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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현장을 찾아서)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과 사근역이 있었던 수동초교 답사



‘금석같이 곧은 마음 갈아도 닳지 않고/낭군이 근심 끼쳤으나 무덤은 같이 썼네/능히 만세에 윤리를 세우게 하였고/또 농사철에는 비가 되어 내렸네’.


조선 중기, 대략 선조가 집권하던 시절 두각을 나타내며 벼슬을 했던 태촌 고상안이 쓴 이 시는 그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월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쓴 시입니다. 칠언절구로 된 시이지요. 이 시는 그가 남긴 ‘태촌집’ 5권 ‘효빈잡록’에 실려 있는데 ‘만덕총’과 비교해 지은 시라고 합니다.


‘만덕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시집가는 대로 죽어버려 이 삶을 보내니/아홉 번 과부되어 얼마나 상심했나/산허리에 열무덤 나란히 놓여 있으니/천추만세 지하에서 월명에게 부끄러우리’. 역시 칠언절구의 시입니다.


월명총에 얽힌 시는 이뿐이 아닙니다. 1473년 쯤, 그러니까 조선 성종시대에 함양군수를 지낸 점필재 김종직 역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관련 이야기를 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김종직 역시 칠언절구로 월명총을 노래했군요. ‘무덤 위 무성하게 자란 풀 나뭇가지에 다다라/길손의 구성진 노래 화산 들에 아련하네/요즘 같이 달 어두운 밤 늑대소리 처량하니/이에 대한 응답인가 낭자의 혼 꽃나비 되어 날으네’.


또 김종직의 문하에 있던 유호인 역시 월명총에 대해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는 거창현감과 합천군수를 지냈습니다. 그 역시 칠언절구로 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월명총이라 에오라지 밝은 더 달이여/해마다 한식을 맞아 보니 묵은 풀이 무성하구나/어젯밤 떠도는 원혼의 옥노리개가 차디차니/동풍이 세차게 불어와 두견화가 다 지는구나’.


고려 말 아니면 조선 초의 한낱 역녀에 불과했던 월명이 이렇게도 유명인사가 된 데엔 조선 유림의 거목 점필재 김종직에 이은 함양이 낳은 문사 유호인, 그리고 태촌 고상안으로 이어지는 ‘찬가’ 때문일 것입니다.


태촌집에 실린 전설은 1편에 소개하였으니 생략키로 하고요, 월명총과 월명이 근무했던 사근역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월명마을.




월명총이 있는 월명산.


월명총은 지리적으로 함양읍 백천리에 있습니다. 수동면과 경계지점에 있지요. 수동삼거리에서 함양정신요양원으로 가다 보면 바로 그 뒤에 나지막하지만 우뚝 솟은 산이 뒷배경으로 서있는데 이것이 월명산입니다. 원래는 수지산, 수지봉으로 불렸는데 월명총이 있다고 해서 월명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 산 아래에 그렇게 크지 않은 마을이 있는데 월명마을이라고 합니다.


월명총이 있는 곳으로 올라 가려면 마을 안쪽으로 쭉 들어가야 합니다. 초입은 차량이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은 편인데 철탑 가까이 가서는 더 이상 차량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철탑 위치 이후로는 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이 무성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는 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월명산 월명총을 찾아 들어가는 입구.




철탑에서부턴 인적이 드물어 그런지 풀이 무성하다.




월명총이 있는 정상을 향해 난 좁은 등산로.


능선을 타고 20분쯤 걸어가면 월명산 정상에 다다릅니다. 월명산 최정상(?)엔 시멘트로 위치 표시를 해놓았더군요. 월명총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10미터 쯤 떨어져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데다 나무가 무성해서 쉽게 찾지는 못했는데 길이 막혔다 싶어도 계속 동쪽으로 내려가면 확 트인 장소가 인디아나 존스의 감춰진 도시가 드러나듯 갑자기 나타납니다.


이곳이 월명총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기록대로라면, 무덤이 두 개여야 할 텐데 네 개나 있습니다. 기록된 설화에는 월명이 죽고 그 옆에 경주인을 묻어 주었다 라고 되어 있으니 무덤은 두 개라야 이야기가 되는데 말입니다.




월명산 정상을 표시한 시멘트 표지물.




월명총 뒤에서 바라본 모습.




오른쪽은 월명총 왼쪽에 있는 것이 경주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취재를 마친 며칠 뒤 월명마을 이장님과 여러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원래 두 개였으나 근래에 무덤 두 기가 새로 생긴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월명총 주변으로 너무 붙어 있어서 처음엔 가족묘인가 싶었습니다.


월명총을 확인하고는 월명이 근무했다는 사근역이 있었던 자리인 수동초등학교로 갔습니다. 월명총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사근역은 고려시대까지 함양 부근의 교통 요지였는데 초선 초기에 폐지되었다는 기록이 있군요. 관련 기록에 따르면 고려 말 우왕 6(1380) 삼도 원수인 배극렴이 이끄는 500여 명의 군사가 남부지방의 곡창을 노리는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해 냇물을 피로 물들였으며, 왜구들은 그 기세를 몰아 단숨에 남원의 인월역까지 진출하였는데 이성계에게 섬멸당했다고 합니다.




월명총을 둘러싼 소나무들.




월명총에서 내려다 본 남강의 모습.


사근역 뒷산이 연화산인데 이곳에 사근산성이 있지요. 사근산성은 함양의 외성으로서의 성격이 짙은데 남북 관통로의 중요한 구실을 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요즘엔 수동면 사람들이 ‘사근산성 추모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지난 20119월 처음 개최된 이후 올해로 4회째 지내고 있습니다. 추모제는 매년 9월 수동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올해는 지난 930일 열렸군요.


사근역을 사근찰방역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조선시대 종육품 외관직인 찰방이 관리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사근찰방역은 당시 조선시대 10대 간선도로 중 제6도로로 경남의 14개 역길을 총괄하였습니다. 사근역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근찰방역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수동초등학교.




사근찰방역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수동초등학교와 사근산성이 있는 연화산.


그런 사근역을 함양군에서 원형복원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사근역을 복원하여 지역의 역사성을 알리는 동시에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관광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8월 용역보고회를 하였고 용역기간을 1년 정도로 본다면 내년 8월께나 되어야 어떻게 할지 구체적 계획이 나오겠군요.


사근역이 복원된다면 월명의 이야기도 하나의 콘텐츠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2)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3)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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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마지막편)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지난 줄거리) 함양 사근찰방역에서 근무하는 역녀 월명은 겨울로 들어서는 계절 어느 날 역 업무를 마치려는 때에 급한 말발굽 소리를 듣습니다. 역참에 도착한 수영은 지치고 흥분된 말에서 떨어집니다. 이 모습을 월명이 목격하고 말을 진정시킵니다. 수영의 어색하지만 순수해 보이는 표정,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월명의 모습.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다음날 수영은 나주로 떠나고 월명은 다음에 다시 보자는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는 게 영 아쉬웠지만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다음날 역시 역참일이 끝날 무렵, 월명은 뭔가 반가운 말발굽소리를 듣습니다. 속으로 은근히 기대를 했겠지요. 문밖을 나가니 역시 수영이 말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와락 자신을 안는 수영이 싫지 않은 월명입니다.


월명과 수영은 늦게까지 산책을 즐깁니다. 월명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각. 수영은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월명의 아버지는 월명의 옆에 선 사내를 훑어 봅니다. 자신의 딸이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함께 있는 사내가 처음인지라 관심을 둡니다. 술을 사오라고 하여 수영과 함께 밤늦도록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월명의 아버지도 수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영은 월명의 아버지에게 장인이라고 부르고 다음날 경주로 돌아가기 전 열흘 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딱 열흘이 되던 날 수영은 아예 함양으로 이사를 옵니다. 수영은 파발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함양에서 자리를 잡고 새로 행상을 시작하였습니다. 파발일을 하면서 전국에 많은 사람을 알고 각 지역의 특산물 등을 잘 파악해놓았기 때문에 행상일을 하며 효과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2년이 되자 수영은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때 정식으로 청혼하여 수영은 월명과 결혼을 합니다. 두 사람은 신혼 열흘 동안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신혼 휴가가 끝나고 수영이 다시 행상일을 나가려는 전날 늦은 시각, 아버지의 서찰을 받습니다. 서찰에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수영은 어머니 병환이 쾌차하면 바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고향 경주로 급히 떠납니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기다리던 월명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결국, 월명은 경주로 남편을 찾아갈 것을 결심하고 아버지의 승낙을 얻습니다. 둘금이와 둘금이 오빠랑 함께 가는 조건입니다.


월명은 국밥집 둘금이 어머니에게 찾아갑니다. 둘금 어머니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맛있는 국밥 한 그릇 해먹이려고 맛있게 끓여 줍니다. 하지만, 월명은 음식을 먹다 말고 헛구역질을 합니다. 월명이 임신을 한 것입니다. 경주로 찾아가려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갑니다.


월명은 다시 잠못드는 나날을 보내다가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면 계속 악몽을 꿉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으로 나서려는데 누군가 월명 앞에 나타납니다.


………………………………………………………………………………..


사내는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월명은 누군지 퍼뜩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침, 이 시각에 까치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을 보면 분명 반가운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가운 사람이라면 남편 수영? 그러나 월명이 기대했던 검은 실루엣의 정체는 남편 수영이 아니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느릿한 말투. 월명은 갑자기 실망하였습니다. 실루엣의 정체는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람 빠지는 듯한 목소리로 월명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월명부인이시죠? 경주에서 남편께서 서찰을 전해달라고 해서…. , 여기.”


그나마 남편에게서 온 편지여서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서찰을 받아쥐었습니다. 월명은 편지를 꺼내 읽어내려갔습니다. 월명의 손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편지를 잡고 있을 힘마저 빠져나갔습니다. 편지가 한 번 팔랑거리더니 그대로 땅에 떨어졌습니다. 괜히 앞에 서 있던 젊은 서찰심부름꾼이 무안해진 듯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월명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듯했습니다. 머릿속이 마취된 듯 몽롱해졌습니다.


“부인! 정신 차리세요. 여기요! 누가 없어요?”


월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자 청년은 당황하였습니다. 월명의 머리를 손으로 받쳐 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이웃들과 밭에 나갔던 아버지도 쏜살같이 달려왔습니다. 월명은 방안으로 옮겨졌습니다. 기절한 월명을 보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안쓰러운 표정을 하였습니다. 잠시 후. 월명이 힘겹게 눈을 떴습니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예, 아버지.”


월명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아버지가 만류하였습니다.


“그냥 누워 있거라.”

“아버지, 전 어떡하면 좋아요?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시아버지께서 바로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병환이 깊어져 그이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 편지 나도 읽어보았다. 그러나 너무 심려 말거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 잘될 거다.”

“아녜요, 아버지. 너무 불길한 느낌이 들어요. 그이에게 곧 불행이 닥칠 것 같아요.”


월명의 지나친 걱정에 함께 방에 들어온 이웃사람들도 혀를 차며 안쓰러워하였습니다.


“월명아, 그렇게 너무 걱정을 하다 보면 니 몸만 상한다. 걱정은 그만하고 아버지 말씀대로 하고 기운을 차리려무나.”


그러나 월명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급기야 아침에 밭일 나가는 아버지를 붙잡고 헛소리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 그이가 오는 것 같아요. 까치가 유난히 시끄럽게 깍깍거리고 있잖아요! 틀림없어요. 오늘은 동구밖까지 나가봐야겠어요.”


아버지는 그런 월명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말리면 말릴수록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월명은 아침 일찍 마을 어귀로 나갔습니다. 한겨울이라 삭풍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하지만 월명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마을 갔다가 돌아오던 이웃 아주머니가 그런 월명을 보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월명아,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고 나와 기다리든지 하지. 그러다가 고뿔에라도 걸리면 태아한테도 안 좋단다. 아주머니랑 함께 돌아가자.”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이가 올 거예요. 아주머니 먼저 들어가세요. 그이가 오면 함께 들어갈게요.”


아무리 달래도 월명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동구밖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설득을 해도 월명이 말을 듣지 않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떼어야 했습니다. 월명이 동구밖에서 수영을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갔습니다. 처음엔 한 시진 정도가 지나면 제풀에 꺾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날이 갈수록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끼니도 거른 채 세 시진을 기다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월명의 몸은 점차 쇠약해져 갔습니다. 아버지와 둘금이 어머니, 그리고 마을 사람들 모두 월명의 몸과 뱃속의 아이를 걱정하여 이제 제발 몸을 해쳐가며 기다리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말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 띄는 낮에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월명도 한 번씩 정신을 차리게 되면 뱃속 아이를 위해 스스로 몸을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을 차리는 때가 하루에 몇 번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월명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마을 앞산 수지봉에 올라갔습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멀리 동쪽으로 나 있는 파발마 길을 보고 있으면 수영이 밤늦게라도 말을 타고 달려올 것만 같았습니다.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듯 가득하였습니다. 폴짝 뛰어 한 움큼 쥐면 한 손에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 잡힐 듯하였습니다.


이 별들을 모두 모아서 수영이 돌아오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옷을 지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월명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수영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수영의 모습이 변하였습니다. 수영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월명은 행복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마을이 어수선해졌습니다. 새벽에 잠에서 깬 아버지가 월명이 방을 확인하고선 밤새 월명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구석구석뿐만 아니라 동구밖과 파발마 길을 따라 10리 밖까지 나가 보기도 하였지만 월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월명을 수지봉에서 발견한 사람은 월명의 친구 둘금이였습니다. 월명은 수지봉 꼭대기 동쪽지점, 마을과 파발마 길이 훤히 보이는 장소에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둘금이 발견하자마자 달려가 안아 흔들어 보았지만, 월명의 몸은 이미 얼음덩이보다 더 차가운 상태였습니다. 둘금은 ‘바보야, 바보야’ 하면서 월명의 가슴을 몇 번이나 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월명의 죽음을 애처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기다리다 쓰러진 자리에 묻고 크게 장사를 지내주었습니다. 월명이 남편을 기다리다 얼어죽었다는 얘기는 이웃마을에도 알려졌습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에 퍼졌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요. 월명에 대한 안타까운 소문은 경주에까지 퍼져 수영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수영은 처음 그 소문을 접했을 때 남의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소문은 점점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해졌습니다.


“그 월명이란 여자의 남편이 우리지역인 경주사람이었대, 글쎄.”

“쯧쯧, 그 여자 아이까지 뱄다면서? 아이고 불쌍해라.”

“행복하게 잘 살다가 남편의 어머니 병환 때문에 헤어졌는데 결국 만나지도 못하고 그리 되었다는구만.”

“죽어서도 남편을 기다릴 거라 여겨 마을 사람들이 경주가 있는 동쪽을 향해 무덤을 만들어주었다더니….”


수영은 믿기 싫은 소문이었지만 자신의 처지에 딱 들어맞는 내용이어서 마냥 소문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수영은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도저히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겨낼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지금 장안에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여자에 대한 소문이 나도는데 꼭 저희 부부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혹시 사실일지 모르니 확인차 함양을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병구완은 이웃집 아주머니께 잘 부탁드리고 가겠습니다. 그간 몸 더 상하지 마시고 잘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수영은 기력이 너무 약해져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아버지께 금방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마음이 너무 불안했던지 수영은 친구의 말을 빌려 타고 쉴새 없이 달렸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수영의 머릿속엔 소문들이 재구성되고 있었습니다.


‘월명이라는 이름이 흔하다지만 남편을 오랫동안 기다린다는 월명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남편이 경주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아이까지 뱄다면 아내 월명도 지금쯤이면 배가 상당히 불러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소문의 주인공은 아내 월명이 맞다는 얘기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절대 소문의 주인공이 아내여서는 안 된다. 하늘님, 그 소문이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주세요.’


함양에 가까워지면서 수영은 우려가 현실일 것 같다는 불안감이 더욱 커졌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마을은 조용했습니다. 예전 같은 활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밥집을 지날 때였습니다. 물이 든 바가지를 들고 나와 마당에 뿌리려던 둘금 어머니가 수영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둘금 어머니는 바가지를 내팽개치고 사립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아이고, 이 서방. 어째 이제야 오는가?”


다급하고 원망스러워하는 눈빛. 수영은 오는 동안 아닐 것이다,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도했건만 월명 가족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둘금 어머니로부터 이런 통탄을 들으니 가느다랗게 잡고 있던 희망마저 끊어져 버린 듯했습니다.


“월명이가 자네를 얼마나 기다렸다고! 잠시라도 다녀가지 그랬나? 이 무심한 사람아!”


수영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는 둘금 어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가득 고여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심했다. 그냥 잘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자신이 아내를 보고 싶어도 참았던 것만큼 월명도 그렇게 지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영은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짓을 한 건지 그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자기 합리하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속에 뭔가 큰 응어리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수영은 연거푸 가슴을 쳤습니다. 아무리 가슴을 쳐도 응어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각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멀리서 둘금이와 장인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수영이 국밥집 앞에서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 슬퍼하는 동안 둘금이 월명의 아버지를 모셔온 것입니다.


“…….”


월명의 아버지는 사위를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땅바닥에 꿇어앉아 통곡을 하는 모습을 애처로이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이 서방, 예서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월명이 한테 가봐야지 않겠나?”


그제야 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수영은 장인과 둘금 어머니, 둘금이와 함께 수지산으로 갔습니다. 수지봉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월명의 무덤은 따스한 햇볕을 머금은 채로 남편 수영을 맞이하였습니다. 월명이 환히 웃는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수영의 눈에는 눈물이 더 많이 났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날 용서하지 마요. 끄으~.”


수영은 아내의 무덤을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월명의 아버지와 둘금이 모녀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습니다.


“이보게, 이 서방. 이제 그만하고 내려가세. 월명이도 죽어서나마 자네를 만나서 반가워할 걸세.”

“아닙니다. 먼저 내려가세요. 전 좀 더 있다가 내려가겠습니다.”


몇 번에 걸친 권유에도 사위가 계속 더 있다가 따라 내려온다고 하니 월명의 아버지는 둘금 모녀와 함께 먼저 산을 내려왔습니다. 겨울바람이 소란한 데도 산봉우리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마을로 들어가는 사근다리까지 들려왔습니다.


날이 이슥해졌지만 수영은 월명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수영은 계속 월명의 무덤을 쓰다듬으면서 속죄를 하였습니다. 아내 월명이 자신을 기다릴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이 편찮으시니 부모님의 곁을 지켜야 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여겼던, 그래서 반대로 아내의 기다림 쯤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그래서 많이 후회한다고 수영은 월명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괜찮아요. 당신의 마음 알아요. 울지 말아요. 난 단지 당신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못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내 마음이 더 큰 문제였어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월명이 무덤 안에서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영의 통곡은 서서히 가라앉았습니다. 어둠이 짙어지자 밤하늘에 별이 총총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뜬 별들이 무척 아름답소. 당신 모습을 한 별무리도 있어요.”

“죽기 전 여기서 저 또한 밤하늘의 별들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신의 모습을 한 별무리를 보았는데…. 당신은 제 모습을 닮은 별무리를 보고 있군요.”

“당신을 닮은 별무리가 무척 아름답소. 지금은 환하게 웃고 있소. 그 속에서도 당신은 웃고 있나요?”


겨울 밤하늘. 자칫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었다간 하늘에 박힌 별들이 죄다 땅에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밤. 그러나 바람의 시샘을 무시하듯 별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의 얼굴을 한 별무리가 몇 번 꿈틀거리더니 신체의 모든 형태를 나타낸 모습으로 바뀝니다. 수영의 별무리가 얼씨구 춤을 춥니다. 장삼자락을 휘날립니다.


수영 별무리가 한참을 그렇게 덧배기춤을 추다가 다른 별무리 쪽으로 팔을 뻗으니 그쪽 별무리도 장단에 맞춰 꿈틀거립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월명의 얼굴이 됩니다. 월명 별무리의 표정이 밝습니다. 하회양반탈처럼 껄껄껄 웃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월명의 전신 모습으로 변합니다. 월명 별무리도 장삼자락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한쪽에서 월명 별무리의 춤을 구경하던 수영 별무리가 가까이 다가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춥니다. 겨울바람 소리는 어느새 가야금 소리와 장구, , 꽹과리 소리로 변하였습니다. 태평소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해금도 수영과 월명의 춤에 추임새를 넣습니다.


수영은 밤새도록 월명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수영과 월명은 그 하늘에서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며 멀어져갔습니다. 겨울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악기들의 소리도 들릴 듯 말 듯 사라져갔습니다. 수영과 월명의 웃음소리도 까마득히 멀어져 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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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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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 정말 오랜 만에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아마도 나의 독재자 속에 나오는 분당의 그 집처럼 철거 직전이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라는 게 보기는 편해도 관련 글을 쓴다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특히, 요즘같이 보고나서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 단기기억상실증이 준동하는 나이에서야...


이 영화 아직 개봉이 안 되었을 텐데... 아, 오늘 개봉이구나.


이 영화를 본 건 재수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시사회 관람단 모집을 공지했다. 


당근 첫날 접수 1시간 만에 신청했다. 그런데 이틀 뒤 발표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에잇.


오랜만에 극장 함 가나 싶었는데..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 일찍 신청을 했댜?


포기하고 다른 영화나 볼까 고민 중이었다. 별시리 눈에 들어오는 영화도 없다.


어디선가 광고 한 번 보고 필이 꽃혔었더랬는데...


개봉하고 나면 아내와 함께 보러가야지 하고 위로했다. 


신청한 사실을 아내에게 문자까지 보내 당첨되면 같이 가자고 했더랬는데...


27일 오전... 전화가 왔다. 문화예술진흥원. 웬?


앞서 당첨된 사람이 못 오게 되었다면서 차순위 신청자인 내게 전화한 거란다. 재수.


아내에게 바로 무전을 날렸다. 저녁 먹고 창원시티세븐 CGV에서 도킹 오버.


나의 독재자는... 이제 생각났다. 광고가 아니다. 기사를 봤다. 경남도민일보에 나의 독재자 관련 기사가 있었다. 그게 이제 생각나냐 어째?


그런데 나의 독재자는 생각만큼 기대만큼 써언하지는 않았다.


박정희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려했는데 회담이 취소되는 바람에 못하게 되었다는 기사 한줄에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는데 그 상상력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무명배우가, 아무리 고문과 자신의 상황에 따른 정신적 충격, 또는 한, 그게 사무쳤다 치더라도 그렇게 오랜 세월 정신병자인양 지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 정신병자였는지 아니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세월이 지난 후 가상으로 설정한 대통령과의 회담 리허설... 좀 뜬금없고, 대통령이 그럼 누구야? 싶은 혼란이 있었는데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명배우의 결말을 이끌기 위한 억지 플롯이란 생각이 든다.


내내 진지한 극의 전개... 그렇다고 긴장감을 확 잡아당기는 부분이 없기도 하지만... 왜 그리 웃음보따리를 선물하지 않았던 것일까... 한번쯤 긴장풀고 한번 웃게해도 될법한데 말이지.


권력의 횡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은 없지 싶다. 유형이 살짝 바뀌었을 뿐. 그 권력이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찜쪄버리고도 솜털만큼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여전히 서민을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빛에 마냥 속앓이만 하고 나왔던 그런 영화다. 내겐.


아내는 대체 무슨 얘긴데? 한다.대한민국에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아내는 어쩌면 나보다 더 답답했을 수 있겠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이 영화에 어느정도 일조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시사회도 주최하여 자리를 만들었으니... 영화 관람권 추첨도 했는데.. 난,,, 당첨운은 지지리도 없는 모양이다. 거의 4명 중 1명이 당첨되는 것 같던데... 난 꽝이다. 그래.. 나한테 무슨 영화가 있으려고... 그냥 돈 주고 봐야지. 아침 일찍 오면.. 조조할인 받을 수 있으니...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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