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균 오동동야화13]김수돈 장난에 죽인다고 달려든 정진업
마산 연극의 선구자들이랄 수 있는 이광래, 김수돈, 정진업 이런 사람들이 극단 민예 활동 중 일어난 일화. 분위기를 보아하니 한번씩 거짓말로 상대를 골려주고 했을 것 같다.
이광래·김수돈·정진업에 얽힌 일화다. 8·15광복의 기쁨이 미처 가시기도 전인 1945년 세모가 가까운 어느날 충남 강경에서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강경은 유동인구가 정주보다 훨씬 많은, 그래서 상품거래가 많았던 곳이어서 권번(기생이 대기하면서 요리점에서 부르면 주변에 나가기 위하여 여러 가지 예절과 춤과 노래를 교습받던 곳)도 있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윤택했다.
강경에서의 공연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는 초만원을 이운 가운데 무사히 끝났다. 막이 내린 뒤 분장실로 돌아가 보니, 월초 정진업에게는 그곳의 권번에서 정중히 초대한다는 전갈이 와 있었다. 사실 크레이그가 말한 대로 '연극은 연출의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극에서의 연출의 위치는 거의 절대적인 존대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연출 따위야 아랑곳없고 주연 남우나 주연 여우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월초에게만 초대가 있었던 것이다.
월초는 연출가 이전에 고향의 선배요, 친구인 온재와 화인에게는 살며시 행방을 알리고 초대에 응했다. 월초를 홀로(?) 보내놓고 온재 선생을 모시고 대폿집에서 쓸쓸히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화인은 아무래도 마음이 개운찮았다. 그래서 화인은 온재 선생을 모시고 월초가 초대받은 요정으로 공격(?)해 들어간 것이다.
"진업, 진업(화인은 언제나 월초를 그렇게 불렀다) 어디 있는가?" 몇 번을 불렀다고 한다. 월초는 꽃으로 둘러싸인 이 화원에 잡인(?)이 섞이는 것을 꺼려 못들은 첫하다가 하도 다급한 부름에 방문을 열고 내다 보니 "큰일 났네. 자네 부인이 위중하다는 기별이 왔네. 어서 가 볼 차비를 하게"라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화인이 말하지 않는가.
그렇잖아도 병약한 신부를 고향에 두고 온 월초로서는 남모르게 은근히 걱정하던 차에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우직하리만큼 고지식하고 순수한 매혹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에다 헌칠한 키의 미남 배우인 월초의 눈망울에 눈물이 핑 번지는 것을 본 기녀들도 덩달아 입이 삐죽삐죽해지자 미리 화인과 약속이 되어 있던 온재도 한마디 거드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은 이미 늦었으니 내일 아침 고향에 다녀오게. 자네가 맡은 역은 내가 대신 함세..." 라고 말하자 월초는 황송해 하면서 굽신굽신하는 것이었다. 기녀들이 보아하니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이 있다더니 그렇게 선망하고 존경하고 사모하던(?) 주연 배우를 명령하고 타이르는 연출 선생(두 사람 다 체구는 작았지만)의 존재에 새삼스레 경탄과 존경의 뜻을 나타내면서 술잔을 권하는 것이었다.
새벽녘이 이슥해서야 숙소(여관)로 돌아온 뒤 그간의 경위를 알게 된 월초가 화인을 때려죽인다고 또 한번의 희극(?)이 연출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어쨌거나 곡절 많은 해방 직후에 극단 '민예'는 제 목소리를 꾸준히 외치다가 전술한 바와 같이 프락치 사건 때문에 1947년 11월에 문을 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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