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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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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을 비롯한 경남이야 워낙 구석구석 많이 돌아다녀 봤기 때문에 어딜 가도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드는 반면 생애 처음으로 갔던 광주는, 광주사람에게야 익숙해서 존재감마저 없을 수 있겠지만 난 타지 사람이다 보니 발길 닿는 곳, 눈에 비친 곳 모두가 새롭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연수라는 프로그램은 타지를 여행할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기도 하다. 당일 오후 집에 일만 없었다면 1박 더 하면서 광주 곳곳을 돌아다녔을 수도 있겠다 싶다. 다른 구경거리는 다음으로 미루고서라도 연수 마치고 점심식사를 했던 돼지갈비 맛집 나정상회에서 가까운 5.18자유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경남신문의 권태영 기자도 창원으로 되돌아가는 버스 같은 걸 타기 때문에 함께 움직였다. 아, 알고봤더니 권 기자와는 광주로 올 때도 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것도 내 바로 앞좌석에. 그걸 모른채 2시간 반을 타고 있었단 얘기다. 하긴 나도 버스만 타면 고개 처박고 스마트폰에 퐁당 빠지는 스타일이라...



5.18자유공원 입구. 리플릿을 보니, "1980년 5월 18일 민주화운동 당시 정권찬탈 기도하던 일부 정치군인들의 강경진압에 맞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분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으로, 원래의 위치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원형으로 복원, 재현하였다. 드높은 민주화 의지와 젊은 열정으로 불의에 항거했던 투쟁의 자취요, 인권 평화 화합의 상징으로 기억될 역사의 현장이다." 라고 적혀 있다.



5.18자유공원은 자유관(영상, 전시실), 헌병대 중대 내무반, 헌병대 본부ㅏ무실, 헌병대 식당, 영창, 법정, 들불열사 기념비로 구성되어 있다.주소는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평화로 13(치평동)



실물 크기로 당시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당시로 치면 연병장 쯤 되겠다.



헌병대 본부 사무실. 들어서면 영상이 켜지며 당시의 모습을 설명해준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였던 이곳은 시내에서 계엄군에게 끌려온 시민들을 조사했던 곳이다. 수사관들은 조사하기 전부터 무조건 진압봉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하여 시민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바로 옆에서 구타당하여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을 지켜본 연행당한 사람들은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 허위자백이라도 해야 했다.


옆방에서 고문당하는 사람들이 지르는 신음과 비명은 끌려온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다. 책상 위에는 굵은 곡괭이자루, 송곳 등이 높여 있어 수시로 매질을 하고 송곳으로 손톱 밑을 찔러대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 타이핑을 하는 중에 왜 이렇게 손톱 밑이 아플까. ㅠㅠ



35년 전 많이 보던 장면.... 음... 많이 당하기도 했던... 갑자기 슬퍼지려하네.ㅠㅠ



헌병대 식당. 원래는 그랬는데 5.18민주화운동 당시엔 시민군 연행자들에 대한 고문, 조사를 하던 취조실로 사용됐다고.



취사실은 물고문 장소로 활용. 수사관들은 잡혀온 시민들에게 매일같이 자술서와 진술서를 쓰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틀리면? 내용이 마음에 안들면이겠지... 온몸이 피법벅이 되도록 구타했다고.



이렇게 말이야.



이곳은 영창이다. 당시 상무대 헌병대 영창이라고 불렸던 곳인데 일부 정치군인들의 정권찬달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이 구금된 곳이라고. 이곳으로 강제 연행된 시민들은 폭도라는 누명을 씌워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온갖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에 16시간을 정좌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단다. 영창의 구조가 반원으로 되어 있어 감시 데스크에 앉으면 모든 영창 내의 움직임이 한눈에 관찰되는 형태다.



방 하나에 몇 명이 들어갈 수 있을까. 안내장을 보니 많게는 150명이 수감되었다고 하는데... 헐. 이 공간에 150명이라니...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였겠다. 수감자들은 1980년 10월 27일 광주교도소로 이감될 때까지 이곳에 구금되어 있었단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 1980년 8월 5.18군사재판을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당시에 군사재판의 진상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고 법정에 총으로 무장한 헌병을 배치시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가운데 비공개 약식재판을 진행했단다. 그러자 구속자들은 재판 시작 전부터 부당한 군사재판에 대한 항의표시로 소리높여 애국가를 불렀다고. 그래, 애국가는 이런 때에 부르는 거야.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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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언론연수차 광주에 들렀다. 나로선 생애 처음이었다. 여러 번 갈 기회가 있었지만 희한하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먼곳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거리는 공식적인 일이 아니면 가급적 피했던 것도 사실이다. 가족여행이랍시고 멀리 간다고 갔던 곳도 기껏 포항이었으니. 어쨌든 광주란 곳은 내게 새롭고 신선한 동네였다. 당연히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기록해야할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숙소 인근에 평화공원이 있었다. 1박 2일 출장 나가서 술을 안 마셔본 적도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1시쯤 잤다. 그랬더니 6시 제때에 눈이 떠졌고 한 30분 비몽사몽을 즐기다가 밖으로 나갔다. 물론 나가기 전에 다음지도로 주변을 탐색했다. 가까이 공원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지도 상으로 보면 평화공원은 완전히 인공 공원이었다. 길쭉한 직사각형에 양쪽 끝은 원으로 라운딩한 그런 형태다.



두바이호텔에서 묵었으므로 내가 들어간 평화공원 입구는 광주시청 반대편이다. 숲길을 따라 좀 걷다 보니 인공으로 바위벽을 만든 장소가 나타났다. 적힌 팻말을 보니 '입석대폭포'를 반으로 축소해 만들었단다. 입석대폭포는 무등산 정상 부분 서쪽에 깎아지른 바위절벽이다. 해발 1017미터. 이 높은 곳에 폭포라니. 정말 한 번 꼭 가보고싶다. 입석대는 돌의 모양이 5~8각형이고 기둥은 10~16미터의 높이로 열을 지어 서있는데 이런 돌 모양은 다른 산에선 찾아보기 어렵단다. 그래서 2005년에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고.



인공이긴 하지만 이렇게 물이 흐르니 산책 분위기는 좀 났다. 음, 평화공원에 대해 인터넷에 뭐라고 나와있는지 검색해봤더니, 국내 곳곳에 평화공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부산 평화공원, 서울평화공원, 도라산 평화공원, 제주4.3평화공원, 춘천대접기념평화공원...



그런데 광주 평화공원에 대한 글은 그리 많지 않다. 동네 아주 작은 규모의 산책코스라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떤 블로그에서 짧은 소개가 있어 옮겨본다.


"상무지구에 있는 평화공원, 1998년 콘크리트광장으로 조성돼 많은 시민이 불편을 겪었는데, 보기도 좋지 않고 해서 2007년 기후온난화 대응과 녹색도시 성장을 위해 도시 한가운데 이런 평화광장을 지었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대로 베껴쓴 것은 아니다. 축약. ㅋㅋ



우레탄 바닥이다. 차라리 흙길이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나선형으로 물이 흐르도록 설계한 배수로가 재미있다.



도로원표. 이것을 통해 동서남북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방햐과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그냥 조형물 쯤으로 보고 넘기면 그러그런 예술작품 쯤으로여기게 되지만 표기된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서 음미해보면 의외로 재미있기도 하다.



오전 9시 30분 쯤의 광주 하늘. 빌딩 숲 가운데 있다 보니 하늘이 더욱 이채롭고 예뻐보인다.



평화공원 조성 전후를 알 수 있는 패널. 조성은 잘 한 것 같다. 우레탄 대신 흙을 깔았더라면 120점. ㅋㅋ


난 다음의 이 지도를 보면서 은근히 지적 추리를 즐겨버렸다. 물론 내 추리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위성사진을 언제 찍었느냐는 것인데,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으로 보아, 물론 위쪽이 북쪽이라는 전제 하에. 대개 지도는 위쪽이 북쪽이므로 그 방위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태양은 거의 남서방향 가운데 떠 있는데 그림자의 길이로 보아 촬영 시기는 12월로 판단된다. 정확한 날짜까지 추리하긴 어렵지만 촬영 시간대는 대략 오후 3시 30분쯤일 것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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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절로 수(水) 절로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절로

우리도 절로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절로 늙으리라   -송시열(1607~1689)-


국악연주단 정음 공연. 가운데 악기는 '생황'인데... 저기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와 비슷.


가곡전수관에서 온 보도자료를 보고서 우암의 청산도를 다시 음미해봤다. 이게 시절가조, 즉 평시조인데 가곡으로 어떻게 부르나 궁금해서 동영상도 찾아 들어보았다.


아, 먼저! 시조와 가곡의 차이를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부연설명을 하자면, 시조를 관현악기에 맞춰 노래로 부르는 것이 가곡이다. 말하자면 시조는 문학 쪽이겠고 가곡은 음악 쪽이겠다. 유행가로 치자면 가사냐 노래냐 뭐 그정도.


우암의 '청산도'는 학창시절 한 번쯤 보았음직한 시조다. 청산 하면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겠지만. 우암의 이 시조는 세월따라 자연따라 순리에 따라 사는 삶을 조망한 것으로 또한 시어의 댓구를 잘 활용한 수준 높은 작품이다.


이 노래는 가곡에서 계면조 계락으로 불린다. 계면조란 말은 서양음악으로 치자면 단조 비슷한 것이다. 반음 낮은 음이 많아 우울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성조다. 그러면 계락이란 계면조 음계로 불리는 계락시조의 준말인데 가볍고 밝은 음계이 우락시조에 대조되는 곡이다. 여창 또는 남창으로 불리는데 '청산도'는 여창이다. '청산리' '노세노세', '바람도', '병풍에', '한자 쓰고' 등 6곡이 있다고 한다.




표제 음악인 '청산도'를 비롯해 7월 목요풍류에 준비한 작품은


기악합주 '경풍년'

가곡 계면조 이삭대엽 '두류산'

가곡 계면조 평거 '초강'

가곡 계면조 두거 '임술지'

가곡 우조 언락 '벽사창이'

가곡 계면조 계락 '청산도'

가곡 계면조 대받침 '태평가'


이렇게 프로그램이 짜여졌다. 가곡 공연에서 마지막 곡은 언제나 계면조 대받침 '태평가'라는 사실(어쩌가 간혹 아닐 수도 있겠지만)은 상식. *^^*


7월 13일 오후 7시 30분. 가곡전수관 영송헌. 055-221-0109


가곡은 깊게 들어갈수록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내용들이 더 많이 있으나 다 나열하려면 끝이 없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공연에 앞서 좀 일찍 포스팅을 하니 관심이 있는 분은 좀 여유있게 관람 계획을 짜시라는 뜻.


늘 하는 이야기긴 하지만 문화란 알면 재미가 있다는 점. 빠져들면 마니아가 되고. ^^ 언젠가 해금을 타면서 가곡 한 수 읊을 날 있겠지.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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