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최치원과 황금돼지의 인연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과 성산구 두산중공업 사이에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지역인이면 모를 사람이 없을 유명한 ‘돝섬’이다. 지금은 마산서항지구 매립이 진행 중이니 조만간 육지에서 훨씬 더 가까워지겠지만 돝섬 유람선 선착장에서 한 1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뱃길 또한 관광에 재미를 더해준다.
돝섬은 1982년 처음 개장한 해상유원지다. 처음엔 동물원도 있었고 놀이시설도 있었다. 1995년엔 돝섬비엔날레를 열기도 했고 잘 나갔다. 그러다가 2003년 태풍 매미로 쑥대밭이 되었는데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한동안 방치된 섬으로 남기도 했다.
돝섬 해상유원지 선착장에 닿기 직전 유람선에서 바라본 풍경.
2011년 돝섬개발 공모를 통해 돝섬유원지 종합계발 계획이 차차 진행되었고 그해 4월 재개장을 했다. 2012년엔 다시 창원조각비엔날레를 이곳에서 개최해 제2전성기를 꿈꾸는 섬이 됐다. 아직도 이때 출품된 비엔날레 조각품 20점이 전시되어 있다.
2013년 돝섬은 친환경유원지로 1차 정비를 마쳤다. 바다장미원 4000㎡에는 40종의 장미 6000그루와 관목류 7종 8500그루의 나무가 조성됐다.
돝섬에 둘레길이 만들어지고 시멘트 길도 데크로드로 변했다. 또 돝섬의 탄생설화가 담긴 이야기벽천 인공폭포도 조성됐다. 이 벽천에서 쏟아지는 물 안쪽에 타일로 만들어진 6개의 벽화장식에 돝섬이란 이름이 붙게 된 전설이 담겨 있다.
돝섬 내 황금돼지상과 벽천 폭포가 있는 광장./창원시
여기에 소개한 이야기는 마산시사에 실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2011년에 제작된 ‘마산시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가락국 서기 42~532년. 옛날 김해 가락왕의 총애를 받던 미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홀연히 그 흔적이 없어졌다. 왕은 낙담 고심한 끝에 사람을 사방에 파견하여 상금을 걸고 수색을 벌였는데, 우연히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가 골포(마산) 앞바다의 조그마한 섬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절색 미녀를 봤다는 보고를 접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왕은 급히 특사를 파견해 그 섬에서 배회하고 있는 미희에게 환궁하기를 재촉하였으나 미희는 홀연히 돼지로 변하더니 큰 울음을 내고 두척산(무학산) 상봉의 큰 바위틈으로 사라져버렸다.
특사는 급히 왕에게 그 경위를 보고하였고 이 이야기를 들은 왕은 의심이 덜컥 났다. 당시 백성 가운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으며 밤마다 금돼지가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가되 어린 계집아이나 젊은 부녀자를 특히 좋아한다는 풍설이 퍼지고 있던 터였다.
왕은 느낀 바가 있어 군병을 동원하여 두척산 바위를 포위토록 하였다. 군병들은 일제히 창과 활을 꺼내 들고 산이 진동하는 고함을 지르며 포위망을 압축해 가자 금돼지는 날카로운 이빨로 군병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군병들은 활과 창, 칼, 돌로써 금돼지를 내리쳤다. 군병들에 의해 죽은 금돼지는 미희의 모습으로 다시 변하더니 한줄기 요운이 아지랑이 같이 골포 앞바다 돝섬으로 뻗어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그 섬 근방에는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와 함께 괴이한 광채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라 거유(이름난 유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골포의 산수를 즐기려고 월영대에 들러 향학을 설치하고 풍류를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어느 초승달이 뜬 밤에 이 괴이한 현상을 보고 그 섬을 향해 활을 쏘았더니 괴이한 광채는 별안간 두 갈래 길로 갈라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튿날 고운 선생이 그 섬에 건너가 화살이 꽂힌 곳에 제를 올린 뒤로는 이러한 현상이 없어졌다 한다. 고운이 제를 올린 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 하여 후세에도 오랫동안 그 풍습이 이어졌다. (마산시사, 2011, 마산시사편찬위원회)
돝섬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여지도서’에는 저도(猪島)가 월영대(月影臺) 남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창원), ‘영남지도’(창원) 등의 조선 후기 고지도의 월영대 앞바다에 저도가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지형도’에는 마산 남서쪽 바다에 저도가 표시되어 있다. 월영동(月影洞) 월영대 앞에 있다고 하여 월영도(月影島)라고도 불린다.
마창대교에서 바라본 돝섬.
마산 무학로 산복도로 신월동서 바라본 돝섬.
정부경남지방합동청사에서 바라본 돝섬.
천주산에서 내려다 본 돝섬.
회원현성지에서 바라본 돝섬. 아파트에 가려 섬 전체가 조망되지 않는다.
같은 돝섬에 대한 전설인데 일본인 諏方武骨이 쓴 ‘경남사적명승담총(慶南史蹟名勝談叢)’이란 책에서는 약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손진태라는 사람이 1935년 1월 10일 동아일보 칼럼 ‘난타나에설전 기야이지야도’라는 코너에 번역해 쓴 것을 옮겨 본다.
전설에 나타난 도야지 이야기-마산의 돝섬과 금도야지
지금 마산만 가운데 조그마한 섬이 있어 옛날부터 돝섬이라 하고 근자에 와서는 월영도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섬은 그 형상이 돝과 방불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신라 때로부터 내려오는 금돝 전설이 있어 더욱 유명하다.
신라 때에 최윤덕이란 사람이 있어 위인이 온후하고 청렴하여 조정에서 명성이 자자하더니 하루는 궁중의 잔치에 가서 조 아무개라는 라는 기생의 아름다운 자색에 한 번 미친 뒤로는 마음이 일변하여 밤낮으로 술과 계집에 방종하는 지라 임금은 그를 구실군의 태수로 하여 시골로 내려보냈다. 이 구실군이라는 것은 지금 마산과 창원을 합친 고을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기생과 함께 마산으로 와서는 더 한층 방종한 생활을 하고 ○○(영인본에 보이지 않는 글자이나 ‘정사’라고 대입하면 무리가 없을 듯)에는 마음을 쓰지 아니하였다. 그러더니 하루는 홀연히 그 기생이 없어지고 말았을 뿐 아니라 그날부터 금빛이 찬란한 금도야지 한 마리가 밤마다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가므로 온 고을이 큰 소동을 하고 최 군수는 사람을 모아 이 도야지를 잡으러 떠났다.
그들이 봉암산(팔용산) 중허리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큰 바위 위에 선 절세의 미인을 보았다. 이것이 곧 군수의 사랑하던 기생이었다. 군수가 반가워 손을 잡고자 할 때 기생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요새 밤마다 사람을 잡아먹는 도야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나입니다. 나는 원래 궁중의 도야지러니 이 세상을 온통 도야지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나 최 도선의 술법 까닭에 뜻을 얻지 못하고 그 원수를 갚고자 미인으로 화하여 기생이 되어 도선의 일가인 그대를 사로잡았던 것이나 그것에도 만족을 얻을 수 없어 또다시 도야지로 화하여 온갖 사람을 잡아먹고자 한 것이나 지금은 후회가 되고 지금 내 목숨을 그대에게 바칠 터이니 나를 죽이어 천하에 사하고 그대도 마음을 고치어 어진 사람이 돼라.”고 하였다.
그래서 군수는 뭇사람으로부터 도야지를 죽이고 마음을 회개하여 깊이 불법에 귀의하였다고 하는데 그 금돝이 화살에 맞아 죽을 때 요기가 공중에 나타나 세 번 금돝을 돌고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가 지금 돝섬에 이르러 사라졌으므로 이 섬을 돝섬이라 하는 것이다.
그 뒤 최치원 선생이 마산에 와서 월영서원에 계실 때 밤마다 돝섬에서 괴이한 불이 일어나고 그중에 한 미인이 나타나며 때로는 도야지 우는 소리까지 거기서 일어나 뱃사람들이 무서워 밤이 되며 그곳을 지나지 못한다 하므로 선생은 술법을 행하여 이 요물을 물리치었었다고 한다. (諏方武骨 저, 경남사적명승담총에서 초역)
손진태는 서울대 사학과 교수 출신으로 문교부 차관까지 지낸 민속학자다. 그는 이 돝섬 전설에 대해 “우리의 고유한 금돝 전설을 골자로 하여 거기에다 불교의 사상으로 윤색을 더한 것이다. 세상의 탐욕과 색욕을 도야지에 의하여 표현하고 이것은 필경 불법에 의하여 구제될 것이라는 사상을 이렇게 전설의 형식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산시사에 나타난 돝섬 전설과 달리 조선 세종 때의 장군이자 정승인 최윤덕 이름이 나온다. 의도였든 아니든 일부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
돝섬 입구에 있는 황금돼지상.
최치원 초상화.
그런데 돝섬처럼 금돼지가 최치원과 짝을 이룬 이야기는 전북 군산시 옥도면에 있는 섬들, 고군산군도에 전한다. 여기서는 최치원이 금돼지의 아들로 나온다. 군산문화원에서 펴낸 ‘우리 군산의 옛날 이야기’ 속 ‘내초도 금돈시굴(金豚始窟)’ 편에 실렸다.
아, 최치원이 금돼지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와 박혁거세신화에 나오는 백마의 알 차원의 표현일 것이다.
금돈시굴 전설에 전하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최치원의 아버지 최충이 지금의 군산인 문창 수령으로 발령을 받아 갔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내초도란 섬으로 사냥을 갔다가 누런 돼지한테 붙들려 바위 밑 토굴에 갇혀 몇 달을 살게 되었다.
그러자 이 누런 돼지에게 태기가 있어 열 달 후 아기를 낳았다. 아들이 점점 자라 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육지로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누런 돼지의 감시가 심해 그럴 수가 없었다.
하루는 이 돼지가 이웃 섬으로 사냥을 간 사이 최충은 모든 사실을 아들 치원에게 털어놓았다. 최치원은 어미돼지가 해다 놓은 나무토막으로 뗏목을 만들어 이곳을 탈출하자고 했고 어느 날 어미돼지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사이 이들은 섬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들이 육지에 닿기 전에 어미돼지에게 발각되었다. 어미돼지는 바다를 빠른 속도로 헤엄쳐 뗏목에 다다랐다. 최치원은 미리 실어놓은 나무토막을 바다에 던졌다. 욕심이 많은 돼지는 나무가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 그것을 주워다 섬에 갖다 놓고 다시 뗏목으로 헤엄쳐 왔다. 최치원 부자는 계속 나무토막을 바다에 던져 결국은 돼지가 기진맥진해 죽고 말았다.
구사일생으로 부자는 살아서 육지에 올랐고 머리가 총명했던 최치원은 열심히 공부해 당나라에 유학도 가고 벼슬도 하고 나중엔 대 문장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는 얘기다.
금돈시굴 전설과 유사한 얘기로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군담소설인 ‘최고운전’에서도 전한다. 여기서는 최치원의 어머니가 아이를 밴 상황에서 금돼지에게 납치당해 갔는데 최충이 미리 명주실로 조치를 취해놓았기 때문에 금돼지의 소굴을 찾을 수 있었다.
최충이 금돼지를 죽이고 구해오지만 그 후 부인이 최치원을 낳았는데 최충은 아이가 금돼지의 아이일지 모른다 하여 내다버린다. 버려진 아이에게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자 다시 데려다 키우게 되고 훌륭하게 자란다는 얘기다.
마산만의 돝섬 전설이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군산의 황돼지 전설, 조선 중기 소설인 ‘최고운전’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겠다. 최치원을 따라다니던 누런 돼지 전설이 마산에 와서 돝섬에 얽히게 된 것이리라.
돝섬을 한 바퀴 돌면서 섬에 얽힌 전설과 관련된 다른 전설도 떠올린다면 더욱 의미가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돝섬 위성사진./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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