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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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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영화 제목이 아주 섹시하다. 이중생활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는 불륜 외에 그 어떤 상상도 불허한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라면 그 이중생활이란 단어에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로 아주 철학적 메타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지금 이 공간 속에서 내가 살고 있지만 또 다른 어느 공간에서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또 다른 내가 아주 유사한 신체 조건으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다.


언젠가 사촌 동생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형, 혹시 전라도에 간 적 없제? 형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봤어." 나와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동생은 어디서 읽었는지 두 개의 삶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얘기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살면서 종종 사촌동생의 얘기가 영 터무니없는 얘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점덤 관념 속 영역을 넓혀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던 탓일까? 도플갱어가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쪽으로 점점 끌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 '거지와 왕자'뿐만 아니라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도 그러한 얘길 담고 있다. 이런 도플갱어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봤던 영화가 바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년)이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 나는 당시 '경남매일'(마산 중앙동이 본사였던 신문사) 문화부 기자였다.


문화부 기자의 업무시간 영화관람은 죄가 되지 않는다. 모든 문화적 활동이 기사 생산활동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배가 들어온지 아마 1년 가까이 되었을 터였다. 당시엔 시내 극장도 출입했다. 새로 영화가 나오면 스틸컷을 받아 기사 자료나 영화 광고 자료로 쓰기도 했다. 지금과 같이 멀티플랙스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 후배가 바쁘지 않다면 영화 한 프로 하자고 했다. 오전 그날의 기사를 모두 제출한 상태였기에 여유가 좀 있었다. 출입처였던 극단은 밤에나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 후배 왈, "아주 재미 있는 영화가 나왔어요, 선배.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라고, 선배, 이런 영화도 봐주고 그래야 돼요. 껄껄껄." 기억을 되살려 그 후배의 말을 생각하니 웃는 모습이 아주 특이했던 기억이 덩달아 떠오른다.


암튼 이런 사연이 있는 영화다. 아마 나 역시 그렇고 그런 영화 쯤으로 기대를 했겠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작품이다. 이렇게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만 적으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영화 '블루', '레드' 등을 만든 감독이라 하면 '아하~'하고 무릎을 칠 사람이 제법 늘어날 것이다.


그 감독의 스타일이 제법 관념적이다. 도플갱어를 소재로 두 사람의 인생을 한묶음으로 다루면서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은 제목에서와 같이 베로니카와 베로니끄다. 이렌느 야곱이 1인 2역을 맡았다.



폴란드에서 음악을 전공해 생활하고 있는 베로니카는 어느날 이모가 사는 폴란드 남부 도시 크라쿠프로 간다. 이때 기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그가 투명한 고무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이 공은 뚜렷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알고리즘을 형성하고 있는데 일종의 신비주의라고 말해둘 수는 있겠다.


베로니카는 크라쿠프에서 우연히 음악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발성법이 매력적이어서 단번에 합격한다. 피아노 전공이었지만 성악가로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오디션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시위를 벌이는 군중 사이로 지나가게 되고 그 때 관광버스에 오르는 어떤 여인을 발견한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성이다.



그 여성은 버스에 올라서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베로니카는 멍하니 그녀를 향해 서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쳐다보고만 있다. 그러나 자신과 똑 같이 생긴 여성은 전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던 베로니카는 다시 심장병이 도져서 고통스러워 한다. 겨우 벤치까지 비틀거리며 가서 앉았다가 스스르 눕는데 맞은 편에서 어떤 영감탱이가 코트를 입고 걸어오고 있다. 표정이 묘하다. 쓰러진 베로니카의 눈은 뜬 채였고 영감탱이는 가까이 다가와서는 코트를 펼쳐버린다. 헉! 이 영화에도 바바리맨이 등장했었군. 그런데 아무리 25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영상이 어찌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을까? 혹시 그때, 가위질 당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그 영감탱이 장면은 왜 영화 속에 삽입되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상징성도 없고 풍자도 없고, 비유나 은유도 없다. 전혀 알고리즘이 형성되지 않는다. 당시 워낙 바바리맨의 변태 행동이 유행이어서 그냥 끼워넣은 것일까?



베로니카가 오디션을 받은 때 악보집 끈을 손가락으로 칭칭 감다가 끊어지는 장면이 있다. 이건 베로니카의 죽음을 예고하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나중에 나오는 장면이지만 또 다른 베로니카, 즉 프랑스의 베로니끄에게도 비슷한 구두끈이 우편으로 배달된다. 심전도 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터라 그 심전도 그래프를 보면서 구두끈을 만지작거리다가 팽팽하게 당긴다. 심장박동이 멈추는 것처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죽음을 연상케 하는 장치들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창밖의 노파다. 베로니카도 베로니끄도 창밖으로 힘겨워하며 걸어가는 노파를 내려다 본다. 베로니카는 "도와드릴까요?"하고 한 마디 내뱉지만 베로니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베로니끄는 죽지 않는다.


어쨌든 베로니카는 크라쿠프에서 새로운 직장을 얻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희망으로 기분이 좋다. 고향에서 찾아온 남자친구로부터 선물도 받아 더욱 기쁘다. 



심장병이란 게 그렇더군. 쥐도 새도 모르게 명을 달리하는 무서운 것이란 말이지. 베로니카는 공연장에서 노래를 하다가 참 허망하게도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아니 주인공이 이렇게 빨리 죽어도 되나.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베로니카의 눈이 되어 묘지에 안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죽음의 감정을 경험케 하려는 시도 아닐까.



또 다른 베로니카.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음악 선생 베로니끄는 학생들을 데리고 인형극을 관람시킨다. 그런데 공연 중 거울에 비친 인형극 연출자의 모습에 반해버린다. 그렇게 불현듯 사랑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일까? 프랑스적 사랑의 감정이 그런 것일까. 너무 즉흥적이다. 


베로니끄는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아버지가 묻기를 누구냐니까 베로니끄 하는 말, "모르겠어요." 아버지 처지에서 보면 미치고 폴짝 뛰고 환장할 노릇이다. 딸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이 딸래미는 정작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니 말이나 되는 얘긴가.


인형극 연출자, 필립 볼테르가 맡았다. 그래, 이름이 알렉산더 바르디니였다. 알렉산더 역시 베로니끄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서는 베로니끄에게 아무렇게나 녹음된 테이프를 소포로 보낸다. 호기심이 발동한 베로니끄, 우편물의 주소와 테이프에 담긴 소리를 추적해 알렉산더를 찾아간다.


알렉산더가 있는 커피숍을 용케도 찾는다. 베로니끄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듯이 이 남자가 끌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남자, 여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나오게 하면 과연 정말로 나올까 하는 호기심에서 그래봤단다. 이 말을 듣고 뛰쳐나가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겠나? 베로니끄는 달아나고 알렉산더는 찾으러 다닌다. 뭐 결론만 얘기하자면 둘이 만나게 되고 하룻밤도 같이 지낸다.



알렉산더는 알고보니 유명한 동화작가다. 그가 쓴 책도 몇 권 있음을 책방 진열대에서 확인된다. 알렉산더가 베로니끄에게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니까 베로니끄는 자산의 가방을 열어 침대에 쏟아낸다. 예전 베로니끄가 폴란드 크라쿠프로 여행 갔을 때 찍었던 사진 속에서 또 다른 베로니끄를 발견하게 된다.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베로니끄. 알렉산더는 베로니끄에게 다음 작품은 "니가 주인공"이라고 한다. 베로니끄가 자고 일어났더니 이 남자는 벌써 두 개의 인형을 만들었다.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자신과 똑 같이 생긴 두 사람이 있어. 전혀 다른 세상에 살면서도 그들은 뭔가에 의해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한 사람이 난로에 손이 데였을 때 다른 사람에겐 그것을 미리 방지하도록 하지. 어쩌면 소름이 살짝 돋을 정도로 섬뜩하기도 하다. 뭔가에 끌려 차를 몰고 어디론가 찾아간 베로니끄, 나무에 손을 대자 묘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목공일을 하던 베로니카의 아버지도 묘한 기분을 느꼈던 것일까. 잠시 모터를 멈춘다. 그렇게 영화는 재채기가 나올듯 말듯한 상황에서 자막을 올려버린다.


영화의 배경음악, 주제곡이라 해도 좋다. 너무 좋다. 마음을 한없이 슬픔 속으로 밀어넣는다. 도저히 다시 듣지 않고는 못 베겨내겠다. 음악은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맡았다. 유튜브에 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면서 25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그냥 이대로 25년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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