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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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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소재를 글을 쓴다는 것은 창작이라는 차원에서 그렇게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한편으론 재미있는 작업니다.

 

지난 6월, 일로써 시작을 했지만 나름대로 애착을 지니고 하다 보니 벌써 네 번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한동안 이 글의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고민의 끝은 이런게 별 소용없다는 거다.

 

옛날 이야기꾼들이 들었던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각색하고 윤색하고 때론 그대로 남에게 들려줄 때 자기이름을 박아서 이 전설은 내껍네 한 것도 아니잖는가.

 

일은 일로써, 지금까지 전해오는 경남지역의 전설을 나 어릴적 할머니처럼 여럿 모아놓고 도란도란 들려주는 그런 기분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경남이야기에.

 

창녕군지에는 영산면 교리에서 전해오고 있는 똑딱귀신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똑딱귀신은 석수장이의 돌 쪼는 소리가 나면 여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멀리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아낙의 영혼이 돌호박(돌확)에 서려 귀신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설에 살을 덧붙여 또 다른 맛이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다음을 스킵하지 마시고 '꾹' 징검다리 밟고 지나가듯 밟고 가시옵소서.

 

 

 

옛날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께서 마당 한가운데 모캣불(모깃불) 피워놓고 동네 손주 녀석들에게 더 오랜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빈 곰방대 쪽쪽 빨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지금처럼 밤이 되어도 시원해질 줄 모르는 날씨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툭하면 짜증을 내며 이웃과 말다툼을 하곤 했지요. 건넛마을에서 방앗간을 하는 만복은 오랜만에 친구를 찾아 이 마을에 왔습니다. 만복은 이 마을 친구 천석과 함께 대낮부터 주막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밤이 이슥한 지금은 발음도 제대로 안 되고 말도 엉뚱하게 튀어나올 정도로 거나하게 취했습니다.


낮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던 평상 위 배롱나무 붉은 꽃잎들이 주막등의 은은한 불빛에 살랑살랑 춤을 출 때였습니다.


“이제야 바람이 좀 부네 그려.”

만복이 혀가 꼬인 발음으로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요즘은 일을 못하겠어.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어.”

천석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빈 잔을 몇 번이고 기울여보면서 응대를 했습니다.

“여보게, 만복이. 우리 한 잔 더할까? !”


“하이고, 우리 오라버니들 오늘 약주 과하신 것 같은데 이제 술자리 파하시지요.”

마침 평상 옆을 지나던 주모가 끼어들었습니다. 만복은 벌써 반은 얼이 나갔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상체를 앞뒤로 좌우로 흔들거렸습니다. 코에선 거친 숨소리가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만복의 상태엔 아랑곳하지 않고 천석은 주모에게 불만스레 말했습니다.


“주모, 돈 못 받을까 그러쇼? 우리 술값 낼 돈은 있다 이거야? 좋은 분위기 망치지 말고 술이나 더 내오라구!”

천석이 빈 술잔을 술상에 ‘탕’하고 내리치며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는 통에 만복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니, 미안하네. 내가 깜빡 졸았나봐! 망치는 내일 바로 빌려줌세. 그래도 내 자네 이야긴 다 듣고 있었다네.”

만복의 엉뚱한 소리에 천석은 황당해했고 주모와 옆의 평상에서 술을 마시던 동네 사람들은 파안대소를 하였습니다. 천석은 다른 사람에게 창피했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습니다.


“여보게 만복이, 가세. ~. 거기서 엉뚱한 말을 해서는….”

천석은 만복을 부축해서 주막을 나왔습니다. 주모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술값은 주고 가야지.”

“달아놓으시게. 내일 줌세.”


두 사람은 동구 밖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휘청휘청 걸어 나왔습니다. 천석은 친구 만복이가 자기 마을로 돌아가려면 낮은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침 보름달이라 사위는 훤했지만 그래도 오밤중이어서 술 취한 친구가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염려를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복이 자네,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그냥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이 어떤가?”

“무슨 말인가? 우리 마눌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빨리 가봐야지.”

만복은 한사코 집으로 가야 한다며 천석의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뭐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고 오늘은 좀 과했지만 별일이야 있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천석은 만복에게 재차 밤길 조심하라 이르고 보내주었습니다.


만복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비틀비틀 걸어올라 갔습니다.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만복의 어깨를 잡을 듯이 길게 손을 뻗었습니다. 만복은 괜스레 으스스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고개에 다다를 쯤이었습니다. 고개 쪽에서 “똑딱! 똑딱!”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만복은 이 밤에 무슨 소리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개에 올라섰을 때 만복의 게슴츠레한 눈앞에 여자모습의 희미한 그림자 같은 것이 서있었습니다. 머리가 쭈뼛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그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여인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열 걸음 앞으로 다가왔을 때 만복은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얼굴이 창백한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비녀로 쪽을 지었습니다. 만복은 너무 두려워 술이 확 깼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혹시 우리 서방님 못 보셨나요?”

하늘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은 만복의 눈앞에까지 다가와 가냘프고 슬픔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만복은 보름달이 이리도 훤히 뜬 오늘 같은 밤에 귀신이 나타날 리 있겠나 싶으면서도 몸과 입이 얼어붙었는지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저씨, 아랫마을에서 괴나리봇짐을 메고 있던 우리 서방님을 보시지 않으셨나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 여인의 하늘색 치마 아랫단을 내려다본 만복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습니다. 여인은 공중에 떠 있었으며 발은 맨발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만복은 고갯마루에서 잠이 깼습니다. 엊저녁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젯밤 그 여인네는 헛것이었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서려는데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만복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몸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고개를 내려가려는데 만복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돌호박이었습니다. 흙이 묻어 더러워 보이긴 했지만 아주 잘 만든 물건임을 방앗간을 운영하는 만복은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꽤 잘 만들었는걸. 그런데 이런 걸 버리다니 누군지 몰라도 물건 볼 줄 모르는 사람인 모양이야.’ 만복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돌호박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만복은 돌호박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질하니 윤도 나고 곡식 빻는 용도치고는 너무 기품이 있어 허한 방앗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만복은 디딜방아에 받쳐놓은 낡은 돌호박을 치우고 주워온 돌호박을 놓았습니다. 방앗간 안에는 모두 낡은 장비와 도구들뿐인데 유독 디딜방아에 받쳐놓은 돌호박만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복과 아내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날은 방아를 찧으러 오는 손님마다 새로 들어온 돌호박에 대해 한마디씩 했습니다.


“어느 돌쪼이(석수장이)가 만든 것인지 참 잘 만들었다.”

“이런 돌호박은 대감댁 정원에나 어울리겠는걸.”

“돌호박이 꼭 여염집 아낙 같아. 호호호.”


만복은 손님들의 이러한 이야기들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만복과 아내는 다른 날보다 더 바빴습니다. 여름이라 비수기인데도 이상하게 뜻밖의 손님이 많이 왔습니다. 만복은 새로 들인 돌호박에 신비스러운 힘이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럴 리 없다고 만복은 바로 머리를 저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해가 지고 밤이 되었습니다.


“여보, 피곤하시지요? 어젯밤도 잠을 설쳤을 텐데. 오늘 일찍 주무시구려.”

만복이 씻고 방으로 들어가니 아내가 이부자리를 펴놓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오후 들어 일하면서도 계속 눈이 감겨 애를 먹었소. 하하. 오늘은 오랜만에 일찍 잡시다.”


만복과 아내는 나란히 이부자리에 들어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만복은 코를 심하게 골았습니다. 아내는 만복의 코 고는 소리를 한해 두해 들은 것이 아니므로 이제 오히려 자장가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습니다. 자정쯤 되었을 시각입니다.


 

 

“똑딱. 똑딱. 똑딱….”

만복의 아내가 똑딱 소리에 살풋 잠이 깨어 만복의 등을 톡톡 쳤습니다.

“여보, 밖에 무슨 소리 안 나요? 나가 봐요.”

만복은 여전히 피에 지친 몸을 고쳐 누우며 다시 곤한 잠에 떨어졌습니다.

“똑딱. 똑딱. 똑딱….”

“아, 여보! 밖에 누가 왔나 봐요. 얼른 일어나 나가보세요.”

“오긴 누가 온다고 그래.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는데 어떻게 들어와. 당신이 잘못 들었겠지.”


만복은 귀찮은 듯 다시 반대로 고쳐 누웠습니다.

“똑딱. 똑딱. 똑딱….”

선잠에서 깬 만복에게도 이제는 똑딱 소리가 들렸습니다. 만복은 몸을 일으켜 앉았습니다. 만복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가만, 어젯밤에도 고개를 넘을 때 이 소리가 들렸었는데. 왜 우리 집에서 이 소리가 들리는 거지?’


만복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내가 방문을 열치고 내다보라는 등쌀에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면서 오금이 저림을 느꼈습니다. 방문을 거의 다 열었을 때 똑딱 소리는 멎었습니다. 방앗간 안은 고요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계속 울려대던 똑딱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만복이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방문을 닫으려고 손잡이에 걸린 줄을 당길 때였습니다.


“아저씨, 우리 서방님 혹시 못 보셨나요?”

분명히 어젯밤 술에 취해 고개를 넘을 때 보았던 그 귀신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니, 그 귀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문을 다시 열었을 때 돌호박 위에 그 귀신이 떠 있었습니다. 만복의 아내도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하였습니다. 만복이 놀라서 문을 다시 닫으려는 순간,


“잠깐만요, 제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귀신은 사정하다시피 말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귀신과는 달리 사람을 해치거나 저주를 퍼붓는 귀신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복은 다시 문을 서서히 열었습니다. 뒤에서 아내가 살짝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습니다.


“저 처자가 이녁이 엊저녁에 보았다던 그 똑딱귀신이우?”

만복은 아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똑딱귀신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래요,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렇게 구천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나타나 남편을 찾는지 말해보세요.”

“고맙습니다. 저를 만난 많은 사람이 담력이 약했는지 바로 사망하는 바람에 제 사연을 들려줄 수 없었는데…, 아저씨를 만난 게 천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똑딱귀신은 돌호박 위에 앉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충청도에서 돌쪼이를 하는 사람의 아내로서….”


(다음 주 2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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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장자늪 전설 3편이 완성됐다. 이번 전설텔링의 완결판이다. 다음 주엔 장자늪 전설의 배경인 창녕 영산면 장척호를 찾아간다. 물론 취재는 미리 다 해뒀다. 그 다음주 이야기가 문제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아들이나 나나 애를 먹었다. 일에 집중하는 주말 동안 지리산 계곡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흘 밤낮을 친구와 함께 술을 벗하고 아들은 동생들과 함께 물을 벗했다.

 

핸드폰도 꺼놓고 있었다. 어쩌다 켜보긴 했지만... 주말을 이렇게 사바세계와 연을 끊고 지내보기 참 오랜만이다. 일도 놓고 근심도 놓았으니 얼마나 행복했겠으랴. 근디... 휴가가 끝나고 월요일 출근하면서 밀린 일들이 더 큰 걱정의 쓰나미로 몰려온다. 아, 카세라세라.

 

http://news.gsnd.net/?p=33078

 

 

 

(지난 줄거리)옛날 토지가 비옥한 마을에 장자라는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장자는 재산이 많이 있음에도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아등바등 살았고 욕심꾸러기인 데다 심술마저 있어서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마을에 노승이 찾아옵니다. 노승은 장자에게 얼마 있지 않아 마을에 큰 변고가 생기니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대피하라고 합니다. 장자는 노승의 시주 바랑에 소똥을 퍼붓고 쫓아버립니다.

 

이 모습을 본 며느리가 노승에게 시아버지 대신 사과하고 쌀을 시주합니다. 며느리는 노승에게서 마을에 변고가 생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나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마을 사람을 대피시킵니다. 그러나 장자와 남편은 끝까지 버티다가 닷새째 되는 날 마을이 물에 잠기자 재산을 껴안고 죽게 됩니다.

 

장자의 며느리는 그때 물난리를 피해 노승이 일러준 대로 동북쪽 고개를 오르며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고갯마루에 올라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됩니다. 며느리의 눈에는 거대한 황룡이 포효하는 모습이 보이고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이 하늘로 오르다 황룡에 의해 다시 물속으로 처박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때 며느리의 몸은 서서히 바위 속으로 들어가 부처가 되지요.

 

한편, 물속에선 장자와 아들이 자신들의 죽은 육신을 보게 되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다가옵니다. 장자의 몸을 칭칭 감고 잡아먹으려고 하는 찰나 장자의 영혼이 구렁이에게 들어갑니다. 장자의 아들도 다른 구렁이가 자신의 육신을 해치려 하자 구렁이의 몸속으로 들어가지만 부작용이 생겨 그만 죽게 됩니다.

 

장자 구렁이는 더욱 세상을 향해 원한을 품게 되고 복수심에 이를 갑니다. 여섯째 날이 되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하게 개었지만 물이 원래대로 빠지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늪가에 집을 짓고 살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동네 사람 둘이 장자의 재산을 탐내어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날이 밝아 햇빛이 물속 깊은 곳까지 비추어 두 사람은 장자의 집을 쉽게 찾아내고 더 깊이 잠수해 들어가는데 뒷사람이 등에 차가운 기운을 느낍니다.

 

◇ ◇ ◇

 

크악!”

그가 뒤돌아보았을 때 그는 심장이 멎는 것처럼 몸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징그럽고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구렁이의 섬뜩한 눈이 바로 코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렁이의 몸으로 들어간 장자의 눈에 들어온 이는 지난 겨울부터 수시로 소작료를 올려달라며 찾아온 박서방이었습니다. ‘앞서 잠수해 들어가고 있는 저 놈은 필시 박서방과 가장 친한 김서방이렸다.’ 이렇게 생각한 장자는 한동안 얼굴을 살피고는 박서방의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몸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큰 입을 쩌억 벌렸습니다. 그 순간 박서방의 몸에서 맥이 쭉 빠져나갔습니다. 박서방은 혼절해버린 것입니다.

 

장자구렁이는 그를 물고 큰 몸을 스르르 움직여 물속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동굴은 제법 큰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박서방의 시체를 넣고 다시 서서히 몸을 갈지자로 헤엄을 치며 김서방이 잠수해 들어간 자신의 안채로 향했습니다.

 

한편, 앞서 잠수를 하던 김서방은 장자의 안채를 확인하고 수면으로 향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숨을 참았기 때문에 호흡이 필요해서였습니다.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함께 잠수를 했던 친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장자의 안채를 발견하고 그곳에 있던 보석함들도 확인한 이상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잠수했습니다.

 

이번엔 쉽게 장자의 안채에 도달했습니다. 지붕이나 벽은 박살이 나 있었지만 그런대로 집안의 형태를 알아볼 수는 있었습니다. 햇빛이 겨우 닿았기 때문에 자세하게 분간은 할 수 없었지만 장자의 안채에는 제법 많은 보석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김서방은 보석함 쪽으로 헤엄을 쳤습니다.

 

보석함이 손에 닿았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리가 났다 싶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방의 구석 쪽에 앉아있는 사람 형체가 보였습니다. 그는 덜컥 겁이 났지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1미터쯤 가까이 다가간 그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엔 장자가 보석함을 꼭 끌어안고 눈을 뜬 채 죽어있었습니다. 김서방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괜히 장자의 물건에 손을 댔다간 천벌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급히 헤엄을 쳐서 물 위로 향했습니다. 뗏목의 그림자가 머리 위에 비쳤습니다.

 

그때 뭔가 다리를 잡아끄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손만 뻗으면 뗏목에 닿을 순간에 몸이 아래로 끌려 내려갔습니다. 참았던 숨을 내뱄는 순간 목구멍으로 물이 발칵 들어왔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쳐다보니 자신의 몸 열 배는 될법한 구렁이가 다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김서방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구렁이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갑자기 몸이 수면으로 솟구쳤습니다. 장자구렁이가 김서방을 집어던진 것입니다. 뗏목 옆에 떨어져 뗏목 위에 배를 걸치고 다리를 올리는 순간 김서방은 자신의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또 다른 다리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김서방은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뗏목을 필사적으로 잡았으나 더 버텨낼 수가 없었습니다. 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습니다. 김서방의 눈에 아침 햇빛이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김서방의 아내는 두 살 늦둥이를 업은 채 점심 채비를 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이 인간이 새벽 댓바람에 어딜 간다 말도 않고 집을 나가더니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야.”

아니, 늦둥이 아부지도 새벽에 나가서 아직 소식이 없는 거유? 우리 개똥이 애비도 새벽에 나가서 아직 안 왔는데.”

옆집 사는 박서방의 아내가 물을 길어 돌아오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개똥이가 늪가 쪽에서 엄마! 엄마!” 하면서 달려왔습니다.

얘가 왜 이리 호들갑이야! 좀 얌전히 다니지 못하고서.”

엄마, 늪가에 뗏목이 있던데 거기에 이게 있었어. 이거 아빠 옷 아냐?”

무명 저고리 겨드랑이가 한 뼘 터져있는 것을 보니 개똥아범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개똥어멈은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아빠 옷만 있는 게 아니고 다른 바지저고리도 있던데.”

그 말을 들은 김서방의 아내도 불안해졌습니다.

개똥아, 거기가 어디냐? 같이 가보자.”

 

늪가에 밀려온 뗏목에는 김서방의 것으로 보이는 바지저고리가 어지럽게 흩어져있었습니다. 박서방의 바지도 함께 있었는데 뗏목 한쪽에 핏자국이 보였습니다. 길게 여덟 줄이 나있었습니다. 피가 엉어리져 있는 손톱도 두어 개 눈에 띄었습니다. 김서방과 박서방의 아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분명히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이야. 이 일을 어째?”

아이고, 개똥이 아부지.” 박서방의 아내는 늪가를 수십 번이나 왔다갔다하면서 박서방을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늪은 잠잠했습니다.

 

이 일이 관아에 알려지고 오후 늦게 나졸이 찾아왔습니다. 나졸은 김서방과 박서방의 아내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뗏목을 살펴보았습니다. 나졸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관아로 돌아가 이방에게 자신이 들은 대로 본 대로 설명했습니다. 나졸의 보고를 받은 이방도 이는 분명히 살인사건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이방은 현감에게 사건의 정황을 보고하고 수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요청했습니다.

 

사또, 얼마 전 큰 비로 늪이 되어버린 마을에 장정 두 사람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나졸을 보내 살펴본바 누군가에게 피살되어 시체가 유기된 것 같사옵니다. 본격적으로 수사를 해야 할 듯하옵니다.”

그래요? 형방과 함께 사건의 내막을 잘 파헤쳐 범인을 꼭 잡도록 하시오.”

그렇게 해서 다음날 장자늪 실종사건의 수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나졸 몇 명은 배를 타고 늪을 살펴보았습니다. 장대로 늪의 바닥을 감지하면서 이동했습니다. 범인이 시체를 수장시켰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배가 파도 같은 것에 일렁이듯 흔들렸습니다.

여보게, 방금 배 아래로 뭔가 이상한 것이 지나가는 것 보지 못했나?”

글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기분 나쁜 느낌인걸.”

저기, 저것 보게. 구렁이야. 저렇게 큰 건 처음 봐. 저런 게 어떻게 이곳에 있지? 빨리 나가세. 잘못하다간 큰일 나겠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배가 물에서 높이 솟구치더니 내동댕이쳐졌습니다.

!”

 

늪 쪽에서 비명이 들리자 나졸들이 늪가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큰 구렁이가 배를 뒤집고 나졸들을 헤치는 모습을 보고서 기겁을 하였습니다. 물에 빠진 나졸들이 아무리 방망이로 때려도 구렁이는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대형 구렁이는 한 나졸을 입에 물고 늪가로 집어던졌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나졸이 늪가 바닥에 떨어져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숨을 거두자 이를 지켜본 나졸들은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이방과 호방도 겁에 질리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늪 가운데서 나졸 셋을 해치운 구렁이가 늪가에 있는 이방과 형방, 남아있는 나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서서히 물결을 일렁이며 미끄러지듯 다가왔습니다.

모두 창을 들고 방어태세를 갖춰라!”

이방의 명이 떨어지자 나졸들은 나란히 서서 창을 겨눴습니다. 늪가 뭍으로 올라온 장자구렁이는 나졸들이 창을 들고 자신을 헤치려 하자 더욱 화가 났습니다.

크악!”

이곳은 내 땅이다. 썩 물러가거라하고 고함을 질렀으나 사람들에겐 뱀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을 가하자 나졸들은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물러서지 마라! 창으로 목을 찔러라!”

이방이 뒤에서 고함을 치지만 나졸들은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공격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자꾸 뒷걸음질만 쳤습니다. 장자구렁이는 목을 길게 뽑으며 이빨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졸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습니다. 이방과 형방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공격을 하라고 소리쳤지만 자신들도 두려워 뒷걸음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뒷걸음치다 넘어진 몇몇은 구렁이에게 감기고 물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와아!”

수십 명은 될법한 장정들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장자구렁이가 고개를 들어 소리나는 쪽을 보니 나졸들이 칼과 창을 들고 몰려왔습니다. 장자구렁이는 더욱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마주 기어갔습니다.

카악!”

창과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던 나졸들이 멈칫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구렁이의 입에서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와 발 앞에 떨어지자 뱀의 독이라고 생각해 더는 공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자구렁이는 더욱 난폭하게 나졸들을 공격했습니다.

 

나졸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하고 날아왔습니다. 투명한 듯 희미한 그 물체는 공중에 떠서 대형 구렁이에게 맞섰습니다. 그 희미한 물체는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을 감싼 부드러운 천은 하늘거렸으며 머리 위에는 불꽃은 이글거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나투셨다!”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구렁이 앞에 나타난 그 부처의 모습을 보고 합장을 했습니다. 부처가 구렁이 앞에 버티고 있자 장자구렁이도 멈칫했습니다.

누구냐?’ 장자구렁이는 갑자기 나타난 상대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아버님, 접니다. 아버님의 며느립니다.’

아니, 니가 왜? 너도 그날 목숨을 잃었단 말이냐?’

, 스님의 당부를 잊고 아버님과 서방님이 걱정되어 뒤돌아보았다가 돌부처가 되었지요.’

그 요망한 땡추가 우리 가족을 몰살시켰구나!’

아닙니다. 다 우리의 욕심 때문이어요. 아버님.’

듣기 싫다. 우리의 재산을 노리는 사악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그래도 애꿎은 살상은 멈추세요. 아버님. 아버님께서 더 많은 죄를 짓지 않게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듣기 싫대도. 비키지 않으면 너도 가만두지 않겠다.’

 

장자는 머리를 휘둘러 며느리를 밀어내고 다시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장자구렁이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카악!”

사람들은 부처와 구렁이가 한동안 대치상태를 이루다가 구렁이가 고개를 휘저으며 공격을 하고 부처는 머리 위에 있는 불꽃 하나를 구렁이의 눈으로 던지며 공격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구렁이는 멈칫하다가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와중에 겨우 완성한 초가집 몇 채가 다시 부서졌습니다. 나졸들이 이때다 싶어 구렁이의 가슴과 목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구렁이는 다시 큰 소리로 포효하고 늪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나졸들이 창을 던지며 쫓았지만 너무 빨라 놓치고 말았습니다.

 

늪의 물속에까지 따라온 며느리부처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다시는 사람들을 해치지 마세요. 황룡이 이러한 일이 있을 줄 알고 저를 부처가 되게 해 아버님을 지키라고 했지요.’

장자구렁이는 자신의 뜻대로 사람들을 응징하지 못하게 되자 분통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해코지하려고 뭍으로 나가면 며느리부처가 불꽃을 눈에 던져넣을 것이 분명하므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을 탐내고 물속으로 들어오는 사람만 하나씩 잡아다가 물속 동굴에 넣었습니다.

늪에 들어간 사람마다 목숨을 잃게 되자 사람들은 늪 가까이 가기를 꺼리게 되었고 늪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 들어봤니? 장자늪에 집채 만한 구렁이가 산다는 얘기. 옛날옛적에 욕심꾸러기이자 심술꾸러기인 장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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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덥잖은 글의 첫 독자는 누가 뭐래도 문학소녀로 자처하는 큰딸이다. 그렇다고 큰딸이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빠의 글이 완성되나 관심을 기울이진 않는다. "아빠 글 한 번 읽어볼래?" 하고서 방문을 열고 한마디 하면 그제서야 "예."하고 프린트된 종이 몇 장을 받을 뿐이다.

 

어쨌든 딸은 다 읽고서 반응을 보여준다. 어떤게 아쉽고 어떤건 재미있고 어떤건 어떻게 보충하면 좋을 듯하다면서...

 

이번 장자늪 구렁이의 저주 2편을 보여줬더니 부처바위로 변한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단다. 장자에 대항하는 가장 큰 존재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며느리 얘기가 좀 더 구체화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렇다. 그런데 추가 안 했다. 바빴고 시간도 촉박해서다. 그래서 다음 3편, 마지막 편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어쨌든 고민 좀 더 하다보면 길이 보이겠지...

 

이 글을 보시는 분은 영화에서 CG로 탄생한 멋진 황룡은 아니지만 삽화가 들어있는 원문을 읽어주시라.

 


 

 

(전편 줄거리)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창녕군 영산면 기름진 땅에 장자라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아주 욕심이 많고 심술꾸러기인지라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지요. 어느 날 노승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해결방책을 알려주려 장자를 찾았으나 장자는 노승의 시주바랑에다 소똥을 퍼붓는 심술을 부립니다.


이를 본 장자의 며느리가 노승에게 시아버지 대신 사죄를 하고 바랑을 깨끗이 씻고 쌀을 넣어 시주를 하지요. 노승이 착한 며느리에게 앞으로 닷새 후면 마을에 큰 변고가 생기니 대피하라고 이릅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은 꼭 대피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노승의 이야기를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듣지 않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날은 점점 노승이 예견한 대로 심각하게 변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며느리가 전하는 말을 듣고 산으로 대피하지만 장자와 아들은 마지막 닷새가 되어도 요지부동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혼란을 틈타 누군가 자신의 재산을 훔쳐갈까 두려워해서입니다.


며느리는 노승이 시키는 대로 동북방향 고개로 오릅니다. 절대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고 말이죠. 그러나 고개를 오르는 동안 시아버지와 남편이 자신을 원망하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도 스님이 일러준 대로 참고 고갯마루에까지 올랐으나 마지막 순간 엄청난 뇌성에 그만 되돌아보고 맙니다.


◇                      ◇                       


며느리는 짙게 깔린 먹구름 속에서 황룡이 꿈틀거리며 나와서 자신을 쳐다보며 질타하듯 ‘꽈르르르’ 고함을 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고함에 비바람이 며느리를 향해 더욱 세차게 몰아쳤습니다.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정신마저 아뜩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며느리는 고갯마루에 있는 큰 바위에 몸을 기댔습니다.


황룡은 잠시 후 물이 잠긴 마을 위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때 물속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생전의 모습과 달리 몸이 투명하였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물속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동네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은 사람들이었어도 시아버지이고 남편이어서인지 며느리 눈에는 눈물부터 흘렀습니다.


‘아, 죄송해요. 아버님. 미안해요. 서방님. 제가 끝까지 남아서 구해드려야 했었는데….’


두 영혼이 빗줄기 사이로 승천하고 있는데 황룡이 갑자기 두 영혼을 앞발로 콱 틀어쥐었습니다. 다시 한 번 커다란 번개와 함께 우레가 울려 퍼졌습니다. 황룡은 앞발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며느리는 차마 그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며느리는 자신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몸이 딱딱해짐과 동시에 서서히 바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며느리는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하늘이 시아버지와 남편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꽈르르르.”


(삽화)


다시 천둥이 온 세상을 흔들었습니다. 며느리의 시선이 다시 물에 잠긴 마을로 향했을 때 황룡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을 물속으로 집어던졌습니다. 황룡은 그곳에서 몇 바퀴를 돌더니 고개를 며느리 쪽으로 돌렸습니다.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며느리는 이미 굳어가고 있는 몸이지만 두려웠습니다. 황룡이 자신에게도 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넌 밤낮으로 여기에 서서 장자가 죽은 늪에서 사악한 기운이 퍼져 나가지 못하게 지켜 내거라.’


황룡이 말을 하는 듯했습니다. 며느리는 황룡의 눈 속에서 부처로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황룡은 몸을 돌려 빠른 속도로 날아가 먹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며느리의 눈에선 여전히 눈물이 흘렀습니다. 몸은 이제 완전히 바위가 되었습니다. 모든 신체가 바위 속으로 들어가 돌로 변했지만 희한하게도 세상을 볼 수도 있었고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편, 황룡에 의해 물속으로 처박힌 장자와 아들의 영혼은 물속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죽어서 하늘에 오르지도 못하는 영혼이 되니 세상에 대한 원망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장자는 물에 잠긴 자신의 집으로 가보았습니다. 안방에서 보석함을 꼭 끌어안고 죽어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듯도 했습니다.


장자의 아들 역시 쌀이 가득 찬 곳간에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꼭 걸어 잠근 모습으로 죽어있었습니다. 장자의 아들은 아버지만큼 그렇게 욕심이 많거나 심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살다 보니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으며 살았습니다. 아들에겐 그게 더 억울했습니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데 동네 사람들은 등 뒤에서 손가락질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동네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자와 아들이 지붕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처량한 듯 바라보고 있는데 구렁이 두 마리가 서서히 이쪽으로 헤엄을 쳐 오고 있습니다. 생긴 모습이 징그럽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입을 벌렸을 때엔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금방이라도 온몸을 관통시킬 정도로 섬뜩하였습니다. 장자와 아들은 잎이 무성한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헤엄을 쳐 몸을 숨겼습니다.


어미 구렁이인 듯 큰 놈이 장자가 숨져 있는 안방으로 긴 몸을 흔들며 들어가고 있었고 작은 구렁이는 곳간으로 향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장자와 아들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구렁이에게 자신의 육신이 잡아먹혀 버리면 나중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영원히 이 늪 속에서 떠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자와 아들은 각각 구렁이를 뒤따라 헤엄쳐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렁이가 장자의 몸을 칭칭 감더니 입을 쩍 벌렸습니다. ‘, 이대로 구렁이의 밥이 되는구나!’ 장자는 순식간에 구렁이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구렁이가 장자의 영혼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리는 찰나였습니다. 장자의 영혼이 구렁이 몸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구렁이는 아주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비틀었습니다. 그 때문에 벽이며 지붕이며 모두 부서져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장자의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은 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먹으려 할 때 구렁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장자 구렁이와 다르게 아들 구렁이는 바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아들의 영혼이 모질지 못했거나 구렁이와 영혼의 궁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 영혼이 구렁이와 함께 죽게 되자 장자 구렁이는 온 늪이 출렁이도록 몸부림을 쳤습니다.


장자가 재산 다음으로 가장 사랑했던 게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물려받아 지켜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물며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에게까지도 광의 열쇠를 맡기지 않았지요. 그런 아들이 자기와 함께 죽게 되고 또 영혼마저도 구렁이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으니 가슴을 칠 노릇이지요.


장자 구렁이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구렁이의 영혼을 지배하고 구렁이의 수명만큼 살게 된 이상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에 대해 해코지하고 복수할 일념에 사로잡혔습니다. 장자 구렁이는 아들의 시체와 아들 구렁이의 시체를 마을 우물이었던 곳에 넣고 돌로 메웠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했습니다. 마을을 잠기게 했던 물은 조금 빠지다가 멈춰 늪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물이 완전히 빠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비가 그치고 며칠이 지나도록 물은 여전히 수위를 유지했습니다.


몇 날 며칠이 지나서야 마을 사람들은 장자와 장자의 아들, 그리고 그 집 며느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그날 대피했다는 것을 아는 돌쇠는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으나 매일 허탕을 쳤습니다. 늪가에 다시 집을 짓던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소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열흘이 지나도록 이렇게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장자의 가족이 이번 물난리에 변을 당한 모양일세.”

“에그…, 쯧쯧! 그 많던 재산 전혀 쓸 줄 모르고 모으기에만 애면글면하더니 결국 저렇게 되어버렸어.”

“여보게, 우리 물속에 잠긴 장자의 재산, 조금씩 건져내 쓰면 어떨까? 금은보화가 곳간에 가득 들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말야. 우린 고생하지 않고 여생을 편안히 살 수 있지 않겠나?”

“하기야 주인도 없어진 마당에 장자의 재산은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렸다!”


이렇게 작당을 한 두 사람은 다음날 날이 밝는 대로 뗏목을 만들어 늪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림짐작으로 장자의 집이 있던 곳까지 노를 저어가서는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밝은 아침 햇살이 늪의 제법 깊은 곳까지 비추어 두 사람은 장자의 집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기로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수신호를 하고 함께 헤엄쳐 내려갔습니다. 장자의 집에 다다를 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섬뜩하고 이상한 기운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뒤따라 헤엄을 치며 내려가던 사람이 등에서 뭔가 차가운 촉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3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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