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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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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찾아서)알고 보면 더 아름다운 한옥

김해한옥체험관을 통해 발견하는 전통건축의 매력


산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서 바람따라 살랑거리며 유혹하는 예쁜 꽃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 예쁜데!’ 하지만 거기까지. 감탄에 이어지는 갑갑함. 그것은 그 예쁜 꽃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한탄이기도 하다.


이렇게 예쁜 꽃의 이름을 모른다면 그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을 한다. 계절에 따른 분류, 잎모양에 따른 분류, 산야초 사이트도 찾아 들어가보고…. 하지만 허탕이다. 호기심에 따른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면 남아있는 아쉬움이 하루 종일 사사건건 다른 일들을 방해한다.


한옥도 마찬가지다. 고궁이든, 사찰이든 전통가옥을 보면 고향집에 들어선 듯한 푸근함이 있다. 까칠한 시멘트와 달리 부드러운 황토담이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직각모서리의 아파트 벽과 달리 굵직한 나무 기둥과 서까래 부연 등의 목재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달리 한옥엔 다양한 구조물들이 조합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이름에 대한 호기심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냥 지붕이고 벽이고 방이고 마루며 마당이다 라고 한다면, 그 이상의 호기심이 없는 사람에게라면 한옥은 그냥 옛사람들이 살던 집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대들보가 뭔지, 서까래가 뭔지, 또 공포라는 게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라면 한옥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최근 김해한옥체험관을 찾았다. 사람들이 늘 살고 있고 생활하며 누구든 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전통가옥이기 때문이다. 전통가옥 하면 오래된 옛날집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요즘엔 도시 아파트 생활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이 도시 근교에 전통가옥을 짓고 사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해한옥체험관은 옛날로 치자면 그 규모로 보아 어느 정도 사는 양반집이다. 안채, 별채, 사랑채에 헛간채도 있고 사당까지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 집에 들어왔으니 구조물의 이름은 뭔지, 왜 그렇게 지었는지 궁금한 것들을 찍어온 사진을 두고 풀어보기로 한다.




1. ‘거안당’ 편액이 달린 안채는 몇 칸?


안채라면 안방 마님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편액에 ‘거안당(居安堂)’이라고 썼나 보다. 거안당을 사진에 나타난 부분만 보면 가운데 기둥이 2개고 방이 세 개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칸이라고 한다. 정면 3칸이 되는 것이다.


사진에서 좀 더 뒤로 물러나 본다면 ㄷ로 된 집임을 알 수 있는데 정면에서 보아 양쪽에 한 칸씩 더 있다. 그러니 이 안채는 정면 5칸짜리 집이다. 그러면 측면은 어떨까? 가운데 부분만 본다면 두 칸짜리이다. 그러면 여섯칸. 거기에다 양쪽 끝은 한 칸씩 덧붙여 세 칸짜리가 되니 이것도 여섯 칸. 그래서 안채는 총 12칸짜리 건물이 된다.


한옥에서 한칸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한칸의 가로 길이는 8자로 2.4m. 그러니 방 한칸의 크기는 대략 5.76㎡다. 평수로 치자면 2평 좀 못되는 1.74평이다.





2. 누마루는 무슨 용도로 만들었을까?


누마루란 지면에서 높이 띄워 만든 마루다. 대개 중층건물에 마루를 깔아 구성하는데 조선 후기부터는 사랑채에 누각을 붙여 여기에서 시서화를 즐기거나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옥체험관에는 사랑채뿐만 아니라 안채에도 별채에도 누마루가 있다. 물론 향교나 서원에서 흔히 보는 누마루와는 높이에 차이가 있다. 누마루라는 말은 2층 건물을 뜻하는 ‘루()’와 마루가 합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만큼 높아야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트여있어야 할 부분에 문이 모두 닫혀있으니.


마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는 대청마루, 고주와 평주 사이에 놓인 툇마루, 아궁이 위에 있는 고상마루, 그리고 들고 옮겨다닐 수 있는 들마루. 여기에 툇마루와 헷갈리는 쪽마루도 있다. 툇마루는 마루 끝에 기둥이 있지만 쪽마루는 그게 없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사진에서 보면 왼쪽 마루는 사각나무기둥이 있으니 툇마루인 것이다.





3. 처마에 달린 고리들, 대체 뭐하는 것이기에?


처마 끝에 나란 대롱대롱 매달린 쇠고리의 용도가 궁금하다. 밤에 어둠을 밝히는 등잔을 얹는 장치일까, 바로 뒤에 조명이 달려있으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니면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달아놓은…, 아니 그러기엔 손잡이가 영 아니다.


끝부분이 말편자처럼 생긴 이것은 들쇠라는 물건이다. 방문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 문은 열고 닫고 할 수도 있지만 위로 들어올릴 수도 있는 구조로 된 창문이다. 더운 여름엔 통풍을 위해 위로 들어올려서 이 들쇠에 걸어놓는다.


문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어떻게 문이 접히고 들어올려지는지 알 수 있다. 문짝과 문짝을 연결하는 돌쩌귀가 4개의 문을 2개씩 짝을 이루게 박혀있고 양쪽 끝 문의 위쪽에 또 돌쩌귀가 장치되어 있다. 그러니 문을 밖으로 접어서 들어올리는 구조다.





4. 전통가옥 아름다움의 극치는 추녀에 있다?


기와지붕을 한 전통가옥에서 가장 눈에 잘 띄고 하늘과 잘 어울리는 곳이 모서리 끝에 있는 추녀다. 대개 추녀 끝에는 풍경도 달려 있어서 바람의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추녀는 지붕을 얹을 때 가장 먼저 거는 부품이다.


사진에서 지붕 아래 둥근 나무가 서까래고 사각진 것이 부연이다. 서까래 위에 가로지른 나무가 평고대로 초매기라 하고 또 추녀 끝과 맞물린 평고대는 이매기라고 한다.


그리고 벽 모서리 기둥 위쪽에 직각으로 나무가 걸려 있는 곳을 공포라고 한다. 사찰이나 향교, 서원 등엔 이 부분이 화려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이 건물엔 단순하게 처리했다. 어쨌든 기둥의 상단부를 주두라고 한다.





5.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한옥위 천장


한옥 처마 아래로 들어가 천장을 보면 대개 나무와 석회흙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도 한옥의 아름다움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천장 가운데 길게 가로질러 놓인 종도리 위에서 서까래 둥근 나무를 양쪽으로 걸쳐 놓았다. 연결부위의 공간은 진흙 위에 생석회를 발라 마무리했다.


대개 서까래 사이도 회반죽을 하여 메우나 체험관 중문 천장은 서까래와 같은 재질의 나무판을 얹어 마무리했다. 이러한 형태의 천장을 연등천장이라고 한다. 천장의 종류에는 격자로 틀을 짜서 반자청판을 끼워 만든 우물천장, 서까래에 달대를 달고 반자대에 종이를 발라 마무리한 종이반자, 측면 이칸 이상의 팔작지붕에 주로 많은 눈썹천장 등이 있다.





6. 어느 골짜기 마을 이름 같은 회첨골


가옥의 구조가 자형이면 회첨골이란 게 없다. 그런데 옛 가옥의 구조를 보면 ㄱ자나 ㄷ자 형태의 집들이 많다. 이런 집에 기와를 얹으려면 맞물리는 곳은 애매하다. 기와 흐름의 방향이 달라 서로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딪히는 곳에 골을 만들어 빗물이 흐르도록 처리하는 데 이것을 회첨골이라고 한다. 보통 두 줄로 만든다. 기와에도 암수 기와가 있는데 넓적한 것은 암키와, 반원기둥 모양은 수키와다. 회첨골은 암키와를 두 줄로 처마끝에서 상단까지 얹은 후에 그 중간을 수키와로 얹어 작업한다.


왼쪽 지붕의 물은 왼쪽 골이 오른쪽은 오른쪽 골이 내려보내는 형태다. 그런데 어떤 집은, 드물긴 하지만 이 골이 3, 4개가 있는 가옥도 있다. 함양의 허삼둘 가옥은 이 골이 7개나 된다고 한다. 양쪽 끝 골 말고는 그냥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므로 골을 2개 이상 만드는 것은 실용적 측면이라기보다 미적 효과를 위해 지어졌다고 보면 되겠다.





7. 기와지붕 위에도 벽이 있다?


기와 한옥을 측면에서 보면 ㅅ자 모양으로 기와가 흐고 그 사이에 벽이 생기는데 이것을 합각벽이라고 한다. 팔작지붕에 있다. 우진각지붕 위에 맞배지붕을 얹은 형태가 팔작지붕인데 사진처럼 삼각형 모양의 공간이 생기는데 김해한옥의 경우 흙과 기와로 처리했다. 합각벽은 벽돌을 쌓고 무늬를 넣거나 나무판벽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참고로 기와에서 맨 부분을 용마루라고 한다. 일종의 능선이다. 용마루에서 중간 꺾어지는 곳까지의 것은 내림마루, 여기서 추녀까지 이어지는 것은 추녀마루라고 한다. 또 각종 마루 끝에는 암막새기와를 뒤집어 끝처리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망와라 한다. 망와와 비슷한 표현으로 망새라는 게 있는데 망새는 망와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각종 동물모양을 본떠 만들기도 한다. 용머리 모양을 한 것은 용두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고 김해한옥체험관의 경우 수막새를 사용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사진처럼 흙으로 끝처리를 했다. 암막새도 없다. 모두 수키와와 암키와, 그리고 망와로만 기와를 얹었다.





8. 디딤돌과 댓돌의 차이가 뭘까?


옛날 집들을 보면 마루 앞에 직육면체 모양의 돌이 놓여있다. 이것은 댓돌일까 디딤돌일까? 쓰임이 비슷하니 댓돌이나 디딤돌이나 같은 것 아니냐는 의문도 있겠다. 엄밀 따지면, 댓돌은 기단을 구성하는 돌이고 디딤돌은 기단이나 마루에 오르내리기 쉽도록 만든 돌층계다.


댓돌이 기단 위에 덧댄 돌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겠다. 하지만, 대부분 댓돌이나 디딤돌이나 구분하지 않고 용어를 섞어 쓰고 있다. 사진에 있는 것은 디딤돌이라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댓돌이라 하겠다.





9. 한옥을 보면 기둥마다 글귀가 적혀 있던데?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풍류를 알았던 것 같다. 집을 지어도 그냥 지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면 모두 이름을 붙이듯이 집도 이름을 지어붙였다. 김해한옥체험관을 예로 들자면 안채는 거안당(居安堂), 사랑채는 담경헌(談經軒), 별채는 탐미당(耽美堂)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옥의 모서리 기둥마다 세로로 글귀를 적어놓고 오며가며 마음에 새겼다. 사진에 보면 懷佳人兮不能忘(회가인혜불능망), 아름다운 이를 생각하니 잊을 수가 없구나. 왼쪽은 登東皐叺舒嘯(등동고입소서), 동녘언덕에 올라 가만히 휘파람을 부누나.


언뜻 서로 상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글귀들을 기둥에 쭉 붙였다 하여 이를 주련이라 한다. 대체로 글씨체가 좋고 덕망이 있는 사람에게 청을 넣어 소원하는 내용이나 덕담을 적기도 하는데 사랑채엔 오언절구나 칠언율시를 자작하여 걸기도 한다.





10. 집 안에 또 무슨 담을 쌓았을까?


한옥을 보면 집 안에도 여러 담이 있고 쪽문이 있어 이곳을 통해 드나드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도 담이 있고 별채와 사이에도 담이 있다. 집 안쪽에 있는 담을 내담이라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는 담은 내외담이라고 하고, 또 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담이 있는데 이를 헛담이라고 부른.


내담에는 주로 중문과 협문이 설치되어 있다. 각 영역의 공간을 에워싸는 담에 있는 것이 중문, 그리고 건물의 외진 곳에 있는 부속건물로 가는 길 샛담에 있는 것은 협문이다. 사진에 나타난 문은 중문이다. 이 담은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고 있으니 내외담이다.





11. 담장의 무늬는 주로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김해한옥체험관에 나타난 담장무늬는 주로 꽃모양이다. 암키와와 수키와 조각을 적적히 배치하여 만든 문양이다. 한국 전통 가옥의 담벼락 무늬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문양이 꽃이다. 이를 와편담장이라고 부른다.


() 자나 壽(), () 등의 문자를 도안한 벽도 있고 기하학적인 무늬로 꾸며놓은 담벼락도 많다. 태극모양의 담벼락 무늬도 종종 눈에 띈다.





12. 한옥에선 굴뚝도 예술품?


요즘에야 굴뚝이 있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주거환경이 바뀌었다. 그래서 오히려 굴뚝이 있는 집을 보면 신기해할 정도다. 가스와 기름보일러 또는 심야전기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굴뚝이 희한한 물건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옛사람들은 방바닥 아래 온돌을 달구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에 대해서도 소홀 하지 않았다. 높이나 방향에도 신경을 썼지만 모양새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한옥체험관에 있는 굴뚝들은 와편에 황토배합을 많이 하여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 와편의 배열에도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꽃무늬는 나팔꽃 넝쿨처럼 표현했다.


대부분 와편과 황토로 굴뚝을 만들지만 간혹 집의 형태에 따라 옹기로 만든 굴뚝도 있고 널빤지를 이용한 굴뚝, 통나무, 또는 흙으로 만든 굴뚝도 있다.





13. 일반 가옥엔 없고 사당엔 있는 것


단청은 자연현상이나 병충해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칠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단청은 중앙의 황색과 청백적흑, 즉 동서남북 오방 색상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적인 의미도 담겨 있어 사찰이나 향교 등의 건물에 많이 쓰이고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건물인 궁궐이나 동헌 등에도 많이 있다.


단청은 가칠단청과 같이 단순한 것에서 점점 화려한 순서로 긋기단청, 모로단청, 금단청 등이 있다. 물론 각 부분의 단청도 더 세밀하게 분류되기도 한다. http://news.gsnd.net/?p=50134  참고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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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전쟁의 신()(2)

함안 방어산 묵신우 장군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한반도 남쪽, 가야의 여러 부족국가들과 신라, 백제가 서로 경계를 이루고 있던 서기 400년 경 신라의 잦은 침범으로 위협을 느끼던 안라국은 백제와 왜를 끌어들여 공동방어 정세를 이룹니다. 이에 신라는 삼국 연합군에 대항하려고 고구려를 끌어들입니다.


신라의 원군 요청을 받은 광개토는 즉시 출병을 합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신라의 요청에 따른 출병을 넘어 가야와 왜까지 고구려에 복속시키려는 계획이 들어있었습니다. 국내성에서 출발한 광개토의 군사들은 남하하는 곳곳에서 주둔군을 차출, 안라국 접경지역에 도착했을 때엔 그 군사의 수가 무려 5만에 이르렀습니다.


고구려 광개토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안라국 왕과 신하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싸울 것이냐 항복할 것이냐. 겨우 3000의 군사에 불과한 안라국이 5만의 광개토 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격이어서 일부 신하들은 왕에게 항복을 간합니다. 한참 논란 끝에 안라국왕이 결단을 내립니다. 항전하라.


안라국왕의 아들이자 대장군인 무시우가 3000의 군사를 이끌고 방어산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방어산은 안라국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입니다. 지수평야에 진지를 구축한 광개토와 일전을 앞둔 긴장감이 흐릅니다.


사위를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 방어산 요새 바위 위에 올라선 무시우는 너무 조용한 광개토 군의 동태가 수상하다 여겨 부하 장수 쾌수를 시켜 정찰하도록 합니다. 동작이 빠른 5명의 정찰대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간 쾌수는 광개토 군 선발대를 발견합니다. 적의 수는 500.


쾌수와 정찰대가 쏘아올린 불화살을 신호로 방어산 정상 무시우 장군의 화살부대는 일제히 불화살을 퍼붓습니다.


………………………………………………………………………………


“들켰다. 퇴각하라!”


광개토의 군사들은 일순 당황했고 허둥거렸습니다. 광개토의 부하장수 중 살수로 명성이 자자한 현무가 퇴각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불화살은 빈틈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날아오는 불화살을 멍하니 보고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습니다. 불화살을 가슴에 맞고 온몸을 비틀거리다 불에 타 목숨을 잃는 병사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현무는 이를 갈았습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담덕(광개토의 본명) 형님을 모시고 수많은 전쟁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살수부대가 선발을 맡아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었고 이번 작전도 그야말로 어둠과 같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적에게 노출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장군, 어서 피하십시오. 불화살은 최대한 저희들이 막아보겠습니다. 어서요!”


현무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부하들이 방패로 날아오는 불화살을 막으면서 후퇴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불화살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자 부하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고 주변 숲은 불길에 휩싸여 더는 들어갈 수도 다시 나올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500명의 부하들을 허무하게 잃은 현무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자신의 계획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돌이켜보았습니다. ‘지수평야에 진을 치고 안라국 무시우와 대척을 이룬지 사흘. 그동안 정적만 있었을 뿐 아무런 충돌도 없었다. 벌써 공격을 감행했을 수도 있고 더 공격을 미룰 수도 있었다. 적은 대규모 병력이 일시에 공격할 것이란 계산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뻔한 싸움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정세를 역이용해서 살수들로만 구성한 현무 군사들이 몰래 잠입해 적을 교란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 계획이 아니었던가.’ 현무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옮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정면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현무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방어산 정상을 쳐다보았습니다. 길게 띠를 이룬 횃불들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역풍이 불어 소리는 약했지만 적의 환호성도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횃불과 환호는 더욱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폐하! 살수부대의 작전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진지 끝에서 망을 보던 병사가 광개토의 본진으로 쫓아와 아뢰었습니다.


“살아남은 아군이 하나도 없느냐?”

“지금으로선….”

“현무 장군은?”


광개토는 자신의 오랜 벗이자 동생인 현무의 생사가 궁금했습니다. 적장 무시우의 전력과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현무의 작전계획을 윤허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습니다. ‘좀 더 살펴본 뒤에 작전을 펼칠 걸 그랬어.’ 광개토는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무시우, 보통 놈은 아니구나.’


“폐하! 현무 장군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다른 병사가 황급히 달려와 보고하였습니다. 현무가 살아있다는 말에 광개토는 병사의 추가 보고도 듣지 않고 천막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병사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현무 장군이 어디에 있느냐?”

“이제 막 군진에 들어와서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그래. 현무 장군과 함께 살아 돌아온 병사가 몇이나 되더냐?”

“그게…, 현무 장군 혼자이옵니다.”


이윽고 현무가 광개토 앞에 다다랐습니다.


“폐하, 죽여주십시오. 이놈이 작전에 실패하고 군사들을 모두 잃었사옵니다.”


현무는 광개토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일어서거라. 내 잘못도 크다.”

“제가 고집만 피우지 않았더라도….”

“이젠 지나간 일. 되씹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광개토는 현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부관, 주작, 청룡, 백호 장군에게 가서 작전회의가 있으니 속히 모이라고 이르라!”


한편, 방어산 정상 무시우의 군진에선 승리의 기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안락국 군사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쾌수 장군이 다섯 명의 정찰병과 함께 군진으로 돌아오자 더욱 환호성이 커졌습니다.


“수고했다, 쾌수. 이번 작전은 완벽하게 우리의 승리다. 이제 적들도 함부로 우리에게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예,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의 화력을 똑똑히 보았을 테니 인해전술로 쳐들어오진 못하겠지요. 대신 다양한 전술로 공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래, 광개토가 어떤 전술을 펼칠지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무시우는 쾌수의 어깨에 손을 얹고 군진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적의 선발대는 우리의 불화살에 전멸했다. 떨고 있는 적들을 보아라!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다! 안라국 만세!”

“안라국 만세! 무시우 장군 만세!”


무시우는 병사들 앞에서 쾌수를 안았습니다. 환호성은 더 커졌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높이 치솟았습니다. 무시우는 그런 병사들에게 다시 긴장을 풀지 말고 경계할 것을 지시하고 군막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무시우를 따라 쾌수를 비롯한 마금, 비화, 혜목 장군이 들어왔습니다. 광개토에게 현무와 주작, 청룡과 백호가 있다면 무시우에겐 이 네 명이 있습니다. 쾌수가 발빠른 움직임이 장점이라면 마금은 다루지 못하는 쇠가 없을 정도로 무기제작에 뛰어나며 검이면 검, 창이면 창 무예 또한 출중해 맞붙어 그를 당해내는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비화는 궁술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장군입니다. 그가 쏜 불화살이 목표물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혜목은 무시우의 책사입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과 비견되는 인물입니다. 천리안을 가진 데다 통찰력 또한 뛰어나 작전을 펼침에 있어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혜목, 이번엔 광개토가 어떤 작전으로 공격할 것 같은가?”

“우선 첩자를 활용하여 우리의 전력을 탐색하려 할 것입니다. 연후 우리 군의 사기를 꺾으려 시도할 것이며 어쩌면 궁내 폐하를 시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연 그러하다. 대비책은 있는가?”

“예, 장군.”


혜목의 이야기를 들은 무시우와 나머지 세 명의 장군은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시우의 군막은 밤늦게서야 불이 꺼졌습니다. 이튿날 무시우의 군사들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습니다. 새로운 작전에 맞춰 군진을 다시 짰기 때문입니다.


마금 이끄는 군사들은 백제와 대가야에서 안라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지켰으며 비화는 군사들을 길목은 물론 산으로 침투할 적에 대비해 위치를 폭넓게 잡아 배치하였습니다. 지난밤 정찰 업무를 완벽히 성공시킨 쾌수에겐 다시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적진 속으로 들어가 광개토군의 정보를 캐오는 첩보작전이 떨어진 것입니다.


쾌수는 아침 일찍 민간인 복장을 하고 대가야 쪽으로 떠났습니다. 다라국의 민간인으로 위장해 광개토군에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괴나리 봇짐 하나를 달랑 메고 안라국 북쪽으로 흐르는 남강을 건넌 쾌수는 어젯밤 혜목이 신신당부한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여보게, 쾌수. 이번 전쟁의 승패는 자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적진으로 들어가면 우선 방어산에 전쟁의 신이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게. 특히 그 소문이 거짓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도록 해야 하네. 그래야 우리 장군께서 모습을 드러낼 때 그들의 사기가 더 떨어질 테니까. 그 다음엔 광개토 휘하의 각 부대 장수들의 성향이 어떤지 파악하게. 그중에 혹시 이번 선봉대를 지휘한 장수가 있다면 그의 신임을 얻도록 하게. 적절한 때에 쓰임이 있을 것이야.”


한편, 광개토의 휘하 장수 중에서 말이 없고 무예가 특히 뛰어나서 신임을 두텁게 얻고 있는 백호 장군 역시 민간인 복장을 하고 군진을 나섰습니다. 그는 안라국 안으로 잠입해 방어산의 동태를 살피고 적당한 시기에 국왕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광개토는 그 틈을 이용해 공격을 펼칠 계획이었습니다.


방어산 인근이야 전쟁의 기운으로 숨이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다라국 쪽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다라국 남부지역 시장은 평소대로 각국의 교역이 활발했습니다. 특히 다라국은 백제와 신라, 왜에까지 교류가 활발해 어느 때나 시장이 번성했습니다.


쾌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안라국도 외국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이렇게 평화스러운 시절을 보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쾌수의 눈에 독특한 물건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옥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였습니다. 아내에게 꼭 어울리는 장신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거, 얼마나 하오?”

“두냥이오. 귀한 물건이라 없어서 못판다오. 딱 하나 남았으니 댁은 횡재한 거요.”


장사치가 너스레를 떨면서 쾌수 눈앞에다 옥목걸이를 들이밀었다.


“잘 보세요. 이 옥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지간한 미녀가 아니면 소화하지 못하는 고급품이라오.”

“두냥이면 너무 비싼데….”


쾌수가 망설이자 장사치는 더욱 곰살맞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비싼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근데, 보아하니 손님의 부인께서 미인이 아니신 모양이오. 이런 구하기도 어려운 옥목걸이를 두고 망설이는 것을 보면?”

“거참, 상술이 보통 아니구료. 알겠소. 내 아내가 미인이라서 사는 거요.”

“아이고, 대인이십니다. 통이 여느 사람과는 다른 분이군요. 예쁘게 포장해드리리까?”

“포장은 필요 없고! 옛소. 한냥!”

“뭐요? 한냥?”


장사치의 배실배실 웃던 표정이 일순 일그러지며 험상궂게 변하였습니다. 쾌수 역시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패악질을 벌일 기세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좋소. 그럼 한냥 반!”

“아니, 한냥 두푼!”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동안 쾌수 뒤쪽으로 온몸에서 무거운 기운이 서린 한 사내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지 못할 쾌수가 아니었습니다. 백호 역시 방금 지나친 사내의 기운을 감지하였습니다. 자신과 맞먹는 강한 에너지를 느끼고는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장신구 매점 앞에 서있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전쟁의 신()(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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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전쟁의 신()

함안 방어산 묵신우 장군에 얽힌 전설(1)


“장군의 이름은 묵신우(默神佑)로서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를 날아다니면서 300근짜리 활을 잡아 벌리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함안군과 진주시의 접경지역인 방어산에 얽힌 전설의 일부입니다. 이 부분만 보더라도 전설의 주인공이 얼마나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것은 태생적 비범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고 300(180)짜리 활을 당겼다는 얘기는 그가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천하장사였다는 거지요.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전설을 기록한 내용 중에 타당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발견됩니다. 인터넷 두산백과에 보면 “(방어산)정상에는 옛날 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며 300근짜리 활을 쏘는 묵신우라는 장군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 성을 쌓고 성문을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병자호란(163612)은 후금이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정묘호란에 이은 2차 조선침공 사건입니다. 이때는 조선국왕 인조의 항복만 받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물론 경기도 인근 수많은 백성이 화를 당하긴 했지만 함안까지 진출할 이유가 없는 전쟁이었지요. 그래서 묵신우가 병자호란에 활약을 했다는 기록은 무리수가 따릅니다.


또 다른 기록으로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에 보면 “방어산 지명은 옛날 왜구가 침략했을 때 성을 쌓고 의지해서 적을 물리치고 방어했다는 묵신우 장군 전설에서 유래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구를 상대해 전쟁을 치렀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방어산과 관련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재미있는 소설이 발견되었습니다. 묵신우 대신 무시우란 이름을 쓰고 시대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가야시대를 배경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다라, 연나라와 싸우고 일본을 시작하다’(이양훈 저)란 책입니다. 여기에선 광개토대왕이 다라국(대야, 합천)까지 정벌하는 과정에 안라국(아라가야, 함안)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번 이야기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겠습니다. 안라국의 왕자이자 장군인 무시우가 광개토대왕과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과정을 판타지 형식으로 그려보겠습니다. 방어산 성을 함락시키려는 광개토의 계략과 무력, 이에 맞서는 무시우의 용맹무쌍한 대응을 통해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기대해주세요.


………………………………………………………………………………………….


서기 400년 겨울. 국내성에서 출발한 광개토의 3000여 기병과 보병들은 황토먼지를 일으키며 쉬지 않고 달려 단숨에 백제땅까지 다다랐습니다. 수년 전부터 있어온 백제와의 전쟁에서 이미 58개의 성을 차지한 이후여서 백제 영토에 접어든 이후로도 막힘없는 진군이 가능했습니다. 광개토군의 병력은 남하할수록 늘어났습니다.


3000명에서 시작한 군사의 수는 평양과 서울을 거치면서 4만에 이르렀고 백제의 성이었던 관미성, 위례성 등을 차례로 지나면서 주둔군 일부를 또 차출하여 최종 5만 명의 병력을 형성하였습니다.


광개토 5만의 군사가 합천 대야지역을 거쳐 진주에 당도하였습니다. 지수 땅 넓은 들판에 진을 쳤습니다. 맞은편에 안라국 경계인 방어산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저 산만 넘으면 백제와 안라, 왜의 연합전선을 격파하고 가야의 맹주인 금관가야마저 함락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는 그다지 높지 않은 방어산을 보면서 야릇한 미소를 띄웠습니다.


한편, 안라국에선 고구려 광개토의 5만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온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사흘 전 신라의 요청으로 광개토 대군이 남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민간인으로 위장한 정찰병에게서 들은 터라 요새마다 병력을 배치하고 대비는 하고 있지만 안라국왕의 근심은 가시질 않았습니다.


“무시우 장군, 싸움에 승산은 있겠는가?”

“목숨 걸고 최대한 방어하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습니다. 폐하!”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하였구나. 백제군과 왜군을 모두 합하여도 우리의 군사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으니 갑갑하기만 하구나.”


안라국왕의 편전에는 아들이자 대장군인 무시우를 비롯한 신하 30명이 고개를 조아리고 나열해 있습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누군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쯤 나이 많은 신하가 고개를 들고 국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신이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자고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군사가 3000명에 불과한데 적의 병력은 5만이나 된다고 하니 이는 싸워서 될 일이 아닌 줄 아룁니다.”

“공은 싸워보지도 않고 고구려군에게 무조건 항복하자는 게요?”


또 다른 신하가 버럭 언성을 높이며 참견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신하가 다시 되받아쳤습니다.


“그래, 전쟁을 일으켜서 우리 백성이 모두 몰살이라도 당해야 속이 시원하겠소?”

“아니, 공께선 말씀이 지나치시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싸워서 죽더라도 적극적으로 대항해 싸우는 것이 나라의 신하된 도리 아니겠소?”

“어찌 그리 어리석은 소리를 하시오? 치욕스럽더라도 살아남으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만 죽으면 그걸로 이 나라는 끝장난다는 것을 왜 모르시오?”


옥신각신. 처음엔 두 신하의 논쟁으로 시작하더니 중구난방으로 토론이 펼쳐지고 결국 서로 삿대질까지 하며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몰아붙였습니다. 국왕은 용상을 세게 내리쳤습니다. 편전이 일시에 조용해졌습니다.


“짐이 한마디 하겠노라.”

“예, 폐하!”


신하들은 왕을 향해 허리를 굽혔습니다.


“고구려군이 우리 국경까지 진출한 것은 신라가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예부터 곡창지대이자 철이 풍부한 우리 땅을 노려 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 대항하고자 백제군과도 손을 잡았고 왜군과도 연합전선을 이루었다. 저들의 공격에 대항한 우리에게 오히려 침입자로 몰아세워 고구려를 끌어들인 것인 필시 가야를 자기들 발아래 복속시키고 나아가 왜나라까지 통치하겠다는 속셈이 틀림없다.”


국왕은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일순 편전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국왕의 결단이 어떻게 내려질지 모두 긴장감 속에서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고로, 짐은 고구려군에 대항해 결사항전을 명하노라!”


몇몇 신하들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으나 또 몇몇 신하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때 대장군 무시우와 마금, 비화, 쾌수, 혜목, 이렇게 네 명의 휘하 장군이 국왕 앞으로 나섰습니다.


“폐하, 목숨을 다해 이땅 안라국을 지키겠사옵니다.”

“충!”


무시우의 말을 받아 네 명의 장군이 일시에 구호를 외쳤습니다. 국왕 앞에서 출병의례를 마친 무시우와 장군들은 곧장 군사를 이끌고 방어산으로 향했습니다. 무시우는 방어산 정상에 진지를 구축하고 병사들을 집결시켰습니다.


겨울철이라 일찍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3000여 안라국 병사들은 무시우 대장군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두 비장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천하제일의 불화살이 있다. 이 방어산을 넘어오려다 우리의 불화살에 맞은 적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갈 것이다. 적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천지신명께선 우리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죽고자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충! ! ! !”


무시우의 말에 병사들은 일제히 연호했습니다. 무시우의 군진은 횃불로 환했습니다. 병사들은 대장군 무시우에게 ‘전쟁의 신’이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안라국 병사뿐만 아니라 백제와 왜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시우는 그들에게서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무시우는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평상시엔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겨드랑이 날개를 펼쳐보였습니다. 그리고 안라국 최고 병기인 철궁을 치켜들었습니다. 철궁의 무게는 300근이나 되었습니다. 병사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일제히 환호를 하였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충분히 진작시켰다고 여긴 무시우는 바위에 올라가 적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5만의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데도 전혀 움직임을 관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어둠 속에 모두 잠든 것만 같았습니다.


“쾌수!”

“옙, 장군!”


무시우는 부하 장수 중에서 가장 몸이 날쌔고 판단력이 빠른 쾌수 장군을 불렀습니다.


“적의 동태가 수상하다. 5만의 군사가 미동조차 없으니 필시 선발대의 잠입 시도가 있을 것이다. 정찰대를 꾸려 산 아래를 살펴보고 오너라.”


쾌수는 정찰에 뛰어난 부하 다섯 명을 선발하여 지수 쪽으로 정찰을 나갔습니다. 겨울바람이 산 아래에서 치고 올라왔습니다. 바람은 가는 나뭇가지를 흔들며 쏴~ 하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었습니다. 앞서 주변을 살피며 산을 내려가던 쾌수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잠깐!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무슨 일입니까, 장군?”

“근방에 적이 있다. 바람에 섞인 냄새를 느껴봐. 분명히 사람의 냄새다.”

“네, 그렇군요. 300보 안에 적이 매복해 있습니다.”

“각자 흩어져서 2(30) 동안 적의 숫자를 파악한다. 파악되는 대로 다시 이곳에 집결한다. , 출발!”


쾌수의 정찰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뱀과 같고 또한 바람과 같아서 광개토의 병사들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는데도 전혀 알아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두 시각이 지나기 전에 정찰병들은 모두 다시 쾌수에게 돌아왔습니다.


“장군, 족히 500은 되어 보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오른쪽에서 보았을 때에도 그 정도의 병력인 것 같았습니다.”


정찰병 모두 적의 선발대가 500명 정도라고 파악하였습니다. 쾌수는 방어산 정상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여전히 횃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무시우 대장군이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 능선으로 후퇴!”


쾌수는 부하들에게 나지막이 명령을 하였습니다. 부하들은 쾌수를 따라 바람과 같이 능선을 타고 올랐습니다. 적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게 되자 쾌수는 부하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셋을 세는 동안 각자 화살에 점화하여 일제히 적의 머리 위로 쏘아 올린다, 알겠나? 하나, , !”


! 쓔쓩! 다섯 발의 불화살이 어둠을 가르며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순간 방어산 정상에서도 수백 발의 불화살이 솟아올랐습니다. 이 화살들은 다섯 발의 불화살이 떨어진 곳으로 일제히 향했습니다. 불화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쾌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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