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다
돌이끼의 육아일기 / 2012. 2. 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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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특히 아들과 단둘이 산에 오른 건 정말 오랜 만이다.
최근 아들과 이런 저런 일로 서로 마음이 불편한 일도 있고 해서 그것도 풀겸 다른 열일을 제쳐놓고 산행을 택했다.
창원 천주산은 그렇게 높지 않다. 서너시간이면 정상까지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땀흘리며 오랜만에 함께하는 쾌감을 느껴보고자 했다.
20분. 일년 사이네 몸무게 10킬로 가까지 불은 체력으로 산을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호흡이 가빠지고 쉬고 싶은 욕구가 끊임없이 솟구칠 때, 아들을 보았다.
"조금 힘들다고 다 쉬어버리면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야 한다. 조금씩 걷더라도 쉬지말고 가자."
"힘들어요. 못 가겠어요. 난 쉬었다 갈게요."
같이 쉴까 하다 결국 아빠를 보고 배울 텐데 싶어 천천히 쉬지 않고 올랐다. 산을 오르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일정 정도 몸이 견디어내는 수준을 넘기면 오히려 걷기가 편해진다는 사실은 여러 경험으로 깨우친 바가 있어 아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주려 했건만...
약수터에 도착해 한참을 몸풀고 있으니 아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별로 지친 표정은 아니다. 놀며 쉬며 왔나보다. 그렇게라도 올라왔으니 다행이다.
그동안 얽힌 실타래를 풀어보자고 산을 동행했는데 엉뚱하게도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엉켜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통의 문제다. 서로 원하는 것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될 리 없다. 한 사람은 핸드폰으로 소통을 하려하고 한 사람은 무전기를 들고 소통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아빠는 어렸을 때 취미가 뭐였어요?"
"글쎄 우표 잠깐 모았다가 필요없다 싶어 다 썼을 걸."
"아빠 어렸을 때 샤프 같은 것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쯤 샤프를 썼던 것 같은데... 왜?"
아이는 아빠가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샤프를 많이 사모았다는 것이다. 세뱃돈 받은 것과 용돈 받은 것을 절반 정도 샤프와 필기구 사는 데 써버린 것이다. 쓸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수집하려고 사는 것이란 말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자기의 취미와 욕구를 알아주지 못한 아빠의 행동에 서운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어떤게 올바른 행동인지 가르쳐 줘도 아이의 귀에는 우이독경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
이런 일들이 산행에서 풀어지기는커녕 힘드는데 쉬지도 못하게 하니 또 짜증이 났나보다. 어지간하면 따라붙을 수 있을 텐데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다. 그러다 지치니 될대로 돼라는 식으로 행동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약수터에선 돌도 함께 던지며 소통을 시도했다. 어깨를 다쳐 팔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빠보다도 돌을 멀리 던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더 화가 났을 수도 있는데 아빠는 또 한소리를 해버리고 만다.
산행을 시작할 때 했던 말이 더 아이에게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아빠가 힘들어하면서 쉬었다 가자 하는 데 니가 힘이 팔팔하다고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안 된다."
약수터에서부터는 전략을 바꾸었다. 아들을 앞서게 하는 거다.
"아빠, 나는 느리니까 아빠가 먼저 올라가세요."
"그러니까 니가 앞서야지. 아빠도 천천히 좀 가게."
약수터에서 너무 많이 지체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천주산 정상까지 갔다온다면 어린이집 마치고 버스로 돌아오는 지원이 마중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하는 수없다. 전망대까지만 갔다오기로 했다. 아들은 대찬성이다.
아들이 소원이 하나 있다고 한다. 사진을 자기가 한 번 찍어보자는 것이다.
"들어주기 쉽지 않은 소원인데 경치가 좋은 곳에 가면 그렇게 하도록 해 준다."
아들은 이런 사소한 일에 "앗싸!"하고 기뻐한다.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은 다 사라졌나 보다. 전망대에서 아들은 창원 시내를 더듬었다. 한 번도 어디가 어디라는 것을 생각하고 본 적이 없기에 더욱 신기했나보다. 시티세븐이 어디에 붙었고, 창원종합운동장이 어디에 붙었으며 우리집은 또 어디쯤 있는지 발견하고는 감탄을 한다.
너무 아는 게 없어서, 어쩌면 지금까지 너무 가르쳐준 게 없어서 아이가 사리에 맞지 않는 판단을 하고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닐까. 아들과 오랜만에 산행을 하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못난 아비인가를 깨닫는다. 가르쳐준 것이 없으면서, 제대로 느끼게끔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면서 못한다고 야단만 치는 아빠였으니...
아들은 물이 얼어있는 모습을 보고 '정지된 물'이란 표현을 썼다. "정지된 물은 정지된 시간이냐?"고 물었다. 이번엔 아빠의 유도질문에 말려들지 않는다. "그냥 물이 안 흘러가니까 정지된 거잖아요."
아들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이건 화두다. 정말 정지된 것에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일까? 지금 지구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는 '냉동인간'에게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일까. 한 200년 쯤 후에 50세쯤으로 보이는 250살 아저씨가 땅을 밟고 걸어다니며 쏜살같은 세월의 흐름을 탄식하기도 할까?
아들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구도를 잘 잡아보라고 했더니 뭔가 이상하다. 얼굴이 향한 쪽에 공간을 많이 준 것까진 그런대로 괜찮은데 앞 기둥이나 머리위에 걸친 천장이 아무래도 거슬린다. 코끝을 간질이려는 듯한 나무의 등장도 썩 부드럽지가 않다. 아무래도 카메라를 하나 사 줘야 하나...
잊고 내려갈 뻔했다. 함께 기념사진을 깜빡했던 거다. 내려가는 길. 그래 돌탑 앞이 좋겠어. "아빠, 아빠랑 저랑 표정이 닮았어요." 카메라 화상보기 사진이 너무 작아 모르겠더마는.... 아빠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가.... "그래, 너무 많이 닮았네. 아빠 아들 아니랄까봐."
절벽 아래로 뽀족 튀어나간 바위가 너무 아슬아슬해 보인다. 그냥 앞 쯤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자꾸 위험한 곳으로 걸어나간다. "야 임마, 아빠 간 떨어진다. 이리 나와."
간혹 푸른 잎으로 하늘을 아예 가려버린 계절보다 가느다란 가지들이 하늘을 반쯤 가린 모습이 더 보기 좋을 때가 있다. 고양이가 갖고 논 실타래처럼 얼키고 설켜버린듯한 모습이 우리 인새을 그려놓은 추상화같기도 하고. 엉켜버린 삶이라... 이 계절에 얼킨 가지 떼어내고 바로 잡으려면 상수리나무 잔 가지들은 다 부러지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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