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예술의 노예가 되어 불꽃처럼 살다 가다
나는 처절한 예술의 노예-문신 예술실록/최성숙 지음/종문화사
지은이 최성숙은 1995년 타계한 조각의 거장 문신의 아내다. 그리고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이가 문신 선생과 만난 이후부터 현재까지 삶의 과정을 그린 실록이다.
최 관장이 문신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78년 11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였다. 최 관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한국대사관 공보관 방에서 운보 선생님과 그의 딸이 나왔다. 그리고 문신 선생님과 그의 동거녀 리아 그랑빌러도 같이 만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날 문신 선생님과 나와의 만남은 결국 어떤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이날 최 관장은 문신의 동거녀 리아가 자동차 좌석 부족으로 빠진 상황에서 유네스코 본부로 갔다가 본부 벽에 걸린 피카소의 <이카로스의 추락>을 문신과 함께 보면서 어색한 시간을 보낸다.
24살 나이차 극복한 문신과 최 관장의 사랑과 결혼 회고
그리고 이듬해 1월 최 관장은 리아 그랑빌러가 운영하는 화랑에서 문신의 흑단 작품 <우주를 향하여>를 본다. 문신의 조각과는 첫 대면이다. 이날 최 관장은 문신과 한두 시간 얘기를 나누고 화랑 문을 나서려 할 때 문신이 "내일 다시 오면 아틀리에에서 다른 작품을 보여 주겠다"며 제의를 한다.
최 관장은 문신의 아틀리에가 있는 파리 근교 후렛떼 마을로 간다. 여기서 본 문신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던 것 같다. "농가의 야채 창고를 개조한 아틀리에에 들어서는 순간 산더미 같은 온갖 작업공구와 방안이 빽빽할 정도의 완성, 미완성 작품들과 각종 너저분한 물건들이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는 광경이 내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래서였을까. 최 관장은 이 모습을 보고는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는 있지만 생활이 궁색한 문신의 처지를 동정하기 시작한다. "외국에서 생활하면 참으로 고생하는구나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약간 측은한 느낌마저 들면서 모성본능조차 발동했다"고 책에서 털어놓는다.
최 관장은 며칠에 걸쳐 문신의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문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육필 원고를 정리하면서 문신의 고향 생각이 어느 정도인지 느낀다. 문신이 쓴 글 "내가 남모르게 울어야 할 일이 있다면 한때나마 자기 나라에서 작업을 하지 못하고, 현재도 남의 나라에서 제작 생활을 소모하고 있는 이것뿐이다"라고 한 부분을 읽고 최 관장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고백한다.
젊은 시절 문신의 모습. /문신미술관 제공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진행되었다. 문신 선생의 연서가 최 관장을 혼란스럽게 했다. 뜬금없는 소문도 그치지 않았다.
문신은 최 관장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마지막 소원이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땅에서 작업을 하면서 뼈를 묻고 싶다." 흔들리는 마음을 간파한 최 관장의 아버지가 "문신 선생은 일세의 대가이니 잘 받들어 모셔야 한다"며 적극적인 조언을 한 것이 결심을 굳히는 데 힘이 됐다.
두 사람은 그 해 5월 9일 서울 반포동 최 관장의 집에서 정화수 한 그릇만 떠놓고 결혼식을 치른다. 최 관장의 나이 32세였고 문신의 나이 56세였다.
다시 후렛떼의 문신 아틀리에로 돌아간 최 관장 부부는 고향땅 마산에 미술관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문신 예술의 모든 자료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 요인, 분실 등의 이유로 상당부분을 챙기지 못한 채 1980년 10월 영구 귀국을 하게 된다. 정착한 곳은 고향 마산시 추산동 언덕배기다.
미술관 건립 꿈안고 영구귀국 과정·작품 활동 이면 담아
고향에서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젊은 여자가 늙은 영감과 같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둥 호사가들의 소설은 둘째 치더라도 거장을 진정으로 반길 줄 모르는 고향의 척박한 문화풍토에 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어렵사리 1994년 문신미술관이 개관식을 한다. 개관 당일 저녁 문신은 "많이 기쁘다. 이게 꿈은 아니지?"라며 매우 벅찬 감회를 토로했다고 한다. 귀국 후 14년 동안 손수 야산을 개간해 미술관을 건립하고서는 문신은 '노예처럼' 작품 생산에 매진한다. 그런데 인근 고층아파트 건립이 진행되면서 문신 부부는 또 한 번의 충격에 휩싸이는데 최 관장은 "선생님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주 온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고 그때를 술회한다.
이 책은 최 관장과 문신 선생이 겪은 삶의 여정뿐만 아니라 문신 예술의 혼을 엿볼 수 있는 창작과정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로 간 직후 어려웠던 일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육영수 여사에게 보내는 편지 초고 등을 책 뒤편에 실어 공개했다. 511쪽. 4만 5000원.
이와 함께 문신의 작품 활동 과정을 도록으로 보여주는 자료집 <1948~2008 문신예술 60>이라는 제목의 책도 함께 펴냈다. 월간 미술세계. 194쪽.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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