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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업7

[한하균 오동동야화36]배신하면 너죽고 나죽자 했던 현주 소식이 궁금해 한하균 선생의 오동동야화 마지막회.36회로 끝났다. 건강상의 이유였다. 온재 이광래와 월초 정진업. 정진업의 이야기는 아직 남은 듯도 한데... 한현주가 서울에서 어떻게 배우로 성공하는지 궁금했는데... 혹시나 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봤는데...자료가 나와 있지 않다. 월초의 향후 약력을 보면 주로 마산서 활동을 했는데.. 서울 간 한현주는 다시 마산으로 돌아왔을까?그것도 그러려니와 월초 다음 차례가 화인 김수돈 이야기인데... 제법 재미있는 일화가 있을 법한데 더 접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현주의 정체를 알게 되자 '통영협성학원'의 재단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다. 특히 염진사(구한말 과거에 진사로 합격한 통영의 대원로)를 비롯한 유림의 분노는 대단한 것이었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무.. 2017. 7. 30.
[한하균 오동동야화33]현주를 사랑한다면서 버리고 도망간 사내 월초 내가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월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으나 종종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된 터라 무책임한 남자의 못난 모습 정도로 여기는 장면이 바로 열애 중에 이유없이 떠나는 남자의 모습이다. 현주가 그렇게 좋아 자신의 집에까지 드나들게 했다면 부부나 다름없을 터. 어머니가 반대한다고 이웃에 대한 체면 때문이라고... 핑계가 마뜩찮다. 어머니야 아들이 술집 여성과 장래를 약속한다 하니 눈이 뒤집힐 수 있다. 그 또한 자기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고. 헌데 이웃 눈치를 본다 정도면 정진업의 현주에 대한 진정성은 믿을 수 없는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진영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통영으로 학원 선생이 되어 간다하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현주는 다시 만나게 될까. 현주가 무슨 .. 2017. 7. 25.
[한하균 오동동야화]월초가 관심을 가진 여인 한현주 월초가 문단에 데뷔하여 금의환향한 이야기. 무엇보다 월초가 관심을 보였던 한현주라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글을 베껴 쓰면서도 그가 경남연극에 어떤 역할을 했기에 한하균 선생이 주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 궁금하다. 문득, 현재 경남연극인들 중에 이런 이야기로 관심을 끌 수 있는 인물이 누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일정 말기인 1930년대 말, 우리 나라의 유일무이한 문학전문지인 에 그렇게도 간절히 소망하던 문단 데뷔의 일차 관문을 통과하게 되자 월초는 그리운 고장 마산을 찾아와 온 시중을 휩쓸고 다녔다. 그 당시 마산 시중이래야 신마산은 70% 가까이가 일본인이 모여사는 신시가지였고 구마산은 거의 전부가 한국인이 취락하여 사는 보수색이 짙은 마을이었다. 다만 오동동만이 술집이 많이 있었지만 전통적인 노랫가락과.. 2017. 7. 23.
[한하균 오동동야화29]김해랑 정진업에 이르기를 "풍각쟁이가 될텐가?" 신극이 유행하고부터는 신파극은 신극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말하자면 경멸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무용을 하는 김해랑마저도 정진업이 혁신단을 따라다니자 나무라며 하는 말이 "자네, 예술을 할 셈인가? 풍작쟁이가 될 텐가" 했다 하니 말이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내던 신파극의 독특한 플롯 구조가 당시 관객에게 먹혀들어갔을 터이다. 암튼 김해랑의 소개로 정진업은 이광래를 만나게 되나 보다. 극단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은 뒤 이듬해인 1935년 이른 봄에 전기 천적막이 다시 불러 갔더니 역시 '극예사'란 간판을 걸고 소인극단체를 만들어 영남 일대를 순회공연하는 것이었다. 공연 작품은 월초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다. "창피하게도 옛날 임성구의 혁신단에서 공연했던 등이었다." 여기에서 연극인 정진업.. 2017. 7. 18.
[한하균 오동동야화26]괴짜 정진업의 마산상고 학창시절 사람이 성장하면서 아무래도 학창시절에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듯하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5, 6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의 영향으로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게 되기도 했지만. 월초 정진업 역시 마산상고 시절 만난 일본인 선생 마즈마데카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학생이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면 그의 전공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어쩌면 성향도 닮는 듯하고. 아즈마데카라가 아나키적 성향이 있었다고 하니 앞으로 월초의 행보에 그런 모습이 드러나는지도 유심히 읽어봐야겠다. 1929년 4월 (당시는 신학기가 4월이었다) 월초는 5년제인 마산상업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요즘에야 거의 대부분 학부모들이 자식을 하나 아니면 둘만 낳아 잘 기르겠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별로, 아니 거.. 2017. 7. 15.
[한하균 오동동야화25]정진업 골목대장에서 문인으로 그 성장과정 오늘부터는 월초 정진업 선생에 대한 이야기다. 연재들 모두에 언급한 대로 한하균 선생이 정진업을 만났을 때 장면이 기억난다. 소설가로 등단해 시인이기도 했던 연극인 정진업이 한하균 선생의 시낭송을 듣고는 나 말고 시를 낭송할 줄 하는 이가 있네 하면서 농을 건네고 심한 바이브레이션에 대해 충고를 주는 장면. 혹시 한하균 선생은 당시 너무 유명인들 앞이라 떨려서 자연스레 바이브레이션이 나왔던 것은 아닐까.. ㅎㅎ 추측일뿐. ㅋ~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연극인, 이 타이틀이 마음에 든다. 오늘부터는 월초 정진업 선생 이야기로 접어든다. 월초 선생은 골목대장이었다. 아명은 쇠돌이다. 무쇠처럼 튼튼하게 오래 살라는 뜻에서 할머니께서 지으신 이름이란다. 진업은 호적상 이름이고 월초는 향파 이주홍 선생께서 부산일보 문.. 2017. 7. 14.
[한하균 오동동야화13]김수돈 장난에 죽인다고 달려든 정진업 마산 연극의 선구자들이랄 수 있는 이광래, 김수돈, 정진업 이런 사람들이 극단 민예 활동 중 일어난 일화. 분위기를 보아하니 한번씩 거짓말로 상대를 골려주고 했을 것 같다. 이광래·김수돈·정진업에 얽힌 일화다. 8·15광복의 기쁨이 미처 가시기도 전인 1945년 세모가 가까운 어느날 충남 강경에서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강경은 유동인구가 정주보다 훨씬 많은, 그래서 상품거래가 많았던 곳이어서 권번(기생이 대기하면서 요리점에서 부르면 주변에 나가기 위하여 여러 가지 예절과 춤과 노래를 교습받던 곳)도 있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윤택했다. 강경에서의 공연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는 초만원을 이운 가운데 무사히 끝났다. 막이 내린 뒤 분장실로 돌아가 보니, 월초 정진업에게는 그곳의 권번에서 정중히 초.. 2017.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