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신동대전(傳)(1)
2008년 양산문화원에서 발행한 ‘양산고을 옛이야기’에서 신동대 굴에 대한 전설을 기록하면서 그 위치가 신불산 중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성지도를 살펴보면 신불산이라기보다 오히려 통도사에 가까운 영축산 줄기에 굴이 있습니다.
이 굴에 가려면 통도사 서축암을 거쳐 서쪽으로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 시살등에서 서북방향으로 30분 정도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됩니다. 또 반대 방향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원동면 통도골을 따라 올라가다 산골이야기라는 펜션 맞은편 등산로를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나오기도 합니다.
이 신동대 굴은 천연석굴입니다. 전설에 나타난 것처럼 신동대라는 사람이 실존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동대가 홍길동이나 전우치처럼 신묘한 인물로 묘사된 것으로 보아 이 전설은 당시 임진왜란을 겪은 백성들의 갑갑한 심리를 드러낸 이야기인 듯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신동대는 이 굴에서 도술을 터득해 자신의 신통력을 나쁜 쪽으로 씁니다. 서울에 있는 궁궐에 침입해 궁녀들을 욕보이기도 하지요. 신동대는 워낙 신출귀몰해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나졸들을 피해 축지법을 써서 순식간에 중국으로 도망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한 노파를 만나는데 그가 자신보다 한 수 위임을 알게 되면서 겸손해졌고, 그래서 자신의 도술을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무찌르는 등 의미 있게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노파가 일러준 금기, 즉 장터에서 만난 노파와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죽게 되지요. 신동대 전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신동대가 죽은 후 그가 살던 굴에는 어떤 노파가 와서 살게 되는데 굴속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하얀 쌀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굶주리던 상황이라 노파는 그것으로 밥을 해먹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심이 생겨 그 구멍을 헤집어 크게 하였더니 쌀 대신 물이 흘러나왔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노파는 굶어 죽게 되었는데, 이 얘기가 신동대 전설에 이어진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신동대 이야기와 쌀이 나오는 구멍, 이 두 이야기가 어느 시점에 섞여버린 듯합니다. 참고로 쌀이 나오는 바위 구멍 이야기는 전국에 산재해 있지요.
처음 이 전설을 접했을 때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신통한 도술로 왜군을 무찌르는 그림을 그리면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홍길동과 전우치, 박씨부인의 도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궁궐에 침입하여 궁녀를 희롱했다가 잡히지 않으려고 축지법을 쓴 것 말고는 구체적 액션이 없던 신동대, 어떤 모습으로 다시 스토리를 얻게 되는지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야기 중에 나오는 실존인물들의 모든 행적은 허구일 뿐이라는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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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이크’. 신동대는 간발의 차로 운암도사의 장풍을 피했습니다. 도사의 장풍을 맞은 바위는 쩍하고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신동대는 후다닥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큰 바위 위로 올라갔습니다.
“할아버지! 무슨 장풍이 이렇게 약하대요? 입김 부시는 줄 알았어요!”
“뭐야? 이놈이. 내가 제대로 장풍을 보내면 니 배에 구멍이 날 텐데 어찌 힘대로 하겠느냐? 봐주면서 하는 걸 고마워하거라.”
“에이~. 안 그런 것 같은데요. 이제 저한테 못 이기니까 마구 공격을 펼치시는 것 같은데요?”
“아니래두! 이 녀석이. 그럼 지금부터 제대로 공격을 할 테니까 다치고 나서 후회하지는 말거라.”
운암도사는 바위를 향해 몸을 날렸습니다. 그리고는 지팡이 끝에 기를 모아 신동대를 공격했습니다. 신동대는 도사의 지팡이 끝이 눈앞에 다다랐을 때 도술을 부려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도사는 예상했다는 듯이 지팡이를 거꾸로 돌려 잡고 뒤쪽으로 휘둘렀습니다. “우앗!” 도사의 등에 뿅하고 나타나던 신동대는 갑작스런 스승의 공격에 그만 휘청했습니다. 지팡이에 맞지는 않았지만 중심을 잃고 바위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에구구구!”
신동대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나자 바위 위에 서 있던 운암도사가 낄낄 웃었습니다.
“야, 이 녀석아! 내가 뭐랬냐? 넌 아직 나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어.”
도사는 도술을 써서 바위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신동대는 머리를 긁적이며 장난스레 웃었습니다.
“헤헤헤, 그래도 스승님 지팡이 공격은 피했잖아요. 제가 스승님을 이기면 스승님께서 괴로우실 거 아녜요. 제가 져 드린 겁니다.”
“이 녀석이 끝까지 자기가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구나.”
“아, 배고파! 스승님 저녁엔 뭐 드시고 싶으세요? 꿩 한 마리 잡아서 구울까요?”
“됐다. 이 녀석아! 허허허허….”
밤이 되었습니다. 까만 하늘엔 하얀 별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박혀 있었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말없이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 별똥별이 떨어지면 누군가 하늘나라로 가는 거라면서요?”
“…….”
운암도사는 한동안 대답 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가 신동대의 손을 잡았습니다.
“동대야, 이제 하산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올해 너의 나이가 스물이니 세상에 나가 벼슬도 하고 가정도 꾸려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라.”
“스승님,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계속 이 산 속에 묻혀 살 작정이었냐? 이제 독립할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제가 산을 내려가면, 스승님께선 혼자 어찌 사시려고요?”
“떽기! 이놈이 속에 없는 할애비 걱정을 하는구나.”
“아네요. 정말이에요. 스승님께선 저 없이 심심해 못 사시는 분이잖아요.”
“널 이렇게 17년 동안이나 키웠으면 됐지, 더 데리고 있는 거 이제 지겹다. 이제 나도 자유를 누려보련다.”
“…….”
신동대는 한동안 운암도사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농으로 하산하라고 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신동대는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느꼈던 2년 전 세상에 나가고 싶다고 스승님께 졸랐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신동대는 스승으로부터 견디기 힘들 정도로 혼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무술 대련에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지요. 그때 스승님은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절대 세상에 나갈 생각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스승님이 먼저 하산하라고 말을 합니다. 신동대는 어찌해야 하나 혼란스러웠습니다.
“동대야,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어제 일처럼 선하구나. 니가 세 살쯤 되었을 때였을 게다. 이 할애비가 뛰어난 무인들과 무술시합을 하며 전국을 떠돌던 때였지. 청도에서 가장 강한 무인을 꺾고 양산으로 가는 길이었지. 이곳 바위굴을 지날 때 너를 만났지.”
운암도사는 17년 전 그때를 회상했습니다. 도사는 경공법으로 산을 단숨에 넘었습니다. 배내골을 지나 다시 고개를 넘는 지점이었습니다. 병풍같은 바위에 올라섰을 때 멀리 양산읍내가 보였습니다. 당시 나이 50대 초반인 데다 조선 최고의 무공을 익힌 터였기 때문에 세상에 무서울 것 없었습니다. 비록 키는 작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이길 자신이 있었으므로 세상을 부유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습니다.
한동안 바위 위에 서 있는데 동쪽 고개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린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이 관군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도사는 바위에서 몸을 날려 아래에 있는 바위굴에 몸을 숨겼습니다. 무슨 일일까 계속 바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여인의 다급한 발걸음이 가까워지더니 바위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인은 사내의 존재에 깜짝 놀라 다시 밖으로 나가려다 되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사내를 향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대인, 초면에 예의가 아닌 줄 아오나 너무 시급한 상황이라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관군에게 잡히면 저희 두 모자 죽은 목숨입니다. 이 아이를 숨겨주십시오. 제가 만약 살아남게 된다면 대인께 그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여인은 운암도사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리고 다시 굴 밖으로 나가 도주했습니다. 관군은 여인을 추적하느라 굴속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얼떨결에 아이를 맡은 운암도사는 난처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보는 순간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제자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의 어머니가 찾으러 올 때까지 여기서 길러야겠군. 운암도사는 가만히 아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한쪽 귀가 유난히 큰 아이. 도사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굽혀 앉고는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신…동…대’. 아이는 머뭇거리며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맡게 된 후 운암도사는 이 바위굴을 떠나지 않고 도술과 무술을 가르치며 아이의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어쩌면 긴 세월이기도 합니다. 운암도사는 신동대와 함께 살아왔던 나날을 회상했습니다. 운암도사와 신동대는 나란히 앉아 여전히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습니다. 운암도사가 신동대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신동대는 스승님의 표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신동대는 괴나리봇짐 하나만 달랑 메고 스승님에게 하직인사를 올렸습니다. 물론 세상에 뜻을 펼치려 산을 떠나는 것이긴 하지만 언제이건 스승님을 찾아 뵐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운암도사 역시 제자를 떠나보내는 것이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제자가 세상에 나아가 큰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기에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운암도사는 바위 위에 서서 제자가 하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신동대 역시 내려가면서 수시로 되돌아보았습니다. 바위 위에선 스승님이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신동대는 또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습니다.
점심 무렵에 신동대는 양산읍내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집들과 사람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시장에 갔을 때는 더했습니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동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시장 공터로 나왔을 때 대여섯 명의 사내가 신동대에게 접근했습니다. 신동대의 모양새가 시골에서 살다 갓 도회지로 나온 촌뜨기로 보였기 때문에 장난을 걸어 협박을 하여 가진 돈을 빼앗을 심산이었습니다.
“어이! 촌뜨기. 못 보던 얼굴인데, 어디서 왔어?”
“초면인데 반말에 무례하군. 어디서 왔으면?”
“하하하! 쎄게 나오는데? 우리가 누군지 알고도 이러나?”
“시정잡배에 불과한 네 녀석들 누군지 알 바 없고. 마침 점심 때라 출출한데 나랑 놀아서 지는 사람 밥 사기 어떠냐?”
“풋, 이놈 봐라. 괴나리봇짐만 내놓고 가면 용서해줄까 싶었는데, 죽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놈일세. 막내야, 적당히 손을 봐주거라.”
“예, 형님!”
막내라는 사내는 패거리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뚱뚱한 체구였는데 제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쿵쿵거리며 다가오면서 주먹을 세게 휘둘렀지만 신동대가 살짝 피하니 제풀에 쿵하고 넘어졌습니다. 패거리들이 그 모습을 보곤 깔깔거리고 웃어댔습니다. 이어 다른 사내가 덤벼들었습니다. 그 역시 신동대의 단순한 손놀림에 나가떨어졌습니다.
“너, 어디서 무술하는 것을 주워 익힌 모양인데 이 형님의 성미를 잘못 건드렸어. 얘들아, 한꺼번에 덤벼!”(다음 주 2편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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