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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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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은 그대로의 것을 자연이라 합니다. 자연을 보호하자, 보전하자고 하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환경이 인간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상엔 인간만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아다니는 새와 각종 곤충도 있으며 사람이 주는 음식으로 생활하는 집짐승도 있지만 자연 속에서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이루고 사는 야생동물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며 사는 생명도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인간의 적이 아닙니다. 저마다 생존의 원칙에 따라 이 조그만 땅떵어리 지구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갈 뿐이죠. 하지만 어느 한 쪽의 지나친 욕심은 균형을 파괴시킵니다. 이 균형은 한 번 잃게 되면 되찾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자연은 순응의 대상이지 극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부터 현명한 민족들은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순응해왔습니다. 우리 민족도 그랬고 인디언도 그랬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는 자연을 거스르는 욕심을 내지 말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4대강 사업을 한답시고 강둑을 파헤쳐 큰 강이 온통 누런 황토로 뒤덮인 현실을 보면 언젠가 이로 인해 인간이 재앙을 맞을 것이란 불안감이 듭니다. 오늘 경향신문의 사진을 보니 갑갑함으로 숨이 막혀옵니다. 저 속에도 온갖 물고기들이 살았을 터인데, 저 뻘물에도 물고기들이 예전처럼 헤엄치며 살까. 만약 사람에게도 저런 환경을 만들어주면 살 수 있을까.

울컥 부아가 치밉니다. 개발이라는 핑계로 남들이 살지 못하도록 횡포를 부리는 사람에게 똑 같은 방법으로 그 환경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싶은 복수심이 입니다. 그들을 우리에 가둬놓고 주변을 삽질하면서 온갖  먼지를 일으켜 덮어 씌우는 겁니다. 그리고 절대 못 나오게 합니다.

온순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복수를 모릅니다. 그리도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없으면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또 알아도 어찌해야 할지 모릅니다. 어찌해야 할지 알아도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권력자들이 무소불위로 활개치도록 만듭니다. 깨우쳤을 땐 이미 늦어버린 거지요.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옳은지 곰곰이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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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자마자 내려오신 뜻이 무엇인지 결제 대중은 하안거 내내 잘 참구해보시기 바란다."

불교 선원이 오늘 28일로 하안거에 들면서 조계종 법전 종정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은 석가모니와 문수보살과의 일화에서 나온 것입니다.

일화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부처님이 법상에 올라가 앉자마자 문수보살이 설법을 마치는 종을 치면서 "법왕의 법(法)이 여시(如是) 하나이다(부처님의 법이 이러하나이다)"라고 말했고 이에 부처님이 즉시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아마도 가섭의 염화미소처럼 지혜가 가장 뛰어난 문수보살만이 세존과 나눌 수 있었던 대화로 말이 필요 없는 법담(法談)이겠지요. 참선의 내공이 깊은 사람들끼리는 무언의 법담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나도 그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와는 어느 정도의 그런 법담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말 안해도 알제?"
"으응."

이번 하안거에 스님들께선 용맹정진하시어 참 깨달음을 얻어 사회에 회향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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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다.

청소년문학대상 작품은 좀 구상이 됐니?

산문은, 뭐 뭔가 필이 꽂혀 쓰기 시작한다면야 두어시간 만에라도 원고지 15매 짜리 정돈 후딱 해치울 수도 있겠지만,

전에 보니까 시도 좀 다듬으면 괜찮을 것 같던데...

운문으로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처음 펜을 잡을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무엇을 쓸 것인가 아니겠니? 그런데

이 고민은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삶의 카테고리만 떠올리면 당장에 해결이 되지.

먼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잘 살펴봐.

나는 지금 내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가?

아빠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해주는가? 엄마와의 갈등은 없는가? 동생들과는 아주 사이좋게 잘 지내는가?

혹은 우리반 아이들은 공부벌레들로만 이뤄져 학급 분위기가 싸~ 한가?

아니면 여러 조직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서 왕따 당할까봐 두려운 공간인가?

일어나면 밥 먹고 학교 가고 공부하다 집으로 와서 컴퓨터 조금 하다가 복습 하는둥 마는둥 그저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는 삶이 너무나도 따분해서 미칠것 같지는 않은가?

생각은 생각을 낳는 법. 첫 생각에서 지쳐버리면 결코 글감을 찾을 수 없다. 스님들이 화두를 하나 정해서 구도정진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스님들은 때론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는 화두로 몇 달 몇 년을 수행하기도 하지. 이를테면 '부모 살아계시기 전에 과연 나는 뭐였나?'

아버지 조상, 어머니 조상 어느 분의 몸을 이룬 세포였을 것이다 하는 일차원적인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님은 너도 잘 알거야.

그 화두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살아있음에 대한 이치를 찾고자 하는 것이야.

법정 스님은 '무(無)' 하나를 들고 용맹정진했지. 얼마 전에 입적한(돌아가신) 그분이 지은 책 중에 '무소유'라는 것이 있는데 '무'라는 화두에서 비롯된 작품이야.

이런 사례들은 또 많은 생각을 낳고 여러 생각들로 이어주기도 해.

'무(無)'는 '유(有)'를 연상시키고 '유'는 '욕심'을 이어주고 '욕심'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낳기도 한다. 아빠의 이 마인드맵을 이해할 수는 없을 거야.

물론 우리 큰딸이 '염화미소(拈華微笑)' 고사처럼 부처가 연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미소를 지은 것처럼 알아들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기체의 '브라운운동'처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

우리 딸이 이젠 생각을 지어볼까.

마인드맵을 활용하면 좀 더 쉽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겠네.

아빠가 간단한 예로 생각지도를 그려볼까?

'구름', '그리움', '님', '핸드폰', '초승달', '아파트 높은 외벽', '컴퓨터'....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여 적절한 은유와 직유를 활용하고 운율을 맞추면 괜찮은 시가 태어날 것 같다.

물론 잘난 모든 작품엔 그만큼의 산고(産苦)가 따르는 법이지.

2010년 5월 25일.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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