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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전설텔링이 시작되었습니다. 1편을 쓴 뒤에 현장을 찾았는데... 기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더군요. 이번에도 현장을 찾느라 좀 고생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첫 작품이었던 '우곡각자' 바위보다야 훨씬 고생이 덜했고, 신동대굴이나, 속씻개굴, 일명 이순신굴을 찾을 때보다도 조금 고생은 덜했지요. '우리서방님 못보셨나요' 전설텔링처럼 열녀의 이야기라 좀 재미가 덜하긴 한데... 몇 가지 장치를 넣어 약간 색다르게 꾸며보도록 하지요. ^^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월명총은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월명마을 뒷산에 있습니다.
그 산을 월명총이 있다 하여 월명산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이름으론 수지봉이라고 부릅니다.
수지산이라고도 하고요.
이 산봉우리에 월명총이 있습니다.
월명이란 여인은 사근역참에서
일하는 역녀였는데 그 신분이 천민은 아니었습니다.
평민이면서도 천한 일을 하였던 거지요.
그래서 역노비와는 신분 상 차이가 있었답니다.
월명의 이웃에 경주 출신의 행상을 하는 총각이
있었는데, 이는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마음씨도 좋아 동네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 총각은 행상을 하며 살았습니다.
경주가 고향이긴 하지만 여기서 열심히 살다 보니
고향도 까맣게 잊은 채 생활했다는군요.
월명과 그렇게 이웃으로 살다 보니 자연히 눈도
자주 마주치고 스스럼없이 만나다 보니 자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던 거지요.
둘은 서로를 잘 이해해주었습니다.
서로 위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이웃사람들의
권고로 혼례를 하고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이어가던 중 경주에서
경주인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게 됩니다.
경주로 함께 가려니 너무 먼
거리여서 경주인은 아내 월명을 남겨두고 곧 돌아오겠다고
하고 혼자 떠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하지만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다 월명은 몸져눕게 되고 결국은 정신마저
이상해지면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경주인은 아내가 죽은 지 까맣게
몰랐지요. 어서 어머니
병환이 완쾌되어 아내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차도가
없는 어머니의 병세에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맙니다.
어머니의 사망은 경주인으로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아내에게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해 장사를 치르고 함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경주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몇날
며칠을 월명의 무덤에서 슬퍼하다가 끝내 죽고 맙니다.
마을 사람들은 월명과 그의
남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월명과 나란히 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숨진 월명의 무덤을
월명총이라고 이름을 지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짠해지는 전설입니다.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의
심리적 정서가 오롯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사랑하고 떠나고 그리워하고 기다리다 이승을
하직하는 안타까운 사연은 우리 전설에 흔히 등장하는
유형입니다.
근본 맥락은 어찌 바꿀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을 이야기 곳곳에 장치해 조금 새롭게
이야기를 꾸며보겠습니다.
월명의 남편, 경주인.
이름을 뭘로 지으면 좋을까요?
월명, 달이 밝으니
물이 품은 달그림자란 의미로 수영이라고 지으면
어떨까요? 시기는 조선
초기로 하지요.
……………………………………………………………………………………
동짓달로 접어들면서 밤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이런 날이 며칠 계속 되자 역참을 찾는 이도 일찍
마방에 말을 맡기고 객점으로 향했습니다.
월명은 역리들이 실무를 보는 작청 앞에서 양
소매에 손을 파묻은 채 떨어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거라.
더는 길손이 오지 않겠구나.”
월명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작청 사무실에서 김 역장이 문을 열고 나오며
추위에 떨고 있는 월명을 측은한 듯 보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역장나리. 그래도
혹시 늦게 말을 몰아 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유시 반각(오후
6시)까지는
기다렸다가 퇴근하겠습니다요.
나머지 일은 제게 맡기시고 나리께선 먼저
퇴청하시지요.”
“원 녀석도.
그럼 밖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사무실에 들어가
있으려무나. 요즘은
유시 정각만 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던데 일없으면
일찍 퇴청하거라.”
“예,
나리.”
월명은 김 역장의 등에다 꾸벅
절을 하고 작청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요즘은 유시 정각 이후 역무가 있는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추위
때문에 문서를 나르는 관원들도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역참에 말을 맡기고 주막에 가서 술로
몸을 녹이거나 일찌감치 객점에 들어가 따뜻한 봉놋방에서
몸을 녹이곤 하였습니다.
얼추 유시 반각이 되었지 싶은지
월명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무실 문단속을 하고 마방으로 갔습니다.
행랑채로 들어가려던 역노 막득이가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아직 퇴청 안 하셨수?
요샌 해가 일찍 떨어지니까 유시도 안 돼 죄다
퇴청하던데.”
“응.
혹시나 싶어서요.”
“다른 사람들처럼 대충대충
일하슈. 알아주는 것도
아니구. 허허.”
막득은 월명보다 대여섯 살
많지만 천한 노비 신분이라 평민인 월명에게 함부로
말하진 않았습니다. 월명
역시 아무리 역노라지만 나이가 한참 위인 사내에게
말을 함부로 놓을 수 없다고 여겨 위해주었습니다.
“다다다다….”
월명이 역참문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급한 말발굽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습니다.
“히히히힝~!”
말은 월명이 서 있는 곳까지
다다르더니 앞발을 들고 몸을 세웠습니다.
그 순간 말에 타고 있던 관원이 땅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아얏!”
“이봐욧!
어서피해요!”
월명도 다급했습니다.
말이 너무 흥분했는지 날뛰면서 관원을 밟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월명의
고함을 들은 관원은 재빨리 몸을 굴려 간발의 차이로
말의 발굽을 피했습니다.
“워~,
워. 자,
착하지.”
월명은 고삐를 잡고 말을
진정시켰습니다.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흥분된 말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를 정도였는데 월명의 목소리에 말은 금세 얌전해졌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관원이 놀란 듯 월명을 쳐다보았습니다.
“아가씨,
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료.”
관원이 모자를 벗어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면서 말했습니다.
“어디 다치진 않으셨어요?”
“아,
네. 괜찮아요.
이 정돈 늘 겪는 일이라.
하하.”
관원은 겸연쩍게 웃었습니다.
그 순간 월명은 관원의 순수한 웃음이 무척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속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뭐지?
이 느낌. 갑자기
얼굴도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관원, 아주
잘 생겼다. 키도
헌칠하네. 말씨도
부드럽고 포근하다.’ 월명은
넋이 나간 듯하였습니다.
월명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관원이 밝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저기 아가씨,
역참 문 닫은 건 아니죠?
사근역 마치기 전에 도착하려고 100리를
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봐주시죠.
헤헤.”
월명은 관원이 가까이 다가오자
얼른 몸을 돌려 역참 문을 열었습니다.
관원이 말고삐를 잡고 바로 등에 바짝 붙어
뒤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월명은 빠른 걸음으로 마방을 향해 걸었습니다.
‘따그닥 따그닥.’
뒤따르던 관원은 갑자기 앞의 아가씨가 빠른
걸음으로 걷자 서둘러 따라붙었습니다.
월명은 마방에 말을 넣고 콩과
겨, 여물을 섞어 쑤어
만든 말죽을 주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말은 게걸스레 먹었습니다.
월명은 말의 목등을 톡톡 두드려주고 관원과 함께
마방을 나왔습니다.
“아가씨,
퇴근길인데 이렇게 폐를 끼쳐 미안하오.
고맙소.”
“괜찮습니다.”
“말과 함께 100리를
달렸더니 나도 몹시 시장하구려.
근처에 국밥 잘하는 데 있으면 소개 부탁하오.”
“네,
바로 앞에 괜찮은 국밥집이 있어요.
따라오세요.”
국밥집 앞에서 관원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습니다.
“저,
식사를 대접했으면 하는데 저녁 식사 전이면 함께
하시죠?”
월명은 말을 타고 온 수많은
외지 관원들이 툭하면 같이 밥을 먹자거나 함께 길을
걸으며 이 고을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거나 하는 일이
많아 이런 류의 발언에 어찌 대응할지 훤했지만 이
관원에 대해서만은 왠지 거부하기 싫었습니다.
“네.”
국밥집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웬일이냐 하는 눈으로 월명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관원도 외지에서 말을 몰고
온 것 같은데 웬일리래?
천하에 고고한 월명이 관원과 함께 밥을 다 먹고?
호호호.”
“아주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냥 오늘따라 너무 배가 고파서 따라왔어요.”
관원이 그제야 마주앉아 있는
아가씨의 이름이 월명이라는 것을 듣고는 아직 통성명도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가씨 이름이 월명이군요.
저는 수영이라고 해요.
이수영. 경주가
고향이에요. 경주부
관헌에서 말단 관원으로 일하고 있지요.”
“네.
전 오월명…. 역녀로
일한 지 3년이 되었네요.”
수영도 함께 국밥을 먹으면서
월명에 대해 호감을 느꼈습니다.
음식을 먹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영은 숟가락을 뜨다 말고 멍하니 월명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월명이 무슨 일인가 하고 수영을 쳐다보면 얼른
밥숟가락을 움직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늦게까지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 객점에서 주무셔요.”
“네,
오늘 정말 고맙소.”
“내일 나주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나서야 할 거예요.
출근하면서 깨우러 올게요.
편히 주무세요.”
월명은 수영이 객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리에 누웠어도 그의 얼굴이 눈앞을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월명의 나이 열여덟.
전국에서 오가는 뭇 사내들과 대화를 나누고
연화산 아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슴 설레는 남정네가 없었는데 수영만은
달랐습니다.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다음날 아침 월명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역참으로
가는 길에 객점에 들러 수영을 깨웠습니다.
함양에서 나주까지는 경주에서 함양까지 왔던
거리만큼 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근역에도 늘 500리를
반나절에 달릴 정도의 상등마가 서너 필 대기하고 있긴
하지만 하급관원에게 지급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중등마인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역리가
판단하는 거여서 월명이 마음대로 수영에게 중등마를
내어줄 수가 없는 게 괜히 속상했습니다.
월명은 수영과 함께 역참으로
갔습니다. 김 역장이
일찍 출근해 있었습니다.
월명이 인사를 하고 수영을 소개하였습니다.
어제 늦게 당도한 경주부 관원이라고.
오늘 나주까지 가야하는데 중등마를 내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말을 내어주는 일은 역리가 어느 정도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어서 월명이 말을 꺼냈던 것입니다.
김 역참은 한 번도 남에게 부탁
같은 것을 하지 않던 월명이라 좀 놀랐습니다.
경주부사의 편지를 나주목사에게 전하는 내용이라
크게 급하거나 중대한 사안이 아니지만 하등마를 타고
가면 나주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업무가 끝나는 유시
반각을 넘길 게 뻔했기에 김 역장은 월명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잘 되었습니다.
중등마를 타고 가시면 시간 안에 도착할 거예요.”
“고맙소.
이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그렇게 수영은 아침 일찍 나주로
말을 몰고 떠났습니다.
월명의 가슴은 갑자기 휑해졌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하였지만 김 역장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내를 마음에 품었느냐?”
“….
몰라요.”
월명은 마방이 있는 쪽으로
달렸습니다.
“허허허.
그 녀석.”
월명은 며칠 사람들이 타지 않아
운동이 필요했던 하등마 하나를 꺼내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들판을 마구 달렸습니다.
하등마라도 월명이 조련을 하면 중등마 못지않았습니다.
찬바람이 얼굴을 세게 때렸습니다.
월명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남강변을 한참 달리다가는 고삐를 놓고 팔을 벌린
채 달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볼 수 있을까?’
그랬습니다.
수영에게 마음이 빼앗겼지만 다시 언제 그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헤어지면서 머뭇머뭇 다시 보자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보내버렸던 것입니다.
그냥 운명에 맡긴다는 마음이었지만 한참 후에야
이걸로 마지막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불같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유시 반각 시각에 맞춰 퇴청을 준비하고
있는데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늦은 시각에 또 누가?’
하고 밖으로 나가니 수영이 말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월명은
너무 반가워 뛰어가서 그의 품에 안기는 상상을 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잘 있었어요?
오늘 또 여기서 하루를 묵게 되네요.
너무 늦은 건 아니죠?”
“아녜요.
말고삐 이리 주세요.”
월명이 수영에게서 말고삐를
받으려는 순간 수영이 월명을 와락 끌어안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