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찾아서]이수정 낙화 멍하니 바라보면서
게을러지는 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유혹이어서 한순간만 긴장을 놓치면 빠져들게 마련이다. 물론 변명을 덧붙이자면, 다른 일로 바빠서 내기사 따로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초파일 행사 기사를 이제서야 내블로그에 옮기는 것이야 잘못도 아니지만 스스로 지키려했던 일종의 규칙을 외면한 거여서 일단 무릎부터 꼬집는다.
기사에는 그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싣기 어울리지 않아 표현하지 못했는데, 이날 사진을 찍느라고 제대로 낙화를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순간이나마 물끄러미 떨어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금세 전원이 꺼져버리던 할머니 생각이 오랫동안 일었다.
언젠가 울 할매 이야기를 남에게 발표를 하든 하지 않든 쓰려고 했던 생각을 줄곧 지니고 있었는데.. 어찌 불꽃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4년 전 돌아가신 울 할매 얼굴이다. 할매 얼굴은 돌아가시고 한동안 생각도 안 날만큼 희미했다. 사진을 봐도 돌아서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차츰 세월이 지나고 잊어먹어야 될 시간이 되자 오히려 또렷이 기억 안으로 들어온다. 함안, 할매 고향이 함안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수정에서 떨어지는 불꽃 사이로 아련히 할매 억수로 순진하게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회사 갓 입사하고 소답동에서 자취할 때 둘이서 가물치 한 마리 고아먹느라고 우당탕탕 난리법석을 떨던 1991년 어느 여름날도 영화처럼 보인다. 그리 짧은 시간인데 참 많은 기억이 오랜만에 후련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이제야 제대로 재채기를 한 느낌이다.
제24회 함안읍성 낙화놀이 5월 25일 함안 무진정 앞 이수정서 개최
‘돌돌돌 가랑잎을 밀치고/어느덧 실개울이 흐르기 시작한…’으로 시작하는 유치환의 시 ‘낙화’. 그런데 한자로 ‘落花’다. ‘그대가 일하는 곳 멀리 자전거를 세우고/그대를 훔쳐보는 일처럼…’ 이병률의 이 시도 ‘落花’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이형기의 이 시도 역시 ‘落花’다.
무진정 옆 특설무대에선 함안국악관현악단의 연주와 가수들의 공연이 펼쳐져 관람객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낙화(落火)를 다룬 시는 아직 없는 모양이다. 낙화놀이가 조선시대 중엽부터 행해졌던 놀이임을 고려한다면, 낙화에 얽힌 수많은 사연이 있을 법도 한데, 시인들은 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낙화놀이는 여러 숯가루 주머니에서 불꽃이 한꺼번에 쏴~ 하고 뿌려지면서 감동을 자아내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 예부터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진 놀이다. 그 가운데 함안읍성 낙화놀이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계승과 발전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이수정 연못에 비친 관람객들과 줄에 매달린 낙화봉.
함안박물관에 낙화놀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참고삼아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낙화놀이는 매년 4월 초파일을 전후하여 함안면 괴항마을 입구에 있는 무진정 연못에서 열리는 고유 민속놀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중엽 한강 정구(鄭逑) 군수가 군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낙화놀이는 참나무 숯가루로 만든 낙화 타래에 불을 붙여 날리는 일종의 불꽃놀이다. 낙화놀이에 사용하는 낙화 타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오른 참나무를 흙 속에 파묻은 다음 일주일간 불을 지펴 숯을 만든다.
그리고 참나무 숯을 가루가 되도록 곱게 갈아서 광목과 한지에 넣고 만 다음, 두 개를 서로 꼬아 하나의 낙화 타래로 만든다. 이렇게 만든 낙화 타래 2000여 개를 연못 위의 줄에 엮어 달고 불을 붙이면, 약 2~3시간 동안 불을 머금은 숯가루가 꽃가루처럼 휘날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고유의 민속놀이로 이어져 내려오던 낙화놀이는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중단되었다가 1985년에 복원되었으며 액운을 태우고 안녕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매년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낙화놀이가 행해지는 지역은 대략 스무 곳 정도인데 경북 안동, 경기 여주, 충북 청주, 전북 무주, 전남 화순 등지의 불꽃놀이도 많이 알려졌다. 경남 도내에선 함안과 마산 진동에서 행해지고 있다.
함안읍성 낙화놀이는 1985년 함안문화원의 후원으로 괴항마을 주민이 주관하여 ‘이수정낙화놀이’로 출발했다. 그것이 9회까지 이어졌다. 2000년부터는 ‘이수정낙화놀이보존쥐원회’가 창립되어 10회와 11회 행사가 진행됐고 2006년에는 무형문화재 심사를 위한 시연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다 2008년 명칭이 ‘함안읍성 낙화놀이’로 바뀌고 그해 10월 ‘함안낙화놀이’라는 이름으로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이와 함께 김현규 씨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됐으며 2013년 8월엔 낙화놀이용 낙화봉 제조방법이 특허로 등록되기에 이르렀다.
오후 6시 20분, 이수정 가운데 영송루에서 고유제가 진행되고 있다.
함안읍성 낙화놀이보존위원회(위원장 손인배)는 더 나아가 함안의 이 낙화놀이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승격되기를 바라고 있다. 5월 25일(음력 사월초파일) 오후 개최된 행사 개회식에서 손인배 위원장이 국가지정 문화재 추진 상황을 밝혔고 이날 참석한 안홍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이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함안읍성 낙화놀이보존위원회는 이러한 목적으로 올해엔 지난 5월 초 개최된 함안아라제 때 제1회 함안낙화놀이 시연 행사를 마련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낙화놀이는 다른 지역의 사례를 보면, 대개 정월대보름과 사월초파일, 그리고 단옷날에 행해진다.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이유는 낙화놀이가 질병과 재액을 쫓는 벽사의 의미가 담겼기 때문인데 함안의 경우는 부처님오신날에 연다. 이는 함안에서는 초파일 관등놀이와 함께 놀이가 행해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낙화봉에 불을 붙이고 있다.
함안 이수정에서의 낙화놀이는 가운데에 있는 영송루를 중심으로 연못 둘레 가장자리를 잇는 줄에다 낙화봉을 설치하는데, 보존회 측에서 여러 개의 뗏목을 타고 횃불로 불을 붙이는 것도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낙화봉에서 불꽃들이 제각각 조금씩 뿌려지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일제히 ‘쏴~’하고 불꽃을 날릴 때면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낙화놀이는 다른 말로 줄불놀이라고도 한다. 함안읍성 낙화놀이는 이렇게 불꽃이 바람에 흩날릴 때 이수정 옆 특설무대에서 풍악이 울려 더 즐겁다.
이수정 연못 위로 뿌려지는 불꽃과 특설무대 주변에 설치된 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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