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균의 오동동야화]회원천변의 개구쟁이 이광래
오늘은 다섯 번째 시간. 온재 이광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경남도민일보 2000년 7월 5일에 실린 이야기다.
회원천변의 개구쟁이
이러한 마산의 젖줄인 회원쳔변에서 두 이씨 형제는 남달리 우의가 투터우면서도 잘 싸웠던 모양이다. 동리 아이들과 같이 천렵을 하다가 말다툼 끝에 덩치 큰 동리 아이 하나와 광래 사이에 끝내는 육박전이 벌어지게되었다. 이에 길상(화학자, 노산 이은상의 아우)은 무조건 광래편이 되어 공동으로 적(?)을 물리친 뒤 또 다시 광래와 길상이 싸웠다고 노산은 그의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어쨌거나 유년과 소년 시절의 광래는 잘도 싸우고 또 고집불통의 어린이였다고 한다. 한번은 할머니께서 새 양복(그때는 넉넉한 집이 아니면 양복 입기가 참으로 힘들었다)을 갈아입히면서 광래에게 타일렀다.
"홍근아, 오늘은 제발 싸우지 말고 옷에 흙 묻히지 말아라."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해질무렵에 돌아온 아이는 아침에 갈아입힌 양복을 홀랑 벗어버린 알몸이 아닌가. 깜짝 놀란 할머니가 까닭을 물으니 헐벗은 거지 아이에게 벗어주었다는 것이다.
쫒겨난 광래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도 어머니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신(오늘날의 윤리) 시간에 선생님께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착한 일이라고 배웠다는 것이다. 이 고집불통의 어린이는 한대 맞으면 반드시 두대 때려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한마디로 개구쟁이 중에 개구쟁이였던 것이다.
창신학교를 졸업하고 역시 기독교 계통인 배재고등보통학교(지금의 배재고등학교)에 입학한 광래의 지난날 모습의 일단을 그의 딸인 이영실 씨는 <현대연극>(1971년 겨울호 27~28쪽)지에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배재고보 당시 축구와 야구로 단련한 몸을 의사가 보고 당신 가슴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철판 같다고 했으며 웃통을 벗고 몸을 씻으면 잘 구워진 윤나는 구릿빛 살결을 사람들은 부러워들 했다고 자랑을 하시곤 했다. 운동과 싸움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어릴 적에 길상님과 친척 관계이기 때문에 한집에서 어울리며 공동 소유로 선물 받은 야구 볼과 클럽을 받고 기뻐하셨다 한다.
그러나 아버지만 할머니께 밉게 보여(하도 개구쟁이 짓을 하니까) 그 소유권에서 박탈당했다고 못내 서운해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시곤 했다. 그 이유는 툭하면 싸움질이고 새옷인데도 훌렁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들어오기가 일쑤요, 수틀리면 문밖 쓰레기통 옆이건 맨 바닥이건 드러눕거나 아니면 방문을 잠그고 단식투쟁을 하기 일쑤였다고 했다.
할머니 속을 무진장 썩여드려 심지어는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연극 공연 때문에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를 통탄하면서 사흘 밤을 꼬박 뜬눈으로 시신을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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