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현장을 찾아서)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과 사근역이 있었던 수동초교 답사
‘금석같이 곧은 마음 갈아도 닳지 않고/낭군이 근심 끼쳤으나 무덤은 같이 썼네/능히 만세에 윤리를 세우게 하였고/또 농사철에는 비가 되어 내렸네’.
조선 중기, 대략 선조가 집권하던 시절 두각을 나타내며 벼슬을 했던 태촌 고상안이 쓴 이 시는 그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월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쓴 시입니다. 칠언절구로 된 시이지요. 이 시는 그가 남긴 ‘태촌집’ 5권 ‘효빈잡록’에 실려 있는데 ‘만덕총’과 비교해 지은 시라고 합니다.
‘만덕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시집가는 대로 죽어버려 이 삶을 보내니/아홉 번 과부되어 얼마나 상심했나/산허리에 열무덤 나란히 놓여 있으니/천추만세 지하에서 월명에게 부끄러우리’. 역시 칠언절구의 시입니다.
월명총에 얽힌 시는 이뿐이 아닙니다. 1473년 쯤, 그러니까 조선 성종시대에 함양군수를 지낸 점필재 김종직 역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관련 이야기를 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김종직 역시 칠언절구로 월명총을 노래했군요. ‘무덤 위 무성하게 자란 풀 나뭇가지에 다다라/길손의 구성진 노래 화산 들에 아련하네/요즘 같이 달 어두운 밤 늑대소리 처량하니/이에 대한 응답인가 낭자의 혼 꽃나비 되어 날으네’.
또 김종직의 문하에 있던 유호인 역시 월명총에 대해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는 거창현감과 합천군수를 지냈습니다. 그 역시 칠언절구로 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월명총이라 에오라지 밝은 더 달이여/해마다 한식을 맞아 보니 묵은 풀이 무성하구나/어젯밤 떠도는 원혼의 옥노리개가 차디차니/동풍이 세차게 불어와 두견화가 다 지는구나’.
고려 말 아니면 조선 초의 한낱 역녀에 불과했던 월명이 이렇게도 유명인사가 된 데엔 조선 유림의 거목 점필재 김종직에 이은 함양이 낳은 문사 유호인, 그리고 태촌 고상안으로 이어지는 ‘찬가’ 때문일 것입니다.
태촌집에 실린 전설은 1편에 소개하였으니 생략키로 하고요, 월명총과 월명이 근무했던 사근역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월명마을.
월명총이 있는 월명산.
월명총은 지리적으로 함양읍 백천리에 있습니다. 수동면과 경계지점에 있지요. 수동삼거리에서 함양정신요양원으로 가다 보면 바로 그 뒤에 나지막하지만 우뚝 솟은 산이 뒷배경으로 서있는데 이것이 월명산입니다. 원래는 수지산, 수지봉으로 불렸는데 월명총이 있다고 해서 월명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 산 아래에 그렇게 크지 않은 마을이 있는데 월명마을이라고 합니다.
월명총이 있는 곳으로 올라 가려면 마을 안쪽으로 쭉 들어가야 합니다. 초입은 차량이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은 편인데 철탑 가까이 가서는 더 이상 차량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철탑 위치 이후로는 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이 무성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는 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월명산 월명총을 찾아 들어가는 입구.
철탑에서부턴 인적이 드물어 그런지 풀이 무성하다.
월명총이 있는 정상을 향해 난 좁은 등산로.
능선을 타고 20분쯤 걸어가면 월명산 정상에 다다릅니다. 월명산 최정상(?)엔 시멘트로 위치 표시를 해놓았더군요. 월명총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10미터 쯤 떨어져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데다 나무가 무성해서 쉽게 찾지는 못했는데 길이 막혔다 싶어도 계속 동쪽으로 내려가면 확 트인 장소가 인디아나 존스의 감춰진 도시가 드러나듯 갑자기 나타납니다.
이곳이 월명총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기록대로라면, 무덤이 두 개여야 할 텐데 네 개나 있습니다. 기록된 설화에는 월명이 죽고 그 옆에 경주인을 묻어 주었다 라고 되어 있으니 무덤은 두 개라야 이야기가 되는데 말입니다.
월명산 정상을 표시한 시멘트 표지물.
월명총 뒤에서 바라본 모습.
오른쪽은 월명총 왼쪽에 있는 것이 경주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취재를 마친 며칠 뒤 월명마을 이장님과 여러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원래 두 개였으나 근래에 무덤 두 기가 새로 생긴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월명총 주변으로 너무 붙어 있어서 처음엔 가족묘인가 싶었습니다.
월명총을 확인하고는 월명이 근무했다는 사근역이 있었던 자리인 수동초등학교로 갔습니다. 월명총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사근역은 고려시대까지 함양 부근의 교통 요지였는데 초선 초기에 폐지되었다는 기록이 있군요. 관련 기록에 따르면 고려 말 우왕 6년(1380년) 삼도 원수인 배극렴이 이끄는 500여 명의 군사가 남부지방의 곡창을 노리는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해 냇물을 피로 물들였으며, 왜구들은 그 기세를 몰아 단숨에 남원의 인월역까지 진출하였는데 이성계에게 섬멸당했다고 합니다.
월명총을 둘러싼 소나무들.
월명총에서 내려다 본 남강의 모습.
사근역 뒷산이 연화산인데 이곳에 사근산성이 있지요. 사근산성은 함양의 외성으로서의 성격이 짙은데 남북 관통로의 중요한 구실을 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요즘엔 수동면 사람들이 ‘사근산성 추모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지난 2011년 9월 처음 개최된 이후 올해로 4회째 지내고 있습니다. 추모제는 매년 9월 수동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올해는 지난 9월 30일 열렸군요.
사근역을 사근찰방역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조선시대 종육품 외관직인 찰방이 관리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사근찰방역은 당시 조선시대 10대 간선도로 중 제6도로로 경남의 14개 역길을 총괄하였습니다. 사근역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근찰방역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수동초등학교.
사근찰방역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수동초등학교와 사근산성이 있는 연화산.
그런 사근역을 함양군에서 원형복원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사근역을 복원하여 지역의 역사성을 알리는 동시에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관광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8월 용역보고회를 하였고 용역기간을 1년 정도로 본다면 내년 8월께나 되어야 어떻게 할지 구체적 계획이 나오겠군요.
사근역이 복원된다면 월명의 이야기도 하나의 콘텐츠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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