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명작예술감상회 4월 강연 마산대 황무현 교수의 '톡톡 미술과의 대화'
또 정리가 늦었다. 게으름과 미련 때문이다. 집에서 작성하려니 자료가 회사에 있고 또 회사에서 작성하려니 수첩을 집에 두고 왔고.. 오늘도 그렇다. 더는 늦추지 말자고 자료를 찾는데 사진 자료들을 모두 회사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것이렷다. 하는 수 없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자료 재활용. ^^
강의 시작과 함께 황무현 교수는 나눠준 페이퍼 빈 공간에 나무와 해와 집을 그려보라 했다. 수강생들이 그리고 나서도 그것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려보란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부분 한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은 나무와 해와 집의 모양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획일적 교육 때문이란 얘기겠지. 그는 아동미술심리학 전공이다.
이번 한 달 그를 통해 미술을 보는 시각이 좀 변할 수 있으려나. '미술'이란 단어는 예부터 사용해오던 용어가 아니란다.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미술'이란 단어가 등장한 게 조선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이라고 하는 '한성순보'에 실렸단다. (순보 : 10일에 한번 발간하는 신문)
미술이란 무엇인가? 나눠준 페이퍼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일반적으로 글자 의미상 미술이란 미, 즉 아름다움을 기교에 의해 기술한다는 의리로서, 좁게는 조형예술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동시에 예술의 넓은 의미 중에서도 미술은 소리나 동작 문자 등에 의해 표현되는 비물질적인 형태들과는 상대적으로 물질을 사용하는 시각조형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아, 이렇게 베껴 적다보니 미술이 더 어려워진다. 뭐 옛날엔 서화가 미술의 거의 전부였다면 이젠 조형이나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작품을 미술이라고 생각하면 될듯. 토털아트, 그게 미술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미술의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예를 들어 내가 안경과 안경집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건 미술 작품이다"라고 정의하면 사람들이 "야~ 대단한 작품입니다."하며 엄지척해줄까? 웃음거리만 안 되면 다행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미술 전람회에 누군가 집에서 사용하던 소변기를 떼어다 전시해놓곤 제목을 붙였다. '샘'이라고. 이것은 미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혐오스러운 물건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술사 어느 시점에서 아주 훌륭한 작품이 되어버렸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건이 그것인데 마르셀 뒤샹이라는 인물이 건방지게도 소변기를 작품이라고 우긴 탓에 현대 미술에 '레디 메이드'라는 인식이 가능케 해준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계 거목 김종영도 이런 레디 메이드(이미 만들어진 것)를 미술전시회에 종종 내놓았다.
미술을 감상하려면 미술관에 가야만 하는 걸까. 요즘은 보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텔레비전, 비디오, 영화, 만화, 광고, 사진, 도시공간, 하물며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일상 생활에 밀접해져 있고 그래서 미술을 읽어내는 연습을 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 속에 살고 있기도 하다.
미술계 정론이기는 하겠지만 황 교수가 한 말 중에 "예술가에게 처음 맞딱뜨린 시련은 카메라의 출연이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카메라의 등장 이전에는 화가들의 소명은 대부분 오브제를 그대로 화폭에 담는 거였을 것이다. 물론 상상도 현실처럼. 그러나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굳이 애써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어졌으니 화가들은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마네니 모네니 하는 인상파 화가들은 카메라의 성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림을 그렸으며 대부분 많은 화가들은 카메라가 표현하지 못하는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카메라의 발명으로 세계의 미술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화면에 세 마리의 소가 등장했다. 알타미라 동굴의 소와 피카소가 그린 소, 그리고 이중섭의 소. 어찌보니 세 마리의 소가 유사하다. 황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그리는 행위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림을 보는 눈도 예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걸까?
세세히 기록하다간 1박2일도 모자라겠다.
아우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산에서 샀다면 80%는 위작일 거라는. 워낙 유명한 화가인 데다 그가 그린 단색화라는 게 모방하기 쉬워 그런지 몰라도 위작이 많다는 얘긴데... 게다가 비싸기까지 하니. 위작 논란에 대해 이야기가 좀 더 이어졌다. 천경자의 '미인도'도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모방한 그림이 얼마나 정교한지 정작 작가 본인도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원 작품이 많이 나돈다는 것은 미술계에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미술계엔 폭력이 존재한다고 했다. 조영남의 대작사건은 그가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라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해도 남에게 몽땅 맡겨버리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차라리 엔디 워홀처럼 자기의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고 이름 붙이고 작품의 대중화를 위해 찍어낸다고 했으면 별 문제가 안되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작품의 가격을 올리는 행위는 출판계에서 책 판매량을 올리는, 즉 베스트셀러 조작 과정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피카소는 그점을 아주 영리하게 이용했다고 한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무작정 그림만 그린다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진 않다. 이름 없이 그렇게 그림을 그려 아트페어에 내놔봐야 사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의 대부분은 스승을 잘 만나거나, 혹은 제자를 잘 만나거나 혹은 사위를 잘 두거나. 그냥 예사로 깎은 방망이 하나가 수억을 호가하는 김종영의 작품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은 그가 키워낸 제자들이 또한 대한민국 미술계 어른들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실력있는 스승에 실력있는 제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는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단다. 그의 예술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데엔 20세기 예술의 거장 보이즈와 케이지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공공연하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그의 예술세계를 반어적으로 드러낸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예술세계란 가치형성에 묘한 법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백남준 이야기는 조금 더 있다. 그의 비디오아트는 유한하다. 비디오 부품이 수명 끝 하면 다른 부품으로 갈아야 하기 때문에 종내 모든 부품을 다 갈았을 때에도 그것이 백남준의 작품이 될 것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작품이 어디까지 교체되는 것까지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내용을 아예 못박아놓았다고 한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도 않았지만 백남준은 예술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 매장문화재가 외국의 박물관에서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남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가지고 제것인양 전시해놓고 자랑하고 있다는 점과 우리나라는 미술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점, 그리고 황 교수 생각에 최고의 미술품은 세한도라는 얘기가 이어졌다.
아마도 다음 주엔 세한도에 대한 얘기가 더 나오지않을까 싶다. 첫 시간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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