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경찰청 누리집에 있는 홍보용 자료에서 발췌한 사진.
총선 기간이지만 경기 일산 초교생 납치미수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당연히 화살은 경찰에 꽂혔다. 불과 얼마 전 안양 초교생 납치 살해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민 앞에 사죄하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던 탓이다.
오늘 4월 1일치 일간지 대부분 사설은 이 문제를 꼬집었다. 경찰을 나무라는 데야 그 내용이 뻔하겠지만 어느 신문이 어떤 표현을 썼는지 궁금해서 하나씩 열어본다.
<경향신문>은 ‘헛말이 된 경찰의 어린이 치안대책’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피해 어린이 부모만 만나 간단히 얘기를 듣고는 ‘단순폭행’ 사건으로 처리했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조사하지도 않았고, 아파트 폐쇄회로(CCTV) TV를 확인하지도 않고 돌아갔다고 한다. 긴급을 요하는 강력사건으로 분류하지 않음으로써 범인이 도주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준 것이다.(…)경찰 조직에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얼빠진 경찰의 수사태도에 답답해하면서 “말단 경찰관에서 최고급 간부에 이르기까지 어느 부분이 막혀 있고, 어느 대목이 흐트러져 있는지 조직을 전면 점검해 일대 쇄신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는 ‘날뛰는 범죄, 한심한 경찰’이란 제목을 붙였다. “늑장 및 부실 수사로 비난 받는 이런 경찰에 의지해야 하는 국민은 불행하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섬김의 뜻이 뭔지 모르고 복지부동만 하려는 공무원을 낱낱이 솎아내야 한다”고 강력한 처벌로 공무원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눈에 띄는 주장이 있다. “범인이 활보하며 무슨 짓을 할지를 생각하면 경찰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경찰이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아일보>, ‘이런 경찰 믿고 어떻게 아이 키우나’. “2월 새로 부임한 어청수 경찰청장은 ‘새롭게 달라지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마들어 전국 경찰서에 붙였다. 전시용 구호만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찰 수장을 향해 쓴소리를 내뱄었다. 심각한 사안에 ‘재미있다’는 표현이 어울리진 않지만 “쥐 잡는 일을 귀찮아하는 고양이를 집안에 기를 필요가 없듯이 범죄예방에 무심하고 범인 안 잡는 경찰 조직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경찰의 무성의와 무능을 질타했다. 지나치다 싶지만 가슴에 와 닿는 비유다.
<서울신문>은 ‘이런 경찰관들 옷 벗겨야 한다’는 제목으로 논조를 펼쳤는데 혜진·예슬 양 사건에서 한 수사관이 ‘부실수사’를 양심고백한 사례를 들면서 “경찰관들의 의식과 수사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범죄 예방과 범인 검거는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번 사건이 또 발생하다보니 “그 같은 우려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피해 어린이 부모에게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요구한 경찰관, CCTV 확인시 납치사건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해명한 일산경찰서장, 그밖에 기강해이가 이 정도에 이를 만큼 방치한 경찰청 지휘라인은 옷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얼빠진 경찰, 불안한 국민’이란 제목으로 경찰의 한심한 태도를 질타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논리는 보이지 않는다. 있었던 사실을 나열하고 맨 마지막에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를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조직이 경찰 (…) 관계자 엄벌 같은 판박이 대처로는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빠진 경찰 조직을 개조하긴 어렵다. (…)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뻔한 주장을 내세웠다.
<조선일보>, ‘경찰, 무능한 건가 넋이 나간 건가’란 제목. 사설에서도 기사와 같이 당시 상황을 아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용히 따라와.” “살려주세요.” 그리고 상황을 카메라에 담듯 상세한 지문들. 사설을 읽으면서 ‘무슨 이런 표현까지…’했는데 “이 정도면 경찰관의 유·무을 여하나 성실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경찰관들의 지능을 검사해 봐야 할 판이다”는 비판으로 연결하고 있다. 경찰을 조지는 데 확실한 논법을 구사하고 있다. 절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노케 한다. 경찰이 수사본부 설립 하루 만에 범인을 잡았다고 해놓고도 “하지만 정말 구제불능 경찰이랄 수밖에 없다”고 질타하고 있느니 범인을 잡은 경찰로선 이 표현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중앙일보>는 ‘경찰, 번할 수 없는 조직인가’란 제목으로 경찰을 비난했고, <한겨레> 역시 ‘얼빠진 경찰, 본분으로 돌아가라’라고 했으며 <한국일보>도 ‘우리 경찰 언제나 스스로 달라지려나’라며 혀를 찼다.
이번 사건이 혜진·예슬 두 어린이 유괴사건에 이은 것이다 보니 국민의 실망감이 더 큰 측면이 있다. 그런 만큼 언론도 경찰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았던 점이 이해된다. 하지만 안양과 일산의 대형사건(?) 때문에 모든 경찰이 매도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야 국민 정서상 감내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일선에서 치안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경찰관들에게까지 힘 빠지게 하는 표현은 삼가는 아량도 언론이 가져야할 덕목 아닐까 생각한다.
사소하게 느끼는 사건 하나에도 되짚어보면 큰 사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대처하는 자세는 백 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참에 민원에 권위적인 태도를 보였던 경찰관들은 마음가짐을 새롭게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실수를 하더라도 국민이 용서하는 아량을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