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02)N
돌이끼의 작은생각 (108)
돌이끼의 문화읽기 (417)N
다문화·건강가족 얘기 (16)
경남민속·전통 (12)
경남전설텔링 (72)
미디어 웜홀 (142)
돌이끼의 영화관람 (20)
눈에 띄는 한마디 (8)
이책 읽어보세요 (61)
여기저기 다녀보니 (91)
직사각형 속 세상 (93)
지게차 도전기 (24)
지게차 취업 후기 (13)
헤르테 몽골 (35)
돌이끼의 육아일기 (57)N
몽골줌마 한국생활 (15)
국궁(활쏘기)수련기 (16)
Total913,793
Today42
Yesterday72
Statistics Graph


벼르고 벼르던 판도라 관람이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끝내 수포로 돌아가자 실망이 컸다. 언제 다시 극장에 걸리겠냐만 다시 걸린다 하더라도 이제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풍선에 바람이 빠질 대로 빠져버려 본대도 별 감흥이 없을 듯하다. 이런 저런 소문으로 내용이 다 파악된 데다 뒷차 타고 뒷북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몰라 언제 TV에서 하거나 T라이프 옥수수 상영관에서 하면 볼랑가.


오랫동안 극장엘 가지 않은 터라 판도라를 대체할 영화를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이러저러한 언론에서 <더킹>을 추천하기에 아내와 낙점하고 보러 갔더랬다. 정치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지만 예전에 보았던 <변호인> 정도라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여겼기에 추천했다. 의기투합. 그런데 극장에 들어갔을 때 <더킹>과 <공조>를 두고 한 번의 갈등을 겪었다. 아내는 유해진이 나오는 <공조>가 더 재미있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내 말을 잘 듣는 나로서는... 음, 고민.


사실 정우성이나 조인성은 유해진보다 네임 밸류가 떨어진다. 적어도 아내에게선. 유해진이 네임밸류가 그들보다 높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 삼시세끼에 있다. 어쨌든 <더킹>을 보려고 시간 맞춰 왔으니 그대로 보자고 밀어붙이고 표를 끊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행동은 참 용감했다. ㅋㅋ


첫 장면은 양동철 역을 맡은 배성우와 박태수 역의 조인성, 그리고 한강식 역을 맡은 정우성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는 상면이다. 이 교통사고의 원인은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화두는 안동 하회탈. 하회탈이 왜 웃고 있는지 아느냐는 한강식의 질문이다. 정답은 삼베다. 삼베는 대마에서 추출되고 나머진 태워 없애는데 대마 연기를 흡입하고 웃지 않을 수 없으니 하회탈이 웃지 않을 수 없단 얘기다. 검사들이 한 번 웃어보자고 대마 이야길 예사로 꺼낸다. 아무리 자기들끼리지만. 영화는 그렇게 이들의 정체를 암시하고 박태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처음부터 다시 재구성한다.


<더킹> 스틸컷.


박태수는 고교시절 꼴통에다 양아치다. 공부완 담을 쌓았고 쌈질엔 담을 넘었다. 제 아버지도 도둑질에 쌈질에 양아치 수준을 넘지않는 존재다. 그 애비에 그 아들 아니랄까봐. 그런데 한날, 무소불위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씩 빈다. 그의 존재는? 검사다. 어린 박태수의 눈에 최고의 권력자는 검사임을 확신한다. 공부를 해야겠는데 양아치 골 속에 글자라는 것이 입력될 리가 없다. 교실을 둘러보니 앞자리에 앉은 보잘것 없이 공부만 잘하는 애들이 그런 권력을 쥘 것이라고 생각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부는 해야겠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아주 우연히 공부의 비법을 발견한다. 이런 경우가 있나. 놀면서 책을 보니 내용이 머리 속에 쏙쏙 다 들어간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것도 죄라고 커닝 오해를 받고 쌤한데 후줄근히 얻어맞기도 한다. 그렇게 검사가 된 태수.


<더킹> 스틸컷.


정의로울 뻔 했던 그가 속물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정의를 택하느냐, 권력을 택하느냐 딱 그 둘 중에 무엇을 취하는 지에 달린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타락한 권력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태수가 느끼는 권력의 정점에 한강식이 있다. TV에 나오는 멋진 검사 한강식의 울타리로 들어가는 것이 어디 쉬우랴만 그가 맡은 사건 하나가 아주 쉽게 그를 그쪽으로 밀어넣게 된다. 태수는 한강식이 하나 둘 터트리는 사건에 정치거물조차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면서 권력의 마법에 도취하게 된다.


<더킹> 스틸컷.


영화는 1980년대 정치 상황부터 2010년대 까지 대선의 결과에 따른 검찰 내부의 권력 변화 등을 비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사극에 박태수의 내레이션이 더해지다 보니 극적 긴장감이 뚝 떨어져버리긴 했지만 시대변화를 손쉽게 파악할 수는 있었다.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지를 무당 굿을 통해 점치는 장면도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할 검사조직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것도 나쁘진 않지만 온갖 무게를 다 잡고 있는 한강식이 촐싹거리는 춤을 춘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액션이었다. 물론 빌딩 최고층 펜트하우스에서 선보인 한강식과 양동철, 박태수의 '방송댄스'도 쉬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이긴 하다.


<더킹> 스틸컷.


한강식 팀은 시의적절하게 건 수를 터뜨리며 성과와 인기 면에서 승승장구한다. 그 비결은 사건을 김장김치처럼 숙성시키는 데 있다. 그래서 영화는 우리나라 권력이 정의롭지 않고 그저 지혜롭다고 할 수 있으려나, 잔머리 잘 굴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말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나중에 박태수가 자신을 파멸시킨 한강식을 징치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한.


<더킹> 스틸컷.


영화 중에서 가장 실망한 부분은 한강식의 버림을 받은 박태수가 재기의 의지를 다지면서 "정치에는 반드시 보복이 따른다 그게 정치 엔지니어링의 철학"이라고 얘기한 것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말하자면 영상을 되돌리기 하듯 뒤로 돌리는 방법을 썼는데, 이게 웬 시간 때우기냐 싶을 정도로 본 걸 다시 보게 되돌리면서 고스란히 관객에게 지루함을 선물했다는 점이다. 영화 러닝타임이 두 시간을 넘긴 이유이기도 하겠다.


<더킹> 스틸컷.


검사 조직과 깡패 조직의 커넥션도 이 영화가 풍자하고자 한 중요 요소다. 한강식이 들개파 두목 김응수와 연결되어 있다면 박태수는 그의 친구이자 들개파 2인자 였던 최두일과 연결고리를 갖는데 일종의 한강식 복제본이랄 수도 있겠다. 검찰 조직이 이런 식으로 계속 복제되고 있다는 얘길 것이다. 그러면서 자칫 걸리적거리면 조폭의 응징 수준으로 권력 구도에서 제거해버리는 검찰이라는 조직. 박태수는 그렇게 친구 최두일의 '나댐' 때문에 지방검사로 좌천되어버리고 만다. 그것도 모자라 제거의 대상이 되어버리는데... 솔직히 이 장면 이해가 안된다. 박태수가 얼마나 한강식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했기에 직접 왕림하셔서 제거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감독 한재림은 연출하고 말았다. 그냥 서울 찾아가서 선배 검사인 양동철에게 쫓겨난 것 말고 뭐가 있었지? 


<더킹> 스틸컷.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장면, 한강식과 양동철이 박태수를 데리고 안동으로 가던 중 최두일의 차에 들이받쳐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그게 최두일이 박태수를 살리기 위해서였단다. 모범수로 출소한 최두일이 박태수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다가 어떻게 정보를 취득해 알게 되었는지 몰라도 박태수의 위기를 접하고 돌연히 그를 살리기 위해 차를 들이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망설여진다.


<더킹> 스틸컷.


게다가 느닷없이 양복 한 벌 깔끔하게 차려입고 혈혈단신 들개파 두목 김응수에게 찾아가는 만용이라니. 류준열의 매력을 발산하기 위한 홍콩 느와르를 기대한 씬인지 몰라도 전혀 합리적 근거도 없이 죽을 자리로 뛰어드는 것을 우정이라고 여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이런 장면처럼 영화의 곳곳에 줄거리의 블랙홀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 속으로 깊이 빠져들기 못하게 하는 방훼꾼들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 풍자라고는 하지만 너무 작위적이어서 이해를 강요받아야 했고 무당씬, 펜트하우스씬, 화면 리와인드씬 등등 엉뚱한 연출 덕분에 실소를 흘리고 마는, 그래서 영화와 거리두기를 의도한 것이라면 성공했다 말할 수 있는 영화긴 하다.


정우성, 조인성, 배성우, 게다가 김의성까지 연기력 탄탄한 배우 구성으로 한층 기대를 한 데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이때 제대로 된 정치풍자 영화를 한 번 보려나 하고 부풀어올랐던 기대감에 바늘을 찔린 듯하다. 현시점의 정치 상황을 빗대 몇 가지 상징적 요소가 있다만 압축력 떨어지는 극 구성 때문에 제대로 빛을 못본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끝으로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정치공학을 이용해 한강식을 역습하는 박태수의 전략이, 그게 정말 설득력 있는 것인지는 더 두고봐야겠다. 핵심 키워드가 정의롭지 못하거나 이야기의 중심부를 관통하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댓글을 달아 주세요