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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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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이긴 하지만 최근 경남지역의 전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그렇게 재미있어 했으면서도 왜 진작 민담이나 전설, 신화, 설화에 빠지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연극을 하면서 희곡도 수차례 도전했지만... 그 막막했던 시절. 기자생활하면서 하루살이처럼 바쁘게만 살았던 20여 년... 이제야 관심 분야를 찾은 듯하다. 기분은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하기도 하다. 재미있는 생각만 들면 볼펜을 쥐고 공책에 소설을 써내려 가던... 다시 문학소년이 된다.


제목을 살짝 바꾼 이 글은 '경남이야기'에 연재중인 글이다. 경남이야기는 최근 서버를 바꾸면서 방문자 수가 급격히 줄었다. 기존의 수많은 콘텐츠들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은 되지만 링크가 끊어져 사이트 유입을 시키지 못하고 있다. '경남이야기' 관리자로 일을 하면서 고민이 크다. 구걸하는 듯한 이 글 자체가 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겠지만 많은 분께 '경남이야기' 사이트 방문을 부탁드리고 싶다.


http://news.gsnd.net/



창녕 부곡 노리-임해진 사이 개벼리에 얽힌 전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창녕 부곡면 노리와 임해진 사람들은 두 마을 사이에 있는 벼랑길을 타고 서로 오고갔습니다. 지금은 1022번 낙동로가 왕복 2차로로 개설되어 대형트럭도 다닐 수 있는 길이 되었지요. 이 길은 낙동강변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교통량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 동호회원들의 단골 도로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곳을 지나며 바라보는 낙동강 경치가 일품입니다.


이 길을 지나다니신 분 중에 길가에 울타리로 보호하고 있는 무덤을 보신 분이 있을 겁니다. 이 무덤은 노리 쪽 웃곡넘어골 마을 입구에 있는데 오래되어 글자가 확인되지 않는 비석과 함께 있지요. 이 비석은 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개비혹은 개비석이라고도 하지요. 무덤은 후에 봉분을 쌓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개비석에는 암컷과 수컷 개들의 애틋한 사연이 있더군요. 이 이야기는 이 개비석에 얽힌 이야기에 상상력을 조금 보태 픽션으로 꾸민 것입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낙동강을 끼고 형성된 창녕 부곡의 강변에 두 마을이 있었습니다. 두 마을 사이에 험준한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서로 왕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산 너머 동네에 누가 사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풍년이 든 어느 해, 두 마을이 거의 동시에 사흘밤낮 잔치를 벌이던 그해, 임해진 마을에는 18살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고 노리 마을엔 스무 살 멋있는 총각이 살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아니, 저건 임해진 마을 족장의 배가 아닌가?”

달염모(喙念牟)가 벼를 베어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있는 사달추수(沙喙鄒須)에게 달려와 강 쪽으로 손을 가리켰습니다.

어허, 이 친구 방정맞게도. 임해진 배가 지나가는 걸 어디 한두 번 보았던가?”

그게 아니라 저 배 위에 있는 달빛처럼 환한 아가씨를 보란 말일세. 임해진에 저리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사달추수는 친구 달염모의 손끝을 따라 뱃머리에 고고하게 선채 머리칼을 흩날리며 가고 있는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멀리서 보아 그 표정을 자세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낭자의 얼굴에서 어두운 낯빛을 느꼈습니다.

이번 추수가 끝나면 우리 임해진 마을에 한 번 놀러 가보세. 난 저 아가씨의 얼굴을 가까이서 한 번 보아야겠어.”

임해진은 산이 저렇게 가로막고 있는데 어떻게 가려고?”

사달추수가 험하고 높은 산을 턱짓으로 가리키고는 달염모에게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이야기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 얼굴 자세히 보자고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산 너머 마을에 가겠다니 자네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일이나 어서 거들게.”


그렇게 맑았던 날이었는데 밤이 되자 갑자기 비를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남쪽에서 부는 강한 바람이 방문을 흔들며 마루에 비를 뿌렸습니다. 마당은 빗물로 골짜기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마을 앞 논은 벌써 물에 잠기었습니다.

사달추수는 오늘 낮에 추수해놓은 벼가 물에 떠내려가지 않을까 염려되어 도롱이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창고에서 새끼줄을 꺼내 볏단을 몇 겹으로 꽁꽁 묶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세찬 바람소리 사이에 사람의 비명이 섞여 들려왔습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걸어 나가 보니 멀리서 불빛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저게 뭘까?’ 사달추수는 한편으로 저것이 도깨비불이 아닐까 두려워하면서도 가까이 걸어갔습니다. 강변이 가까워질수록 사달추수는 사태가 심각함을 느꼈습니다.

아가씨를 구하라!”

유모가 물에 떠내려갔다. 누가 빨리 가서 구하라!”

여기요, 여기 나 좀 살려주오!”

여기저기서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때야 사달추수는 낮에 하류로 지나가던 임해진 배가 돌아오면서 비바람을 맞고 사고가 났음을 알아챘습니다. 사달추수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습니다.

사달추수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강 가운데서 어른거리는 불빛 사이로 하얀 물체가 얼핏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달추수는 그것이 임해진 족장의 딸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사달추수는 달려가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강 가운데로 다다를 쯤 장대같은 비가 또다시 요란하게 강물을 쏴하고 때렸습니다. 사달추수의 등이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저 여인이 곧 물속으로 가라앉겠다는 생각이 들자 사달추수는 있는 힘을 다해 헤엄을 쳤습니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월아(月阿)는 오랫동안 허우적거리다가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으히히히. 각시야, 내 각시야! 어딜 자꾸 도망을 가느냐?”

큰 칼을 휘두르면서 사천왕상을 닮은 무시무시한 거인이 등 뒤로 바짝 따라오자 월아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무리 소리를 쳐도 자신의 입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앞에 있던 아버지도, 다른 식솔들도 자신의 비명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뒤에선 무시무시한 사천왕이 바로 자신을 덮칠 기세인데 아무도 자신을 구해줄 생각을 하지 않아 갑갑했습니다.

나 좀 구해주세요!”

월아는 눈물이 났습니다.

아가씨, 괜찮아요? 눈을 좀 떠보세요!”

반쯤 뜬 눈 속으로 희미하게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이분이 나를 구해주신 분인가.’

월아는 앞에 있는 남자가 사천왕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몇 번이나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을 하는 데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신차려보세요, 아가씨!”


월아는 어느새 나비가 팔랑거리며 노니는 꽃밭을 걷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잘 생긴 청년이 웃으며 자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월아는 조심스레 그 손을 잡았습니다.

이젠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있으니까?”

그의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월아는 그 청년의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그의 손길을 따라 다가가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그의 몸이 희미해지면서 그림자만 남았습니다. 월아는 또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월아는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아버지, 전 어쩌면 좋아요. 절 좀 구해주세요. 누가 날 좀 구해주세요. 그대는 어디 있나요?”

월아는 눈을 떴습니다.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아주 귀에 익은 목소리였습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청년이 꿈속의 그 청년인 것 같았습니다.

, 이제 괜찮습니다. 절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월아는 그에게 절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아직 몸이 성치 않습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나요?”

그저께 밤에 사고를 당하셨으니 꼬박 하루 반을 이렇게 누워 있었습니다.”

다른 우리 식솔들은 어찌되었나요?”

유모만 실종되고 다른 분들은 무사하다고 합니다.”

, 유모

월아는 갑자기 슬픔에 북받쳤습니다. 유모만이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었는데. 그마저 이제 자기 곁에 없다고 생각하니 불행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해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임해진 족장이 월아를 남지 족장에게 첩으로 보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사람이 유모였습니다. 유모는 아무리 이웃 족장에게 빚을 졌어도 한창 피는 나이인 열여덟의 귀한 아가씨를 늙은 권세가에게 첩으로 보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며 반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월아는 그때 거실 한쪽에 앉아 가만히 눈물만 훔치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월아는, 자신은 죽을지언정 어머니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어험, , 안에 있는 처자의 애비되는 사람이오만 좀 들어가도 되겠소?”

밖이 소란한 가운데 장년의 나이가 스며있는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달추수는 방문을 열었습니다. 밖에는 아가씨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과 그보다 더 덩치가 큰 사내가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군복을 입은 장졸들이 열을 맞춰 서있었습니다. 마루 아래에는 사달추수의 어머니가 작은 그릇에 죽을 담은 채 들어오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임해진에서 왔다는구나.”

제 여식을 구해주신 분이시오? 정말 고맙소.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사달추수는 임해진 족장을 방 안으로 들였습니다. 아버지가 들어오자 월아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배타고 유람 가자고 그렇게 우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지나간 일이다. 잊거라. 그것보다 니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어찌 알고 남지 족장이 찾아왔다. 밖에서 널 보고 가겠다며 기다리는구나.”

월아는 그 사천왕상 같은 남지 족장이 밖에 있다는 얘기에 그만 기절할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전 그 사람 싫어요. 우리 예전처럼 살면 안 되나요?”

끝난 이야기다. 그에게 시집가면 너도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 부족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 너는 족장의 딸이다. 우리 가족과 부족을 생각해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거라.”

월아는 다시 눈물을 쏟아내며 자리에 누워 몸을 벽 쪽으로 돌렸습니다.


아직 심신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좀 더 휴식이 필요한 듯한데 돌아가 계시면 몸이 회복되는 대로 제가 아가씨를 임해진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사달추수는 임해진 족장에게 생긴 대강의 상황을 짐작했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소? 그럼 잘 부탁하겠소. , 흡족하지는 않겠지만 딸을 구해준 답례로 조금 성의를 표시했으니 사양치 마시고 받아 주시오.”

사람의 목숨보다 귀한 것이 있겠습니까? 바라고자 한 것이 아니니 거두어주십시오.”

사달추수는 사례를 극구 사양했습니다. 처자를 혼자 두고 사달추수는 임해진 족장을 배웅하고자 밖으로 나왔습니다. 임해진 족장 바로 뒤에 서 있던,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사람이 남지 족장이구나.’ 사달추수는 몸속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남지 족장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당으로 내려선 사달추수는 자신보다 두 뼘은 더 키가 크고 풍채가 있는 그를 쏘아보았습니다.

거만하게 서 있던 남지 족장도 임해진 족장을 뒤따라 마당으로 내려온 청년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첫 대면인데도 두 사람은 오랜 악연의 고리에 얽혀 있던 사람들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로 마주보았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2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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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리 : 블로를 만들고서 한때는 하루에도 수십번 들락거리며 괴발새발 끼적이는 것을 재미삼아 살기도 했고,

블로그 관리할 시간이 없을 땐 몇날 며칠 쓸 거리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분출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나이 들어 그런지... 올리고 싶은 것도, 올린 것을 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으니....

 

이를 갱년기라 하겠다.

 

각설.

 

회사에 있는 '기자를 위한 신문언어 길잡이'란 책을 선배에게 부탁해서 회식 때 받았다.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 기자들에게 한 번씩 읽어보라고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건데.. 주로 맞춤법과 단어의 쓰임새에 관한 올바른 사용법을 기술해 놓았다.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유사한 책들 만큼... 여러번 우려먹는 내용도 많이 있어 식상하긴 하지만... 인내심을 품고 쭈욱... 읽어보았다.

 

의외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설명들이 제법 있다. 나야 내가 옳다고 고집하고 싶은데... 교열 경력 한 6년 해먹은 게 어디 명함 내놓을 데야 없지만... 어쨌든 내 무식함을 드러내놔야 조금이라도 더 배운다 싶어 읽으면서 책에 부딪힌 소견들을 까발리기로 한다.

 

 

1. 최근엔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 등을 이용해 간단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쁘띠'성형에 대한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쁘띠성형'은 '작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쁘띠(petit)에서 유래된 신조어로 시술 부위가 국부적인 성형을 말한다.(20쪽)

 

--> 일단 쁘띠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영문으로 petit... 라고 쓰지만 프랑스어라면서... 프랑스 사람도 쁘띠라 안 하고 프티라 하는지 궁금하다. 파리 라고 하지만 프랑스 영화에서 보면 그쪽 배우들 발음은 '빠리'에 가깝게 들리던데... 우리의 외래어표기법에 왜 된소리를 쓰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았는지... 이제 표기 원칙을 손질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2. 이밖에도 웨딩케이크 100만 원, 기념초 30만 원 등 양가의 혼주가 호텔에 낸 돈은 1억 원을 넘었다.(21쪽)

 

--> 외국인 열이면 열 한국어가 어려운 이유를 띄어쓰기 때문이란다. 어지간히 한국어를 익힌 한국사람도 띄어쓰기 앞에선 맥도 못 춘다. 띄어쓰기에는 원칙이 있다. 말하자면 문법을 알아야 그 원칙의 비결을 알 수 있는데... 문법만큼 어렵고 공부하기 싫은 게 없다 보니... 어쨌든 '밖에도' 할 때 밖이 '외에도'라는 단어를 넣어 말이 통하면 명사다. 그러므로 띄어쓰야 한다. 바꿔서 어색하면 조사다. 그러면 붙여 쓰야 한다. 그런데 정말 밖이란 글자는 무조건 앞말에 붙여쓰고 싶다. 모양새가 이상하니까. 언어의 경제적 효율을 위해서라도...

 

3. 시즌2가 기획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즌1에서 만들어진 기대감이 크다는 반증이다.(26쪽)

 

--> 바로잡기 말이 '증거'다. '증거'는 말맛이 줄어든다. 오히려 이런 때엔 '방증'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방증'이란 사실의 직적적인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그러한 상황이 증거가 되는 것임을 말하니까...

 

4. 해학적인 춤으로 서민 애환을 달래주던 '시대의 예인'(39쪽)

 

--> 일단 '애환'이란 말이 슬픔과 기쁨이므로 뒤에 '달래다'가 따라오면 무조건 안 된다. 기쁨을 달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환'이란 단어에 기쁨의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조상의 애환이 깃든 덕수궁 돌담길' 같은 표현이 주로 한이 깃든 분위기로 많이 쓰였기 때문이 아닐까.

 

5. 롯데가 창단 이후 첫 출전한 아시아시리즈에서 첫 승을 거뒀습니다.(47쪽)

 

--> 책이 제시한 올바른 표현은 '처음으로 출전한'이다. 뒤따라 오는 말이 동사이면 '첫'을 쓰면 안 된다. '첫'은 관형사로 쓰이기 때문에 뒤에 불완전 명사나 명사가 따라붙어서 '첫째' '첫날' '첫 출하' 등으로 활용되는 게 맞다. 그런데 이 표현, 예를 들자면 '둘째승'이나 '둘승' 등의 표현을 쓰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명사로 인정해 오만 신문에 다 쓰이는 현실을 받아들여 표준어로 삼음이 어떨까 싶다. '처갓집'도 표준어가 되는 마당에...

 

6. 뒷골목 전당포보다 못한 제도권 금융의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금융장막'이다.(48쪽)

 

--> '지적이다'를 '지적을 받고 있다'로 고칠 것을 안내했는데.. 이렇게 해도 이 문장은 말이 안 된다. 주어가 없기 때문이다. 이건 문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제도권 금융의 도덕적 해이는 뒷골목의 전당포보다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렇게.

 

7. 다음, 모바일 카페 '르네상스'를 꿈꾸다.(57쪽)

 

--> 외래어나 외국어를 아예 쓰지 못하게 했으면 모를까. 그걸 '전성기/부흥기'로 바꿔라는 것은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기서 '르네상스'는 비유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박근혜 정권, 요순시절을 꿈꾸다' 하면 '땡' 하겠네. '평화시절'을 꿈꾸다? 한국어는 말맛이 없는 기계어가 아니란 점을 국립국어원이 받아들여야 할 듯.

 

8. 빈축을 사다→'비난을 받다/비난을 사다' 등(71쪽)

 

--> 빈축이란 단어가 남에게 거슬리는 행위를 해서 돌려받는 일종의 비난인데...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눈을 찡그리고 얼굴을 찌푸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왜 굳이 비난으로 바꿔 쓰라는지 이해가 안 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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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을 할 때에 쓰는 상모(象毛)는, 어원적으로 보면 삭모(槊毛)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삭모란 군사들이 창에 다는 털(毛)을 말한다. 그것이 군사들의 모자에도 털을 달면서 일반적으로 불리게 되고 발음대로 적다보니 '상모'로 변했을 가능성이 유추된다. 그것이 농악에까지 흘러와 농악대의 모자(전립·戰笠)에 달리게 된 것은 '농군(農軍)'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조선시대까지 농민이 곧 군인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레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 상모는 형태적으로 부포상모와 채상모로 나뉜다. 부포상모는 주로 쇠잡이(꽹과리)가 쓰고 나머지 징이나 소고, 장구, 북잡이들은 채상모나 고깔을 쓴다. 간혹 징잡이가 부포상모를 쓰는 경우도 있다. 산청매구패는 쇠잡이만 부포상모를 쓰고, 소고잡이가 채상모, 나머지는 고깔을 썼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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