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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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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어.

그 제목.



나랑 비슷한 늬앙스의 제목이구만.



제목은 기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진에서도 나온다. 사진을 보면 절이 90도가 아니다. 이한동의 말바꾸기를 비꼰 제목. 2단짜리지만 편집상을 받은 제목이라도.


여행기사는 사진을 먼저 챙겨야 한다.


연못에 투영된 그림자 너무 기가 막혀

기사가 사진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 기사를 읽으면 오히려 

'바람소리도 푸르다' 이건 완전 사진에서 나온 제목. 


이 불황의 어둠에...

명동 너 홀로 밝구나

조선일보 제목. 어째제목이 세팅만 잘되면 깊은 맛을 준다.


노는 고... 고는 노.. 개각 정면 충돌.


약물 중독에 걸린 편집자 너무 많다. 뺄 수 있는 것 빼라. 습관 들면 잘 안 고쳐진다.




문화일보 사진 '누렇게 변한 소나무'  


출판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다.

신문독자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흑백사진인데 누렇게....? 흑백지면인지 컬러지면인지 고려해서 사진 제목을 뽑아야 한다.


2007년 11월 20일자 날씨 사진. 제목이 모두 천편일률로 '서울에 첫는... 아침 빙판길 조심'


중앙일보는 좀 달라

첫눈 사이로 겨울이 성큼

서울 평년보다 사슬 일러

수도권 출근길 빙판 조심


조선일보. 느닷없이 첫사랑처럼 첫눈이 내렸다

화제가 되었다고 . 이건 시다.


꽃은 진다... 청춘이 그러하듯이

사진 제목. 1면. 


쓸데없이 콧대만 높은 조선일보가 뉴시스 사진을 1면 톱에 썼다? 한인섭 대표의 제자가 짠 판이라고.


사진설명을 잘 다는 사람이 기사도 잘 쓰고 제목도 잘 단다.

사진설명이 멋지다고.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파인딩 포레스터. 은둔 생활하다 글쓰기 청년에게 멘토 활동하는 숀코너리.

"너, 새끼. 생각하지마. 무조건 써. 가슴으로 쓰고 고치지마."


뉴스는 차고 넘치는데 스토리가 없다.


자기가 쓴 기사 자기가 제목 뽑기란 정말 어렵다. 기사 어휘에 지배당하면 좋은 제목을 뽑아낼 수가 없다.


2. 균형감각.

수위조절. 균형감각 떨어지는 편집자는 또라이 기질이 있다. 쉽고 편안한 어휘고 감동 줘야. 파격? 균형감각 잃은 사람은 파격해선 안된다. 파행된다.


3. 직관, 그리고 직감.

하나에서 열을 유추해내고 열에서 하나를 추출하는 능력이 신문쟁이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타고나긴 하지만 다듬으면 수준이 올라간다.


4. 아는 게 병이다.

머리 속에 지우개가 필요하다. 콘텐츠를 미리 알고 있다는 사실은 자주 창의적 스토리텔링을 저해한다.


5. 지식으로는 지식을 넘을 수 없다

열심히하는 후배가 있는데 아웃풋이 없다. 감각으로 넘어서야 한다.


6. 꽉 채운 1테라보다 비워둔 1기가가 훨씬 더 효율적이다.

기사에 기안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지식의 창고만큼 생각의 창고도 키우자. 남의 것을 보고 창의적인 것을 발견하는 게 중요. 잡스가 마우스를 특허냈다면 어마어마한 재산을 벌었을 것이다.


7. 절제의 미학 열정과 냉정 사이.

99%의 열정을 완성시키는 것은 1%의 냉정이다.


8. 항상성과 가변성.

변해서도 안되고 변할 수도 없는 가치... 사랑, 정의, 휴머니즘.


9. 세상이 편집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이어령과 비슷한 사람. 문화도 역사도 조물주가 창조한 세상도 편집이다. '지의 편집공학' 정말 재미없는 책.

잡스의 능력도 편집에서 비롯됐다. 편집만 제대로 한다면 세상에서 못할 것이 없다.

세상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편집으로 통한다.

카드뉴스. 비주얼 콘텍트팀 구성. 편집만 제대로 알면 카드뉴스


10. 편집은 정답도 오답도 없다

편집 2~3년차가 더 나은 제목 뽑을 수도. 단지 정상에 가까이 가는 것일 뿐

초점이 맞지 않은 한장의 사진은 실수

초점이 맞지 않은 10장은 실험

100장은 스타일이다.


수업 끝.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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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기자 제목을 다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묻어 두고 자기에게 떠오르는 직관적인 언어를 사용하라.


편집기자 심사평. 편집을 어떻게 분석하고 접근하나. 마지막 관건, 화룡점정은 제목이다. 레이아웃이 아무리 좋아도 제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뽑지 않는다.

80~90% 제목 영향. 


제목 달기, 제 목 달기. 무슨 차이일까? 제목달기는 자기 목을 달기다. ㅋㅋ. 코코넷 한인섭 대표의 강의다. 워낙 강의를 많이 해서 편집기자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모양이다.)


뉴스메이커. 





그리고 뉴스 밀도높이기.



관련기사.


많으면 기획편집으로. 차장 이상은 늘 기획편집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악의 가뭄이 계속될 땐 기획기사로 치고 나가야.


공업, 어업, 생활에 까지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노태우 중간 평가. 국민일보에서 치고 나가. 1면에서 4면까지. 한겨레보다 주목 받은 이유가 기획이다.


맞춤법 이야기


등굣길



제목은 문법이 아니다. 등교길이 나중에 표준어될 수도. 편집기자들이 자꾸 쓰면. 이것도 경남도민일보 자료.



열사들 스러진 장소... 보다는 현장, 혹은 그곳이라고 표현하면 더 감성적인 제목이 된다.


축약. 옛날 생각난다. 특히 축약 제목에 매달렸던 때가 전광판 기사 보낼 때다. 경남매일 때, 그때 처음 편집을 했었는데... 특히 손가락 세어가며 제목을 뽑았던 때가 기억나는구만. 그땐 세로로 기사가 흐르던 때였다. 어쩌면 그때가 제목뽑기 더 쉬



빡빡한 제목. 장을 넣어 줄인다? 학생은 빼도 된다.



자당한, 뻔한 표현 삼가야. 버릴 것 잘 버려야.


남도일보 1면 회장 인사말. 신임이라는 말이 문패에서 빠져 어색한 기사가 되었다. 여기에 신임회장 스트레이트 기사 받쳐줘야. 신문쟁이들이 자신에 대해 인색하다.


기획은 문패가 반이다.



1회이면 편집자주가 앞서 나가야한다.


기획문패는 길면 안 된다.

 


제목 훨씬 이상으로 기획문패 타이틀이 중요하다. 제목이 길면 파이다.



제목뽑기 실습시간. 문제는 경남도민일보 사회면 창원시 용추계곡 사방공사로 생물 서식지 파괴 우려 기사. 류민기 기자가 제목을 뽑았지 싶은데... (나중에 확인, 박정연 기자) 어찌 뽑았는지 기억도 하나 안 난다.


용추계곡 복구인가 파괴인가

모기보고 칼뽑는 제목 유의. 수위조절해야. 제목 욕심에 오버하게 된다. 그런데 그걸 모른다. 아는 게 힘이다 통하지 않아. 아는 건 병이다. 독자들은 제목을 먼저 본다. 제목을 뽑을 때 기사를 먼저 본다. 이것이 중요하다. 제목을 뽑아놓고 제목이 오버, 미흡한데도 문제없어. 그런데 독자들은 무슨 말인 줄 모른다. 이것이 문제다.


초등학생 투신자살 기도 기사. 

대전일보 기사.

전학생, 학교 화장실서 뛰어내려. 

문제 없네... 하지만 화장실이 몇층인지 안 나와. 기사를 먼저 읽으면 4층이 안 보여.


산사태 공사 이대로 괜찮나. 이 제목은 너무 크다. 자연을 건드리면 재앙. 당연한 말. 용추만 다룬 게 아니라 총론. 독자입장에서 수위조절해야. 구호같은 제목의 단점. 편집기자가 먼저 흥분해버리면 안돼. 독자 감정이 이입될 여지가 없다.


중앙일보 '일본침몰' 욕 많이 얻어먹었다.


창원시 환경수도 의지 있나

창원시민연대의 탄식... 시민단체는 뒤로 빠져야 한다. 메인으로 나서면 기사의 톤이 약해진다.

늘 보던 기사같은 그런 제목은 머리 속에서 패쓰.

계곡 상류에 콘크리트 사방댐이라니. 이 제목은 괜찮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제목은 경남신문 권태영 기자의 것이었다) 유인하는 제목이다. 둔각의 제목보다 빨이 크다.

완급조절 안되는 제목... '이건 정말 아니다'. 임팩트가 있어야.

스케일이 큰 제목들이 많다.

용추계곡은 괴로워. 보충 제목 조화가 안됐지만.

생태1번지 창원시 용추계곡 콘크리트 사방댐 공사 이것도 괜찮고. 예각이다.



기사가 대본이면 편집은 연출이다. 



대칭편집. 기획편집. 그러면 밸류가 커진다. 생생효과 일어난다.


말콤 글래드웰. 선택에는 2초. 그 순간이 결정.


신문에는 어깨 제목 괜찮다. 


한 지면에 모든 제목을 다 잘달았다면 독자들의 시선은 분산되기 마련이다. 파리에 에펠탑이 여섯개면 가고 싶겠나. 하나만 부각하라. 독자의 시선을 정박시켜라. 그래야 딴 곳을 서핑한다.



우리 기사를 텍스트로 다뤘다. 설명을 듣고 보니 우리 제목이 얼마나 부족했나 느낀다. 


부영, 사심으로 가득한 집. 

제목은 재치가 있지만 뭔가 가미가 되어야. 기사를 모르는 독자는 무슨 말인가 모른다.

'사랑으로 지은집 기치 무색' 이것도 리스크가 있다.

기사 리드에 뻥튀기 표현 있지만 지금까지 내용을 쭉 알고 있어야 한다. 독자 입장에서 제목 나와야.

부영, 사랑으로 가득한 집 맞나

메인 제목이 작고 부제가 커질 수 있는 것 많아.



ㅋㅋㅋ. 이것이 120점 짜리 제목이란다. 누구냐는데... 손 안 들었다. 부끄러버서.(잠시 휴식이 끝나고 다시 강의가 시작되었을 때 또 누구냐고 물었는데 그땐 손을 들었다. "경남도민일봅니다"카믄서. ㅋㅋㅋ 그랬더니 나중에 일부러 나에게 찾아왔다. 이름쪽지 교환하고... 은근 으쓱. 경남도민일보 임정애 차장이 대칭편집에 센스가 뛰어나다고 자랑도 좀 하고..ㅋ)


이런 강의는 필기가 어렵네. 거의 사진 중심. 그런데.. 뭔가 배운다는 것보단 아직도 제대로 된 제목을 뽑지 못한다는 것이 마냥 부끄럽기만 할 뿐. 내 센스론 아무래도 편집부가 안 맞는 것 같아.(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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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쓴 희곡이 극예술연구회 10주년 공연으로 오른 데다 신춘문예 당선까지 되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다.



출세작이 된 <촌선생>


이광래는 앞에서 말한 극연(극예술연구회)과 더불어 조선연극협회에 가입될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촌선생>이 수석으로 당선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된다. 


<촌선생>은 광래로서는 세번째 작품으로 그 전의 두 편 <어막의 일야> <지는해>는 습작기 작품이었던데 비해 <촌선생>은 극연의 제10회 공연작으로 상연되어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그의 출세작인 <촌선생>의 스토리를 잠깐 소개해보기로 한다.


송해운이라는 촌선생은 강렬한 향토애를 가진 사람으로, 사재를 털어 야학교를 설립하여 직접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달훈 달근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달훈은 서울에서 현대교육을 받고 도회지의 여성과 결혼하여 귀향한다. 당시의 인텔리 청년답게 벅찬 꿈을 안고 농촌을 부흥시키려고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농촌의 너무나 비참한 현실에 부닥쳐 환멸과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달훈과 이상을 같이하여 결혼하게 되고 시골농촌에까지 내려온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둘째 아들 달근은 무식하지만 농촌에서 처참한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보아왔으므로 농촌의 현실에 대하여 착오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모든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고민하는 그들에게 가을이 되자 달훈이 결혼비용으로 진 빚 때문에 단 하나의 농촌사업 거점이었던 야학교 교실마저 양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촌선생은 엄숙하게 달훈에게 "물러가거라. 그래서 네가 배운 학문을 모름지기 어따써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촌선생은 둘째 아들 달근과 함께 농촌의 재건을 굳게 다짐한다. 


촌선생 송해운의 강렬한 향토애는 당시(1935년께)의 상황에서는 나라 사랑의 은유적 표현이고 농촌의 재건은 나라의 광복을 찾기 위한 한 방편임을 쉬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1936년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새로 지은 부민관(세종문화회관의 일부가 되어 있음. 6.25직전에는 국립극장 자리)에서 이서향의 <어머니(1막)>와 함께 유치진 연출로 극연 제10회 공연으로 상연되었다.


출연진은 허남실(무대감독을 겸하고 있었다. 당시는 연기진이 제작을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웅, 이의춘, 김영옥, 김갑순 등 당대의 톱스타들이었다.


부민관은 객석이 2000석이나 되는데다 무대도 넓고 좋아 극연 1기때 주로 공연하던 공회당의 좁은 연단 위에서 연기하느라 북새를 떨던 때와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관객이 5800명이나 동원되어 당시로서는 대성황이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중앙지에 보도된 극평은 작품의 주제성을 높이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연출가 유치진도 재평가하여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4월 10일 개막 첫날 첫 무대에서 잊지못할 일화가 있었으니...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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