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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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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
"......."

2010년 7월 10일(土). 경남 창원시 경남이주민센터 5층 강당. 창원다문화어린이도서관장 이철승 목사가 모둠별로 앉은 스무여 명의 학생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부터 29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청소년다문화학교의 풍경이다.

"한 달동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배우다보면 다문화 친구를 이해할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엔 수많은 사람이 들어와 있고 또 수많은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있어요. 상품만에 세계 곳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세계 어느 나라든 가서 직업을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중학생 대여섯 명과 나머지 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강의실은 조용하다. 간단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에도 조용하다. 이 관장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예요. 공존의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서로 다른 것을 틀리다 하지 않고 이해하는 것입니다.내가 한국에서 태어날 거다 하고 태어난 사람 있어요?"

세상 사람 누구든 자기 의지로 어느 나라에,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나겠다고 골라서 태어나는 사람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 피부색이 검다고 해서 천대받고 희다고 해서 대우받거나 하는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첫날 공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라는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말하는 것이다.

영화 <찬드라>는 네팔 이주노동자 찬드라가 겪은 일을 찬드라의 시각으로 다뤘다. 찬드라, 궁금해서 정보검색을 했더니, 힌두교에선 '달의 신'이란 뜻이 있단다.

찬드라가 6년 4개월 동안 경찰서와 정신병원, 부녀보호단체를 이송되어가며 매인 몸이 되어야 했던 이유는 몇천 원 하지 않는 라면 값을 지불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 세상 참 아이러니다.

찬드라가 출동한 경찰에 잡혀가면서 시작된 불행한 한국생활의 핵심은 말이 안 통한다고 제맘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규정해버리는 한국사회의 외국인에 대한 몰이해다.

영화를 보면서 귀에 들어온 말만 쭉 나열해본다.

냄새, 찬드라 꾸마리 꾸루, "어쩌냐? 얘!", 정신병원, 정신박약, "시골서 온 아줌만줄 알았죠?", "늘린 게 외국인 노동자 애들인데...", 정신나간 사람이 횡설수설하는 소리, "태국사람이라고요? 필리핀 사람?", "머리 아파", "어쩌면 네팔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원불상자, 부녀보호소로..., 실종신고, "몰랐다기 보다 솔직히 까먹은 거지 뭐.", "일주일째 자기가 네팔 사람이라고 우기고 있는데...", 진단서, 정신분열증, 5년 후, "일단 말이 통해야" 인턴이 파키스탄인 소개, "네팔과 파키스탄 달라요.", "겨우 여권번호, 이름 받아적었어요.", "내 이름은 노미아입니다." "내 이름은 찬드라입니다." "네팔사람 아네요. 방에 데려다주세요." "제가 왜 한국말로 인사를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찬드라는 6년 4개월을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삶을 한국에서 살았다. 네팔인이라고 말을 해도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고 찬드라라고 이름을 이야기해도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설정한 대로 '노미아'라고 이름을 강요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제맘대로 재단하는 한국사회를 극명하게 보여준 영화다.


김민옥 강사가 모둠별로 영화평과 느낀점을 발표하라고 마이크를 넘기자 한사람씩 일어서서 이야기를 꺼낸다. 강의실 분위기가 잠시지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를 했던 때문인지 한층 밝아졌다.

"영화는 별 4개. 내가 대신 말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는 지루했지만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별 3개 반.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시는 찬드라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했어요."

"믿거나 말거나 라고 제목이 붙었는데 우린 사실이라고 믿는다에 영표입니다."

영화의 의도대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2003년 영화이니 실제 상황은 벌써 10년도 더 되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러면 지금은?

얼마전 1주일 동안 생산직 현장에 취직해 일을 했던 몽골 출신인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야! 너! 이리와봐!" 예사로 말놓기, 한국말 모를 것이라고 지레짐작으로 말도 안 하고 손짓 발짓으로 의사 표현하기, "너거 나라는 이런 거 있나?"하고 나라 싸잡아 무시하기 등등.

다음 시간엔 한국에 온 이주민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적잖게 기대가 된다.



관련글
찬드라 꾸마리 구릉과 쩐 타인 란
http://blog.naver.com/hyung314?Redirect=Log&logNo=70030275355

“외국인에 무관심·홀대 모든 한국인이 주인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8&aid=0000031227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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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같이 몽골출신 사람과 베트남, 일본, 중국 등지의 결혼이민여성들이 가정을 꾸리고 사는 다문화가족 70명 정도가 얼마 전, 진주에 있는 수목원엘 다녀왔다.

아마도 이 행사는 경상남도 다문화가족 지원센터가 주최하고 경남생명의숲 국민운동이란 단체 주관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우리 3조를 이끈 경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추유리 선생의 이야기로는 "생명숲운동 쪽에서 숲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 다문화가족들도 한번쯤 교육을 받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신청했는지 지원을 받아 행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형 버스를 두 대나 운영해서 70명이나 되는 가족들이 모였으니 행사는 성황리에 치른 셈이다. 단지 비가 오는 바람에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실컷 뛰어놀지 못한 것과 비옷 입고 거추장스레 이곳 저곳을 이동하며 구경하는 것은 아쉬웠다.

 방문인센터였던가,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주문한 도시락에 국이 없었던 점, 그래서 숟가락이 없었던 것이 아쉽고 불편하긴 했다. 식사가 끝나고 그 자리에서 팔룡중학교 조학래 선생님이 숲과 생명에 관한 강의를 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진행했다. 문제를 내고 맞히면 생명숲 배지를 하나씩 주었다. 그러니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대답하며 재미있어 했다.

 공부차원에선 이날 행사가 소중했지만 다문화가족들이 모여서 각종 이벤트를 즐기며 노는 여가활용차원에선 날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문화가정이 서로 어울려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도가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자주 열려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국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아지, 망아지, 얼룩 고양이~. 엄마소도 얼룩말, 개구리 닮았네."

경남생명의 숲 국민운도 위원이며 팔룡중학교 교사이기도 한 조학래 선생이 아이들 앞에서 하나도 부끄럼 없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처음 듣기에 너무 유치한 것 같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는데 갑자기.

"이 노래에 등장한 동물이 몇 마린지 아는 사람, 손!"

하고 외친다. 아, 퀴즈를 내려고 그랬구나 하고 이해되었다.

처음엔 아이들도 뻘쭘하니 있다가 장 선생이 "누구? 누구?"하며 가까이 오자,

"네 마리!" "다섯 마리!"하고 답들을 한다.

"여섯 마리!" 겨우 답이 나온다. 선물이 하나 주머니에서 나와 건네진다. 답을 맞춘 어느 아이 엄마는 좋아핬다. 필리핀 쪽 엄마다.

 장 선생은 또 똑같은 노래를 부르곤 문제를 낸다. "이중에 동물 종류는 몇 종류?" "이 중에 종이 다른 동물은 무엇?" 문제를 내기 위해 몇 번을 불렀다. 이어지는 문제, 문제라기보다.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 관광지 약도가 그려진 수건 선물을 줍니다." 갑작스런 주문이라 사람들은 입속으로 중얼중얼하지만 정작 하겠다고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었다. 풀을 몇 가지 들고 사람들 앞으로 나서더니 닭의 장풀을 소개했다. 식물의 이름이 붙여진 내용으로 문제를 냈다.

 나무에 연꽃이 열렸다? '목련'. 밟아도 안 죽는 질긴 풀? '질경이'. 진짜 나무는? '참나무'. 나무 중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요? '으뜸나무'.

 역시 답을 맞춘 사람들에겐 배지 선물이 돌아갔다. 나도 하나 받았다. 두 개를 맞춰 두 번째는 지원이가 받게 했다.

현미경을 통해 식물을 관찰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책상 아래에 있는 상자를 보니 현미경이 새것인듯했다. 아마도 이번 행사를 위해 마련한 것인듯. 첫번째, 달개비콧구멍(잎 뒤쪽의 기공)를 보고 두번째엔 질경이 콧구멍을 봤다. 세번째 본 것은 소나무 수꽃인데 꽃가루가 떨어져 나간 뒤의 모습이다. 굉장한 그림이다. 이 작은 식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나 새삼 놀랐다. 승환이도 소나무 수꽃이 가루만 그냥 있는 것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줄 몰랐단다.


태양계에서 순서는 수성 다음 금성, 그 다음이 지구다. 태양에서 수성이 가장 가깝지만 온도는 금성이 더 높다. 이유? 이산화탄소가 많아서란다. 이산화탄소가 많으면 압력이 올라가서 기온이 높아진다는 것.

 지구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자연히 온난화현상이 생긴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닌다. 숲의 중요성이 자연히 이해되게 하는 강의다.

 장 선생은 "숲보다 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것이 있어요. 무엇인지 아는 사람?" 숲보다 더? 늪이란다. 우포늪과 같은 그런 늪이 지구상의 이산화탄소를 숲보다 훨씬 많이 흡수하고 산소를 내보낸단다. 좀 의외였다.

 "이건 강가에 피는 풀인데 이름이 뭔지 아는 사람?" 창포처럼 생긴 풀을 들고 나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이 풀의 특징을 말해줄까요? 아주 부드러워요." 아하, 내가 "부들!"하고 말했다. 내가 답을 계속 맞히자 더는 선물이 없다. 그냥 진행된다. 나는 맞히고도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졌다. 으~.

 가장 행복한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전원주택 정원에 아주 아름답게 다듬어진 나무일까? 아니면 아무도 드나든 흔적이 없는 깊은 숲속에 구부정하게 자란 못생긴 나무일까?

 정답은 당연히 후자다. 그래서 수목원에 있는 나무는 행복하지 않단다. 자연적으로 씨가 뿌려지고 번져서 혹독한 자연의 도전과 시련을 겪으면서 자란 나무라야 진짜 행복한 나무란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남의 삶에 귀속되어 짜여진 틀에 맞춰가며 사는 사람일까? 아니면 제 하고싶은 대로 하며 사는 사람일까? 짜여진 틀에서 잘사는 사람일까? 제멋대로 살다가 못사는 사람일까? 제 하고싶은 다하며 사는 사람 중에 잘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연 속에서 분명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그 해답을 얻지 못했으니 더 많은 참구가 있어야 하겠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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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다. 아니 어쩌면 필연일 것이다. 자전거를 둑맞은지 며철 안 되어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실린 탁상시계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게다가 마음 한 구석에 심어놓은 저주도 털어버리지 못한 내게 스님이 나타나 꾸짖는 것만 같았다.

읽기만으론 털어버리기가 부족할 것 같아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탁상시계 이야기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경우, 서투르고  서먹한 분위기와는 달리 속으로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지구상에는 36억인가 하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데, 지금 그 중의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우선 만났다는 그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하늘 밑, 또같은 언어와 풍속 안에 살면서도 서로가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인간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설사 나를 해롭게 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는  그만큼의 인연이 있어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와 마주친 것일까.  불교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시절인연이 다가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물건과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내게 온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탁상에는 내 생활을 거동케 하는 국적 불명의  시계가 하나 있다.

그놈을 보고 있으면 물건과 사람 사이의 인연도 정말 기구하구나 싶어진다. 그래서 그놈이 단순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새벽 예불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큰 법당 예불을 마치고 판전을 거쳐 내려오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돌아와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다.  도군이 다녀간 것이다.  평소에 잠그지 않는 버릇이라 그는 무사 통과였다.  살펴보니 평소에 필요한 것들만 골라갔다.  내게  소용된 것이 그에게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져간 것보다 남긴 것이 많았다.   내게 잃어버릴 물건이 있었다는 것이, 남들이  보고 탐심을 낼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잖이 부끄러웠다.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게 마련이라 생각하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남의 것을 훔친 과보인지  모른다 생각하면, 오히려 빚이라도 갚고 난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가 싶어 있는 것 없는 것을 샅샅이 뒤져놓았다.  잃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애석하지 않았는데 흐트러놓고 간 옷가지를 하나하나 제자리에 챙기자니 새삼스레 인간사가 서글퍼지려고 했다.

당장에 아쉬운 것은 다른 것보다도 탁상에 있어야 할 시계였다. 도군이 다녀간 며칠 후 시계를 사러 나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을 허름한 것으로 구해야겠다고  작정, 청계천에 있는 어떤 시계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 허허, 이거 어찌된 일인가.  며칠전에 잃어버린 우리 방 시계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웬 사내와 주인이 목하 흥정중이었던 것이다.

나를 보자 사내는 슬쩍 외면해버렸다.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못지않게 나도  당황했다.  결국 그 사내에게 돈 천원을 주고 내 시계를 내가 사고 말았다.  내가  무슨 자선가라고 그를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어슷비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인데.  뜻밖에 다시 만난 시계와의 인연이 우선 고마웠고, 내  마음을 내가 돌이켰을 뿐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스님의 글을 읽노라면 나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자전거를 도둑맞고 오히려 좋은 점이 많이 생겼지 않은가. 출퇴근 30분씩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혜택이다. 어쩌면 벌써부터 자전거에서 내리고 싶었으나 편리함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더우면 더운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같은 길을 걷더라도 늘 새로운 세상을 본다. 그래 도둑맞은 자전거에 저주를 던질 게 아니라 지금처럼 걸으면서 '참선'을 할 수 있게 해준 그 도군(스님의 표현대로)에게 고마워해야 옳은 일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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