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전쟁의 신(神)
(전설텔링)전쟁의 신(神)
함안 방어산 묵신우 장군에 얽힌 전설(1)
“장군의 이름은 묵신우(默神佑)로서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를 날아다니면서 300근짜리 활을 잡아 벌리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함안군과 진주시의 접경지역인 방어산에 얽힌 전설의 일부입니다. 이 부분만 보더라도 전설의 주인공이 얼마나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것은 태생적 비범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고 300근(180㎏)짜리 활을 당겼다는 얘기는 그가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천하장사였다는 거지요.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전설을 기록한 내용 중에 타당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발견됩니다. 인터넷 두산백과에 보면 “(방어산)정상에는 옛날 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며 300근짜리 활을 쏘는 묵신우라는 장군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 성을 쌓고 성문을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병자호란(1636년 12월)은 후금이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정묘호란에 이은 2차 조선침공 사건입니다. 이때는 조선국왕 인조의 항복만 받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물론 경기도 인근 수많은 백성이 화를 당하긴 했지만 함안까지 진출할 이유가 없는 전쟁이었지요. 그래서 묵신우가 병자호란에 활약을 했다는 기록은 무리수가 따릅니다.
또 다른 기록으로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에 보면 “방어산 지명은 옛날 왜구가 침략했을 때 성을 쌓고 의지해서 적을 물리치고 방어했다는 묵신우 장군 전설에서 유래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구를 상대해 전쟁을 치렀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방어산과 관련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재미있는 소설이 발견되었습니다. 묵신우 대신 무시우란 이름을 쓰고 시대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가야시대를 배경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다라, 연나라와 싸우고 일본을 시작하다’(이양훈 저)란 책입니다. 여기에선 광개토대왕이 다라국(대야, 합천)까지 정벌하는 과정에 안라국(아라가야, 함안)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번 이야기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겠습니다. 안라국의 왕자이자 장군인 무시우가 광개토대왕과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과정을 판타지 형식으로 그려보겠습니다. 방어산 성을 함락시키려는 광개토의 계략과 무력, 이에 맞서는 무시우의 용맹무쌍한 대응을 통해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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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00년 겨울. 국내성에서 출발한 광개토의 3000여 기병과 보병들은 황토먼지를 일으키며 쉬지 않고 달려 단숨에 백제땅까지 다다랐습니다. 수년 전부터 있어온 백제와의 전쟁에서 이미 58개의 성을 차지한 이후여서 백제 영토에 접어든 이후로도 막힘없는 진군이 가능했습니다. 광개토군의 병력은 남하할수록 늘어났습니다.
3000명에서 시작한 군사의 수는 평양과 서울을 거치면서 4만에 이르렀고 백제의 성이었던 관미성, 위례성 등을 차례로 지나면서 주둔군 일부를 또 차출하여 최종 5만 명의 병력을 형성하였습니다.
광개토 5만의 군사가 합천 대야지역을 거쳐 진주에 당도하였습니다. 지수 땅 넓은 들판에 진을 쳤습니다. 맞은편에 안라국 경계인 방어산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저 산만 넘으면 백제와 안라, 왜의 연합전선을 격파하고 가야의 맹주인 금관가야마저 함락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는 그다지 높지 않은 방어산을 보면서 야릇한 미소를 띄웠습니다.
한편, 안라국에선 고구려 광개토의 5만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온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사흘 전 신라의 요청으로 광개토 대군이 남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민간인으로 위장한 정찰병에게서 들은 터라 요새마다 병력을 배치하고 대비는 하고 있지만 안라국왕의 근심은 가시질 않았습니다.
“무시우 장군, 싸움에 승산은 있겠는가?”
“목숨 걸고 최대한 방어하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습니다. 폐하!”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하였구나. 백제군과 왜군을 모두 합하여도 우리의 군사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으니 갑갑하기만 하구나.”
안라국왕의 편전에는 아들이자 대장군인 무시우를 비롯한 신하 30명이 고개를 조아리고 나열해 있습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누군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쯤 나이 많은 신하가 고개를 들고 국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신이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자고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군사가 3000명에 불과한데 적의 병력은 5만이나 된다고 하니 이는 싸워서 될 일이 아닌 줄 아룁니다.”
“공은 싸워보지도 않고 고구려군에게 무조건 항복하자는 게요?”
또 다른 신하가 버럭 언성을 높이며 참견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신하가 다시 되받아쳤습니다.
“그래, 전쟁을 일으켜서 우리 백성이 모두 몰살이라도 당해야 속이 시원하겠소?”
“아니, 공께선 말씀이 지나치시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싸워서 죽더라도 적극적으로 대항해 싸우는 것이 나라의 신하된 도리 아니겠소?”
“어찌 그리 어리석은 소리를 하시오? 치욕스럽더라도 살아남으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만 죽으면 그걸로 이 나라는 끝장난다는 것을 왜 모르시오?”
옥신각신. 처음엔 두 신하의 논쟁으로 시작하더니 중구난방으로 토론이 펼쳐지고 결국 서로 삿대질까지 하며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몰아붙였습니다. 국왕은 용상을 세게 내리쳤습니다. 편전이 일시에 조용해졌습니다.
“짐이 한마디 하겠노라.”
“예, 폐하!”
신하들은 왕을 향해 허리를 굽혔습니다.
“고구려군이 우리 국경까지 진출한 것은 신라가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예부터 곡창지대이자 철이 풍부한 우리 땅을 노려 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 대항하고자 백제군과도 손을 잡았고 왜군과도 연합전선을 이루었다. 저들의 공격에 대항한 우리에게 오히려 침입자로 몰아세워 고구려를 끌어들인 것인 필시 가야를 자기들 발아래 복속시키고 나아가 왜나라까지 통치하겠다는 속셈이 틀림없다.”
국왕은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일순 편전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국왕의 결단이 어떻게 내려질지 모두 긴장감 속에서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고로, 짐은 고구려군에 대항해 결사항전을 명하노라!”
몇몇 신하들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으나 또 몇몇 신하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때 대장군 무시우와 마금, 비화, 쾌수, 혜목, 이렇게 네 명의 휘하 장군이 국왕 앞으로 나섰습니다.
“폐하, 목숨을 다해 이땅 안라국을 지키겠사옵니다.”
“충!”
무시우의 말을 받아 네 명의 장군이 일시에 구호를 외쳤습니다. 국왕 앞에서 출병의례를 마친 무시우와 장군들은 곧장 군사를 이끌고 방어산으로 향했습니다. 무시우는 방어산 정상에 진지를 구축하고 병사들을 집결시켰습니다.
겨울철이라 일찍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3000여 안라국 병사들은 무시우 대장군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두 비장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천하제일의 불화살이 있다. 이 방어산을 넘어오려다 우리의 불화살에 맞은 적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갈 것이다. 적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천지신명께선 우리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죽고자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충! 충! 충! 충!”
무시우의 말에 병사들은 일제히 연호했습니다. 무시우의 군진은 횃불로 환했습니다. 병사들은 대장군 무시우에게 ‘전쟁의 신’이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안라국 병사뿐만 아니라 백제와 왜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시우는 그들에게서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무시우는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평상시엔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겨드랑이 날개를 펼쳐보였습니다. 그리고 안라국 최고 병기인 철궁을 치켜들었습니다. 철궁의 무게는 300근이나 되었습니다. 병사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일제히 환호를 하였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충분히 진작시켰다고 여긴 무시우는 바위에 올라가 적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5만의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데도 전혀 움직임을 관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어둠 속에 모두 잠든 것만 같았습니다.
“쾌수!”
“옙, 장군!”
무시우는 부하 장수 중에서 가장 몸이 날쌔고 판단력이 빠른 쾌수 장군을 불렀습니다.
“적의 동태가 수상하다. 5만의 군사가 미동조차 없으니 필시 선발대의 잠입 시도가 있을 것이다. 정찰대를 꾸려 산 아래를 살펴보고 오너라.”
쾌수는 정찰에 뛰어난 부하 다섯 명을 선발하여 지수 쪽으로 정찰을 나갔습니다. 겨울바람이 산 아래에서 치고 올라왔습니다. 바람은 가는 나뭇가지를 흔들며 쏴~ 하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었습니다. 앞서 주변을 살피며 산을 내려가던 쾌수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잠깐!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무슨 일입니까, 장군?”
“근방에 적이 있다. 바람에 섞인 냄새를 느껴봐. 분명히 사람의 냄새다.”
“네, 그렇군요. 300보 안에 적이 매복해 있습니다.”
“각자 흩어져서 2각(30분) 동안 적의 숫자를 파악한다. 파악되는 대로 다시 이곳에 집결한다. 자, 출발!”
쾌수의 정찰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뱀과 같고 또한 바람과 같아서 광개토의 병사들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는데도 전혀 알아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두 시각이 지나기 전에 정찰병들은 모두 다시 쾌수에게 돌아왔습니다.
“장군, 족히 500은 되어 보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오른쪽에서 보았을 때에도 그 정도의 병력인 것 같았습니다.”
정찰병 모두 적의 선발대가 500명 정도라고 파악하였습니다. 쾌수는 방어산 정상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여전히 횃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무시우 대장군이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 능선으로 후퇴!”
쾌수는 부하들에게 나지막이 명령을 하였습니다. 부하들은 쾌수를 따라 바람과 같이 능선을 타고 올랐습니다. 적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게 되자 쾌수는 부하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셋을 세는 동안 각자 화살에 점화하여 일제히 적의 머리 위로 쏘아 올린다, 알겠나? 하나, 둘, 셋!”
쓩! 쓔쓩! 다섯 발의 불화살이 어둠을 가르며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순간 방어산 정상에서도 수백 발의 불화살이 솟아올랐습니다. 이 화살들은 다섯 발의 불화살이 떨어진 곳으로 일제히 향했습니다. 불화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쾌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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