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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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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원문보기

○…'을사오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조선 말기, 1905년이었지요. 일본이 을사조약을 내세워 조선을 삼키려고 할 때 한국 측 대신 다섯 명이 나서서 조약에 서명했지요. 이 때문에 삼천만 조선 백성이 35년 동안 일제 치하에서 고통 받는 식민지 생활을 하게 된 사건의 장본인들을 두고 역사는 을사오적이라고 하지요. 그 이름은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입니다.

요즘 언론가에 '조중동방송 5적'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12월 1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언론재벌이 방송사를 차려서 개국을 한답니다. MB정권의 특혜로 이루어진 일이라 전국의 언론단체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야권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지난 29일 '조중동 방송저지 네트워크'가 서울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조중동방송 5적'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조중동 방송저지 네트워크'가 내세운 '5적'엔 과연 누가 들어갔을까요? 고흥길·정병국·이윤성·나경원 이렇게 국회의원 4명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입니다. 참가자들은 이들의 가면을 쓰고 종편개국축하 레드카펫 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기념촬영하는 퍼포먼스를 펼쳐 조중동 종편방송 특혜 개국을 비판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각에 '조중동방송 공동모니터단'(이하 모니터단)이 출범하였습니다. 모니터단은 선언문에서 조중동 종편방송의 출현이 불법과 탈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잠시 들어볼까요.

"2009년 7월 22일 국회에서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주도로 언론악법이 날치기 통과됐고 이 과정에서 대리투표, 재투표 등 온갖 위법, 탈법적인 행태가 벌어졌다. 그 결과 조중동 수구족벌언론이 신문과 방송을 제약없이 겸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이렇게 떳떳하지 못한 조중동 종편방송이 받은 특혜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표적인 것만 꼽더라도 대충 다섯 가지 정도 되네요. ①광고 직접 영업 허용 ②의무 전송 ③황금채널 배정 ④중간광고 허용 ⑤편성제작 의무비율 완화 등입니다. 모니터단은 "쫄지 않을 것이며 당당히 조중동 종편에 맞설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을사년 오적의 행위 결과로 겪었던 백성의 고통과 조중동방송 '5적'의 행위로 말미암아 발생할 갖가지 우려가 희미하게 겹치네요. MB정권의 특혜를 받아 개국하게 된 조중동 종편방송 때문에 '뻘' 속으로 빠져들 언론시장이 심각히 우려되는 가운데 '5적'에 꼽힌 장본인들의 행보가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박근혜 헌정방송' <너꼼수> 첫 방송 14시간 만에 삭제

○…<나는 꼼수다>의 아류작(?) <그래 너는 꼼수다>가 첫 방송분부터 삭제하게 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것도 공개된 지 14시간 만에 말입니다. <너꼼수> 측은 사과문에서 친박성향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 탓이라고 합니다.

청취자들은 <너꼼수> 방송을 듣고 "박근혜 헌정방송이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다"라는 비판을 했다고 하네요. 이런 가운데 시인 이외수 씨가 한 목소리 거들었네요.

"<나꼼수>가 폭발적 인기를 누린다고 고작 <너꼼수> 따위를 만듭니까. 표절이잖아요. 창의력 없다는 사실을 무슨 자랑으로 아시는 분들 같습니다. 녹슨 뇌로 무슨 정치를 합니까. 제발 분발 좀 하세요."

<너꼼수> 첫 방송에는 엄호성 전 한나라당 의원, 서성건 변호사, 정광용 박사모 회장, 김영호 시골병원 전 원장, 박미경 중소기업 사장, 한병택 바른뉴스 발행인 등이 참여했다네요.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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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1시 30분, 창원 가음정동 여성회관에서 '달인 아빠를 찾아라' 행사를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러 놀이도 있었지만, 크, 아빠들은 수능 수준의 시험도 보았고요. 40문제를 20분 만에 풀어야 하는 난해한 문제들... 아, 머리아파.
볼거리로 가장 신나는 공연이 있었는데 서울서 왔다는(그러면서 명서동에 산대. ㅋㅋ) 아저씨가 재미있게 해서 아이들이 참 좋아했네요. 동영상을 올려봅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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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살 때였습니다. 제가 2006년 초에 한국으로 왔으니 벌써 만 6년이 다되어 가네요. 그땐 사람들이 휴대전화란 걸 그렇게 많이 들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조금 여유 있는 사람들이 활용을 했죠. 이때 휴대전화도 선불카드를 사서 그 금액만큼 쓰는 방식이었죠. 통화를 다 하고 난 다음 요금을 내는 후불제는 아주 극소수 부유한 사람들만 썼습니다. 고향의 가족과 친척들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은 선불과 후불제가 반반쯤 될 것 같네요.

Монголд амьдарч байхад. Би 2006 оны эхээр Солонгост ирээд одоо баран 6 жил болж байна. Тэр үед хүмүүс гар утас ихээр хэрэглэдэггүй байсан. Бага зэргийн боломжтой хүмүүс хэрэглэдэг байлаа. Энэ үед утасны карт худалдан авч, картныхаа хэмжээгээр хэрэглэдэг байлаа. Дараа төлбөрт гар утас хэрэглэдэг хүмүүс цөөхөн байлаа. Нутагтаа байгаа ар гэрийнхнийхээ яриаг сонсоход одоо бол дараа төлбөрт болон урьдчилсан төлбөрт утас аль алиныг нь их хэрэглэдэг болжээ.

 

제 생각엔 몽골이 2000년 이후에 급속히 발전한 것 같습니다. 월급만 봐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제가 몽골에 있을 당시만 해도 유치원 선생님 월급이 한 달에 7만 원, 몽골 돈으론 '투그륵'이라고 하는데 환율이 비슷했습니다. 당시 몽골 돈으로도 7만 투그륵이었죠. 지금은 40만~50만 투그륵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소득이 높아지고 생활형편도 좋아지면서 거리에는 사라져가는 풍경이 있었네요.

Миний бодлоор 2000 оноос хойш Монгол улс эрчимтэй хөгжсөн. Цалингийн байдлыг харахад л тодорхой байна. Намайг Монголд байх үед цэцэрлэгийн багшийн нэг сарын цалин 70 мянган вон, монголоор төгрөг гэдэг ханш нь адилхан. Тэр үеийн монгол мөнгөөр 70 мянган төгрөг. Одоо бол 400-500 мянган төгрөг болсон гэсэн. Хүмүүсийн орлого дээшилж, амьдрал өргөжихийн хэрээр алга болж байгаа зүйл ч байсан байна.


고향에 전화를 하면서 들으니 예전에 그 많던 거리의 공중전화 '탁소폰'이 이젠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진은 사람들이 탁소폰을 이용하는 모습입니다. '탁소폰'은 두 가지 종류가 있었지요. 하나는 유선전화로 작은 가게나 마트, 병원, 학교 등에서 설치한 게 있고 또 하나는 개인이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도록 하는 무선전화가 있었습니다.

Нутаг руугаа ярьж байгаад тэр үед үнэхээр их ашиглаж байсан "цагаан утас" буюу такфосон одоо бараг харагдахаа больсныг олж мэдлээ. Энэ зураг нь хүмүүс таксофон ашиглаж байгаа зураг. "Таксофон" нь хоёр төрлийнх бий. Нэг нь утастай таксофон. Дэлгүүр, эмнэлэг, сургууль, шуудан зэрэг газруудад байрлуулсан, нөгөө нь хүмүүс гар дээрээсээ шууд хэрэглүүлдэг утасгүй "цагаан утас" байлаа.


이 무선 전화는 한국에선 전혀 구경하지 못했던 거라고 남편이 이야기하더군요. 무선 탁소폰이 어떻게 생겼냐면 일반 집전화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전화몸체와 수화기가 꼬인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전화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선전화가 되어 공중전화 역할을 한 거죠. 개인이 탁소폰으로 통화장사(?)를 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선 공중전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죠.

Энэ утасгүй цагаан утас нь Солонгост огт харж байгаагүй гэж нөхөр маань ярилаа. Утасгүй цагаан утас нь ердийн гэрийн утастай адилхан. Их бие болон утасны харилцуур нь холбоотой ердийн утас юм. Гэхдээ энэ утас нь гадуур барьж яваад яриулдаг таксофоны үүрэг гүйцэтгэж байна. Утастай таксофонууд хомсдолтой байснаас хувийн таксофоноор утсаар яриулж бизнес хийх болсон юм.

 

 

 

요금은 분당 유선전화로 할 땐 100투그륵, 당시 한국 돈으로 90원 정도였고, 무선전화로 하면 200투그륵이었습니다. 이것도 몽골을 떠나오기 직전 금액이었죠. 당시에 저 역시 탁소폰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한동안 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거리에서 전화를 하던 습관이 굳어져 버린 터라 하루 열 번은 넘게 탁소폰을 이용했던 기억이 있네요.

Төлбөр нь гэрийн утас руу нэг минут ярихад 100 төгрөг, солонгос мөнгөөр 90 вон орчим, гар утасруу залгахад 200 төгрөг байсан. Энэ бол Монголоос яг ирэхийн өмнөх тариф юм. Тэр үед би ч гэсэн цагаан утас их хэрэглэсэн. Гар утас хэрэглэж байгаад утасгүй болсон үедээ цагаан утсаар өдөрт 10  орчим удаа ярьж хэрэглэдэг байсан санагдаж байна.

 

이런 탁소폰이 이젠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불과 6년 정도밖에 안 된 풍경인데…. 지금 다시 몽골로 가게 되면 이상한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도 아파트가 다 들어섰다고 하던데…. 급격히 변해버린 고향의 풍경이 낯설 것 같은 느낌에 자꾸 옛날 사진을 꺼내 들여다보게 됩니다.

Ийм таксофонууд одоо алга болжээ. 6 жил гаранхны өмнөх явдал... Одоо дахиад Монгол руу явбал сонин санагдах байх. Миний амьдардаг байсан хороололд олон шинэ барилгууд баригдсан гэсэн. Огцом өөрчлөгдөж байгаа нутгийн маань байдал танихгүй юм шиг санагдаж үргэлж эртний зургаа гаргаж харахад хүргэлээ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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