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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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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9 혼자 노는 아이
  2. 2008.07.28 [책]예술의 노예가 되어 불꽃처럼 살다 가다
  3. 2008.07.28 [책] 우리 민족 문화 상징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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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교육부 통계를 보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외국인인 초·중·고등학생은 총 1만 3445명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국제결혼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 이전에 태어난 경우라서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문화가정의 증가만큼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들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라갈 것입니다.

2000년 한 해만 하더라도 국제결혼이 1만 2319건으로 지난해 초·중·고 학생 수와 비슷하니 얼마나 늘어날지는 굳이 통계를 따로 내지 않아도 예상 가능합니다.

다문화가정 자녀 학교 부적응

기하급수적이라 할 만큼 늘어난 국제결혼 건수는 2005년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그 수는 우리 사회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5년 4만 3121명, 2006년 3만 9690건, 그리고 지난해 3만 8491건입니다. 이들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시점이 되면 다문화가정 학생의 비율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형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가정의 자녀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학습 능력이나 사회성이 떨어져 자칫 잘못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나 자치단체, 시민단체에서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18일 창원여성의 전화는 창원컨벤션센터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의 교육현황과 대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이런 행사들은 우리 사회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날 사례를 발표한 베트남 출신 김안 씨나 태국 출신 정묵다 씨의 처지처럼 우리 사회엔 나름대로 열심히 정착하려고 애를 쓰지만 태생적 환경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정이 대부분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는 그나마 좀 괜찮아 보입니다. 엄마가 할머니와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보기도 하고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직접 대화를 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언어습득이 좀 늦긴 해도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엄마와 단 둘이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는 애초부터 한국어를 습득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아무 말도 배우지 못한 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되면 학습도 못 따라갈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로부터 놀림의 대상이 되어 올바른 인격형성에도 지장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문화가정의 자녀교육은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육기관이나 사회에서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날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는 주로 혼자서 논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하는 놀이보다는 퍼즐이나 블록 쌓기, 그림책 읽기, 컴퓨터나 그림그리기 등을 하며 지내길 좋아한답니다. 언어적 표현이 다른 아이들만큼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 적극성·제도 확대 절실

하지만 이 아이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많다고 합니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합니다. 또 초등학교 사례를 발표한 교사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는 저학년일수록 또래에 비해 미숙한 발음을 하거나 자기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분석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은희가 벙어리인 줄 알았어요. 저도 정말 그 아이가 말을 할 줄 아는지 의구심이 들었고요. 그런데 일 대 일로 천천히 말을 걸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해요." 여러 교사들이 겪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공통점입니다. 표현력이 부족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또 이 때문에 점점 더 외부와 담을 쌓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육도 결혼이민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공부 위주에서 다양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몇 자치단체가 시행하고 있는 다문화가정 방문 교육제도를 잘 활용한다면 유아기 자녀교육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주 1~2회 정도의 교육과정도 더 늘릴 필요가 있으며 방문 교육 때 자녀도 함께 교육하면 시너지효과도 있을 듯합니다. '친정엄마 결연' 역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문화가정 스스로 한국사회에 정착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집에서 남편만 내조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한국어 습득과 사회 적응 노력을 소홀히 하는 가정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부모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관련기사
· 이해하고 보듬어줄 교육정책 절실 · 다문화가정 방문교사제 "효과적"
· 다문화 가정 자녀 교육현황·대안 세미나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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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절한 예술의 노예-문신 예술실록/최성숙 지음/종문화사
 
지은이 최성숙은 1995년 타계한 조각의 거장 문신의 아내다. 그리고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이가 문신 선생과 만난 이후부터 현재까지 삶의 과정을 그린 실록이다.

최 관장이 문신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78년 11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였다. 최 관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한국대사관 공보관 방에서 운보 선생님과 그의 딸이 나왔다. 그리고 문신 선생님과 그의 동거녀 리아 그랑빌러도 같이 만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날 문신 선생님과 나와의 만남은 결국 어떤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이날 최 관장은 문신의 동거녀 리아가 자동차 좌석 부족으로 빠진 상황에서 유네스코 본부로 갔다가 본부 벽에 걸린 피카소의 <이카로스의 추락>을 문신과 함께 보면서 어색한 시간을 보낸다.

24살 나이차 극복한 문신과 최 관장의 사랑과 결혼 회고

그리고 이듬해 1월 최 관장은 리아 그랑빌러가 운영하는 화랑에서 문신의 흑단 작품 <우주를 향하여>를 본다. 문신의 조각과는 첫 대면이다. 이날 최 관장은 문신과 한두 시간 얘기를 나누고 화랑 문을 나서려 할 때 문신이 "내일 다시 오면 아틀리에에서 다른 작품을 보여 주겠다"며 제의를 한다.

최 관장은 문신의 아틀리에가 있는 파리 근교 후렛떼 마을로 간다. 여기서 본 문신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던 것 같다. "농가의 야채 창고를 개조한 아틀리에에 들어서는 순간 산더미 같은 온갖 작업공구와 방안이 빽빽할 정도의 완성, 미완성 작품들과 각종 너저분한 물건들이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는 광경이 내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래서였을까. 최 관장은 이 모습을 보고는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는 있지만 생활이 궁색한 문신의 처지를 동정하기 시작한다. "외국에서 생활하면 참으로 고생하는구나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약간 측은한 느낌마저 들면서 모성본능조차 발동했다"고 책에서 털어놓는다.

최 관장은 며칠에 걸쳐 문신의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문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육필 원고를 정리하면서 문신의 고향 생각이 어느 정도인지 느낀다. 문신이 쓴 글 "내가 남모르게 울어야 할 일이 있다면 한때나마 자기 나라에서 작업을 하지 못하고, 현재도 남의 나라에서 제작 생활을 소모하고 있는 이것뿐이다"라고 한 부분을 읽고 최 관장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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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문신의 모습. /문신미술관 제공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진행되었다. 문신 선생의 연서가 최 관장을 혼란스럽게 했다. 뜬금없는 소문도 그치지 않았다.

문신은 최 관장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마지막 소원이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땅에서 작업을 하면서 뼈를 묻고 싶다." 흔들리는 마음을 간파한 최 관장의 아버지가 "문신 선생은 일세의 대가이니 잘 받들어 모셔야 한다"며 적극적인 조언을 한 것이 결심을 굳히는 데 힘이 됐다.

두 사람은 그 해 5월 9일 서울 반포동 최 관장의 집에서 정화수 한 그릇만 떠놓고 결혼식을 치른다. 최 관장의 나이 32세였고 문신의 나이 56세였다.

다시 후렛떼의 문신 아틀리에로 돌아간 최 관장 부부는 고향땅 마산에 미술관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문신 예술의 모든 자료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 요인, 분실 등의 이유로 상당부분을 챙기지 못한 채 1980년 10월 영구 귀국을 하게 된다. 정착한 곳은 고향 마산시 추산동 언덕배기다.

미술관 건립 꿈안고 영구귀국 과정·작품 활동 이면 담아

고향에서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젊은 여자가 늙은 영감과 같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둥 호사가들의 소설은 둘째 치더라도 거장을 진정으로 반길 줄 모르는 고향의 척박한 문화풍토에 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어렵사리 1994년 문신미술관이 개관식을 한다. 개관 당일 저녁 문신은 "많이 기쁘다. 이게 꿈은 아니지?"라며 매우 벅찬 감회를 토로했다고 한다. 귀국 후 14년 동안 손수 야산을 개간해 미술관을 건립하고서는 문신은 '노예처럼' 작품 생산에 매진한다. 그런데 인근 고층아파트 건립이 진행되면서 문신 부부는 또 한 번의 충격에 휩싸이는데 최 관장은 "선생님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주 온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고 그때를 술회한다.

이 책은 최 관장과 문신 선생이 겪은 삶의 여정뿐만 아니라 문신 예술의 혼을 엿볼 수 있는 창작과정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로 간 직후 어려웠던 일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육영수 여사에게 보내는 편지 초고 등을 책 뒤편에 실어 공개했다. 511쪽. 4만 5000원.

이와 함께 문신의 작품 활동 과정을 도록으로 보여주는 자료집 <1948~2008 문신예술 60>이라는 제목의 책도 함께 펴냈다. 월간 미술세계. 194쪽. 3만 원.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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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문화 상징 100(초등 전학년/이장원 글·김이랑 그림) = 한반도 겨레문화 100가지를 초·중·고 논술 학습의 기초가 되는 주제를 대화체로 풀어쓴 책. 시리즈 3권 완결편이다.

1권은 강릉 단오제에서 미륵까지, 2권은 반가사유상에서 인삼, 이번 3권은 자장면에서 효까지 가나다 순으로 게재했다. 화보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비주얼한 편집으로 우리 민족의 상징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한솔수북. 244쪽.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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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니?(초등 중/이현 글 김준영 그림) = 아이들은 어느 정도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 책은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또 어떤 마음을 가져야하는 지 알려주고 있다. 출판사는 작가가 되는 5가지 놀라운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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