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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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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06:46

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올해 아흔입니다. 치매 증세도 있습니다. 이마와 뺨에 생긴 주름살은 지나온 세월의 풍파를 얘기하는 듯합니다. 젊은 시절 늘 동백기름을 바른 머리를 뒤로 묶어서 비녀를 꽂고 다녔지만, 이제는 증손자보다도 더 짧은 머리로 뒷방에 누워 창밖 구름 따라 흐르는 세월을 물끄러미 지켜만 볼 뿐입니다.

분단으로 생이별 기구한 삶

할머니가 남편과 헤어진 지는 6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아, 올해가 건국 60년이라는군요. 우리나라의 그 60년이란 역사는 이 할머니에겐 상처의 60년인 셈입니다. 그 당시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까지 생사조차 모르는 채 살아왔으니까요. 할머니는 남편이 죽었다고 단정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설·추석이나 음력 구월 구일이 되면 차례상을 올리고 제삿밥을 지었습니다.

할머니의 남편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일본인 선생에게서 열차 기관사 교육을 받았지만, 전국을 오가며 독립군자금과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45년 광복이 되기 1년여 전쯤에 왜경에 잡혀 감옥살이했습니다. 광복되기 1주일 전에 풀려났다고 하니 꽤 오랜 기간 할머니의 한숨이 이어졌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당시 남편 옥바라지를 하느라 생계를 제대로 잇지도 못했습니다. 남편의 그런 활동 때문에 자식도 달랑 딸 하나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잡히기 전 독립군 끄나풀이란 게 들통이 나서 그 좋은 직장이었던 기관사도 그만두고 잠적했을 때, 할머니는 총을 들고 집으로 쳐들어온 왜경들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화선지를 얼굴에 올려놓고 물을 부어 숨을 못 쉬게 한 고문도 당하고 매질도 당했습니다.

일본 형사는 남편이 있는 곳을 대라고 하지만 댈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 있는지 알았으면 손을 묶기도 전에 댔겠지요. 그렇잖아도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고 밖으로만 나돈 남편이 밉기만 한데 그 남편 때문에 이런 고초까지 겪어야 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라 여겼겠습니까. 거의 초주검이 되어서야 일본 형사는 풀어주었습니다. '진짜 모르는 갑다' 하면서요.

할머니는 광복되자 너무 기뻤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서가 아니라, 남편이 이제는 독립운동을 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갈 날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팍팍한 생활에 지친 할머니에겐 남편의 귀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겠지요. 기관사 일을 나가면 집안이 다시 일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니까요.

그리움도 원망도 지친 세월

그런데 남편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어디론가 또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통일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운동은 무슨 빨갱이 짓이지." 광복 후 단란한 가정을 꿈꾸었던 할머니에게 다시 닥친 이 사태는 삶의 의욕마저 꺾게 하였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남편이 1949년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야 비로소 다시 만났습니다. 또 일년을 옥바라지했습니다.

50년 전쟁이 터지기 1주일 전쯤 남편이 '곧 전쟁이 날 것이니 진주로 가라'고 하여 돌아왔는데 그날 이후로 남편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60년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80년 연좌제가 없어지기 전까진 매년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경찰은 할머니가 월북한 남편과 혹시 밀통하고 있지는 않나 해서 불쑥 찾아와 남편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곤 했지만, 그런대로 한 세상 살아왔습니다.

할머니의 몸은 정상이 아닙니다. 왜경과 한국경찰에 잡혀가 받은 고문으로 팔이 비틀어졌고 등이 굽었습니다. 제대로 자리에 눕기도 어렵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을 원망해왔습니다. "웬수가 따로 있나?" 할머니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유린한 일과 남과 북이 전쟁을 일으켜 분단된 데는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남편만 원망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그 원망의 눈물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에 철도기관사 복장을 하고 미소 짓는 남편의 모습도 이제는 잊었습니다. 다시 만나려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세월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기에 모든 기억을 '망각의 상자'에 집어넣은 듯합니다. 일제의 침략만 아니었어도, 남북전쟁만 아니었어도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을 할머니의 일생이, 생의 끝자락인데 건국 60년이라 하니 더욱 측은할 따름입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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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4 09:26 오세영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할까요? 한번뿐인 삶인데 정말 기구한 운명이었군요
    마음이 답답하고 아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