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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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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04 창원 천주산;천주암-소계동 코스
  2. 2015.01.04 (전설텔링)전쟁의 신(神)(4)
  3. 2014.12.21 (전설텔링)전쟁의 신(神)(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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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스무산프로젝트]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에 댓글을 달다가 언뜻 떠오른 표현인데 괜찮네. 내가 짓고 내가 평가하고 장구치고 북치고. 뭐 그런 느낌은 있는데 어쨌든 해가 바뀌면서 일출보러 구산면 심리바닷가까지 새벽시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을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일단 시작이 좋다. 


90킬로를 능가하는 몸무게를 이젠 방치할 수 없다는 다짐도 자연스레 등산으로 이어졌다. 올해 꼭 스무개의 산을 탈 것이다. 원래 산을 탈 계획은 작년 12월 초쯤 세웠었다. 아내와 함께 매주 토요일 함께 하기로 하였으나 계획을 세운지 일주일만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바로 깨달았다.


아내는 계속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뤘고 나역시 미루다가 애초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산은 무조건 혼자 간다. 그렇게 계획을 수정하고 1월 4일 혼자 산을 오르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좋았다. 이런저런 생각도 할 수 있어 괜찮고.


팔용동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천주암에 내렸다. 천주암 정류소에서 등산로로 들어설 때 천주산 등산로 안내도가 보인다. 최근 새로 만든 것 같다. 깔끔하다.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이 그려져 있다. 몇 년전부터 둘레길 한 번 가보자고 마음만 먹기로 스무번은 더 되었지 싶다.



지도만 보면 정상까지 금방 올라갈 듯하다. 이번에는 올라갔던 길로 내려오지 않은 것이라고 다짐한다.



몇 걸음 오르다 고개를 드니 천주산 동편 봉우리에 세워진 팔각정이 눈에 들어온다. 망원렌즈로 갈아끼워 셔터를 누르니 선명하게 들어온다. 저곳은 아마도 대여섯 번은 갔지 싶다. 천주산 정상까지 힘들다 싶으면 그냥 팔각정에서 만족하곤 했으니.



천주암. 독경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향을 싼 종이엔 향내가 나듯 독경소리가 공기에 스며들어 가슴에 들어오니 은근히 불심이 생기기도 한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잠깐 합장을 한다.



천주암에서 만남의 광장으로 향하는 등산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계단으로 오르고 싶은 사람은 계단으로 계단이 싫은 사람은 옆길로 오르면 된다.



지압시설이 끝나는 지점에 전에 없던 이정표가 있다. 둘레길이 조성되고서다. 왼쪽으로 가면 소계동 석불암으로 향하고 오른 쪽으로 가면 굴현고개다. 현위치는 천주암갈림길. 나는 계속 위로 향한다. 자주 걷던 길이라 익숙해 그런지 힘들거나 그렇지는 않다.



너덜겅이 있었네. 이 길을 그렇게도 많이 오르내렸는데 앞만 보고 걸어서 그런지 카메라를 손에 쥐고 걷다 보니 이제야 발견한다. 



약수터도 정비가 되었다. 나무데크를 깔았다. 한동안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줄기가 굵다. 물맛 역시 좋다. 잠시 목을 축이고 걸음을 옮긴다.



만남의 광장까지 300미터, 천주산 정상까지는 1.8킬로 남았다. 전설텔링 현장을 찾아서 취재하면서 느끼고 몸이 익숙해진 바에 따르면 이 정도의 거리는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계단 나무 버팀목이 기울게 박혔다. 안정적이다. 수직으로 박아 무너진 계단을 많이 본 탓에 이렇게 공사한 담당자의 지혜가 엿보인다.



만남의 광장. 달천계곡 쪽에서 올라온 차량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다. 겨울철 잡목제거 작업을 위해 인부들이 타고 올라온 차인 모양이다. 단순 등산 차량은 예까지 올라올 수가 없다. 달천계곡 입구에서 차량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천주산 정상 가는 길. 역시 잘 정비되어 있다. 정상까지 1.5킬로미터 남았다.



첫고개. 헬기장에 당도하니 멀지 않은 거리에 두번째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이제부터 길은 편하다. 걸음이 편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하다. 주변 경치도 아주 좋다.



하늘이 시리도록 맑다. 먼데 산들이 선명하다. 구름도 새털같다.



이런 등산로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 토요일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 오간다.



정상에 있는 쉼터가 머지않았다. 두 번째 헬기장 봉우리에서 천주산 정상의 팔각정을 망원렌즈로 당겨봤다. 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정상에 올라서지 않아도 주변 경관이 좋다. 남쪽으로 돝섬이 보인다.



그리고 마창대교.



돝섬에서 약간 시야를 당겨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팔용산이 보이고 산봉우리 사이로 봉암수원지도 보인다.



북동 방향 멀리 주남저수지가 있다.



정상을 향해 걷다 보면 북면이 훤히 보인다. 올초까지만 해도 살던 집이 보인다. 아니... 집은 보이지 않는다. 집을 산 사람이 건물을 밀고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8개월 만에 처음 본다. 집은 사라졌지만 저 동네에서 10년을 살았으니 다시 보는 감회가 묘하다.



정상이다. 앞으로 몇 걸음. 정말 날씨 좋다.



정상이어서 그런지 이리 저리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복잡하다.



해발 638.8미터. 이 바위 머리까지의 높이일 것이다. 천주산 정상 봉우리 이름은 용지봉이다. 용 용자에 못 지를 쓴다. 여기에 무슨 연못이 있다고.



정상에서 360도 빙 둘러 본다. 창원대로가 불모산 쪽으로 길게 뻗었다.



바로 앞에 안산이 있고 그 너머로 내서 아파트단지의 아파트들이 조금 눈에 들어온다. 겹겹이 산맥들이 이어져 있고 새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에 색칠을 한듯 하다. 한폭의 풍경화다.



마산 도심이다. 햇빛에 반사된 바다가 유난히 반짝인다.



창원도심. 저 많은 집들... 빽빽한 삶이 있는 동네다.



거가대교. 대죽도에서 저도로 이어지는 다리다.  오른쪽 저도에선 또 거제도로 이어지는 다리가 살짝 보인다.



날이 맑아 그런지 멀리 지리산이 선명하다.



하산길. 되돌아보니 구름이 억새풀, 소나무, 돌탑 등과 어울려 보기 좋다. 까마귀의 날갯짓도 힘차다.



하산 시작길에 돌탑이 있다. 



산 허리에 둘레길이 보인다. 올해 안에 꼭 걸어봐야지.



진달래 꽃눈이 움트기 시작했다.



합성동 제2금강산으로 가는 길과 소계체육공원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났다.



소계동 계곡길로 내려오다 보면 폭포를 볼 수 있다. 가물어서 물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는 않지만 그동안의 추위에 길게 고드름이 맺혔다.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녹은 얼음들이 뭉터기로 떨어지기도 한다.



소계동 등산로 입구 큰 돌탑이 여러 개 있다. 체육시설도 제법 많다.



여기까지 운동하러 와서 몸을 풀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석불사. 이 골짜기 이름이 법당골인 게 이 절 때문일 수도 있겠다.



소계체육공원 위에 에어건이 설체되어 있다. 등산화를 털고 이번 등산을 마무리했다. 남해고속도로 굴다리 앞 누비자 터미널에서 자건거 하나를 뽑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 10시 반에 출발하여 오후 3시 반에 내려왔으니 총 5시간 걸렸다. 정상에서 체류한 시간이 1시간 넘었으니 총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잡으면 되겠다.


첫 프로젝트는 이렇게 가뿐하게 마무리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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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신라의 원군 요청으로 안라국 경계선인 방어산까지 남하한 광개토대왕의 3만 병사는 지수 평야에 진을 칩니다. 안라국왕은 3000의 군사밖에 없어 중과부적임을 인식하지만 끝까지 대항해 싸울 것을 어전회의에서 결정합니다. 이에 따라 아들이자 대장군인 무시우가 방어산 정상에 기지를 세우고 광개토군과 맞섭니다.


광개토는 직속 부하장수 현무에게 정예병 500을 주어 적진을 교란, 타격을 줄 것을 명합니다. 이들은 방어산 자락에서 무시우의 부하장수이자 살수인 쾌수에게 들켜 폭포수 같은 불화살을 맞고 전멸당합니다. 겨우 쾌수만 살아서 광개토에게 돌아갑니다.


무시우군의 화력을 확인한 광개토는 안라국 내에 첩자를 보내 왕을 암살하고 분란을 일으켜 우시우군을 무력화할 작전을 짜고 아끼는 부하장수인 백호를 보냅니다. 무시우 역시 광개토의 대군을 무력화할 방법은 적진에 간첩을 심어 군사들 간에 분란을 일으키게 하여 전력을 무력화한다는 계획을 짭니다. 무시우는 다시 쾌수를 민간인으로 변복하게 하여 보냅니다.


광개토의 백호, 무시우의 쾌수는 대가야 시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지혜가 뛰어난 쾌수는 백호를 보자마자 고구려 군사임을 눈치챕니다. 그가 안라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동네 건달인 척하며 시비를 겁니다. 계속 백호의 약을 올려서 결국 싸움을 하게 되나 대가야 관군들이 출동하는 바람에 싸움을 그치게 됩니다. 그 사이에 백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쾌수는 계획을 바꾸어 다시 무시우에게 돌아옵니다. 무시우는 백호를 사로잡을 계획을 세우고 쾌수에게 궁궐에 병사들을 포진하게 하여 생포할 것을 명합니다. 백호는 안라국 궁궐에 암습하여 국왕을 시해할 계획으로 경계가 허술한 틈을 타서 들어갑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쾌수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말입니다.


국왕의 침실 앞에서 칼을 빼어 든 백호. 그때 안라국 병사들이 그를 둘러쌉니다. 놀란 백호의 눈앞에 대가야 시장통에서 만났던 쾌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더욱 놀랍니다. 그제야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지만 백호는 쾌수의 실력을 재확인하기 위해 단둘이 실력을 겨루자고 제안합니다. 쾌수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연무장에서의 대결. 백호의 단검이 쾌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갑니다.


……………………………………………………


눈 깜짝할 순간이었지만 쾌수는 여유 있게 피했습니다. 무시우 군사 중에 가장 몸이 빠르기로 소문난 쾌수다운 움직임이었습니다. 백호는 이미 일합을 펼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전광석화 같은 일촌단검에 걸려들지 않은 것에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백호는 다시 쾌수 쪽으로 재빨리 돌려 몸을 낮췄습니다. 쾌수의 허점을 노려 신속히 공격하기 위함입니다. 반대로 쾌수의 표정은 여유롭습니다. 별로 긴장한 기색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백호의 공격패턴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호는 몇 번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하구나!’ 백호는 이제 마지막 공격으로 사생결단을 내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해도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공격. 대신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상대에게 걷지 못할 정도의 타격만 주어도 성공이라 할 수 있는 공멸타법. 백호는 서서히 쾌수에게 다가갔습니다.


쾌수는 백호의 마음을 이미 읽었습니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 쾌수는 몸을 날렸습니다. 몸을 돌려 자신의 방향으로 공격해오는 백호의 손을 비켜 잡고 당기면서 발을 걸었습니다. 백호는 그대로 몸이 허공에 원호를 그리며 땅에 처박혔습니다. 백호의 마지막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와아!”

쾌수의 병사들이 환호를 질렀습니다.

“이자를 포박하라!”
“예, 장군.”
“방어산으로 간다.”


방어산 산채. 무시우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백호를 찬찬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번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자 기력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녹초가 되었습니다. 적장을 마주하고 있지만 고개를 들어 쳐다볼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죽여주시오.”
“무슨 말씀이시오? 그댄 광개토왕의 직속 부하장수로 중요한 인재라고 들었소.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확산을 막을 열쇠를 쥔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제야 백호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무슨 말이오?”
“고구려 군이 되돌아가는 조건으로 그대를 인계할 생각이오.”
“제 주군께선 받아들이지 않을 거요.”
“부하를 죽음으로 내모는 주군은 없소. 당신의 주군은 반드시 그대를 살리고자 할 것이오.”


무시우는 쾌수에게 말했습니다.


“이자를 광개토가 잘 볼 수 있도록 바위산 위에 높은 기둥을 세워 묶어라.”
“예, 대장군.”


광개토 진영. 순간 병영이 어수선해지면서 한 병사가 광개토가 있는 본진으로 달려갑니다.


“폐하! 적진 방어산 꼭대기에…, 백호장군께서….”
“무슨 소란이냐? 정확히 아뢰지 못하겠느냐?”


광개토 옆에 서 있던 주작이 병사의 성급한 행동을 나무랐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광개토가 묻자 병사가 또박또박한 말로 다시 아뢰었습니다.


“조금 전에 적의 산꼭대기에 높은 나무기둥이 하나 세워졌사온데, 거기에 백호장군께서 포박된 채 매달려 있사옵니다.”
“뭐야?”


광개토는 바로 천막 밖으로 나갔습니다. 멀리 보이는 방어산 꼭대기에 자신의 손발이나 다름 없는 백호 장군이 나무기둥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6척 길이의 화살이 광개토의 발 앞에 꽂혔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적의 화살이 대왕의 발끝에 꽂히자 호위무사들이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주작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활에 힘이 장사라도 적진에서 여기까지 화살을 날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방어산 정상에서 고구려군의 진지까지는 아무리 못 잡아도 1000보가 넘는 거리. 안라국 병사 중에 이 정도의 궁력을 지닌 자가 있다면 작전을 군진의 배치를 다시 해야 할 정도입니다.


“폐하, 화살 끝에 편지가 있습니다.”


주작은 화살에 묶인 편지를 풀어 읽어보았습니다.


“백호를 돌려주는 대신 군대를 철수하라는 군요.”
“음.”


광개토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날 밤. 광개토는 주작을 불러 백호를 구출해올 것을 명령했습니다.


“백호가 잡혀 있는 이상 왜나라는 물론 가야도 모두 점령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작 장군이 백호 장군을 구출해오라.”
“존명!”


주작은 야음을 틈타 방어산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초승달 달빛마저 구름에 가렸다 벗어났다 반복하여 몸을 은폐하기에 아주 이상적이었습니다. 주작은 빠르게 산을 타고 올랐습니다.


“이보게, 정신 차리게. 오늘 밤 고구려 군사가 이 고구려 장수를 구하러 올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절벽 아래를 수시로 살펴보게.”
“우리 군사가 열 겹으로 철통경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 저 고구려 장수를 구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네.”
“허긴. 그래도 마금 장군의 특명이니 정신 바짝 차리시게.”


마금 장군은 쾌수 장군과 같은 지위의 장수입니다.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무시우 장군과 함께 자란 친구와 같은 인물이지요. 주작은 방어산 남쪽 골짜기를 타고 산을 올랐습니다. 골짜기여서 처음엔 경사가 완만해도 고개에 다다를수록 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방어산 서쪽 지형은 절벽이 많아 오르다가 적의 눈에 띄기 쉬워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주작은 절벽 아래쪽에 다다라 위로 쳐다보았습니다. 경계병들은 수시로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러다간 잠입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날이 새면 작전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주작은 깊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돌아 잠입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라국 백성들이 군진으로 드나드는 산문까지 반 시진(1시간)이 걸렸습니다. 안라국 병사 2명이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잠시 동정을 살피는데 경계병 하나가 산문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잠시 뒷간에 다녀올 테니 나 대신 경계 철저히 하게.”
“걱정 말게. 여기서 고구려 포로에게까지 가려면 두 시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설마 이곳에 별일이야 있겠는가?”
“그래도 마금 장군님의 특별지시이지 않은가?”
“알겠네, 어서 다녀나 오게.”


주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바람같이 달려가 홀로 서 있는 병사 뒤쪽으로 가서 수도를 이용해 기절시켰습니다. 그러고는 병사가 입고 있던 못을 벗겨 자신이 입었습니다. 다른 경계병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작은 재빨리 복장을 갖춰 경계병 흉내를 내었습니다.


“별일 없었나?”
“그 잠시 동안 무슨 별일이 있겠나?”
“자네 목소리가 갑자기 왜 그래?”
“쿨럭! 감기 때문인가 봐. 나도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빨리 갔다 오게.”


그길로 주작은 산채 쪽으로 향했습니다. 밤늦은 시각이지만 특별 경계 명령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병사들의 임무교대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주작에겐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어느 장교가 어딜 가느냐고 물었고 주작은 경계근무 교대하러 간다고 하면 되었습니다. 장교들은 이동하는 병사의 신분과 소속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주작은 산채로 이동하면서 안라국 병사들의 습관을 잘 살폈습니다. 만나면 누구에게나 ‘어이, 별일 없나’ 하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주작은 그러한 안라국 병사들의 습관을 적절히 활용하며 방어산 정상 백호장군이 묶여 있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백호장군을 중심으로 병사 서른 명이 겹겹이 둘러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임무 교대 핑계가 먹혀들 것 같지 않았습니다. 모두 서로 얼굴을 아는 까닭에 섣불리 나섰다가는 바로 들통나기 십상이었습니다. 1대 30. 정면돌파밖엔 방법이 없습니다. 전광석화와 같이 파고들어 백호를 묶은 밧줄을 풂과 동시에 탈출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주작은 심호흡을 크게 하였습니다. 탓! 주작의 몸은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솟구쳤습니다.


“앗! 뭐지?”


병사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병사들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가운데로 착지한 주작이 몸을 돌리면서 표창을 날렸습니다. 가까이 있는 경계병들이 하나둘 쓰러졌습니다. 그들이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주작은 백호 몸을 묶은 밧줄을 끊었습니다.


“역시 자네였군. 올 줄 알았어.”
“서둘러, 공중탈출이야!”
“좋았어!”


경계병들이 소리쳤습니다.


“적이다!”
“포로가 탈출한다!”


순간 요란한 쇳소리가 나면서 안라국 병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마금 역시 쇳소리와 동시에 바위산 정상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도망가게 둬선 안 된다. 잡아라.”


쉭! 쉭쉭! 주작은 다시 표창을 던졌습니다. 가로막고 있던 병사들이 쓰러졌습니다. 주작은 그대로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습니다. 뒤이어 백호도 몸을 날려 주작의 허리를 잡았습니다. 주작은 미리 준비한 대형보자기를 펼쳤습니다.


안라국 병사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고구려군의 탈출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저렇게 죽으려나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음을 깨닫고는 허탈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마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상천외한 탈출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사로잡았던 백호 장군을 놓치게 되자 무시우 대장군의 본진 천막에선 한숨소리에 땅이 꺼질 정도였습니다. 이제 전쟁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지간하여 화를 내지 않던 무시우도 경계 책임을 맡았던 마금을 크게 질책하였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경계하라 일렀거늘.”
“죽여주십시오. 대장군!”
“어쩔 수 없다.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존명!”


안라국 병사들은 바로 경계태세에서 방어태세로 전환해 군사들이 재배치되었습니다. 궁수들이 모두 절벽 위와 성곽 앞으로 전진배치 되었고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각종 장비들도 비치되었습니다. 무시우는 절벽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오와 열을 맞춰 전진해오는 고구려 대군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혔습니다. 지수 쪽 산 아랫마을이 까맣게 변했습니다. 고구려 병사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습니다. 저 수많은 고구려군과 싸워야 한다. 안라국 병사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승산이 없는 싸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동녘에서 빨간 해가 떠올랐습니다. 고구려 군 선봉에 광개토가 서 있었습니다. 치켜올려진 그의 칼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습니다.


“와아!”


고구려군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방어산을 향하는 고구려군의 발걸음에 흙먼지가 일어 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다. (계속)


[관련기사]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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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신라의 요청으로 고구려 광개토 군 3만 명이 안라국 정벌에 나섭니다. 광개토로선 신라의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북쪽 영토확장에 이어 남쪽으로도 정벌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마침 신라의 원군요청이 있었으니 이참에 가야 여러 나라를 치고 왜국까지 정벌할 기회가 생긴 겁니다.

안라국 방어선인 방어산 앞 지수평야에 군진을 차린 광개토는 현무가 이끄는 선발대를 야밤을 틈타 출병시킵니다. 하지만, 너무 조용한 적진의 동태를 의심한 안라국 왕자 무시우 장군은 심복 부하장수인 쾌수를 측후병으로 보냅니다. 500의 고구려 선발대를 파악한 쾌수가 불화살을 쏘아 신호를 하자 일시에 방어산 정상에서 불화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현무가 이끄는 부대가 이처럼 허무하게 궤멸되기는 처음입니다. 아수라장이 된 전장을 벗어난 현무는 홀로 군진으로 돌아옵니다. 너무 자신만만해 했던 행동을 후회하면서 말이죠.

한편 방어산 정상에선 1차 방어전 승리로 환호성이 끊이지 않습니다. ‘무시우 대장군 만세’ 하는 연호가 계속되고 병사들의 사기는 치솟습니다. 이제 2차전이 시작됩니다. 안라국과 고구려군의 2차 대결은 첩자를 통한 상대편에게 타격을 가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서로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무시우는 1차전에서 승리를 견인한 쾌수를 보내고 광개토는 용감무쌍한 백호를 보냅니다.

대가야 지역. 시장에서 쾌수는 아내에게 선물할 옥목걸이를 골라 상인과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쾌수는 등 뒤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풍기는 한 사내가 지나감을 느낍니다. 그 사내는 백호, 그 역시 쾌수 옆을 지나면서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몇 걸음을 옮기다 뒤돌아봅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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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아주 강한 기운이 두 사람의 시선을 타고 번집니다. 가운데에 이르러 두 기운이 부딪칩니다. 강한 폭발. 두 사람은 동시에 전율을 느낍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저 눈빛은 군인의 눈빛이 아닌가? 그렇다면, 고구려 군사?’ 쾌수는 본능적으로 상대를 파악했습니다. 백호 역시 타고난 무사이기 때문에 같은 부류의 인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가 눈이 마주친 사내의 내공을 한눈에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군인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쾌수는 상대가 안라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아이구, 형씨. 이 동네에서 못 보던 얼굴인데, 어디 멀리서 오셨수?
“…….”

백호는 적잖이 당황하였습니다. 사내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다가오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호라! 행색을 보아하니 농사짓는 분은 아닌 것 같고…. 장사치도 아닌 것 같고…. 어디로 가는 길이우?”
“그건 댁이 알아서 뭐하려오?”
“이곳은 누구든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소. 내가 관리하는 구역이란 말이지. 나를 잘 모르시는구만. 허허.”

백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괜히 동네 불량배와 실랑이를 벌여 좋을 일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 몰라뵈어 죄송하오. 일이 바빠 이만 가야겠소. 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인사드리겠소.”
“무슨 일로 가시는지?”

백호는 점점 귀찮아졌습니다. 하지만, 꾹 참았습니다. 대충이라도 대꾸를 해줘야 놓아줄 것 같았습니다.

“안라국에서 병사를 뽑는다 하여 지원하러 가는 길이오. 됐소?”
“와우! 군인이 되려는 거군요. 어쩐지 몸에서 확 풍기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여겼더니. 내 동생들도 거기 지원해 무시우 장군이라던가? 그 밑에 있는데. 반갑구료. 이것도 인연인데 내가 술 한 잔 사겠소.”
“아니, 됐소이다.”
“사람의 성의를 이렇게 외면해도 되는 거요? 무시우 장군에 대해 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해주겠소. 알고 들어가면 더 도움이 될 거요.”
“아, 괜찮데도요.”

백호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잖아도 급한 성미에 버럭 화를 잘 내기로 고구려 군사들에게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냥 마음 같아서는 벌써 한방에 박살을 내어버렸을 것이었습니다. 백호는 한 번 더 참기로 했습니다. 광개토대왕께서 친히 내린 명을 이런 하찮은 동네 불량배에게 휘말려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질러 미안하오.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들르겠소. 그러니 날 그냥 보내주시오.”
“그러면, 댁이 안라국 병사로서 자질이 있는지 실력을 한 번 보여주시오. 내 옷자락을 잡기만 해도 군말 없이 보내주겠소.”

쾌수는 몇 마디 섞으면서 벌써 상대의 성격까지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싸움을 벌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백호는 아무리 이 불량배가 자신만만해도 고구려 제일무사인 자신에겐 범 앞에 하룻강아지라고 여겼습니다.

“정말이오? 댁의 옷깃만 잡아도 날 보내준다는 말이?”
“어허, 이 양반 속고만 살았나? 이 옷고름에만 손이 닿으면 보내준다니까?”
“좋소. 이 주먹 한 방에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소.”

두 사람은 거리 가운데로 나와 주먹을 쥐고 서로 견제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인지 별로 긴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시장바닥에서 일어나는 싸움만큼은 놓칠 리 없는 시장사람들입니다.

백호가 먼저 공격을 했습니다. 키만큼 훌쩍 뛰어오르더니 쾌수를 향해 정권을 날렸습니다. 쾌수는 백호의 주먹이 바로 눈앞에 다다랐을 때 신속히 슬쩍 피했습니다. 백호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상대가 나가떨어지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외로 상대가 주먹을 피하자 적잖이 놀랐습니다.

‘귀신같은 놈이다. 어떻게 그 주먹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백호는 좀 전과는 달리 긴장이 되었습니다. ‘옷고름만 닿아도 진 걸로 하겠다더니 허언이 아니었어. 이런 촌구석에 어울리지 않는 놈이야.’ 백호는 쾌수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허점을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보내준다니까! 왜? 갑자기 내가 무서워졌소?”

구경꾼들이 소리쳤습니다.

“이봐, 그만 빙빙 돌고 공격해! 싸움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저 소리 들었소? 한 번 신나게 놀아볼까요?”

이번엔 쾌수가 몸을 솟구쳐 공격을 했습니다. 연속 3차 공격을 겨우 막아낸 백호는 이제 더 외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최선의 공격이 최고의 방어. 자신의 특기인 무영권무영각을 펼쳤습니다. 주먹이 보이지 않고 발이 보이지 않는 공격.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막아내지 못한 백호의 필살기였습니다.



파파박! 따닥. 구경꾼들이 일제히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백호의 공격은 쉴틈 없이 이어졌고 쾌수는 공격을 막아내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시는군!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론 내 소매 끝도 제대로 잡지 못할걸!”

쾌수는 몸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백호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열 번 공격을 받으면 한 번 공격하는 패턴으로 싸움을 이끌었습니다. 공격이 마음대로 먹혀들지 않자 백호는 점점 조급해지는 데다 화까지 났습니다.

“감히 니가 이 백호님을 화나게 했겠다. 더 이상은 봐주지 않겠다.”
“어련하시겠수. 제대로 공격이나 하고 말하면 믿겠는데.”

백호의 공격은 그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더 단순화되고 무지막지해졌습니다. 쾌수는 이런 상황을 기다린 것입니다. 전광석화. 쾌수의 주먹이 백호의 명치를 가격했습니다. 비틀거리는 백호. 쾌수는 다시 백호의 목을 향해 수도를 날렸습니다. 가까스로 피한 백호가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멈춰라!”

시장통 입구로 대가야 관군들이 몰려왔습니다. ‘이런 시끄럽게 되겠군.’ 쾌수는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운 좋은 줄 아시오. 하지만, 곧 만날 날이 올거요.”

쾌수는 몸을 날려 시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백호 역시 비틀거리며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었습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관군들이 사람들에게 다시는 싸움질을 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고 돌아갔습니다.

백호와 결판을 내지 못한 쾌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신과 싸운 고구려군사는 실력으로 보아 일반 병사가 아님을 눈치 챘습니다. 그 정도의 무예를 지닌 사람이라면 최소한 장교급 군인이고 그렇다면 그의 첩자임무도 상당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습니다. 쾌수는 고구려 군사로 잠입하는 임무를 미루기로 하고 안라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쾌수는 대가야 시장통에서 있었던 일을 무시우에게 보고했습니다. 무시우는 궁궐 경비를 강화하되 밖으로는 허술하게 보이게끔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사실을 전혀 알 리 없는 백호는 안라국 백성 행세를 하며 궁궐 주변을 관찰하였습니다. ‘전시임에도 궁궐 경비가 느슨하군.’ 백호는 이 정도라면 안라국왕을 살해하는 것이 식은 죽먹기보다 더 쉬우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백호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대신들이 하나 둘 퇴청하고 궁궐에 어둠이 내렸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보초병들은 하품을 하면서 대문 앞을 왔다갔다하였습니다. 백호는 보초병들의 교대시간을 틈타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초병교체시간이 되었습니다. 대문 앞에서 어수선한 틈을 타서 백호는 대문 옆 담장을 뛰어넘었습니다.

제 키의 두 배가 넘는 담장이지만 무예 고수인 백호에겐 문지방에 불과했습니다. 달빛 그늘진 담장을 따라 신속히 움직였습니다. 백호는 안라국왕의 숙소에까지 다다랐습니다. ‘이거 너무 쉬운데! 내일 아침이면 안라국 발칵 뒤집히겠지.’ 광개토군의 전략은 국왕의 사망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방어산 기지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백호는 살금살금 왕의 숙소로 향하면서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왕의 숙소 앞에는 네 명의 경비병이 서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눈 깜짝할 사이에 처치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백호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습니다. 비호처럼 몸을 날린 백호는 이어지는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촹!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십 명이나 되는 경비병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곧 만날 거라고 했지? 날 기억하겠는가?”
“아니, 넌?”
“하하하. 기억을 하는군. 백호라고 했나? 듣자하니 광개토의 오른팔이라 할 만큼 훌륭한 장수라더니 고구려군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겠어.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니 말이야. 이 전쟁 상황에 적국의 국왕이 궁궐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인가?”

쾌수의 이죽거리는 말에 백호는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가야에서 그런 일을 겪었으면 이런 상황이 될 거란 걸 눈치 챘어야 했습니다. 백호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의 일까지 말입니다. 자신이 생포되면 광개토대왕의 전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것까지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대단하오. 당신은 무예뿐만 아니라 지혜도 갖추었군요. 당신에게 죽는 것을 행운이라 여기겠소. 이름이라도 알려주시오.”

백호는 쾌수에게 손을 모아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말까지 존대를 하며 이름을 묻자 쾌수 역시 말을 높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 무시우 장군의 살수부대장 쾌수라 하오. 그대에게 살길을 알려주겠소.”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호의 단검이 사방팔방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순순히 포박을 받으려나 싶었는데 갑자기 움직이자 모두 뒤로 주춤 물러났습니다.

“단둘이 한 번 더 겨뤄봤으면 하오만. 싫으면 모두 한꺼번에 덤벼도 좋고. 어차피 살아서 나갈 생각은 없으니.”

쾌수는 백호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칼도 백호와 같은 단검으로 바꾸어 들고 자세를 잡았습니다. 쾌수는 국왕의 숙소에서 대결을 펼친다는 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궁궐 연무장에서 결판을 보자고 하였습니다. 백호 역시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쾌수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좋소.”

두 사람은 연무장 가운데 서서 다시 실력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연무장 가장자리엔 궁궐 경비병들이 빙 둘러섰습니다.

“쾌수 장군의 실력을 오랜만에 보겠는걸!”
“상대도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천하제일 쾌수장군에겐 못 당할 거야.”

경비병들이 숙덕거렸습니다. 그 숙덕거림이 백호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전혀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백호는 발끝에 힘을 주었습니다.

“얍!”

백호의 단검이 쏜살같이 쾌수의 목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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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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