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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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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21:07

한하균 선생의 오동동야화 마지막회.36회로 끝났다. 건강상의 이유였다. 온재 이광래와 월초 정진업. 정진업의 이야기는 아직 남은 듯도 한데... 한현주가 서울에서 어떻게 배우로 성공하는지 궁금했는데... 혹시나 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봤는데...자료가 나와 있지 않다. 월초의 향후 약력을 보면 주로 마산서 활동을 했는데.. 서울 간 한현주는 다시 마산으로 돌아왔을까?

그것도 그러려니와 월초 다음 차례가 화인 김수돈 이야기인데... 제법 재미있는 일화가 있을 법한데 더 접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현주의 정체를 알게 되자 '통영협성학원'의 재단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다. 특히 염진사(구한말 과거에 진사로 합격한 통영의 대원로)를 비롯한 유림의 분노는 대단한 것이었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무배(巫辈)들이나 하는 연극을 한다는 것도 마땅치 않았는데 거기다 화류계 여자와 동거하면서 그 여자와 함께 연극을 하겠다니 될 법이나 한 말이냐? 안되고 말고!" 이러한 유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문화계 인사들, 그 중에서도 김용주, 김용기 형제를 비롯하여 박재성, 장하보, 유지환 등 이른바 양반의 집 자제들이 앞장서 간청을 한 것이다.


이에 중년층을 대표한 김채호(초대 통영읍장 김용식, 외무장관의 선친)와 청년층으로서는 노인네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이정규(초대 민선통영시장) 등이 나서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설득하려 했지만 유림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광복이 된 뒤에야 알려진 이야기지만 '일본어 연극'이라는데 유림들의 반감이 더 컸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연극도 수포로 돌아가고 월초도 통영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그간의 사정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기로 하자.


"나는 어느덧 탕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이단자가 되어 있었다. 문학과 연극을 하는 선후배들이야 한자라에 모여 리허설도 하고 때로는 술시중을 들게 하면 같이 놀 수 있는 처지였지만 학원 운영자측, 특히 나이 많은 유림층에서는 막무가내였다. 아이들에게 영향이 미칠 것이니 추방해야 된다는 일부 주장이 우세하여 나는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 학원에서 쫓겨 나오고 말았다."('세정무정'에서)


그리하여 풍광명미한 한국의 나폴리 통영을 떠나면서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첫째는 현주를 먼저 서울로 가게 하는 것이었다. 밤새도록 타이르고 구슬렀지만 여자 특유의 민감한 신경으로 현주는 다시는 버림받지 않기 위하여 몇 번이고 울면서 다짐을 받는 것이었다. "배신을 하는 날에는 당신도 죽이고 나도 죽을 것이라고..."


2~3일 후 현주를 서울로 보내고 허약해진 몸을 다스리기 위하여 두 번째로 마산의 부모 곁으로 돌아가 약을 먹기로 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지금의 KBS 정동에 있었던 제2방송국 아동극 원고 모집에 당선되었다는 통지서가 와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월초의 마음에 한줄기 광명의 빛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상금도 탈 겸 몸이 수습되는 대로 서울로 떠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그리하여 '연극의 바다'에 뛰어 들리라고 다짐하고 다시 서울로 갔던 것이다.


※작가의 건강사정으로 시리즈를 이번회로 마감합니다. 차후에 기회가 되면 다시 연재토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마산 산호공원 시의 거리에 세워진 정진업의 '갈대' 시비


갈대


모래밭에 묻어 놓은

물새의 노래는

영영 몰라도 좋은 것이 있었다


바람이 일면

바람 같은 심사

사색을 쫓고


스스로 시익시익

그이의 모기치마 여미는 소리로

울어야 하였다


지금은 열다섯 소녀 하나

울면서 항구로 간다고

사공의 넋두리에

열이 오르는데


낙동강은 돌아선 채

태고 그대로인 바다로 가는 것을

그는 잠자코 보고 있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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