대쟁이는 아래에 있는 매호씨와 재담을 주고받는다. 흔들거리는 솟대 위에서 때론 떨어질 듯 위험한 몸짓으로 관중을 긴장하게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최고라는 둥 넉살 좋은 말로 좌중을 웃게 한다.
솟대타기에 이어 두 가닥의 줄 위에서 쌍줄백이놀이를 한다.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팔걸음도 하고 앞으로 구르듯 고물무치기도 한다.
솟대쟁이놀이 마지막 판놀음으로 대동놀이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역시 전통 예술의 마지막은 대동놀이다. 이것은 농악이나 탈놀이도 마찬가지로 놀이판이 제의적 성격이 있어 마지막은 모든 이가 어울리는 어울림 마당이 되는 것이다. 이날은 경연 형태의 공연이어서 관중의 참여는 없었지만 다른 놀이판이었다면 그 흥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된다. 이를 바래굿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다녀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통을 찾아서]”영등할매! 바람재우고 풍년주소” (0) | 2015.06.16 |
---|---|
[전통을 찾아서]쟁~쟁~ 바라 소리에 안녕 기원 (0) | 2015.06.15 |
[전통을 찾아서]이수정 낙화 멍하니 바라보면서 (0) | 2015.06.05 |
[전통을 찾아서]또 서부가 이겼으니 풍년일세! (0) | 2015.05.23 |
금강계단 위론 새가 날지 않는다고요? (0) | 2015.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