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이기적 권력집단의 비열함을 보여준 <도가니>
영화 <도가니>를 아내와 단둘이 보았습니다. '19금'이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내에게 말을 건네기는커녕 손도 잡지 못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뭔가에 알 수 없는 고문을 당하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나서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다가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영화가 뭐 이래? 왜 이리 힘들어!" 나는 아내의 표현법을 알기 때문에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압니다. 아내의 가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펄펄 끓어서 올라오고 있다는 얘깁니다.
어떻게 선생들이 그럴 수 있어? 하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사회의 권력들이 약자에 대해서는 조직적이다시피 철저하게 짓밟는 구조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화를 치밀게 할 뿐만 아니라 슬프게하고 마는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애학원 교장이 장애아이를 성추행하고 경찰에 잡혀 갈 때 떼거리로 찾아와 항의하는 모습은 저들이 과연 정신이 있는 집단인지 화가 났습니다. 단지 교회 장로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제편 감싸기'식의 행태를 보여준 이런 교회의 모습은 단지 영화 속 장면일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예전 <밀양>이라는 영화에서도 교회의 이기적이고도 비양심적인 모습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교회 믿고 회개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았다는 유괴범의 뻔뻔함이 이 시대 교회를 대표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요. 교회 장로이기도 한 파렴치범인 교장을 고발해서 구속하게 했으면 부끄러운 줄 알고 자숙해야 할 교회사람들이 인권단체 간사의 머리채를 잡고 환장하는 모습은 단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종교, 정치, 사회 등 여러 곳의 비슷한 장면으로 겹쳐졌습니다.
이명박 가카께서 서울시장을 할 때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쳐버린 마당에 감히 하나님의 자식을 법에 걸어 처벌한다는 게 말이 되겠나 싶긴 한데 사회적 약자를 철저하게 짓밟고 뭉개버리는 이기적 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마냥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던 기억은 그야말로 뇌와 가슴을 <도가니>에 넣어 푹푹 삶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삶다가 꺼내어 식히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돌이끼의 영화관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경구 박해일 주연 나의 독재자 지나친 진지모드 불편해 (0) | 2014.10.30 |
---|---|
<굿바이 보이> 낙오자가 된 두 남자 이야기 (0) | 2011.10.31 |
영화 <월스트릿>을 압축하면 '광기'와 '거품'이다 (0) | 2011.05.27 |
신데렐라를 싫어하는 계모의 간단명료한 이유 (0) | 2011.04.21 |
처음부터 완벽하기를 바라선 안돼-미와사와 세에지 (0) | 2010.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