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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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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다. 아니 어쩌면 필연일 것이다. 자전거를 둑맞은지 며철 안 되어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실린 탁상시계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게다가 마음 한 구석에 심어놓은 저주도 털어버리지 못한 내게 스님이 나타나 꾸짖는 것만 같았다.

읽기만으론 털어버리기가 부족할 것 같아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탁상시계 이야기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경우, 서투르고  서먹한 분위기와는 달리 속으로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지구상에는 36억인가 하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데, 지금 그 중의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우선 만났다는 그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하늘 밑, 또같은 언어와 풍속 안에 살면서도 서로가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인간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설사 나를 해롭게 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는  그만큼의 인연이 있어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와 마주친 것일까.  불교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시절인연이 다가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물건과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내게 온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탁상에는 내 생활을 거동케 하는 국적 불명의  시계가 하나 있다.

그놈을 보고 있으면 물건과 사람 사이의 인연도 정말 기구하구나 싶어진다. 그래서 그놈이 단순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새벽 예불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큰 법당 예불을 마치고 판전을 거쳐 내려오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돌아와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다.  도군이 다녀간 것이다.  평소에 잠그지 않는 버릇이라 그는 무사 통과였다.  살펴보니 평소에 필요한 것들만 골라갔다.  내게  소용된 것이 그에게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져간 것보다 남긴 것이 많았다.   내게 잃어버릴 물건이 있었다는 것이, 남들이  보고 탐심을 낼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잖이 부끄러웠다.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게 마련이라 생각하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남의 것을 훔친 과보인지  모른다 생각하면, 오히려 빚이라도 갚고 난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가 싶어 있는 것 없는 것을 샅샅이 뒤져놓았다.  잃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애석하지 않았는데 흐트러놓고 간 옷가지를 하나하나 제자리에 챙기자니 새삼스레 인간사가 서글퍼지려고 했다.

당장에 아쉬운 것은 다른 것보다도 탁상에 있어야 할 시계였다. 도군이 다녀간 며칠 후 시계를 사러 나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을 허름한 것으로 구해야겠다고  작정, 청계천에 있는 어떤 시계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 허허, 이거 어찌된 일인가.  며칠전에 잃어버린 우리 방 시계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웬 사내와 주인이 목하 흥정중이었던 것이다.

나를 보자 사내는 슬쩍 외면해버렸다.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못지않게 나도  당황했다.  결국 그 사내에게 돈 천원을 주고 내 시계를 내가 사고 말았다.  내가  무슨 자선가라고 그를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어슷비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인데.  뜻밖에 다시 만난 시계와의 인연이 우선 고마웠고, 내  마음을 내가 돌이켰을 뿐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스님의 글을 읽노라면 나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자전거를 도둑맞고 오히려 좋은 점이 많이 생겼지 않은가. 출퇴근 30분씩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혜택이다. 어쩌면 벌써부터 자전거에서 내리고 싶었으나 편리함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더우면 더운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같은 길을 걷더라도 늘 새로운 세상을 본다. 그래 도둑맞은 자전거에 저주를 던질 게 아니라 지금처럼 걸으면서 '참선'을 할 수 있게 해준 그 도군(스님의 표현대로)에게 고마워해야 옳은 일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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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이 16강 진출을 확정짓고 가진 인터뷰에서 태극전사들의 병역문제를 조심스럽게 언급했다고 합니다.
"국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병역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다."

국제 대회 출전하는 체육 선수들에 대한 병역문제가 거론되기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난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야구선수들이 우승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병역혜택을 받았죠. 박찬호의 경우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면서 벌써부터 병역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국위선양이냐 형평성이냐를 두고 논란이 많았죠.

외국에 나가 운동선수로서 나라의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 많이 늘었습니다. 물론 개인의 명예와 부를 함께 얻는 것이 목적이긴 하겠지만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측면에서 보면 특별하긴 합니다.

허정무 감독이 새벽 인터뷰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하는 데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력이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면서 "그러나 젊은 선수들이 병역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든 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병역 대체 방법까지 제시를 했습니다. 16강에 진출한 상황에서 허 감독으로선 선수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이러한 말을 했겠지만 어쩌면 대한민국 청년들의 고민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병역문제는 한창 꿈을 이루려고 무소의 뿔처럼 사회에 도전장을 내고 치달라는 혈기의 청년에게 족쇄를 채우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나 국가대표 기능인, 국제적으로 황동하는 청년 석박사들... 이런 사람들에게 병역은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남북이 아직도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력을 퇴화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국방비가 우리나라 전체 예산에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가 언제까지고 이나라 젊은이들을 거의 공짜이다시피 부려먹을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상한 병역면제, 부정면제 등을 일거에 타파할 수 있는 모집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장교만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일반 군인도 직업이 되어 생활이 되게 하고 이등병부터 시작하더라도 나중에 능력에 따라 장교까지 진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군인이 매력있는 직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병역 면제 혜택을 늘여가는 것이 좋겠지요. 지금은 신체나 가정형편 등을 고려해 몇 가지 방법으로 병역혜택이 주어지지만 더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허 감독이 제시한 '나이가 든 후의 해결'도 현재로선 가장 완곡한 방법의 요청이 아닐까 여깁니다.

어제 형평성만을 따질 때는 아닙니다. 그 형평성 때문에 인생의 전성기를 허비해야 한다면 그것도 국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군대 생활을 해 본사람들은 다 아시겠지만 일반병의 경우는 일과의 대부문이 그냥 체력훈련입니다. 총검술, 태권도, 사격연습, 그리고 사역. 그런데 그것을 좀더 개인의 주특기를 살려 근무하게 한다거나 생산활동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군이 운영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이젠 군이 쪽수만 가지고 전쟁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전쟁이 일어나서도 안되겠지만 군은 모두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하고 공무원으로 대우를 한다면 시험을 쳐서 지원하는 청년도 꽤 있지 않을까요.

허 감독의 '병역 언급'에 입이 근질근질하여 몇마디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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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개월 전 쯤 범인의 절도 시도가 있었다. 그땐 잠금장치의 열쇠구멍이 훼손되긴 했지만 열지 못하자 포기하고 돌아갔던 사건이었다. 다른 자전거에 잠가두었던 체인락으로 교체해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어제서야 결국 자전거를 도둑맞고 말았다.

자전거 도난은 5살 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자전거를 도둑맞고 나니 마음 속에선 찬물과 따스한 물이 교차한다. 잘됐다. 이참에 하루 1시간 정도 출퇴근할 때 걸어다니자. 건강에도 자전거보단 오히려 도움이 될 거야. 아니지. 이 더운 여름에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면 시원하기도 하고 시간도 절약하고 좋았는데...

내가 다섯 살 때. 자전거는 집앞에 두었다. 아버지가 세탁소를 하였기 때문에 창밖으로 자전거가 보였다. 동생과 놀다가 밥먹으러 잠시 들어왔던 거서이다. 수시로 고개를 돌려 자전거가 잘 있는지 살폈음에도 어느 순간 그 예쁘고 빨간 세발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보았나? 하고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자전거의 존재유무를 확인했다. 역시 처음 목격했던 순간이 환상이 아니었다. 밖으로 쫓아 나갔다. 아무도 없었고 자전거도 흔적이 없었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전거를 잃어버리자마자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은 분명히 생각난다. 밥 먹을 땐 자전거를 갖고 들어와야지. 그렇게 아무렇게나 두니까 도둑맞는 거 아니냐? 두 번 다시 자전거 사달란 말은 하지 마라."

아버지와 함께 몇 날 며칠을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비슷하게만 생겼어도 우리 자전거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 헤매다보니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자전거가 부지기수였다. 나는 그 중에 하나 그냥 내 것으로 해버리면 어떨까 고민을 했다. 말하자면 나도 내것을 훔친 사람처럼 남의 것을 훔쳐서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그런 마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봤다.

"니 꺼가? 아니면 가자."

그 날 이후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번,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번. 두 번을 자전거 운전을 했는데 그 때마다 허벅지와 발목을 다쳤더랬다. 자전거와 나는 인연이 없나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잃어버린 자전거는 꽤 오랫동안 인연을 지속했다.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실제 이용한 기간은 불과 3년도 안 되지만 사고 한 번 나지 않고 정이 붙어 있었다. 비록 오래되고 페달 체인이 간혹 헛돌긴 해도 출퇴근 길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자전거는 도난 당하고 길거리에 내던져졌던 자전거 잠금장치. 잠금부위가 심하게 훼손되어있다.

어제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온 동네를 뒤졌다. 물론 찾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방금 자전거를 훔쳐간 놈이 인근에 산다고 해도 밖에서 보이는 곳이 놓아둘리 만무할 테니까. 그래도 마음은 자꾸 동네를 휘젓고 다니게 만들었다. 그래, 그렇게 라도 해야 속에 응어리진 게 풀린다면 그렇게 해야지. 두어바퀴 돌았다. 두 번째 돌 때 자전거잠금장치를 길에서 주웠다.

이런 낮에 아파트 한 쪽에서 자전거 잠금장치를 부수어, 그것도 중고시세로 3만 원도 되지 않을 낡은 자전거를 훔쳐갈 사람은 중학교 남학생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면서 자전거 절도를 일삼는 것을 보면 분명 다음에도 그짓을 하러 우리 아파트를 찾을 것이란 계산도 나온다.

계산은 나오지만 현재로선 되찾을 방법이 없다. 10년간 정이 들었던 내 자전거를 포기는 하겠는데 마음이 자꾸 끓어오른다. 자전거를 훔쳐간 놈은 분명 사고를 당할 것이다. 그래서 훔쳐간 것을 후회할 것이다. 이렇게 마음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이것이 본능인가보다.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으며 아내가 아이들에게 자전거 도난당한 이야기를 했다. 둘째 놈이 갑자기 흥분을 한다. 우리집 머스마는 나보다 더 다혈질이다. "으씨, 내가 잡으면 그냥 야구방망이로 콱!"하며 격앙된 목소리를 낸다.

"방망이로 사람 때리면 죽는다."

나도 그렇게 분함을 참지못해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으면서 자식이 흥분했을 때 어찌 그렇게 차분해질 수가 있었을까.

40여년 전 아버지의 마음이 지금 나와 같은 것이었을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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