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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확인증
민주주의 꽃이 시들어간다.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이라는 국가체제다. 그 핵심은 투표로써 위정자를 뽑는 일이다. 내가 낸 세금을 내가 뽑은 사람이 운영하게끔 해서 국가가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주인의식’의 발로다.
물론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뽑은 사람이 다 당선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나의 독재’일 것이므로 국민 다수가 뽑은 사람이 위정자가 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맞을 것이다.
늦게 아침을 먹고 투표소에 갔다.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의 중간,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그런지 창원시 북면 화천 자치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선관위 관계자가 인적확인을 하는데 명부에 사인이나 도장이 찍힌 난보다 비어있는 공간이 너무 커 보였다. ‘다들 바쁜가’ 생각하고 제시했던 운전면허증을 챙겨 옆으로 갔다.
하얀색과 연두색 투표용지 두 장을 받아 기표소로 들어갔다. 미리 점찍어둔 인물과 정당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기표하고 나왔다. 색에 맞춰 투표함에 넣고 돌아서는데 선관위 직원이 ‘투표확인증’을 준다.
보자, 지금까지 한 열댓 번은 투표를 했지 싶은데 투표하고 나서 투표했다는 ‘확인증’을 받아보긴 처음이다. 일단 기분은 좋다. 투표를 해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얼마나 쓰임새가 좋을지 몰라도 어쨌든 뭔가를 받으니 좋은 것이다. 순간, 내게 투표권이 한 다섯 개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식구가 다섯 명이니 ‘투표확인증’ 5장으로 어디 놀러 갈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투표확인증’을 자세히 읽고 나서는 기쁨의 정도가 반감되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억지로 스스로 위안을 했다. 유효기간이 ‘이번 달 말까지’가 뭐야. 이왕 인심 쓰는 김에 올해 안까지 쓰도 되도록 하지...
그런데 오후 1시쯤 12시 현재 투표율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30%도 안 된다. 대개 아침에 투표를 많이 하는 데도 이정도의 투표율이라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겨우 몇 명의 지지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 나라의 살림을 책임진다는 얘기 아닌가. 한 명이 투표하든 두 명이 투표하든 지지를 받아 당선이 된 바에야 국민의 대표일 수밖에 없으니 국회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욕할 수는 없겠다. 국민이 권한을 포기해 일어난 일이니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국민 개개인에게 있는 것이니.
어느 여론 조사에 보니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 1위가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렇게 치면 난 벌써 25년 전에 참정권을 포기했겠다.
난 투표의 의미를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당선되는 데 두지 않는다. 물론 당선이 되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내 표가 그 사람에게 위로라도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당선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나의 한 표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용기로 ‘교환’해 더더욱 국민을 위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투표확인증’은 솔직히 ‘미끼’로서 자질미달임은 틀림없다. 선관위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정말 ‘매력’이 없다. 받는 순간의 기쁨 말고는 오히려 허탈감을 안겨줄 뿐이다. ‘투표확인증’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차라리 이정도의 혜택밖에 주지 않을 거면 투표장에 막걸리와 떡, 돼지머리 눌린 것과 맛있는 김치를 내놓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투표장을 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선거일을 ‘잔칫날’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뭐, 그러다가 니는 누굴 찍었네, 나는 누굴 찍었네 하며 싸움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재미있는 선거풍속도가 아닐까.
매번 투표할 때마다 선관위나 언론은 짜는 소릴 해대서 나도 덩달아 짜는 소릴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