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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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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성장하면서 아무래도 학창시절에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듯하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5, 6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의 영향으로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게 되기도 했지만. 월초 정진업 역시 마산상고 시절 만난 일본인 선생 마즈마데카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학생이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면 그의 전공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어쩌면 성향도 닮는 듯하고. 아즈마데카라가 아나키적 성향이 있었다고 하니 앞으로 월초의 행보에 그런 모습이 드러나는지도 유심히 읽어봐야겠다.




1929년 4월  (당시는 신학기가 4월이었다) 월초는 5년제인 마산상업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요즘에야 거의 대부분 학부모들이 자식을 하나 아니면 둘만 낳아 잘 기르겠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별로, 아니 거의 지망하지 않고 있어서 중부 경남을 대표하던 마산상고가 옛 영화(?)를 못 찾고 있지만 월초가 입학하던 1930년대 초반기에는 수재들이 운집하던 때였다.


더욱이 가능하면 한국인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 온갖 잔꾀를 부리던 일제강점기였기에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막혀있던 서민층의 한국인에게는 부산의 부산상고와 함께 마산상고가 유일한 등불이었다


따라서 지금 60대 중반 이상의 연령층에 있는 마산상고 동문들의 자긍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우선 정계부터 살펴보면 황낙주(전국회의장), 우병규(전 국회의원 국회사무총장), 김우석(전 건설부장관), 백찬기(전 국회의원), 김정수(국회의원) 씨가 이 상고 출신이다.


경제계에도 많다. 벽산그룹의 창시자 김인득, 이해규(삼성중 대표이사), 이철수(전 제일은행장), 이춘영(전 경남은행장), 배종열(한양그룹 회장) 등이 있고, 법조계에도 주선회(광주 고검장), 김성찬(부장검사)과 학계의 김윤식(서울대 교수 평론가), 정노팔(연세대 교수)임철규(연세대 교수) 등이 있다.


예술계에는 이광석(시인), 최원두(시인), 조병무(평론), 황원철(창원대 교수 화가) 등이 있다. 이외에도 언론계의 이순항(경남도민일보 대표), 이문행(경남신문대표), 그리고 씨름하면 누구나 떠오르게 마련인 이만기, 강호동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제제명사를 배출한 명문학교가 마산상고인 것이다.


월초도 마산상고 출신으로서의 프라이드가 대단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인생의 방향타를 결정하게 한 사람이 마산상고를 입학하면서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아즈마데카라(東功) 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스승이다.


대개의 경우 일본인 이름은 4자 내지 5자로 되어 있고 한국인 이름은 3자로 되어 있게 마련인데 이분은 한자로 2자였기 때문이다. 월초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알맞은 특이한 이름의 동공이라는 스승은 문예 담당선생이었다.


히로시마 고등 사범법학교(이 학교는 일본 유수의 사범대학 중의 하나였다) 출신답게 명석한 머리와 정확한 판단력을 겸비했으면서도 결코 어떤 틀에 얽매이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자유주의자였다. 수업시간에도 신국 일본(신이 일본을 세웠다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이론)의 허구성과 허망함을 설파하는가 하면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의 사상을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에다 1920년대 일본 열도를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대하여 일가견을 말하기도 하는 괴짜 선생이었다.


이 괴짜선생을 흠모하고 따랐기 때문에 월초의 학생시절의 닉네임도 '괴짜'라는 뜻의 변태성이었다. 이유는 연극 음악 영화 등 다방면에 취미가 많아 장르가 바뀔 때마다 그 장르에 몰입해 버리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으로 잘 변한다하여 악우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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