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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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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전쟁의 신()(현장을 찾아서)

함안 군북면 방어산 마애삼존불과 진주 지수면 방어산 정상


이번 5회에 걸쳐 연재된 전쟁의 신() 전설텔링은 방어산(防禦山)이라는 산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에 그치지 않고 더 역사적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가야시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았습니다. 가야와 왜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했던 사실, 또한 신라가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했던 사실, 또 그 시점이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였다는 여러 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몄던 것이지요.


방어산이라는 이름은 함안군과 진주시에서 소개하는 전설에서 그 유래가 잘 나타납니다. 진주 지수면 내고장 유래에 보면, ‘방어산은 이름 그대로 병란과 왜구를 무찌르고 방어했다는 산’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산 정상에는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묵신우 장군의 용맹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하면서 방어산에 관한 전설이 소개됩니다.


“장군의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달려 절벽과 골짜기를 날아다니면서 300근 짜리 활을 잡아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중에 병란이 일어나 적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장군은 3000명의 군사와 중 혜성의 도움을 받아 방어산 봉우리에 성을 쌓고 적과 맞섰다. 적은 방어산 맞은 편 봉우리에 진을 치고 공격해왔으나 장군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적이 지칠 무렵에 화전(불화살)으로 공격, 일시에 적을 무찔렀다. 장군의 이러한 지략을 본 적은 ‘이는 필시 신병(神兵)의 병술이다’며 도주하고 말았다.”


과연 방어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습니다. 2편 연재하던 시기에 방어산을 올랐습니다. 방어산은 진주 지수에서 오르는 길도 있으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무시우(묵신우) 장군이 안라국, 즉 아라가야 사람이므로 함안에서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방어산을 쉽게 오르는 길을 인터넷이나 위성지도를 통해 관찰해보니 함안 군북면 마애사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수월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보물 제159호인 마애삼존불도 구경할 수 있고요.


마애사 주차장은 차량 100대 이상 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컸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마애쉼터가 있는데 그 옆에 방어산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방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아주 보기 좋게 그려놓았습니다. 이 안내판엔 방어산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소개하겠습니다.



“방어산은 괘방산(451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 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웅산이라고도 불렸으며, 정상에 서면 아득히 지리산이 보이고, 동남쪽에는 여항산이 보인다. (…) 산의 7부 능선에는 보물 제159호로 지정된 높이 5미터의 거대한 방어산 마애불이 있으며, 산은 높지 않으나 군데군데 암반이 많고 능선이 제법 굴곡되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산행은 방어산만 오르는 코스와 괘방산을 함께 오르는 코스가 있다. 방어산만 오르려면 하림리 낙동마을 뒤쪽에서 시작하여 마애사, 방어산 마애불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군북면 박곡리 남강휴게소로 하산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른 코스는 하림마을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정상에서 괘방산까지 산행하려면 방어산 고개와 전망대, 괘방산을 거쳐 어석재로 하산하면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은 큰 바위로 되어 있어 장군대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곳에서 50미터 아래와 200미터 아래 지점에는 마당바위와 흔들바위가 각각 있다. 흔들바위는 높이 8미터, 6.5미터의 끄덕바위라고도 불리며 기울어진 쪽으로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마애사 하나만으로도 사찰 안 여기저기 볼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보전 법당과 산령각, 종각, 포대화상이 조각된 약수, 그리고 쌀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있는 청년 상이 있습니다. 다시 이곳으로 하산한다면 돌아오는 길에 봐도 되지만 아니라면 약간 시간을 내어 둘러보는 것도 좋겠네요.


마애사에서 방어산으로 오르는 산길에 돌탑이 특히 눈에 띄는데,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든 것들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산인들이 하나씩 소원을 빌며 쌓아 올린 것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이에요. 누군가 숙달된 기술이 있는 사람이 쌓은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마애사를 갓 벗어난 등산로는 걷기 편한 길입니다. 낙엽이 등산로 위를 포장해놓아 사박사박하니 걷기도 좋았습니다. 길가에나 바위 곳곳에 작은 돌탑을 쌓아 올린 정성들이 보입니다. 어떤 것은 아주 기울어진 바위 위에 중심을 잘 잡아 쌓아 올린 것도 있더군요. 하나하나 쌓을 때마다 공을 들인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보물 159호 마애 약사삼존불 성불하소서 200m’라고 적힌 나무말뚝이 보입니다. 200미터면 금방이겠다 생각하고 걸음을 옮깁니다. 유선형의 예쁜 돌탑을 또 만납니다. 신선 서넛이 앉아 바둑 두며 훈수도 뒀을 법한 평바위가 나타납니다. 잠시 신선처럼 앉아서 물을 한 잔 마십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마애약사삼존불이 있습니다. 119조난위치 표지판이 현위치가 마애불임을 알려줍니다. 길따라 올려다보니 뭔가 호기심을 끄는 돌탑이 보입니다. 돌을 활용해 용을 만들어놓았군요. 용머리는 조각을 해서 달았습니다. 명판을 보니, ‘용탑’이라는 제목 아래에 ‘河己失音 官頭登可’(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 열심히 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박제연, 김세희 두 사람의 이름이 있는데 아마도 이 용탑을 만든 사람들이겠죠.


용탑에서 몇 걸음 안 올라가서 보물 159호 마애삼존불이 나타납니다. 큰 바위 벽에 음각으로 그려놓은 것인데 얼핏 보아서는 그림의 윤곽을 잘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방어산 절벽의 바위를 다듬어 선으로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약사삼존불입상이다. 아매불로서는 아주 드물게 만들어진 연대(801)를 새겨, 통일신라 불상조각사를 연구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가운데의 본존은 왼손에 들고 있는 약그릇으로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는데, 얼굴이 약간 길고 큰 몸에 비해 어깨가 좁으며 힘없이 표현된 몸은 긴장감이 없다. 100여 년 전 불상의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표현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본존을 향해 자연스럽게 서 있는데, 왼쪽은 일광보살로 남성적인 강한 인상이고, 오른쪽은 월광보살로 눈썹 사이에 달무늬가 새겨져 여성적이다.”


삼존불 앞으로 쭉 가면 비로자나불이 나옵니다. 웅장한 바위 벽 앞에 금동으로 조성됐습니다. 바위들의 모습이 오묘하네요. 통천문 형태의 바위가 있는데 여기엔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보입니다. 문도 있고 장판도 깔렸네요. 게다가 취사를 하였는지 가스통도 있습니다.





돌탑 위에 모신 비로자나불 앞에 제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활용하는 공간인 듯합니다. 방어산으로 가려면 다시 마애불로 돌아와야 합니다. 마애불 오른 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고개가 나옵니다. 이정표엔 방어산 1.25㎞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힘이 절로 납니다. 그런데 제법 많이 걸었다 싶은데, 마애사에서 겨우 550미터밖에 오지 않았군요. 이제부터 등산로엔 바위도 있고 돌부리가 많은 산길입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산의 상층부라 경치도 좋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낮은 산들이 맥을 이루며 누워있습니다. 그 위엔 구름이 제법 두껍게 덮여 있군요.


등산로 첫째 헬기장을 만났습니다. 방어산 0.8, 어석재 5.1㎞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습니다. 마애불에서 340미터 올라온 거리입니다. 이제 능선따라 걷는 길입니다. 산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기가 있는 등산코스여서 그런지 각종 산악회에서 왔다는 표시를 해놓았네요. 종종 이런 리본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등산로가 분명하지 않을 때나 길이 헷갈릴 때 말이죠. 정상 400미터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점점 걸음에 힘이 들어갑니다.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니 줄을 타고 바위를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여기를 올라서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방이 탁 틔어 속까지 후련해지는 듯합니다. 맞은 편 비탈만 오르면 바로 방어산 정상입니다.


방어산 정상은 멀리서 보면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장군대라고 부르지요. 물론 정상에는 나무도 자라고 풀도 자랍니다. 지나가는 길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니 아찔합니다. 이 정상에도 방어산의 유래와 등산코스가 그려진 안내판이 있습니다. 해발 530m를 나타낸 방어산 표지석도 있고요.







청명한 날씨라면 멀리 지리산도 보일 법 하군요. 정상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북쪽으로 남강이 흐릅니다. 저 강은 얼마 가지 않아 남지에서 낙동강과 만납니다. 강 상류 쪽, 지수 쪽으로 평야들이 많이 보입니다.


서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전설텔링 이야기에서 광개토군의 공격루트로 설정했던 관음사 코스 등산로도 발아래 보입니다. 관음사는 보이지 않고 바로 아래에 있는 소류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쪽 방향은 절벽이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내려다보기 겁이 납니다.




방어산 정상에 올라서니 이야기 속 안라국 병사들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지형이라면 서쪽의 적을 방어하기엔 천애의 요새란 생각도 듭니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 산성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등산로를 이탈해 찾으면 어딘가 있지 싶긴 한데 이번 글은 전설 현장을 확인하는 수준이라기보다 묵신우 장군 전설이 스민 방어산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다녀온 이야기로 들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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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전쟁의 신()(5)

함안 방어산 묵신우 장군에 얽힌 전설


(지난줄거리) 신라의 요청으로 아라가야인 안라국을 토벌하기 위해 남하한 광개토왕의 군사 5만 명은 안라국 서쪽 요새인 방어산을 눈앞에 두고 지수평야에 군진을 칩니다. 항복보다는 항거를 선택한 안라국왕은 아들인 무시우 대장군에게 방어의 책임을 맡기고 방어산 일대에 수비를 강화합니다.


광개토군의 첫 공격은 무시우의 장수 중에 가장 몸이 날랜 쾌수의 정탐에 의해 500명이나 되는 군사가 불화살에 맞아 전멸하게 되고 작전에 실패한 현무는 주군 광개토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광개토의 두 번째 작전은 백호를 안라국에 잠입시켜 국왕을 살해하고 내분을 일으키게 하여 정복하는 방법입니다.


같은 시각, 무시우 역시 쾌수를 시켜 고구려군으로 위장하여 내분을 조장, 고구려군의 전력을 무력화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쾌수와 백호는 대가야 땅 시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백호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 챈 쾌수가 백호에게 시비를 걸어 안라국으로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러나 대가야 병사들이 현장에 출동하는 바람에 백호를 놓칩니다. 쾌수는 하는 수 없이 안라국으로 돌아와 무시우에게 상황을 보고합니다.


쾌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하는 백호는 기회를 틈타 안라국왕의 궁궐로 잠입합니다. 국왕의 침실 앞에서 백호는 쾌수의 등장에 깜짝 놀라고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백호는 쾌수의 실력을 한 번 보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무예를 겨뤄보고 싶어 도전장을 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실력을 겨우지만 백호의 참패로 끝납니다.


방어산 정상 높은 기둥에 묶인 백호의 모습을 본 광개토는 주작을 불러 구출작전을 세웁니다. 주작은 안라국으로 들어가 안라국 병사로 위장합니다. 마침내 산채가 있는 방어산 정상까지 잠입에 성공한 주작은 최종 방어선을 뚫고 백호를 묶은 밧줄을 끊습니다. 그러고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주작, 그 뒤를 따라 뛰어 주작의 허리를 잡은 백호, 두 사람은 대형 보자기 낙하산에 의지해 본진으로 돌아옵니다.


광개토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집니다. 방어산 아래쪽은 물샐틈없는 밀도의 고구려 군사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방어산 기지를 지키고 있는 안라국 군사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


“서쪽 골짜기를 사수하라!”

“북쪽 능선이 허술하다. 수비를 강화하라!”


안라국 병사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자! 오늘은 삼천의 병사가 삼만 대군을 무찌르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적을 맞이하기 바란다.!”

“와아!”


무시우가 바위 위에서 고함을 치자 안라국 병사들은 더욱 큰 목소리로 전의를 다졌습니다.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궁수들은 모두 불화살 발사 준비를 하라!”


궁수부대장 비화가 무시우 옆에서 소리쳤습니다. 비화는 고구려 군사들에게 가장 공격하기 좋은 지점까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동작 그만!”


광개토의 보병부대 사령관인 청룡이 명령하자 대군의 발소리가 뚝 멈췄습니다. 일시에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방패 준비!”


청룡의 명이 떨어지자 고구려군은 모두 일제히 방패를 머리 위에 올렸습니다. 방어산 위에 있던 안라국 병사들은 이러한 고구려군의 카드섹션을 하는 듯 모습에 한편으론 놀라기도 하면서 불화살 공격이 효과적이지 못할 것 같아 걱정도 되었습니다.


안라국 병사들은 무시우 장군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무시우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입니다. 무시우는 비화에게 신호를 하였습니다.


“모두 화살 끝에 기름주머니를 달아라!”


무시우와 비화는 고구려군이 방패를 이용해 불화살을 막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각종 식물에서 채취한 기름을 충격에 약한 주머니에 담아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 기름주머니는 화살이 목표물에 꽂히면 그 충격으로 터지게 되고 그와 함께 바로 불이 옮겨 붙어 더 큰 불로 번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전진!”


청룡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패를 머리에 얹은 고구려 병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 발소리도 딱딱 맞아떨어졌습니다. 5만 대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안라국 병사들은 공격을 기다리면서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고구려 군사들 대단하군!”

“무슨 소리야! 우릴 침략하는 적군이야. 한 놈도 빠짐없이 이곳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야 우리가 사는 거라구!”

“아, 알았어. 그…래도 멋지지 않냐?”

“어허, 정말 이 친구.”


그때 비화의 손이 올랐습니다. 안라국 병사들은 일제히 화살 끝에 불을 붙여 고구려군을 향해 쏘았습니다. 방패 사이로 불화살이 날아오는 그 모습을 본 고구려 병사 중 담이 약한 자는 그냥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기도 하였습니다.


“불화살이 날아온다. 모두 방패를 빈틈없이 붙여라!”


고구려군의 방패들이 일제히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형 융단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었습니다. 이 광경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도 잠시 후면 불지옥 속에서 이글거리는 한낱 장작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고구려 병사들은 방패 위로 떨어지는 화살의 촉감을 느꼈습니다. 광개토와 청룡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완벽한 작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들리는 병사들의 비명. 광개토와 청룡의 눈이 더 커졌습니다.


“이럴 수가!”


광개토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광개토는 급히 청룡에게 후퇴를 명령했습니다.


“후퇴하라!”


하지만, 전진하던 병사들이 갑자기 후퇴하기란 쉽지 않은 일. 곳곳에서 병사들이 넘어지고 아군의 발에 짓밟히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불화살에 기름을 달아 공격할 줄이야. 적장 무시우의 전술이 신묘하구나!”


광개토는 아군의 피해에 속이 쓰리긴 하지만 자신의 전술을 간파하고 그에 능가하는 전술을 펼치는 무시우의 병법에 경의를 표할 정도로 탄복했습니다.


1차 공격에 실패하고 물러난 광개토군은 두 시진이 지난 후에 다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는 궁수부대를 앞세워 역으로 화공을 펼친다는 계획입니다. 방어산 자락에 있는 모든 나무를 불태워 무시우군이 불과 그을음에 고통을 받게 하고 이와 더불어 공격선을 확보하려는 전술입니다.


방어산 정상 바위 위에서 고구려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무시우는 광개토의 전술을 간파하고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습니다.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 산 아래에서부터 불을 질러 타오르게 하면 방어산 기지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무시우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구려 궁수부대가 점점 가까워 오자 무시우는 바위 끝에 우뚝 서서 큰 날개를 펼쳤습니다. 한 번 크게 날개를 펄럭이자 무시우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구려 병사들에게로 날아갔습니다.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본 고구려 병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1(전설텔링)20150106전쟁의신5


“아니,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날아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안라국에 인간새가 있다더니 사실이었구만.”


광개토 역시 무시우의 이런 보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냉철하기로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광개토왕입니다. 이 순간이 무시우를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요.


“궁수는 일제히 적장을 향해 화살을 퍼부어라!”


무시우는 어느새 고구려 궁수들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고구려 궁수들이 쏜 화살이 까맣게 밀려왔습니다. 무시우는 다시 날개를 힘차게 퍼덕여 몸을 뒤로 뺐습니다. 화살들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무시우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화살통에서 불이 붙은 화살 다섯 개를 꺼내 걸고 시위를 당겼습니다. 불화살은 그대로 고구려 궁수들을 쓰러트렸습니다.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본 고구려 궁수들은 기겁하여 화살을 쏠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궁수는 총공격하라!”


청룡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그제야 고구려 궁수들은 다시 화살을 장전하고 무시우를 향했습니다. 무시우는 계속 불화살을 쏘았고 방어산에서도 안라국 궁수들이 고구려군을 향해 화살을 쏘았습니다. 고구려 궁수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무시우가 아무리 쓰러트려도 화살공격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공방이 두 시진(4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젠 무시우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무시우의 손에 쓰러진 고구려군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끝없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느라 무시우도 이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잠시 방심한 사이, 고구려군의 화살 하나가 날갯죽지에 박혔습니다.


그러나 무시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고구려군에게 화살을 퍼부었습니다. 화살이 떨어지면 방어산으로 돌아가 화살을 챙겨 바로 날아와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광개토는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이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후퇴한다.”

“존명!”


옆에 있던 청룡이 광개토의 명을 받아 전군 후퇴를 명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방어산 기지에선 환호가 이어졌습니다. 모두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습니다. 몇몇 병사들은 울먹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광개토는 안라국 정벌을 포기하고 군사를 돌렸습니다. 5만 명이었던 고구려군은 4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광개토는 소수의 병력으로 자신의 대군에 맞선 무시우의 용맹과 지혜를 높이 샀습니다. 무시우 장군 같은 군인이 있는 안라국이 부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구려 대군이 물러났고 안라국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안라국 사람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자녀들과 함께 방어산을 오르며 무시우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시우 대장군은 말이야, 아주 적은 군사로 5만이 넘는 고구려 군사를 물리치고 우리 아라가야를 지킨 훌륭하신 분인데….” ()


[관련기사]


(전설텔링)전쟁의 신()(1)

(전설텔링)전쟁의 신()(2)

(전설텔링)전쟁의 신()(3)

(전설텔링)전쟁의 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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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스무산프로젝트]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에 댓글을 달다가 언뜻 떠오른 표현인데 괜찮네. 내가 짓고 내가 평가하고 장구치고 북치고. 뭐 그런 느낌은 있는데 어쨌든 해가 바뀌면서 일출보러 구산면 심리바닷가까지 새벽시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을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일단 시작이 좋다. 


90킬로를 능가하는 몸무게를 이젠 방치할 수 없다는 다짐도 자연스레 등산으로 이어졌다. 올해 꼭 스무개의 산을 탈 것이다. 원래 산을 탈 계획은 작년 12월 초쯤 세웠었다. 아내와 함께 매주 토요일 함께 하기로 하였으나 계획을 세운지 일주일만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바로 깨달았다.


아내는 계속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뤘고 나역시 미루다가 애초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산은 무조건 혼자 간다. 그렇게 계획을 수정하고 1월 4일 혼자 산을 오르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좋았다. 이런저런 생각도 할 수 있어 괜찮고.


팔용동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천주암에 내렸다. 천주암 정류소에서 등산로로 들어설 때 천주산 등산로 안내도가 보인다. 최근 새로 만든 것 같다. 깔끔하다.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이 그려져 있다. 몇 년전부터 둘레길 한 번 가보자고 마음만 먹기로 스무번은 더 되었지 싶다.



지도만 보면 정상까지 금방 올라갈 듯하다. 이번에는 올라갔던 길로 내려오지 않은 것이라고 다짐한다.



몇 걸음 오르다 고개를 드니 천주산 동편 봉우리에 세워진 팔각정이 눈에 들어온다. 망원렌즈로 갈아끼워 셔터를 누르니 선명하게 들어온다. 저곳은 아마도 대여섯 번은 갔지 싶다. 천주산 정상까지 힘들다 싶으면 그냥 팔각정에서 만족하곤 했으니.



천주암. 독경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향을 싼 종이엔 향내가 나듯 독경소리가 공기에 스며들어 가슴에 들어오니 은근히 불심이 생기기도 한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잠깐 합장을 한다.



천주암에서 만남의 광장으로 향하는 등산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계단으로 오르고 싶은 사람은 계단으로 계단이 싫은 사람은 옆길로 오르면 된다.



지압시설이 끝나는 지점에 전에 없던 이정표가 있다. 둘레길이 조성되고서다. 왼쪽으로 가면 소계동 석불암으로 향하고 오른 쪽으로 가면 굴현고개다. 현위치는 천주암갈림길. 나는 계속 위로 향한다. 자주 걷던 길이라 익숙해 그런지 힘들거나 그렇지는 않다.



너덜겅이 있었네. 이 길을 그렇게도 많이 오르내렸는데 앞만 보고 걸어서 그런지 카메라를 손에 쥐고 걷다 보니 이제야 발견한다. 



약수터도 정비가 되었다. 나무데크를 깔았다. 한동안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줄기가 굵다. 물맛 역시 좋다. 잠시 목을 축이고 걸음을 옮긴다.



만남의 광장까지 300미터, 천주산 정상까지는 1.8킬로 남았다. 전설텔링 현장을 찾아서 취재하면서 느끼고 몸이 익숙해진 바에 따르면 이 정도의 거리는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계단 나무 버팀목이 기울게 박혔다. 안정적이다. 수직으로 박아 무너진 계단을 많이 본 탓에 이렇게 공사한 담당자의 지혜가 엿보인다.



만남의 광장. 달천계곡 쪽에서 올라온 차량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다. 겨울철 잡목제거 작업을 위해 인부들이 타고 올라온 차인 모양이다. 단순 등산 차량은 예까지 올라올 수가 없다. 달천계곡 입구에서 차량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천주산 정상 가는 길. 역시 잘 정비되어 있다. 정상까지 1.5킬로미터 남았다.



첫고개. 헬기장에 당도하니 멀지 않은 거리에 두번째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이제부터 길은 편하다. 걸음이 편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하다. 주변 경치도 아주 좋다.



하늘이 시리도록 맑다. 먼데 산들이 선명하다. 구름도 새털같다.



이런 등산로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 토요일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 오간다.



정상에 있는 쉼터가 머지않았다. 두 번째 헬기장 봉우리에서 천주산 정상의 팔각정을 망원렌즈로 당겨봤다. 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정상에 올라서지 않아도 주변 경관이 좋다. 남쪽으로 돝섬이 보인다.



그리고 마창대교.



돝섬에서 약간 시야를 당겨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팔용산이 보이고 산봉우리 사이로 봉암수원지도 보인다.



북동 방향 멀리 주남저수지가 있다.



정상을 향해 걷다 보면 북면이 훤히 보인다. 올초까지만 해도 살던 집이 보인다. 아니... 집은 보이지 않는다. 집을 산 사람이 건물을 밀고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8개월 만에 처음 본다. 집은 사라졌지만 저 동네에서 10년을 살았으니 다시 보는 감회가 묘하다.



정상이다. 앞으로 몇 걸음. 정말 날씨 좋다.



정상이어서 그런지 이리 저리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복잡하다.



해발 638.8미터. 이 바위 머리까지의 높이일 것이다. 천주산 정상 봉우리 이름은 용지봉이다. 용 용자에 못 지를 쓴다. 여기에 무슨 연못이 있다고.



정상에서 360도 빙 둘러 본다. 창원대로가 불모산 쪽으로 길게 뻗었다.



바로 앞에 안산이 있고 그 너머로 내서 아파트단지의 아파트들이 조금 눈에 들어온다. 겹겹이 산맥들이 이어져 있고 새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에 색칠을 한듯 하다. 한폭의 풍경화다.



마산 도심이다. 햇빛에 반사된 바다가 유난히 반짝인다.



창원도심. 저 많은 집들... 빽빽한 삶이 있는 동네다.



거가대교. 대죽도에서 저도로 이어지는 다리다.  오른쪽 저도에선 또 거제도로 이어지는 다리가 살짝 보인다.



날이 맑아 그런지 멀리 지리산이 선명하다.



하산길. 되돌아보니 구름이 억새풀, 소나무, 돌탑 등과 어울려 보기 좋다. 까마귀의 날갯짓도 힘차다.



하산 시작길에 돌탑이 있다. 



산 허리에 둘레길이 보인다. 올해 안에 꼭 걸어봐야지.



진달래 꽃눈이 움트기 시작했다.



합성동 제2금강산으로 가는 길과 소계체육공원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났다.



소계동 계곡길로 내려오다 보면 폭포를 볼 수 있다. 가물어서 물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는 않지만 그동안의 추위에 길게 고드름이 맺혔다.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녹은 얼음들이 뭉터기로 떨어지기도 한다.



소계동 등산로 입구 큰 돌탑이 여러 개 있다. 체육시설도 제법 많다.



여기까지 운동하러 와서 몸을 풀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석불사. 이 골짜기 이름이 법당골인 게 이 절 때문일 수도 있겠다.



소계체육공원 위에 에어건이 설체되어 있다. 등산화를 털고 이번 등산을 마무리했다. 남해고속도로 굴다리 앞 누비자 터미널에서 자건거 하나를 뽑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 10시 반에 출발하여 오후 3시 반에 내려왔으니 총 5시간 걸렸다. 정상에서 체류한 시간이 1시간 넘었으니 총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잡으면 되겠다.


첫 프로젝트는 이렇게 가뿐하게 마무리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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