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신동대전(傳)(2)
(전편줄거리) 조선 임진란이 일어나기 수년 전. 양산 영축산 운암도사에게서 도술을 익히며 생활하던 신동대는 나이가 스무 살에 이르자 스승으로부터 하산하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스승은 신동대를 옆에 앉히고 과거를 회상합니다. 신동대는 17년 전 무예 강자를 하나 둘 꺾으며 전국을 떠돌던 운암도사에게 맡기었습니다. 관군에게 쫓기던 어떤 여인이 아이의 목숨만이라도 살리고자 운암에게 떠맡기다시피 했던 거지요.
당시 운암도사는 무예 강자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강자를 만나면 대련을 펼쳐 하나 둘 쓰러뜨려 나갔습니다. 청도를 거쳐 양산으로 가던 중 얼떨결에 아이를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운암도사는 이미 전국 제일 무예가로 군림하다시피 했던 터라 아이를 맡은 그 자리에서 아이에게 무술과 도술을 가르치며 남은 생을 조용히 살고자 마음을 먹습니다. 언제가 아이의 어머니가 다시 찾아오길 바라면서 말이죠.
신동대는 자신의 아비가 누군지 어미가 누군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스승과 떨어져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에 조금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신동대가 양산읍내 시장에 들렀을 때 남루한 옷차림에 딱 봐도 시골뜨기 모양새라 동네 왈패들이 돈을 뜯어낼 심산으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동대에게 오히려 당하기만 하자 이번엔 여럿이 한꺼번에 공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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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 모두 일제히 신동대 쪽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펑!”
순간적으로 풍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와 함께 사내들은 머리와 어깨가 서로 부딪히며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에구구…. 어깨가 빠개지는 것 같애.”
“그런데 이 녀석 어디로 갔지?”
공격을 지시하고 옆에서 지켜보던 우두머리도 신동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아했습니다. 분명히 머리와 어깨가 부딪히는 순간까지만 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우두머리가 신기하다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수하들의 공격을 받은 그 촌뜨기가 바로 자신의 옆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크!”
우두머리는 주춤 물러났습니다.
“야, 이놈들아! 그 정도 실력으로 내 상대가 될 상 싶으냐? 어찌 팔다리 하나씩 분질러 줄까?”
쓰러져 있던 수하들이 겁을 먹은 듯 쭈뼛거리며 우두머리 뒤로 몸을 피했습니다. 우두머리는 수하들이 한심한 듯 쳐다보다가 신동대를 향해 더듬거리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이, 이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겁도 없이 덤비느냐?”
“어허, 이놈 보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덤볐다고? 그래 내가 본격적으로 한번 덤벼볼까? 그러면 너희 모두 목숨을 내어놓아야 할걸.”
우두머리는 부하들 앞이라 큰소리는 쳤지만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상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겁쟁이처럼 꼬리를 내릴 수는 없는 체면. 우두머리는 두 주먹을 쥐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는 공격을 하였습니다. 자신도 이 바닥에선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제법 무공이 높은 편인데 이 촌뜨기는 아무리 공격을 해도 먹혀들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두머리는 제풀에 지쳤습니다.
“그것도 무술이라고 내게 명함을 내민 것이냐? 무술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신동대는 검지로 우두머리의 이마를 살짝 밀었습니다. 그러자 우두머리는 몸이 키 높이로 붕 떠오르더니 다섯 걸음 뒤로 나가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두머리는 벌떡 다시 일어섰지만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힘없이 신동대에게 걸어왔습니다.
“이렇게 무공이 뛰어나신 분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무례하게 대한 점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두머리가 그렇게 고개를 숙이자 나머지 사내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허, 짜슥들! 괜히 시간만 낭비했잖아.”
그러고는 되돌아서려는데, 우두머리가 신동대의 바짓자락을 잡았습니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저희들을 거두어주십시오. 제 이름은 막손이라 합니다.”
“어라! 네놈들이 지금 나보고 시정잡배가 돼라? 이말이렷다?”
“아닙니다. 형님께서 거두어만 주시면 개과천선하여 남을 해치는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저희들을 거두어주십시오.”
“일 없다.”
막손은 냉정하게 뿌리치고 돌아서는 신동대의 바짓가랑이를 더욱 세게 붙잡았습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놔라! 옷 찢어진다. 갈아입을 옷도 없다 말이다.”
“저희를 받아주시기 전엔 절대 놓을 수가 없습니다.”
막손 패거리들이 워낙 집요하게 간청을 하자 신동대는 하는 수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귀찮다고 물리치는 것보다 오히려 수하로 거둬들이는 것이 이들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신동대는 막손에게 읍내 여러 정황을 물었습니다. 여러 이야기 중에 신동대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며칠 후 무술인들의 실력을 겨루는 비무대회가 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당분간의 생활비도 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과가 없는 기간이어도 관리의 눈에 들어 무인으로서 최하위 관리인 별장 자리라도 얻을 거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비무대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신동대는 막손과 수하들을 데리고 비무대회 장소로 갔습니다. 각지에서 온 무예가들이 시합에 나가기 위해 줄을 서서 신청을 하고 있습니다. 신동대는 참가자 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몸에서 발산하는 기를 보아하니 하나같이 무공이 일천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신동대는 이번 비무대회 우승은 권법이든 검법이든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의 상대들이라면 자신이 지닌 무공의 1%만 발휘해도 2초식을 넘기지 않고 모두 나가떨어지게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자, 지금부터 비무대회를 시작하겠다.”
상급 관리가 비무를 펼칠 무대 위에 올라서서 대회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참가자들과 구경꾼들이 일제히 와 하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번 비무대회는 무기를 들지 않고 싸우는 맨손대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신동대는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막손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의 주머니를 터는 전대치기 아이들도 눈에 띄었고 누가 이길 것인가로 도박을 벌이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신동대는 막손을 불렀습니다.
“예, 형님.”
“저 녀석들, 저 짓 하지 못하게 해라.”
“예…….”
막손은 지금까지 전대치기와 도박을 부추기며 그들에게 돈을 뜯어내곤 했는데 신동대를 형님으로 모신 이후론 오히려 그들을 말려야 하는 입장이 된 것에 난처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모시겠다고 한 분의 명이니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막손은 부하들에게 바로 지시했습니다.
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심판관과 비무대회 참가자 몇몇이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뭔가 나쁜 거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그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신동대는 막손에게 잠시 지켜보라고 이르고 담벼락 뒤로 돌아갔습니다.
“수리수리!”
주문과 함께 신동대는 참새로 변했습니다. 심판관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 인근 초가의 처마 끝에 앉았습니다.
“나리, 이거 얼마 안 됩니다만 넣어두십시오.”
“어허, 왜 이러나? 이러면 안 된대두.”
심판관은 혹시 보는 사람이 없나, 잠시 두리번거렸습니다.
“이번 대회에 3등 안에만 들게 잘 부탁합니다. 일이 잘 풀려 제가 군관이 되면 그때 또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알겠소. 어쨌든 당신이 쓰러지면 그땐 나도 어찌 손 쓸 도리가 없음을 잘 기억하시오.”
이들의 모습에 신동대는 기가 막혔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경기가 되도록 이끌고 판정을 해야 하는 심판관이 뒤로는 특정인에게서 뇌물을 받고 잘 봐주겠노라고 약속하는 꼴이라니. 정정당당하게 시합을 펼쳐 능력이 있는 자가 실력을 인정받는 대회가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동대는 이번 대회에서 무술인 다운 사람이 우승할 수 있게 하고 못된 사람은 탈락하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온 신동대는 막손과 함께 무대 가까이 자리를 옮겼습니다. 몇몇 대련아 끝났습니다. 어느새 신동대의 차례가 왔습니다. 상대는 좀 전에 보았던 그 뇌물남이었습니다. ‘옳지, 너 운도 되게 없구나!’ 신동대는 입가에 살짝 웃음기를 흘렸습니다.
“뭐야? 기분 나쁘게. 너! 오늘이 제삿날임을 각오하거라. 이 마관충님의 주먹 한 방이면 바로 의원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입으로 시합하냐? 그만, 됐고. 덤벼!”
와하하하. 구경꾼들이 일제히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마관충의 인상이 일그러졌습니다. 점점 얼굴이 붉어지더니 신동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동대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마관충의 정권이 날아오면 손가락으로 살짝 튕겨냈습니다.
“우욱!”
마관충은 주먹을 사타구니 사이에 넣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아니, 저 녀석이 어찌했기에 주먹이 이렇게 아픈 거야?’ 마관충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격할 때 녀석의 손가락만 살짝 스쳤는데 이렇게 통증이 심하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마관충은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신동대를 공격했습니다. 이번엔 발공격. 신동대는 빙글빙글 돌면서 검지로 상대의 발바닥을 톡 쳤습니다. 또 무대 한쪽 끝으로 나가떨어집니다.
“어이쿠!”
마관충은 심판에게 뇌물을 준 것도 있어서 어쨌든 쓰러지지 않고 버티기만 한다면 심판관이 자신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공격을 하지 않고 방어자세를 취했습니다.
“겁을 먹었군.”
신동대가 비웃듯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관충이 궁색하게 항변을 했습니다.
“무슨 소리냐? 이것도 권법의 하나다. 너의 공격을 유도해 반격으로 상대를 눕히는 것이지.”
“그럼, 나의 발 공격을 한 번 막아보거라. 무영각!”
신동대는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선 마관충을 넘어 착지했습니다. 마관충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앞으로 꼬꾸라졌습니다. 구경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신동대는 단지 마관충의 키를 넘은 것뿐이었지요. 다만, 그 순간 따다닥 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상당한 실력자로 알려진 마관충이 처음으로 비무대회 출전한 사내에게 당해 맥도 못 추고 쓰러지는 것을 보고 어리벙벙했습니다.
신동대는 마관충을 시작으로 성정이 포악하거나 술수가 비열한 자들은 도술을 부려 시합에서 패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신동대를 비롯한 4명이 무대에 남았습니다. 준결승전을 앞두고 무대에 오른 4명은 서로 격려하며 선의의 경쟁을 위해 예를 표했습니다. 먼저 신동대와 청도에서 왔다는 이운룡이 대련을 펼쳤습니다. 몇 번 손과 발을 이용해 초식을 펼친 후 신동대는 상대의 실력과 자질이 무관으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함을 읽었습니다.
“이 주먹 한 번 받아보시오!”
이운룡은 변화무쌍하게 몸을 움직이며 신동대를 향해 정권을 날렸습니다. 신동대가 몸을 돌려 주먹공격을 피하자 연속 동작으로 발공격을 이어나갔습니다. 신동대는 이때다 싶었습니다.
“으앗!”
신동대는 겁을 먹은 표정을 짓고 무대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이운룡도 신동대의 갑작스런 행동에 의외라는 듯이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신동대는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내 여럿을 상대하며 가볍게 물리치고 준결승전까지 올라왔으나 이형의 무예에는 상대하기 벅차군요. 손과 발의 움직임이 정말 대단하오. 괜히 전력을 다해 싸웠다가 크게 몸을 다칠까 두렵소. 하하하!”
함께 시합을 한 이운룡보다 더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막손이가 신동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다음 주에 3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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